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0.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12 조회수1,708 추천수6 반대(0) 신고

(서울대교구 사적지,

한국교회 창립 터라 할 수 있는 이벽의 집터)

2020년 10월 12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제1독서 갈라 4,22-24.26-27.31─5,1

형제 여러분,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24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3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5,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복음 루카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국제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아파트에

불이 났습니다.

3층 난간 안쪽에는 시커먼 연기와

새빨간 불꽃이 솟아오릅니다.

그리고 창가에는 3살, 10살 먹은

아이가 구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의 크기는 점점 커져 오고,

구조대는 오지 않는 상황이었지요.
이 안타까운 상황을 보고 있었던

창가 아래에 있던 주민들이 아이들을

 향해 “뛰어내려!”를 외치고 있습니다.

 뛰어내리면 아래에서 받아주겠다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잠시 뒤에

아이들은 뛰어내렸고, 주민들은

아이를 안전하게 받아서 구조했습니다.

 이때 아이를 받아낸 주민 두 명이 팔이

골절되었습니다. 아무리 아이라 해도

 3층이면 12m 높이니까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몸이 다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이를 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은

아이들이 뛰어내렸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받아준다고 하지만,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뛰어내렸던

이유는 밑에서 받아주겠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민들도 그 믿음에 응답했습니다.

 손목 골절이 되더라도

아이를 구했던 것이지요.
사람도 이러한데 하느님은 어떠실까요?

우리의 믿음에 무조건 커다란 사랑으로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걱정하지 말고

자신의 위협에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주님께 뛰어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표징을 요구합니다. 자신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표징을 계속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

듣고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오천 명을 먹으신 기적 역시 도저히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드는

표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서 그런 신비한 일을 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또 다른 표징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향해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라는 표징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된 수난과 부활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보지 못한다면

절대로 구원의 길에 들어설 수 없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계속해서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울 수 있는 주님의 표징을

요구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나만 잘 되고,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나만을 위한

주님을 요구한다면, 주님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이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하는 사람은 이해하고,

 이해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폴 투르리에)

기쁨에서 시작하세요.

지금까지 살아오면

나름 깨달은 것이 있다면,

재미를 느끼고 즐거워야 실력도

향상된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기타가 그랬고,

더 어렸을 때 배웠던 탁구가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독서 능력도 학창 시절 때가 아니라,

독서의 즐거움을 깨달은 성인이

되어서였습니다. 지금의 삶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이런 기쁨이

아닐까요? 기쁨을 통해 내 안의

성취는 계속해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너무 힘들다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면서 개인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 역시 기쁨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의무요,

강요가 아닌 기쁨의 길임을

발견하도록 하십시오.

(서울대교구 사적지, 순교자들의 형이

집행되기 전에 구금되었던 전옥서 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