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깨어 있는 종들! (루카12,35-3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20 조회수1,39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0월 20일 화요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깨어 있는 종들! (루카12,35-38)

 

1독서<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에페2,12-22)

12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3 그러나 이제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15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17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18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화답송 시편 85(84),9ㄱㄴㄷ과 10.11-12.13-14(◎ 9ㄴㄷ 참조)

◎ 주님은 당신 백성에게 평화를 말씀하신다.

○ 하느님 말씀을 나는 듣고자 하노라당신 백성당신께 충실한 이에게주님은 진정 평화를 말씀하신다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구원이 가까우니영광은 우리 땅에 머물리라

○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

○ 주님이 복을 베푸시어우리 땅이 열매를 내리라정의가 그분 앞을 걸어가고그분은 그 길로 나아가시리라

 

복음 <행복하여라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루카12,35-38)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그 종들은 행복하다!”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제1독서(에페2,12~22)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어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19~20)

 

에페소서의 주제 교회 일치의 당위성이다.

에페소서 2장 19~22절은 교회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된 절대 유일한 하나의 구원 공동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구원받기 이전의 이방인들은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였으나(11~12)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더불어 수평적 평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13~15) 구원받은 성도들 모두가 하느님과 수직적 평화를 이루었다는(16~18) 사실에 근거를 두고 에페소서 2장 19절 이하의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 2장 11~18절에서 갓 교회에 속하게 된 이방인 출신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 공동체인 교회가 어떻게 신약 시대에 이르러 자기들 이방인들까지 포함시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에페소서 2장 19~22절 단락에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통하여 구원을 얻은 자들을 대상으로 교회가 오직 그리스도만을 머리로 하여 형성된 단일 공동체라는 중요한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우케티'(uketi)는 '더 이상 ~이 아니다'(no more)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강조 부정어이다.

'크세노이'(ksenoi)와 '파로이코이'(pharoikoi)는 '외국인' 혹은 '이방인' (나그네)이라는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처럼 사도 바오로는 강조 부정어와 더불어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명사를 반복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하느님께 나아감을 얻는 특권을 받았으므로, 이제부터 이방 성도들 역시 더 이상 천국의 시민권과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본절에서 영어의 'not ~ but'의 용법과 동일하게 앞선 부분의 부정을 통하여 뒷부분의 내용을 더욱 강조하는 '우케티~ 알라'(uketi ~alla) 용법을 사용하여 이방 성도들이 '외국인'과 '이방인'이 아니며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고 '하느님의 한 가족' 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갖는 신분의 변화는 첫째,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 되는 것이다.

 

'성도'에 해당하는 '하기온'(haghion)은 구약의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사용되던 구약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이다(다니7,18).

 

사도 바오로도 본문에서 성도를 구약적 개념으로서 사용하였다.

즉 유대인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민족적, 지리적으로는 비록 외국인이지만, 한 성령 안에서 완전히 성도와 동일한 시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된다.

 

둘째,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은 '하느님의 한 가족'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갖게 된다.

여기서 '가족'에 해당하는 '오이케이오이'(oikeioi)의 원형 '오이케이오스'(oikeios)는 '가족','식구','권속'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의 한 가족'이라는 표현은 과거에 자신들이 하느님으로부터 간택받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임을 자랑하며 유대인들이 자주 사용하던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으로 말미암아 육체적인 혈통을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이 말이 적용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한 가족'은 하느님을 가장으로 모시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 말은 더 이상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별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어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0)

 

에페소서 2장 20~22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교회를 건물에 비유하고 있다.

단순히 건물이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을 자기 육체로 허무신 그리스도께서 새롭게 세우신 성전이다.

 

이 성전 건물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터)위에 세워졌고 그 모퉁잇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에페2,20~21), 건물의 재료는 그로 말미암아 새로 난(거듭 난) 성도들이다(에페2,22; 1코린3,9).

여기서 '사도들'과 병행하여 쓰인 '예언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신약 교회를 창설한 후에 교회가 이 땅에 뿌리 내리던 초대 교회시대에만 있었던 신약 교회의 예언자들을 가리킨다(1코린12,10.28.29; 에페4,11).

 

한편,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란 표현은 다음의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코린토 1서 3장 11절에서는 성전 건물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으며, 바로 그 전절인 코린토 1서 3장 10절을 보면 사도 바오로 자신이 그 기초를 놓았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본문의 기초 역시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라고 보고, 그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놓여 있으며, 이러한 교회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복음 전파에 의하여 확장되어 간다는 의미가 된다.

