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0.1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17 조회수1,910 추천수4 반대(0) 신고

(춘천교구 순례지, 강릉 대도호부 관아)

2020년 10월 17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에페 1,15-23

형제 여러분, 1

5 나는 주 예수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전해 듣고,

16 기도 중에 여러분을

기억하며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
17 그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여러분이 그분을 알게 되고,

18 여러분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여러분이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여러분이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을 펼치시어,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

21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과 주권

 위에, 그리고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에서도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22 또한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습니다.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복음 루카 12,8-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9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는 자는,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11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12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제가 들고 있는 잔을 보더니

어떤 형제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신부님! 커피잔이 너무 작네요.”
사실 제가 들고 있었던 잔은

그렇게 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기에

너무 잔이 컸습니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이 커피를

 마시기에는 분명 잔이 컸습니다.

하지만 일반 머그잔보다는 분명히

작은 잔이었지요. 그래서

이 형제님께서는 이 잔을

작다고 말했고,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는 저는 이 잔이

너무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크다 작다는 것은 이렇게

상대적입니다. 비교 대상이

 없다면 크다고도 또 작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분,

열등감이 너무 크다는 분을

생각해봅니다.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비교하는

의심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요?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교하고 판단하는

의식에서만 ‘크다’와 ‘작다’,

 ‘좋다’와 ‘나쁘다’ 등이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존재 자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의 나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우리는 성령을 모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부정하게 되니 용서받지

못할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주님의 뜻보다는

자기 뜻을 더 따르게 되고, 부족한

자신을 따르다 보니 늘 불안해하며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께서는

 순수한 신앙의 힘을 이야기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의

모든 활동을 인정하는 믿음,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서 좋다

나쁘다는 식의 비교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면

모든 것이 충분히 좋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구원을 가져다주신

이렇게 주님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는

사람은 절대로 걱정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협조자이신 성령께서도

함께하시며 우리가 해야 할 말과

행동을 알려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 안에서 더는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와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는 어리석음도 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최고의 것을 주시는 주님이시기에,

우리 인간의 비교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에 감사할 수

있는 오늘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행복할 수 있는

오늘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예수님의 신원은 단 한순간에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끝까지 걸었을 때에

비로소 밝혀지는 무엇이다.

(조셉 도레 대주교)

수준 낮은 빠다킹신부

“신부님! 이런 책도 읽으세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하신

말씀입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수필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제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책만

읽을 것으로 생각하셨나 봅니다.
솔직히 제 수준은 한참 떨어집니다.

그래서 어려운 책 읽는 것을

힘들어하고, 어려운 글을

쓰지도 못합니다.

수준 높은 고전을 아예

읽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고전만을 주장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어떤 글이든

상관없이 제 마음을 움직일

한두 가지만 있어도 훌륭한

책이라고 말하는 저입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방송 프로의 제목처럼 저 역시

이름 하나를 붙인다면,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물론 사람을 혼란으로 이끄는 책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좋은 책,

나쁜 책으로 가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책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수준을 남들에게

따르라고 명령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자기 수준에 맞춰서

즐거운 것을 행하는 것이 훨씬

서로가 행복하지 않을까요?

(서울대교구 순교사적지, 형조 터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