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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바로알기 / 뱀 독의 해독제는 뱀 독이다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10 조회수1,726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경바로알기 2020.10.10.

뱀 독의 해독제는 뱀 독이다


맹독(猛毒)을 가진 독사(毒蛇)에게 물리게 되면, 반드시, 그 뱀을 확인해야 한다는 땅꾼들의 철칙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어떤 뱀에게 물렸는지를 대충 설명이라도 할 수 있어야, 의사가 신속히 치료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살모사의 독은, 살모사의 독에서 추출한 해독제를 써야하고, 코브라의 독은, 코브라의 독에서 빼낸 해독제를 써서, 치료를 합니다. 그러니까 뱀독의 해독제는, 뱀이 죽어서 남긴, 뱀독이라는 말이에요.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이 뱀을 보내세요. 불 뱀! 맹독을 가진 독사입니다. 그리고는 해독제를 주시는데, 장대에 매달린 구리 뱀!

주님께서 당신을 그 불 뱀의 비유를 하시면서, ‘내가 그렇게 장대에 매달려야 한다.’라고 하셨어요. 그게 불 뱀에게 물려서, 사망으로 내닫고 있는 역사 속 아담들의, 유일한 해독제라는 거예요. 에덴동산에서 뱀에게 물린 아담들의 해독제는, 구리 뱀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밖에 없다는 그런 뜻이거든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면, 딴 곳에 가서 거두절미하고, 예수님이 뱀이래. 이렇게 얘기하면 안되요.~.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에, 애굽 사람들이 믿던 신() (Rha)’라는 신이죠. 그런데 그 신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신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은 , 그 신의 형상으로 섬기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신을, 하늘의 것으로 표현할 땐, 태양으로 표현을 했고, 그 때 당시에, 그들이 신앙하던 그 신! ‘에 대한 신화가 있어요.

그 보이지 않는 신인 가 땅으로 내려와요. 그런데 그 신이 땅으로 내려올 때에는, 양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내려옵니다. 그 신이 땅으로 내려올 때에, 양의 머리를 가지고 내려오는데, 그 때에, 그 신을 수호하는 수호신들이 이미 땅에 있었어요. 그 중에 대장이, 뱀 머리를 가진 신이에요. 하늘에서 내려온 양의 머리를 한 , 그 뱀의 머리를 가진 신에게, 능력과 권세를 부어서, 늘 하늘에 있는 를 대적하는, 땅 속에 있는 커다란 뱀을 죽이라 그래요. 옛 뱀! 커다란 뱀! 성경은 그걸 용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커다란 뱀! 뱀이, 커다란 뱀! 용을 죽이러 땅속으로 내려갑니다. 그 둘은 결국, 뱀의 머리를 한 신인, 커다란 뱀을 세 토막으로 발라서 죽이고, 하늘의 신 에게 영광을 돌리죠. 뱀이, 큰 뱀을 죽이고, 평화가 오는 거예요. 그게 애굽의 신 의 신화예요.

애굽의 왕들의, 파라오의 왕관에는 전부 뱀이 새겨져 있죠? 뱀 머리! 그게 신의 수호신이라는 표식이었어요. 그리고 고걸 지혜라고도 했어요. 그래서 성경이 뱀을 지혜롭다고도 하잖아요? ‘지혜라고 해서 눈으로 그렸어요. 성경에서도 눈을 지혜라고 합니다그래서 애굽의 어떤 왕관이나 어떤 왕들의 묘소에서 발견된 부장품들에 보면, 눈이 이렇게 그려져 있는 거예요. 피라미드에도 , 미국의 달러에도 피라미드 꼭대기에 눈이 요렇게 그려져 있거든요

그 이야기는 애굽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경과 같은 이야기였어요. 자기들의 신에 관한 이야기였단 말예요. 그게. 430년 동안 애굽에서 그 이야기를 진리처럼 들어왔던 이스라엘에게, 하느님께서 당신을 설명하실 때, 어떻게 설명하겠어요? 하느님이 문자를 애굽 이후에 주셨단 말예요. 그러니까 그 애굽에서 익숙한 그 어떤 것으로 설명을 해야 할 것 아녜요? 그래서 예수님을 양이라고 하고, 뱀이 등장하고, 큰 용. 옛 뱀도 등장하고 그러는 거예요. 히브리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들이 430년 동안 들었던 신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금방 이해를 할 수 있었단 말예요. ‘, 그게 그거야?’ 이렇게! 하느님은 항상 땅의 것을 모형으로 해서, 하늘의 것을 설명한단 말예요. 왜냐하면? 그 분은 무한이기 때문에, 무한은 유한에게 감지가 안 돼요. 그래서 유한의 것으로 무한을 설명하는데, 그게 모형이란 말예요.

 

(히브리서 8:5) 5 그 사제들은 하늘 성전의 모조품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모세도 천막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에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그 본을 따라 모든 것을 만들도록 하여라' 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땅의 것으로 순서를 정해서, 차례차례 친절하게 하늘을 설명하는 것! 이걸 헬라어로 코스모스라 그래요. 질서, 차례, 순서란 뜻이에요. 코스모스란 뜻은! 우주가 그렇게 순서가 있고 질서 있게 움직인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냥 우주를, ‘코스모스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건 원래, 헬라어에서 나온 말이란 말입니다. 그걸 성경이, ‘세상이라고 번역을 하죠? 코스모스를! 그러니까 세상은, 차례차례 순서대로 하느님과 하늘을 설명하고 있는 모형인 거예요. 그게 곡해된 상태, 표피의 상태로 머무르고, 그렇게 인식이 되어버리면, 그게 나쁜 의미의 세상이 되는 건데, 그 코스모스가 차례차례 설명을 한 하느님과 묵시를 이해하게 되면, 그 코스모스는 곧 진리가 된단 말예요. 그래서 이 세상이, 하느님의 능력(能力)과 신성(神性)을 품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란 말예요. 사도 바오로가!

그렇게 차례차례, 순서대로 어떤 모형들을 세워 놓고, 하늘과 하느님을 설명하던 모형이, 바로 율법(律法)이요, 성막(聖幕)이요, 성전(聖殿)이요, 성경(聖經)이에요. 보세요. 그것들을 보면 차례차례 다 순서가 있어요. 뒤섞이면 안 돼요. 성경도요 차례로, 편집이 된 이유가 있단 말예요. 다 순서가 있다니까요. 그걸 코스모스라 그래요.