 

 둘째로, 본문의 '기초'를 건물의 '기초'라고 보지 않고, '시작'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 위에 지어진 새 성전에 놓인 최초의 돌로서 그 위에 계속해서 다른 성도들이 돌이 되어 교회라는 건물이 세워질 수 있는 '시작'이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기초'로 번역된 '테멜리오'(themelio)가 '기초','토대','터' 뿐만 아니라 '시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두 견해가 모두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따라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의 복음을 깨달은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깨달은 복음을 전함으로써 교회의 '기초'를 닦았고, 또한 친히 교회 구성원의 구심점이 되어 다른 모든 성도들이 그들을 따라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모퉁잇돌'에 해당하는 '아크로고니아이우'(akrogoniaiu)의 원형 '아크로고니아이오스'(akrogoniaios)는 '끝'(마태24,31), '머리'(히브11,21)를 의미하는 '아크론'(akron)과 '모퉁이'(마태21,42), '구석'(사도26,26)을 의미하는 '고니아'(gonia)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는 '모퉁잇돌' (the chief corner stone), '구석머리'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는 건물의 벽과 벽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서 건물의 기초로 삼을 뿐 아니라, 벽과 벽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기초들을 말한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건물을 세우는 자가 자신의 이름을 바로 이 모퉁잇돌에 새겨 건물이 자신의 소유임을 표시하였다.

 

본문은 이사야서 28장 16절의 말씀의 성취라고 볼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기초이실 뿐 아니라, 교회가 그분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모퉁잇돌이심을 드러낸다.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사람을 시키지 않고, 친히 자신이 직접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시온에 돌을 놓는다. 품질이 입증된 돌, 튼튼한 기초로 쓰일 값진 모퉁잇돌이다. 믿는 이는 물러서지 않는다."(이사28,16)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복음(루카12,35~38)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5~36)

 

루카 복음 12장 35절에서부터 38절까지는 깨어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인데, 12장 35절에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와 관련해서 두 가지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허리에 띠를 매고 있는 모습이다.

'페리에조스메나이'(periezosmenai; girded about)는 '띠를 매다'는 뜻의 동사 '페리존뉘미'(perizonnymi)의 완료 수동태로서 '이미 허리에 띠가 매여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허리띠를 지금 당장 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맬 것도 아니며, 이미 허리띠를 맨 상태에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이 입었던 겉옷은 길고, 그 통이 넓은 것이었다.

따라서 일을 할 때나 여행을 하거나 전쟁을 수행할 때에는 겉옷을 허리띠로 졸라 매야만 했다.

 

본문에서 종들이 허리에 띠를 맨 이유는 문맥상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맞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느님의 백성들도 혹시라도 나태해져 방심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깨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항상 준비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등불을 켜 놓은 상태로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켜 놓고'로 번역된 '카이오메노이'(kaiomenoi; burnning)는 '불을 켜다' 뜻의 동사 '카이오'(kaio)의 현재 분사 수동태로서 '계속적으로 불이 켜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여기서 등불을 켜 놓고 있는 목적은 어두워진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며 기다리던 주인을 맞아들이기 위한 것이다(마태25,1~13).

따라서 본문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라도,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항상 깨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있어라'에 해당하는 '에스토산'(estosan; let be)은 '에이미'(eimi; be)동사의 현재 명령형 3인칭 단수로서 '계속적으로 있어라'는 뜻이다.

여기서 '에이미'(eimi)동사는 '있다' 또는 '존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동사가 여기서 현재형으로 사용된 것은 이러한 상태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 지는 아무도 모르므로, 하느님의 백성은 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혼인 잔치'로 번역된 '가몬'(gamon; wedding banquet)의 기본형 '가모스'(gamos)는 혼인 잔치 자체를 가리킨다.

당시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주로 밤중에 이루어졌기에, 그 주인이 혼인 잔치로부터 돌아올 때는 모든 사람이 잠든 시간이 되므로, 그 종들은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라는 교훈을 주기에 적절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러한 배경 설정의 이유만이 아니라, '혼인 잔치'는 천상에서의 기쁨과 영광의 혼인 잔치를(묵시19,9), '그 주인'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혼인 잔치의 집'은 하늘 옥좌를 암시함으로써, 종말론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돌아오는'으로 번역된 '아날뤼세'(analyse; he will return)의 기본형 '아날뤼오'(analyo)는 '풀다'는 뜻에서 발전하여 '떠나기 위해 천막을 걷거나 배의 닻줄을 푼다'는 점에서 '떠나다','출발하다'는 뜻도 갖는다.

 

여기서는 혼인 잔치 집을 떠난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주님으로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하늘 옥좌를 떠나 내려오실 것을 상징하고 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