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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독서와 복음묵상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10 조회수1,322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제1독서 (갈라3,22-29)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27.29)

 

'하나되는'에 해당하는 '에이스'(eis)는 기본적으로 '~안으로'(into)란 뜻을 지닌 전치사이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나타내기 위한 표현으로 '~속하여'(1코린10,2), '~와 연결하여'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세례'는 단순한 외적 의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유'로 말미암아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으로서  '자기 육을 그 욕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갈라5,24.25).

 

이처럼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새로운 인격적 관계에 들어간다.

사도 바오로는 그러한 새로운 관계를 '그리스도로 (옷)입는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로마13,14)

 

또한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이것은 '새 인간을 입는 것'이다.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페4,23.24)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29)

 

'그리스도께 속한다면'(그리스도께 속한 자)에 해당하는 '크리스투'(christu)는 '크리스토스'(christos)의 소유격으로서 문자적으로는 '그리스도의'로 번역될 수 있으며,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것'이란 뜻이다.

즉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이며, 인종이나 신분이나 지위나 성별에 관계없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으로 영접한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손', 곧 그의 진정한 영적 후손이 된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에 따른 상속자가 된다.

본문에서 '상속자입니다'에 해당하는 '클레로노모이'(kleronomoi)는  '상속자'를 뜻하는 '클레로노모스'(kleronomos)의 복수형으로 갈라티아서 3장 18절의 '상속 재산'(유업)에 해당하는 '클레로노미아'(kleronomia)와 동일한 어근에서 유래한 명사이다.

따라서 '상속자'(유업을 이을 자)란 말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축복에 참여할 자'란 의미를 갖는다.

 

갈라티아서 3장 12절부터 계속 되어온 모든 진술들을 통하여 사도 바오로는 율법과 믿음의 차이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모세 율법은 우리를 아브라함의 진정한 영적 후손으로 만들지 못한다. 또한 우리를 그 상속자로 만들지도 못한다.

 

이것을 이루게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약속뿐이다. 그것은 믿음이요,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세례이며, 결코 율법이 아니다.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복음(루카11,27~28)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27.28)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의 베엘제불 논쟁을 마치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축복하였다.

그녀가 예수님의 어머니를 축복한 이유는 그 어머니를 축복함으로써 그 자식을 축복하고 찬양하는 유대 관습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예는 예수님을 수태한 마리아를 축복한 엘리사벳의 찬양에도 나타난다(루카1,42.43).

또한 이 여자의 외침은 당시 예수님을 적대하던 일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제외하고는, 예수님의 권위있는 능력의 말씀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하지 못했던, 그때 모인 군중들 대부분의 감정을 대표해서 나타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배었던'으로 번역된 '바스타사사'(bastasasa; bare)는 '옮기다'를 의미하는 '바스타조'(bastazo)의 부정 과거 분사이다.

여기서는 '태어나게 했던'(that bare; gave you birth)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등장하고 있는 한 여자는 예수님께 '당신을 낳은 어머니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으며, 이것은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라고 노래한 마리아의 찬양(루카1,48)이 직접적으로 성취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루카 복음 11장 27절의 한 여자의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11장 28절에서 참된 행복의 조건은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있음을 밝혀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비결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듣고'에 해당하는 '아쿠온테스'(akuontes; hear)는 '듣다'를 뜻하는 원형 '아쿠오'(akuo)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서 단순하게 듣는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몰두하여 듣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지키는'에 해당하는 '퓔랏손테스'(phylassontes; keep it; obey it)는 '지키다', '보호하다'를 뜻하는 '퓔랏소'(phylasso)의 현재 능동태 분사로서 철저히 지키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참된 행복이라는 것은 육적 혈통이나 인간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데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루카 복음 11장 28절에 나오는 '오히려'에 해당하는 '메눈'(menun; rather)이라는 단어는 그 여자의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뒤의 이야기 즉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참된 행복의 조건이 오히려 영적인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 자신이 결국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단지 예수님을 낳고 양육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지켰기에 가능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정확하고 타당한 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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