 

그 코스모스란 단어 앞에, ‘라는 관사가 붙잖아요? 그러면 성경은 그걸, 성전으로 해석을 해요. 성전이죠? 물론 옛 성전이죠? 그런데 그게 하늘의 성전으로 이해되어질 때, 하늘 성전이기도 해요. 그래서 太初에 하느님이 天地를 창조했다에서, ()과 지()를 창조했다는 거요. ‘를 설명하기 위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 우리는 이 자연 속에서, 그리고 하느님 말씀 속에서, 성전 안에서, 하늘을 볼 수도 있고, 이 땅의 것으로만 볼 수도 있고. 이렇게 두 부류로 갈라지게 되는 거요. 옛 성전, 율법, 모형, 가짜, 비진리, 뱀의 말, 이 모든 건, 같은 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코스모스!’ 헬라어에서 오미크론 시그마가 뒤에 붙으면, 무조건 다 존재를 가리키는 거거든요. 크리스토스, 코스모스, 이렇게요.

그런데 주님은 당신 자신을, ‘헐려야 할 성전, 옛 성전이라 그랬어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라고 했을 때, 그 원어로 보면, ‘이 성전이에요.’ 옛 성전에서 그 말을 하셨거든요. 그러니까 그 옛 성전과 자신을 동일시시킨 거예요.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세 번째 성전으로 일으키리라.’ 부활하리란 뜻이에요. 일으킨다는 것은. 그리고는 당신을 또 율법이라고 이야기했단 말예요. 그리고는 내가 한 말이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라고도 하셨어요. 지금 세 번째 성전으로 살아난 자가 누구예요? 여러분과 저예요. 우리가 성령을 담은 성전이라면서요. 그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된, 세 번째 성전!

그래서 그 이스라엘이 성전을 지었던 그 자리에, 이스라엘의 성전이 다시 지어지면 안 돼요. 그러니까 그 엄청난 재력과 화력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이, 모스크를 못 뺏는 거예요. 왜 고거 하나 못 뺏을까요? ‘내가 그 땅 값을 천 배 줄게그래 갖고 뺏을 수도 있잖아요? 그거! 그런데 유대인들이 고걸 못 뺏는다니까요. 하느님이 살아계신 거예요. 거기에 성전이 지어지면 안 된다니까요. 그건 부서졌다니까요. 없어졌어요.

 

당신이 하신 말이, 그들을 심판(審判)할 것이라는 말은, 당신의 말이, 어떤 자들에게는 비진리로 들리게 하시겠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그걸 그냥 표피적으로 듣고, 그냥 멸망(滅亡)으로 가는 거예요. 예수를 옛 성전으로만 인식을 한 어떤 이들이, 있을 거라는 말예요. 하느님의 말씀이, 그 말을 곡해(曲解)하여 적용하는 자들에게, 심판의 근거(根據)로 사용되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하느님의 말씀이!

뿐만 아니라, 주님은 당신 자신이, ‘율법을 헐고, 완성하실 것이다라고도 말씀하셨어요. 산상수훈에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줄 아니? 완성하러 왔다.’ 말예요. 그리고는 그 다음에 바로 또, 내가 폐지하러 왔다.’ 이래요. 원어로 보면! ‘부셔서 완성할 거야.’ 이런 말을 하신단 말예요. 그건 그 분이, 당신이 지실 십자가와 부활을 상징적으로 설명한 거란 말예요. 그 말은 당신이 율법! ‘나하쉬, 이 되셔서, 율법의 표피적 모형을 파괴해 버리시고, 그 진리, 내용으로, 다시 사시겠다는 말예요. 그 진리의 말을, 요한복음에서 영(), 생명(生命). 프뉴마, 성령이 나에게 왔다는 건 진리가 나에게 이해되어졌다는 뜻이란 말예요. 그렇게 예수님은 파괴되어야 할 율법이기도 하셨어요.

(요한복음 12:48) 48 그러나 나를 배척하고 내 말을 받아 들이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세상 끝날에 그를 단죄할 것이다.

예수님은 로고스라는 그릇에 담아서, ‘레마를 설명하시는 분이라 그랬죠? 그래서 예수님이 로고스로 오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못 알아봐. 그래서 로고스예요. 그 안에 진리, 레마를 담고 왔단 말예요. 그래서 내가 진리요, 길이다.’라고 말씀하세요. 본인이 직접! 그런데 로고스로만 보니까, 사람들이 죽여 버리는 거예요. 말씀이신 예수님이, 어떤 이들에게는, 비진리로 들리고, 보인다는 말예요. ‘뱀의 말이에요. 이게! 뱀의 말! 죽이는 말! 물어버리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역사 속 예수 안에 진리를 읽어내지 못하고, 그 표피적 예수만을 섬기는 자들은, 구약의 과월절! 그 고기! 그 피만 추억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전히 그것도 나의 우상(偶像)이에요. 그래서 하느님이 그러는 거예요. 그리로 돌아갈래? 거기는 재앙이 있는 곳이야,어떤 재앙? ‘물이 피가 되는 곳이야!’ 원래는 물이, 진리(眞理)란 말예요. 생수라 그랬단 말예요. 예수님이!

그 피가 물로 이해되어져야, ‘프뉴마, 진리란 말예요. 그런데, 자꾸 그걸 내 밖의 어떤 것으로 두고, 그냥 하다 보면, 그게 재앙이다. 그래서 첫 번째 재앙(災殃), 물로 피를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이게 재앙이다. 그리고는 그 말씀이 양식이 안 되는 거니까. 그 다음부터 우박, 이게 다 뭐예요? 먹거리를 작살내는 거요. 메뚜기, 독종, 뭐 이런 거. 그거 양식(糧食)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어둠이다.

 

피에서는 물과 진리로 가야 되는 거지, 절대 뒤로 돌아가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도, 포도주를 물로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건 원어로 보면, 물 포도주예요. 물로 포도주 만든 게 아니라! 물 포도주예요. 물이라는 거예요. 피는 물이다. 정결케 하는 물! 그래서 포도주 항아리에다 물 부으라고 안 하고 물 항아리에다가, 포도주 항아리가 거기 있었어요. 원래 신랑이 담아 놓았던 그 포도주 항아리가! 구약에 머물면 안 된다 말예요. 여러분은! 그걸 잘 설명하고 있는 곳이 요한복음 3장이에요.

