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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여우 같은 헤로데, 예루살렘 심판 예고)...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28 조회수1,524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31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3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33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35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어라.'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13,31-33은 루카에만 수록된 상황이다.  헤로데 대왕의 아들인 헤로데 안티파스는 기원전 4년부터 후 39년까지 갈릴래아 베레아 지방 영주로 행세한 사람인데, 이자는 자기 영지의 안정을 바란 나머지 전에 요한 세례자를 참수한 바 있다.(마르6,17-29). 똑같은 동기로 이제 예수님을 자기 영지에서 몰아내려고 바리사이를 시켜 협박했을 공산이 크다(31절).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32절과 같이 답변하셨을 것이다.  루카는 예수님 답변을 나름대로 풀이하여 33절을 만들어 덧붙였을 것이다.

 

여우는 간교한 동물이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정정당당하게 추방령을 내리지 못하고 간사하게 협박하는 것을 뜻하는 지칭이겠다.  또한 여우는 힘센 사자와는 달리 하찮은 동물이다.  헤로데 안티파스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는 뜻으로 그를 여우라 하셨을 수도 있다.

 

"오늘과 내일"은 우리말의 하루 이틀처럼 짧은 기간을 뜻한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제아무리 압력을 가해도 예수께서는 잠시 동안 구마와 치유 활동을 계속하시겠다는 소신을 피력하신다.  일단 그 일들을 "끝내는" 날 ("사흘째") 에는 당신 자신이 "끝장날"각오가 되어 있다 하신다. 이는 죽음을 예감하고 예고하시는 말씀이다.

 

33절은 루카가 32절의 말씀을 풀이한 가필일 것이다.  사실 33절에는 루카의 편집과 사상이 집적되어 있다.

루카는 예수님 상경기(9.51-19.28)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9,51.53: 13.22.33:  17.11: 18.31: 19.11.28)

루카는 유다인들이 구약의 예언자들을 박해한 사실을 매우 강조한다(6.23: 11.47-51: 13.33.34: 사도 7.52). 또한 루가복음에는 다른 말이 나온다(루카 고유자료 7,16.39: 13,33: 24.37 사도 3,22-23: 7.37) 그런가 하면 루카는 예수의 죽음을 예언자의 죽음으로 풀이하기도 한다(13.33 사도 7.52 참조 22.37:사도 3.13: 8,32-33)

 

루카는 예수님이 구원을 이룩하시는 곳은 바로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무척 강조한다. 루카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수난, 부활,발현, 승천이 일어난 곳일 뿐더러, 또한 성령이 내려서 교회가 창립된 곳이기도하다.

 

13,34-35는 분명히 어록을 옮겨쓴 것이다.  어록에서는 13,34-35가 11,49-51과 직결되었으리라.  두 가지 말씀의 양식과 내용이 같을 뿐 아니라, 마태오복음에는 한자리에 나오기 때문이다(23,34-36.37-39)

 

루카는 예수께서 34-35절을 발설하셨다 한다.  그러나 어록의 전승자나 작가는 "그러므로 하느님의 지혜는 말했던 것이다"(11.49)

 

어록의  전승자나 작가는 한편으로 신명기 계통 문헌의 영향을 받고 또 한편으로는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아 지혜의 말씀(34-35절)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박해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어록의 전승자나 작가는 이런 사상을 수용하여, 유다인들이 세례자와 예수와 사도들을 박해한 사실을 풀이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지혜문학에서 지혜를 의인화했듯이(11.39) " 하느님의 지혜가 말씀하셨다"는 식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어록의 전승자나 작가는 세례자와 예수의 사도들을 지혜의 심부름꾼으로 여겼다.

 

어록의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다음 대목들에 분명히 드러난다. 7,35(=마태 11.19):10,21(=마태 11,25-26): 11,49-51(마태 23,34-36): (13,34-35(=마태 23.37-39).또한 마태 (11,28-30)도 지혜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이 단락 역시 어록에서 유래했을 개연성이 크다.

 

원문의 아페스탈메노이는 막연하게 "심부름 온 사람들"이라 번역할 수도 있고, 분명하게 예수사건을 전하는 "사도들"이라 번역할 수도 있다.(11.49)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감싸주시는 것을 이런 식으로 말한 사례가 신명 32,11: 이사 31.5: 시편 36.8에 있다.


("너희 집")은 예루살렘 성전 또는 도성을 가리킬 것이다.  어록작가의 사상을 풀이한다면, 하느님은 구약의 예언자들도 신약의 시도들도 죽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징벌을 내려 성전과 도성을 떠나신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자주 하느님의 징벌을 이런 식으로 예고한 바 있다(미카 3.12, 예레7,1-15: 12.7: 22.5,26장 에제 8-11절).

 

시편 118.26 인용문인데 거기서는 "오시는 분은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받으소서"라 했다.  순례축제를 맞이하여 성전에오는 순례자에게 제판이 하느님의 축복을 빈다는 뜻이다(마르 11.9). 그런데 여기 35절에서는 어순을 바꾸어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축복받으소서"라 한다. 이는 하느님의 권능을 지니고 재림하실 예수님을 환호하는 환성을 뜻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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