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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0.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14 조회수1,887 추천수6 반대(0) 신고

(서울대교구 순례지, 종로성당 내부)

2020년 10월 14일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제1독서 갈라 5,18-25

형제 여러분, 18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의 행실은 자명합니다.

그것은 곧 불륜, 더러움, 방탕,

20 우상 숭배, 마술,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21 질투, 만취, 흥청대는 술판,

그 밖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미 경고한

그대로 이제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23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한 이들은

자기 육을 그 욕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25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

복음 루카 11,42-46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코로나 19로 인한

마이너스 성장에 대한 염려를 쏟아냅니다.

그런데 마이너스 성장이 무조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나라도

 이 마이너스 성장을 막기 위해,

바이러스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봉쇄조치를 풀고

사람들이 예전과 같은 활동을

해야한다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아픔이 커지는

성장이라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경제의 목표는 온 국민이 편안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장 자체를 목표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이 마치 성장 자체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목표인 것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순간의 만족만을

바라보고 있기에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바라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주는 순간의 만족만을 먼저

생각하기에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을

늘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순간의 만족을 주시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즉, 순간이 아닌 영원한 만족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지금은 세상의 것이

더 크고 중요해 보이지만, 주님을

따름으로 인해 계속된 행복의

시간 안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불행하여라”라고

하시면서 바리사이들을 향해 메시지를

전해주십니다. 그들은 십일조를 내고

회당 앞자리에 앉으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합니다. 이들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을 신경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참된

의로움과 사랑을 보여 주는 일이나

하느님의 사랑은 소홀히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드러나지 않는 무덤’에 비유하십니다.
민수기 19,16을 보면, 무덤에 닿으면

칠 일간 부정해지기 때문에 회칠하여

표시하도록 명했습니다. 즉, 사람들이

 부정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회칠하지 않거나, 땅속에

묻혀 있어서 무덤인지를 몰랐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해질 수 있습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러했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뜻만을

내세우면서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든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표시하지 않은 드러나지 않는 무덤처럼,

자신의 부패를 은폐시키고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했던 것입니다.
자기 뜻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입니다. 가장 중요한,

주님의 뜻을 놓치지 않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래야 다른 이도

올바르게 이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후세의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된다.

(백범 김구)

지금을 즐기세요.

한 20년 전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교육을 받았는데,

다음 날 일정이 의정부에 있는

어느 산 중턱에 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정상에 모이는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가는 시간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습니다.

(당시는 운전하지 않을 때라서

전철을 타고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본당에 급한 일이

생겨서 일 처리를 한 뒤에 전철을

타고 의정부로 향했습니다.

늦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대로

늦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흔하지도 않을 때라서 연락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늦어도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약속 시각보다 1시간 늦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내려오는데, 산행이

너무나 싫은 것입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납니다.
바로 그 순간 다른 등산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어두운

표정으로 산을 오르지 않았습니다.

모두 즐거워 보였습니다. 똑같이

산행하는데, 저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즐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요.

그런데 지금을 즐기고 계십니까?

이런 명언이 생각납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희생하면 안 된다.'

(서울대교구 순례지, 종로성당의 순교자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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