(요한복음 3:12-21) 12 너희는 내가 이 세상 일을 말 하는데도 믿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늘의 일을 두고 하는 말을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 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 간 일이 없다. 14 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15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17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18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20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봐 빛을 미워하고 멀리한다. 21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그가 한 일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명쾌하죠? 이걸 말로 설명을 하면, 오히려 여기에 흠이 가요. 그래서 진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성경만 읽어줘도 돼요. 그래도 설명을 해야 되니까. 바오로가 그런 거요. 내가 부득불 한다. 내 안에 있는 걸 꺼내 놓으면, 전부 로고스가 되어 버리니까, 그걸 말하기가 꺼려지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억지로 한다는 뜻이에요. 진짜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억지로. 이거 알아들을까? 그래도 하라니까, 억지로 해야지.

12절을 보면, 인간들은, 땅의 것으로 설명을 해 줘도, 못 알아들어요. 못 믿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뭘로 봐요? ‘나하쉬, 비진리, 으로 밖에 못 보는 거예요. 그러면 그 뱀에 물린 자를 살리려면, 해독제가 뱀! 그래서 바로 그 다음 절에, ‘내가 구리 뱀으로 달려야 살아. 너희들은! 내가, 진리가 빛으로 왔는데, 너희들이 나를 못 알아보잖아! ‘레마로 못 받아들이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너희들은 나에게 물린 거야!’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너희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내가 해독제로 달리는 방법 밖에 없다니까. 여러분 그게 복음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구리 뱀으로 달리겠다고 말씀하신 거고, 너희가 나의 말을 뱀의 말 정도로 밖에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해독제가 되어, 너희를 살려야 한다는 의미의 그 말은, ‘너희는 이 진리를, 진리가 말이고, 말이 생기고, 그게 호흡이고, 그게 숨이고, 그걸 성령이라고 하잖아요? 창세기부터 똑같은 말들이 반복되는 거예요. 그럼 그게 없으면, 콧김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냥 네페쉬.‘ 그게 죽은 거잖아요? 죽은 거란 말예요. 그 예수를 로고스로만 보면 즉은 거예요. ? 이게 콧김으로, 성령으로 내 안에 못 들어간 거니까.

그러니까 에제키엘서의 마른 뼈들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호흡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단 말예요. 이 우주 속에서! 그게 죽음이에요. 그래서 생기가 밖에서 뚫고 들어가야 돼요. 그래서 하느님이 그러죠. 생기야 들어가라! 네가 들어가라!’ 그렇게 해서 ! 나는 이렇게 해서만 살아날 수 있는 존재구나!’를 아는 거. 이게 선악의 법에서 해방되는 거란 말예요. 고걸 믿는다그래요. 그리고 살았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호흡이 나에게 온 거니까. ‘내가 영생을 가졌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가 말씀으로, 영으로, 호흡을 하는 산 자가 된 거란 말예요. 꼬리를 몰수당하고, 아랫물, 바다에서 낚여, 위로 올라온 자. 이제 드디어 호흡을 하는 자가 되었다는 그런 상징적 표현이란 말예요. 그것이.

그래서 15절이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라고 진술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를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들을, 내가 지금까지 말한 요것들을 믿는 자, 영생을 얻는 거라고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렇게 살아나는 거! 너희들은 죽은 자이기 때문에, 이미 뱀에 물려서 말씀을 진리로 못 받아들이는, 호흡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내가 달려서, ‘! 요런 방법으로 내가 사는구나!’라고 이 뱀의, 이 십자가의 진의를 이해하게 되면, 그게 진리를 갖게 되는 거고, 요게 말을 갖게 되는 거고, 요게 호흡을 갖데 된다는 뜻이란 말예요. 이게 살아나는 거예요. 그게 마음의 법, 그러니까 심비의 법을 새긴 자라는 뜻이란 말예요. 그러니까 그걸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유명한 요한복음 316절의 말씀으로 이어지죠?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그 구절의 첫 단어가, 헬라어 후토스예요 극진히, 이처럼이에요. 헬라어는 가장 핵심인 단어, 중요한 단어를 제일 앞에 놓거든요. 그러니까 그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극진히에요. 내가 이야기한 그 내용으로 이처럼, 극진히!’ ‘그 내용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나타냈다란 말예요.

하느님께서 위와 같은 내용으로 구원을 이루셔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가 곡해하는 비진리가 있어야 되고 뱀이 있어야 돼요. 그래야 뱀으로 오셔서, 그들을 그저 구원해내시는 이 구원이 설명이 되니까. 그래서 하느님이 사랑을 어떤 것을 가지고 사랑하셨느냐 하면, ‘호 코스모스이 세상을 사랑하여가 아니라, 정확히 번역하면, 그 세상을 가지고, 세상으로, 호 코스모스, 성전으로, 그 사랑을 설명했다는 거예요. 어떻게? ‘이처럼, 극진히!’

너희들을 뱀에게 물리게 하여, 그 뱀의 해독제를 제시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설명하는 그 것처럼! 하느님이 코스모스, 성전, 율법, 비진리를 먼저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하느님께서 묵시인 하늘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한의 뱀 같은 자들에게, 뱀 취급을 받으러 먼저 내려오세요. 그래서 내려왔는데, 아무도 못 알아 본 거예요. 그리고 성경 여러 곳에, ‘의인은 없다, 하나도 없더라.’라고 이야기하는 거요.

그러니까 하느님은 일단 비진리로 내려와요. 아니 본체는 진리지만, 우리가 못 알아보는 진리로 내려온다니까요. 그래서 일단 선악과, 뱀을 먹게 만들어요. 뱀에게 물리게 만들어요. 그게 선악과 먹는 거요. 독을 먹은 거니까. 그게. 그리고는 당신을 뱀 취급하는 아담들의 처음 자리를 폭로하죠? ‘거봐, 못 알아보잖아? 말씀, 진리인 나를 못 알아보잖아? 그럼 너희들은 호흡이 없는 거네?’ 이거. 그게 영이고, 숨이고, 호흡이니까요. ‘너희들은 호흡 없는 거네?’ 이거 먼저 폭로하시는 거란 말예요. 그래서 110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 말씀이신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건 곧 죽음이에요. 거기에 호 코스모스’, 세상이 도구로 필요한 거예요.

그렇게 호 코스모스에 의해서 아담들이, 뱀에게 물린 자들이 라는 것이 폭로가 되는데, 선악과 먹은 자들이라는 게 폭로가 되는데, 하느님께서 그들을 그 죽음에 내어주지 않고 살려낸단 말예요. 어떻게? ‘내가 죽어 너희가 산 것이다. 너희의 존재는, 내 살과 피로 된 거지, 너희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생명나무 실과 따먹어서 된 게 아냐. 요걸 진리라 그래!’ 그걸 가르쳐주는 거란 말예요. 고게 십자가인 거고, 그걸 믿는 자가 해독제를 먹고 살아나는 거예요.

! 그런 거구나. 나는 그렇게 산 자가 된 거구나! 그러면 이제 나는, 선악의 법에 묶이면 안 되는 거구나! 내가 선악판단의 주체가 되면 안 되는 거구나!’ 이리로 가는 거예요. 그 모든 내용이 이처럼안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하느님께서 성전을 가지고 당신이 사랑을 설명한 거란 말예요. ‘이처럼 극진히, 하느님이 호 코스모스’, 율법, 성전, 성경을 갖고, 사랑을 하시어이런 뜻이란 말예요. 그게 무슨 유니버설리즘(Universalism), 보편 구원론을 지지하는 구절이다, 뭐 아니다, 이런 것 논의할 구절이 아니란 말예요. 이건. ‘봐라, 하느남이 세상을 다 사랑하셨대. 그러니까 모든 이가 다 천국 가는 거야.’ 뭐 이 따위 소리들을 하고 있어요. 이 구절을 가지고!

 

뱀은, 선악과는, 너희들을 심판하려고 하느님이 보낸 게 아니라, 그걸 통하여 죄가 뭐고, 너희들의 처음 자리가 뭔지 가르쳐서 의와 선과 구원의 자리로, 생명의 자리로 끌어내기 위해 준 거야가 바로 그 다음 절이에요.내가 너희들을 구원하러 온 거지, 심판하러 온 거 아냐!’라는 것이, 그 말이란 말예요. 누구도 심판 안 할 거다. 그런 말 아녜요.

그래서 17절이, 이렇게 이어지는 거예요. 하느님이 당신의 아들을, 세상으로 보낸 건, ‘그걸 그냥 율법으로 오해하고 죽으라고 보낸 게 아니라, 그 옛 성전 안에 내용으로 담긴 진리를, ‘호라오하고 살아나라고 보낸 거야!’라는 말이 그 17절이에요.

이게 하느님은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는 말씀의 내용이기도 한 거죠. 율법이 그 안에 들어 있는 진리로 해석이 되면, 그 율법은 완성이 되는 진리가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율법을 하나하나 다 지켰다는 말이 아니라. 그러면 안식일 날, 그런 거 뜯어먹고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건 어긴 거잖아요? 그래서 겉에서 보면 율법이 폐해지는 것 같이 보여도, 예수가 완성하니까! 결국에는 율법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므로, ‘, 율법이 이거 이야기하는 거였어?’ 그래서 완성이라고 하는 거요. 그걸 법을 심비에 새긴다고도 표현하는 거란 말입니다.

그런데 선악과의 독에 중독이 된 사람들이 예수의 십자가라는 해독제를 먹지 않은 상태 그대로, 빛이신 예수를 바라보게 되면, 어떻게 바라보겠어요? 자기들의 그 자랑스러운 행위를 악하다라고 하는, 뱀처럼 보이는 거예요. 자기들 보고 뱀 새끼, 독사의 새끼라고 말하는, 큰 뱀처럼 보이는 거요.

아이 저게 바알제불이 보낸 자라, 우리보고 이렇게 뱀 새끼, 독사의 새끼라고 이야기하는구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마귀라고 해요. 큰 뱀이란 뜻이에요. 그게. 그러니까 죽이자! 그러는 거요. 큰 뱀이 뱀에게 도륙되어 죽어야 하는데, 죽어야 할 큰 뱀이, 옛 성전, 율법, 뱀으로 오신 주님을 죽여 버리는 형국이 되는 거죠. 19, 20절이 그 이야기예요.

 

구리 뱀을 믿어야 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잖아요? 믿음이 없는 자들은 눈에 보이는 내 행위나 성숙만을 의지해야 돼요. 그런데 그렇게 자기들의 행위를 의지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믿음의 대척점에 놓고는, ‘악하다, 뱀의 일이다. 마귀의 행사다. 너희 아비는 마귀라 그러니까! 이렇게 말씀하는 예수에게 절대 안 나온단 얘기예요. 왜 나오겠어요? 내 가치 있는 걸 가치 없다. 똥이다. 얘기하는 놈에게 왜 나가겠느냐고요? 죽이는 거요.

그래서 21절이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 거죠.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자기 것이 아니라, 이걸로 가치를 챙겨서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되는 게 아니라, 그게 선한 일이었다 할지라도, 하느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는 거요.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어떤 행위를 했다하더라도 그 빛이신 주님께 나오는 거예요. 그 빛이라는 건, 어두움을 드러내기 위해 온 게 빛이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원래 그런 어둠이었다는 걸 아는 이는, 빛이 자기를 드러내어도 아무 상관없어요. 원래 내가 맞는데.

그렇게 빛으로 오는 자들은, 자기들의 모든 행위가 호 코스모스의 역할로 주어진 진리, 깨달음용 도구라는 것을 알게 돼요. 그리고 자기들에게서 나온 선한 행위 또한, 하느님 안에[서 발생한 것임을 알게 된다 말입니다. 선과 악의 구조 속에서 탈출하게 되는 거예요.

 

다말이 시아버지와 잠자서 애를 낳고, 그걸 법으로, 자기 안에서 이해를 하고, 평생 죄책감에서 시달리며 살았으면, 예수님의 족보에 못 올라가는 거예요. 그거 죄잖아요? 율법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그건 죄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또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애기들까지 다 죽였거든요. 하느님이 시켰단 말예요.

그걸 하나만 가진 자!’ 원래 우리는 뱀의 혀, 두 혀를 가진 자, 두 마음을 가진 자인데, 그걸 진리 안에서 하나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만 가진 자! 모노 게네스! 독생자! 아들이라고 하는 거요.

사도 바오로가 로마 교회에게, 죄가 군림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면서, 그 죄의 군림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에서 밝혀 주죠? 그게 뭐라 그래요? 죄의 종노릇하는 게? 몸의 사욕을 쫓는 거라 그래요. 이건 사사로운 욕심 부리지 말라. 이런 말이 아녜요.

죄의 몸이, 나를 유혹해서 사망으로 끌고 가려하는 그 사욕! 그걸 쫓지 말라는 거예요. 여기서 사욕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에피뚜미야’. 산상수훈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에서 음욕! 그게 에피뚜미야란 말예요.

그러니까 절대로 율법으로 너희 자신을 판단하거나 단죄하지 말라!’는 거예요.에피뚜미야!’ 희생제사 많이 드리고, 율법 많이 지켰다고 해서, 그걸 많이 한 사람을 선한 걸로 보는 게, 음욕을 품는 거고, 그가 간음한 자라는 뜻이에요. 그게. 절대 선악의 두 마음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거예요.

(로마서 6:14) 14 여러분은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총의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죄가 여러분을 지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지배하다라고 번역이 된 퀴리요많이 듣던 단어죠? 퀴리오스, 아도나이를 번역한 단어예요. 하느님이란 뜻이거든요. 죄가 너희들의 생명을 주관하는 하느님이냐? 걱정하지 마! 안 죽어! 하느님이 너희의 왕이란다. 은혜가 너희의 하느님이야. 죄가 네 왕 아냐. ‘퀴리요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이제는 너희들이 법 아래 있는 자들이 아니라, 그 모든 걸 덮는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이니까, 자유 해! 그게 진리야! 그게 복음이야! 비록 너희는 뒤돌아서면 또 그걸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할 거야. 그러나 진리는 영원하단다. 그러니까 그 때마다 진리를 떠올리고 다시 돌아와!’ 그런 말이에요. 그게 장대에 달린 구리 뱀을 보고, 믿고, 살아난 자들의 현실이라는 거예요. 자 그렇다면 내가 경험한 죄가, 악이, 선악과, 율법이,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영생으로 가는 필연적 과정이었던 겁니까?

우리는 반드시 뱀에 물리는 경험을 해야 돼요. 그래서 에덴의 동산에서, 하와가 뱀에 물리는 일이 먼저 발생한 거요. 나무는 달랑 하나 심어 놓으시고, 계속 단수예요. 거기서 나무, 나무, 나무가. 그러면 열매라곤 선악과 밖에 없죠. 그런데 하느님이 그랬어요 동산의 나무 열매를 먹어라.’ 그랬다니까요. 사과, , 토마토 이런 각종 열매 다 먹어라가 아니라, 동산의 열매를 먹어라 그랬어요. 나무가 단수란 말예요. 거기서도. 그래놓고는 열매는 달랑 선악과 열매 밖에 없네요. 그건 먹으라는 거예요. 먹고, 먹지 말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먹으라는 거예요. 그게 예요.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그거 먹지 마! 그리고 열매는 먹어! 그래놓고 거기서 지켜보고 계셨다니까요. 어디 마실 갔다 오신 거 아녜요. 하느님은 편재하시는 분이에요. 옴니프레젼스(Omnipresence),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란 말예요. 그러면, 그거 진짜 먹으면 안 되는 거면, 왜 안 말리시고, 가만히 보고 계시느냐고요? 따먹자마자 오시는 거예요. 그래, 이제 내가 그게 뭔지 설명해 줄게. 성경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렇게 그 죄가 뭔지를 아는 걸, ‘()’라 그러고, 그걸 아는 걸, 생명(生命)이라 그래요. 그래서 선악과를 먹고, 그게 뭔지를 아는 걸, 생명나무 열매를 먹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는 먹고 왜 내가 이걸 먹지 말라고 했는지를 알아야 돼! 그게 생명나무 열매를, 동산의 각종 나무 열매를 먹는 거야.’ 이 내용이 거기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그건 괜히 왜 따먹어 가지고, 우리를 이 고생을 시켜! 이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여러분이 거기 있었으면 당연히 따먹죠. ‘The Passion of the Christ’ 보면서, 그 때 내가 있었으면, 우리 주님 그런 고통 안 당하게 했을 텐데. 그게 베드로였잖아요? ‘주님, 내가 목숨 걸고 지킬게요.’ 하느님이 사탄아!’ 그랬다니까요.

보세요. , 그 죄가 뭔지를 알았어요. 죄의 실체가 뭔지를 알았어요. ‘자칫하면, 그거 열심히 하다가 죽을 뻔 했네!’ 알았어요. 그게 생명이라 그랬습니다. 그가, 또 다시 자기의 손을 뻗어 선악과를 먹으려고 하겠어요? 바로 그걸 의도하시는 거예요. 자의로, 이제 앞으로는 절대로 너희들이 선악과 안 먹게, 내가 만들어 버리겠다는 거예요.

억지로 하느님이 명령하셨으니까. ‘먹으면 안 되겠지!’ 하면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니까 침 질질 흘리면서 꾹 참는 건 당신이 나보다 힘이 세니까, 내가 그걸 듣는 거지 저 맛있는 거 내가 당신보다 힘이 조금이라도 세면, 내가 당신 죽이고 먹을 거야.’와 똑같은 거예요. 율법주의가 바로 그거라니까요. 힘이 없어서 참는 거예요. 그러니까 은혜를 이야기하면 , 그러면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거예요?’ 지금까지 억지로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거였으면 하지 마!’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런 거와 상관없이 하느님 안에서 행한 그들은, 그거 하면서 또 즐거워요. 그러면 하세요. 열심히 하세요. 목숨 걸고 하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왜 언제는 하라 그러고, 언제는 하지 마라 그러고.

 

(마태복음 12:31-32) 31 그러므로 잘 들어라.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거나 모독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슬러 모독한 죄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32 또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뭐 성령의 역사, 금가루가 막 쏟아지고, 은이빨이 금이빨로 바뀌고, 방언이 터지고, 이걸 부정하는 저를 성령훼방 죄라고 인터넷에 올려놨더라고요.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용서하심을 얻는다.’라고 선언하는 거예요. 지금. 누가? 하느님이 그러면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이 뭐겠어요?

사람들이 율법으로 규정해 놓은 모든 죄를! 그 죄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율법! 그건 사하심을 받아. 그러나 프뉴마, , 생명그걸 훼방! 블라스페미(Blasphemy), 이 블라스페미는 말을 깨다, 진리를 깨다라는 뜻이에요. 너희들의 행위로 지은 죄 같은 그런 건, 용서해 줘. 십자가만 이해하면 그건 다 용서가 돼. 맞죠. 그런데 이것조차 동의 안 하려고 그래요. 저보고 방종을 조장(助長)한다 그래요. 하느님이 하신 말씀이잖아요? 이건요! 십자가를 진리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율법에 근거하여 지은 모든 죄는, 용서함을 받는다 그래요.

여기서 사람이라고 번역이 된 안트로포스, ‘옵타노마이에서 파생된 단어거든요. 옵타노마이, 블랫보, 에이돈, 호라오.’ 이렇게 보다라는 단어가 네 개나 있는데, ‘옵타노마이는 그냥 옵티컬.’ 그냥 보는 거! 껍데기만 보는 거! 그런 껍데기로서의 사람이, 그냥 껍데기로 율법을 보고, 그거 어긴 그 죄들! 십자가만! 그게 뭔지만 알면, 그까짓 건 다 용서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용서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 블라스피미아(Blasphemia), 성령, , 진리의 말, 그걸 훼방! 깨는 자는, 비진리로 깨버리는 자는, 여전히 율법적인 것으로 진리를 훼방하고 깨버리는 자는, 절대로 용서가 안 된다는 뜻이에요. ? 그걸 진리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하느님이 은혜를, 성령을 안 부었다는 증거니까! 이게 성령훼방이라는 말이에요. 성령훼방은 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거예요. 구원 얻는 자들은 반드시, 그 법의 파괴 후에 생명으로 세워지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말이에요. 그 길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 바로 32절에, ‘32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고 하신 거예요. ‘사람의 그 아들!’ 예수님이 인자로 오셨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다음에는 인자아녜요. 그리스도 예수예요. 예수님이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예수님이 와도 아무도 못 알아봤어요. ? ‘로고스로 왔으니까. 못 알아봐요. 그래서 말로 그 예수님이 거역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그 거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진리가 왔어요. 진리가 와서 그가 내 것으로 가르치리라그래요. 예수님이 한 말은 똑같이 가르치는데, 그걸 진리로 이해시키는 게 성령이에요. ‘그가 내 것으로 가르치리라. 내가 가르친 말을 생각나게 하리라. 이해되게 하리라가 진리가 하는 역할이잖아요? 성령이 하는 역할이잖아요? 그런데 그 성령이 왔는데, 여전히 그걸 거역하고 있으면, 이해하지 못하고, 법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면, 성령이 안 온 자니까, 호흡이 없는 자니까 죽은 거란 뜻이에요. ‘그들은 심판 받는다!’ 그 말이에요. 용서 못 받는다는 말이! 그래서 성도는 반드시, 말씀을 레마로 이해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마태복음 12:33-37) 33 '좋은 열매를 얻으려거든 좋은 나무를 길러라. 나무가 나쁘면 열매도 나쁘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 수 있다. 34 이 독사의 족속들아! 그렇게 악하면서도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결국 마음에 가득 찬 것이 입으로 나오는 법이다. 35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겠느냐. 36 잘 들어라. 심판 날이 오면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될 것이다. 37 네가 한 말에 따라서 너는 옳은 사람으로 인정받게도 되고 죄인으로 판결 받게도 될 것이다.'

네가 갖고 있는 그 말이 어떻게 이해되느냐에 따라서, 너는 의롭다 칭함을 받기도 할 것이고, ‘악하다, 넌 지옥 가!’ 이렇게 꾸지람을 받기도 할 거라는 얘기예요. 여러분의 행위로 심판이 일어나요? 말로 일어나요? 여러분이 그 진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로 심판이 일어나는 거예요. 말로 심판한다, 그러잖아요? 심판의 근거는 말씀이에요.

행위가 심판의 대상이 되,면 하느님이 먼저 심판 받아야 되요. 살인 교사, 매춘 조장. 다말에게 가서! 그게 말이 되느냐고요? 그래놓고 그 여자보고 의롭다그래요. 이거 행위로 심판 받으면 하느님이 먼저 받아야 돼요. 이게 법으로 보는 것이에요.

 

(요한묵시록 20:11-15) 11 나는 또 크고 흰 옥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지고 그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12 나는 또 죽은 자들이 인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 옥좌 앞에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책들이 펼쳐져 있고 또 다른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자들은 그 많은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적을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13 바다는 자기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토해 냈고 죽음과 지옥도 자기들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토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 행적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14 그리고 죽음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죽음입니다. 15 이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진리가 완성이 되면, ‘호 코흐모스!’ 옛 하늘과 옛 땅이 반드시 사라져야죠? 실체가 왔으니까. 실체로 완성이 됐으니까! 그래서 진리를 아는 이들일수록, 이 현상계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진다. 그러죠. 율법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변화가 아니라는 거지. 우리는 이 지향성이든지, 가치관이든지, 세계관이 반드시 변해요. 그 모형은 더 이상 소용이 없어요. 내가 진리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는 심판이 일어나는데, 보좌에 앉으신 분이 심판을 하기 위해 책을 펴시는데, 한 쪽에는, 책들이고, 한 쪽에는 이에요. 한 쪽에는 복수의 책들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단수의 책이 있네요. 그런데 그 원어로 보면 한 손에 있는 단수의 책은, 곧 생명이다.예요. 하느님이 갖고 있는 그 단수인 책은 생명이다.’ 그리고 다른 쪽에 갖고 있는 책들은, 거기에 행위들이 많이 적혀 있는 책들! 복수의 책들이에요. 그리고는 거기에 쓰여 있는 행위들대로, 심판이 일어난대요.

보세요. 성경을 전부 법으로 보게 되면, 책들이 돼요. 그러나 성경은 한 문장! 그 문장을 이루고 있는 단어! 그 단어를 이루고 있는 문자! 요걸 파자(破字)라 그래요. 한 자, 한 자가 가지고 있는 그 뜻을 해석하는 걸! 그 모든 게 다, 같은 이야기만 해요. 그리고 그 내용이, 자연 속에서 그대로 나타나요.

비는 하늘에서만 내리고, 꽃이 떨어지면 씨가 생기고, 이게 다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바예요. 그러니까 그걸 보고 어떻게 하느님이 계시다는 걸 인정 안 하느냐고요? 한 문장! 그 문장에 속한 장! 그리고 그 장이 적혀 있는 책! 그리고 그것이 적혀 있는 성경! 모든 게! 그리고 그것들이 갖고 있는 단어들! 단어들이 갖고 있는 파자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글자 하나하나가, 다 똑같은 얘기만 하고 있어요. ‘생명!’

그러니까 그걸 생명, 진리로 받는 이들에게는, 그 책이 그냥 생명이에요. ‘사랑이라니까요. ‘아가페예요. 순수한 그거! 그걸 그냥 모르니까, 아가페. 하가 붙으면 순결한, 거룩한. 그래서 귀저기 앞에다 하기스. 거기 다 쓰는 말이 아녜요. ‘아가페!’ 아 이게 사랑이구나! 법은 사랑이구나! 하나구나! 알면 그게 생명인 거예요. 나에게. 이게 법이 되면, 이게 전부 내가 해야 될 것들이에요. 내가 하지 말아야 될 것들이에요. 그래서 그것대로 해서, 책에다가 다 썼어요. 요거 했어요. 아 요거 잠시 실수했어요. 그랬더니, 그걸 떡 들더니. 이걸로 심판을 해요.

그런데 그 심판 받을 자들이 어디서 나와요? 바다에서! 바다가 그 때 토해내요. 여전히 아랫물에 있던 호흡 없는 자들이더라.’가 이 말이에요.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들! 그 때 퉁퉁 불은 채로 바다가 내어주는 게 아니라, 옛 하늘과 옛 땅이 없어진 땐데, 바다가 또.

성경을 생명으로, 진리로 이해하게 되면 다른 것들이 다 수월하게 이해돼요.  이렇게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단 말입니다. 여러분이 그 단수인 생명, 그 책을 생명으로 받지 못하면, 그 생명이 나와 관계없는 것이 되고, 내 밖의 율법이 되기 때문에, 내가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자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가 심판 받는다는 거지, 뭐 어디에 여러분의 이름이 적힌 책이 있다는 게 아녜요.

(로마서 7:6-7)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계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7 그러면 율법이 곧 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었던들 나는 죄를 몰랐을 것입니다. 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없었더라면 탐욕이 죄라는 것을 나는 몰랐을 것입니다.

요 위까지 바오로가 무슨 이야기를 했냐하면, ‘아 율법 지켜서 구원받으려고 하는 건 전부 죄다.’ 아예 난도질을 했거든요. 그래놓고 갑자기 율법이 죄냐? 그런단 말예요. 다소 모순되는 듯한 자기의 진술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듯 한 진술을 또 한단 말예요. 그러면서,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선악과, 그 모형, ’호 코스모스가 아니었으면, 내가 죄가 뭔지 몰랐을 거야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바오로도 선악과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을 이해를 해요. 그렇잖아요? 율법이 죄냐? 아니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내가 그걸로 진짜 생명이 뭔지, 진리가 뭔지 깨달았으므로. 바오로가 모노게네스하나를 가진 자가 된 거예요. ‘! 그게 죄 아냐!’ 이렇게. 그리고는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욕이 죄라는 걸 알지 못했을 거야.’ 그래요. 여기서 탐욕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오늘 본문의 몸의 소욕과 같은 단어예요. ‘에피뚜미아, 희생제사.’ 희생 제사 계속 반복하여 드리는 거! 익숙한 어떤 걸 하는 거! 이게 에피뚜미아,탐욕란 말예요. 그게 간음하는 거고, 살인하는 거고, 그게 우상 섬기는 거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그러한 자기가 목숨 걸고 지켜내던 율법 아닙니까? 그게! 목숨 걸고 지켜내던 율법 아녜요? 그런데 율법의 진의(眞意)를 알고 나니까, , 그게 전부 탐내지 마!’라고 했던, 그 하느님의 가르침 속에 들어 있던 것들이라는 거예요. 아니 그럼 내가 목숨 걸고 하느님을 섬기려고 했던 이 모든 게 다,‘에피뚜미아, 탐욕이었단 말이야? 알게 됐다는 거예요.

자기는 지금까지, 성령이 그 진의를 알게 해 주시기까지, 그게 선이고, ‘인 줄 알고, 죽으라고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율법의 진의를 알고 나니까, 그게 죄라고 말하더라는 거요. 그 율법이 나의 죄, 진짜 죄를, 탐욕이, 에피뚜미아가 뭔지를 알게 해 주었으므로, 그게 어떻게 악한 거며, 그게 어떻게 죄냐?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에게 꼭 필요한 거였어. 구약성경에서 그 탐욕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찾아보니까, 이사야서에 그 단어가 나와요.

(이사야서 57:17) 17 그들이 너무 못되게 욕심부리므로 나는 성이 났다. 화가 나서 그들을 치고 얼굴을 돌렸다. 그래도 배신하고 제 멋대로 가 버릴 때

여기 하느님의 노를 격발(激發)시키는 인간의 욕심이 나와요. 그 욕심이 뭐냐 하면, ‘인간이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는 거래요. 선악과 따먹은 인간의, 아담의 마음은, 항상 두 갈래입니다. 선과 악이라는 두 갈래 마음! 그 마음을 새 마음인, 한 마음으로 바꾸어야 영생이에요.

 

그런데 선악과 따먹은 아담들의 두 마음은, 늘 자기의 열심을 근거로, 자기의 하느님처럼의 삶을 추구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열심히 율법도 지키고, 희생제사도 힘닿는 데로 해보는 거예요. 귀찮았을 거예요. 그런데 자기의 자존심 지키기 위해 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느님은 거기에 하시는 거예요. 여기에 쓰인 탐욕이라는 단어, 그 히브리어 배짜, ‘탐욕스럽게 얻다, 획득하다, 손을 뻗어 부정하게 획득하다.’라는 의미예요. ‘배짜! 이걸 탐욕이라 그래요. 그걸 히브리 어구로 옮기면, 솨라흐 야드 라카르예요. 그걸 해석하면, 자기의 힘으로, 자기의 손을 뻗어, 열매를 취하는 것!’ 이걸 탐욕이라 그래요. 창세기 322절에 나옵니다.

(창세기 3:22-24) 22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제 이 사람이 우리들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끝없이 살게되어서는 안 되겠다' 고 생각하시고 23 에덴 동산에서 내 쫓으시었다. 그리고 땅에서 나왔으므로 땅을 갈아 농사를 짖게 하셨다. 24 이렇게 아담을 쫓아 내신 다음 하느님은 동쪽에 거룹들을 세우시고 돌아 가는 불칼을 장치하여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목을 지키게 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고, 제일 먼저 하려고 했던 일이 뭐예요? 다른 거 다 잊어버려도 돼요. 선악과 따먹자마자, 손을 뻗어,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려는 시도를 하더라는 거예요. 내 힘으로 생명, 행복, 구원, 거기에 도달해 보겠다는 시도! 모든 시도가 그거라는 거요.

하느님이 그거 막겠다는 거요. ? 그렇게는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얻었다고 하는 자들의 그 생명이, 바로 죽음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손을 뻗어, 그가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가 바로 그 단어예요. 솨라흐 야드 라카흐예요. ‘야드손을 뻗어, ‘솨라흐열매를 획득하다. 부정하게 획득하다. ‘라카흐라는! 정식으로 생명이 우리에게 오려면 하느님이 생기를, 말씀을, 진리를 하고 불어 넣어줘야 되는 건데, 선악과 먹은 자들은 손을 뻗어 부정하게 획득하려고 하더라는 거요. 이걸 에피뚜미아, 희생제사 반복하여 드리기, 익숙한 거 행하기!’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요. 그거 하지 마! 그거 하지 마! 율법은, 그거 하면 안 돼! 선악과는, 그것 먹으면 안 돼! 이거 가르쳐 주려고, 우리에게 준 거라는 거예요.

그걸 아는 걸 의()라 그러고, 그걸 율법을 완성했다라고 하는 거지, 그거 하나하나 다 지켜내는 게 아니란 말예요. 율법 중에는 남자는 할 수 없는 것도 있잖아요? 애 낳고, 월경하고. 이럴 때 부정하니까, 가서 제사지내라. 이건 어떻게 할 거냐고요? 다 지키려면!

 

바오로가 진의를 알고 보니까, 지금까지 자기가 행한 모든 율법적 선한 행위들이, 전부 탐욕이었다는 것을 안 거예요. 부정하게 취득하다!’ 솨라흐를 헬라어로 바꾸면 오레고 마예요. ‘손을 뻗다. 자기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거든요. 좋은 말인 거 같죠? 거기에서 나온 단어가 올기조예요. ‘하다예요. 그게! 예수님이 사도 바오로를 다미스코 途上에서 만나거든요. 그렇게 열심히 목숨 걸고 하느님을 섬기던 그에게, ‘너 왜 나 핍박해?’ 그랬어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 너 나에게 화내?’ 이런 말이거든요.

인간이 인간의 힘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하여 하느님께 뭘 해드리려 하는 것! 그 시도 자체가, ‘에피뚜미아, 그게 솨라흐인 거고, 그걸 오리고 마이라고 하고, (거기서 나온 게 올기조니까.) 하느님을 대적하는 거고, 하느님께 화내는 거란 말예요. ? 하느님, 내가 이렇게 한다는데, 왜 하느님은 자꾸 은혜로, 선물로 받으라고 그래요?’ 이게 하다는 거예요. ‘올기조라니까요. 이게!

 

그래서 형제에게 성내는 자마다, 지옥 불에 들어간다 하는 거요. 이게 올기조란 말예요. 큰 아들이, 자기 형제에게 화냈죠? 그 단어도 올기조예요. 똑같이! ‘나는 이렇게 아버지 집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저 창녀와 간음하고 온 저 놈은, 왜 저렇게 대우해 주세요?’ 이게 분노잖아요? 그건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겠다는 거 아녜요?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도저히 구원 받아서는 안 될 자가 구원받고 왔는데, ‘아니, 착한 내가 더 상을 받아야지 왜 쟤가 구원받아야 해요?’ 십자가를 부정하는 거죠. 이게 하는 거예요. 하느님께 화내고 있는 거요. 오늘 날 교회는! 특별히 건강한 교회들은!

그렇게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 하느님께 노하는 자를, 히브리어가 그냥 사탄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요. , 여러분 밖에 있는 머리에 뿔 달리고, 케첩 질질 흘리고 다니는 그게 사탄이 아니라, 진리를 대적하는 것! 그게 사탄이에요. 그걸 헬라어에서 그대로 음역을 해서, 사탄!’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막으려고 하는 베드로에게 그냥, ‘사탄이라고 한 거예요. ‘이 마귀 새끼야가 아니라, ‘너 하느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거야. 그거!’ 사탄이에요. ‘그게 뱀이야!’ 그러나 그 소리를 알아듣고, ‘아 죄송합니다. 그게 하느님을 핍박하는 일이었군요. 이제 하느님의 은혜 앞에서, 하느님의 능력과 영광을 찬송하는 자로만 살겠습니다.’ 하면, 그게 산 자예요. 그렇게 하느님의 영광과 능력을 찬송하는 자들이 막 살겠느냐고요? 생각들을 하세요.

바오로가 그게 율법의 역할이라면, 탐욕을 하던 자신이 탐욕이 죄라는 걸 알게 해준 것이 율법이라면, 지금까지 자신이 행한 율법적 행위가 나쁜 것으로만 취급되어야 하느냐는 거예요. 그냥 뻔뻔하게 나는 아무 잘못 없어요.’ 이런 얘기가 아니라. 그게 진리 안에서 바라보니까, 하느님이 나에게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한 선악과였다는 걸 안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그걸 뻔뻔스럽게, ‘이건 당연한 거야!’가 아니라, 감사와 찬송으로 이렇게 끄집어내더라는 거예요. 자기에게 죄가 뭔지를 가르쳐 준 율법이 왜 나쁘냐는 거예요. 거기에 영원히 묶여서 영생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지! 그걸 통하여 생명에 이른 사람들에게는, 율법도 선한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율법이 죄냐?’ 그런 거예요. ?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용서하심을 받는다고 했으니까!

 

지금까지 장황하게 많이 얘기했지만, 다 기억 못해도 돼요. 그거 다 적어서, 어디가 써 먹으려고? 그런 짓 좀 하지 마세요. 그건, 진리를 아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써먹으세요. 그러나 그 안에 담아서 제가 얘기하려고 했던 그거! 그거 하나 갖고 가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나이가 많으니까 자꾸 잊어먹는대요. 제가 속으로 무릎을 탁 쳤어요. 그게 맞는 거예요. 진리라는 소는, 어차피 진리라는 건, ‘로고스,’ ‘에 담아서 우리에게 오지만, 그 심우도(尋牛圖)라고 있죠? 심우도! 법당 벽에! 소를 찾아가는, 진리를 찾아가는 그 내용. 맨 마지막에 진리를 찾잖아요. 사람이. 그 다음에 소가 사라져요. 그거예요. 호 코스모스는 진리를 담아 우리에게 설명하고, 역할을 다 하면, 그 진리만 남고, 그거만 남고, 사라져야 맞아요. 생각 안 나도 된다니까요. 아브라함이 몇 살에 갈대아 우르를 떠났는지 몰라도 돼요. 사도 바오로가 다미스코에서 하느님을 만났는지, 시리아 무슨 딴 도시에서 만났는지 몰라도 된다니까요.

그 속에 담겨 있는 그거 알면, 나머지는 그냥 버리세요. 그러니까 성경 많이 안다고 자랑도 할 수 없는 거요. 진리 안에서는! 그거 버려야 할, 그거 갖고 자랑해요? 그러니까 저절로 겸손해 질 수밖에 없는 거죠. 일부러 겸손(謙遜)하세요. 겸손하세요.’ 그러지 않아도! 그 안에 다 들어 있으니. 그거예요. 그거 갖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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