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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안식일 일지라도 (루카 14,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0-30 조회수1,40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0월 30일 금요일

[연중 제30주간 금요일안식일 일지라도 (루카 14,1-6)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1독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필리피1,1-1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 바오로와 티모테오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사는 필리피의 모든 성도에게그리고 감독들과 봉사자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나는 여러분을 기억할 때마다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마다 늘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내가 여러분 모두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로서는 당연합니다여러분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내가 갇혀 있을 때나복음을 수호하고 확증할 때나 여러분은 모두 나와 함께 은총에 동참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애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것은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10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화답송 시편 111(110),1ㄴㄷㄹ-2.3-4.5-6(◎ 2)

◎ 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

○ 주님을 찬송하리라올곧은 이들의 모임그 집회에서내 마음 다하여 찬송하리라주님이 하신 일들 크기도 하여라그 일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깨치네

○ 그분 업적은 엄위롭고 존귀하네그분 의로움은 영원히 이어지네당신 기적들 기억하게 하시니주님은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다

○ 당신 경외하는 이들에게 양식을 주시고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시네위대하신 그 일들 당신 백성에게 알리시고민족들의 소유를 그들에게 주셨네

 

복음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끌어내지 않겠느냐?>(루카 14,1-6)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제1독서 (필리피1,1-11)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9)

 

'지식과 온갖 이해로'

여기서 '지식'으로 번역된 '에피그노세이'(epignosei; knowledge)의 원형 '에피그노시스'(epignosis)는 일반적인 보통의 지식을 말하는 '그노시스'(gnosis)에 '~위에', '~에 더하여', 또는 '철저한'이란 뜻이 있는 전치사 '에피'(epi)가 더해졌다.

 

이것은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것과 관련해서 '그노시스'(gnosis)보다 완전하고 진보된 깊은 지식을 말한다.

즉 이것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를 통해 가능하게 된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말한다.

 

그리고 '이해'로 번역된 '아이스테세이'(aisthesei; insight)는 감각적으로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분별력을 말하는 것으로서, '감각', '지각', '경험'을 모두 포함한 도덕적인 이해와 분별력을 말한다.

또한 '이해' 앞에 수식된 '온갖'으로 번역된 '파세'(pase; all)은 '이해'의 완전성을 말하기보다는 '이해'의 깊이를 말한다(히브5,14).

 

사도 바오로가 이렇게 사랑에 지식과 이해가 더하여지기를 기도한 것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열정에는 반드시 하느님의 의로움을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별'이란 바로 악에서 선한 것을 가려내는 능력이며, 선을 택하고 악을 배격하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여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분별이 결핍된 사랑은 무분별한 헌신을 초래할 수 있으며, 또한 지식없는 열정은 오류에 빠지기 쉽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지식과 이해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의로움'를 세우려 했던(로마10,2.3)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필리피 교인들이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가페' 사랑에 올바른 지식과 이해를 더불어 가지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에는 참된 지식과 올바른 분별력이 겸비되어야 한다.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이것은 지식과 이해를 겸비한 사랑이 풍부할 때 오는 두번째 결과이다. 그것은 필리피

교인들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순수'로 번역된 '에일리크리네이스'(eilikrineis)는 '햇빛'이란 뜻의 명사 '헤일레'(heile)와 '판단하다'라는 뜻의 동사 '크리노'(krino)의 합성어로서 '해가 비침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어떤 것의 확실함'을 의미하며, 이것이 '흠없는', '섞이지 않은', '투명한'이란 의미로 발전했다.

여기서도 '섞이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은 순수한'이란 뜻으로 사용되어 '도덕적으로 순결한 것'을 말한다(2베드3,1).

 

또한 '나무랄 데 없는'으로 번역된 '아프로스코포이'(aproskopoi)의 원형 

'아프로스코포스'(aproskopos)는 '넘어지게 하지 않는', '깨끗한', '불쾌감을 주지 않는', '범죄케 하지 않는'이라는 뜻인데, 길에서 어떤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서 상처를 입지 않고' 그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교인들이 더러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을 지킬 뿐 아니라, 자신을 통해 다른 사람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위해 기도한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 교인들이 악한 것과 선한 것, 천한 것과 귀한 것을 구별하여 순결하고 흠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기를 바라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날'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날(로마2,16)이며, 여기서 쓰인 전치사 '에이스'(eis; into)는

순수하여 허물없는 상태가 그리스도의 날 이후까지 계속된다는 뉘앙스를 나타내고 있다.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14,1-6)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3) 

 

루카 복음 14장 2절에 나오는 수종을 앓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치유하시기 전에,미리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지적하신다. '수종을 앓는'으로 번역된 '휘드로피코스'(hydropikos; which had the dropsy) '물'을 가리키는 '휘도르'(hydor)에서 유래한 의학 용어이다. 

 

이 병은 신체의 여러 부위에 물이 고여서 몸이 붓고  살이 썩어가는 병으로서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병이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저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다. 또한 이 병은 만성적 질병으로 취급되었는데, 바리사이들의 전통에 의하면 당장 위급한 병이 아닌 이런 만성 질병을 안식일에 고쳐 주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되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수종을 앓는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 주려는 당신을 책잡으려는 그들의 음모를 아시고, 반론 양식의 질문을 던지신다. 여기서 '합당하냐'로 번역된 '엑세스틴'(eksestin; Is it lawful)의 원형 '엑세스티'(eksesti) '합법적이다', '타당하다'는 뜻이다.

 

특히 이 구절에서 이 동사는 단지 이성적인 타당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합당한 것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율법에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39개 항목에 달하는 안식일 금지 규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하였다. 

 

처음에는 안식일을 보다 거룩하게 지키려는 의도로 금지 규정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형식만을 강조하는 이 규정들이 사람들을 속박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모세 오경에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었고, 이것은 그들의 잘못된 전통일 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율법의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루카 복음 14장 5절에서 보여지고 있는 대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그들의 경험으로나 이성적으로도 타당한 것임을 논증하고 계신다. 

 

그러나 경험적 논증에 앞서서 루카 복음 14장 3절에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율법적으로는 옳은 것임을 분명히 밝혀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우선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동시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율법에 대한 왜곡을 지적하신 것이다. 

 

특히 루카 복음 14장 5절의 원문에서 강조점 '안식일'이 아니라 '바로', '곧', '당장'이라는 긴급한 시점을 가리키는 '유테오스'(eutheos; immediately; straitway)에 있다는 사실은, 지금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내는 일이 '안식일'이라는 시점에 상관없이 당장에 해야 할 급박한 일임을 드러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안식일에 대한 율법 규정을 부정하시거나 고의로 어기신 적이 없으시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일이 율법에 근거하여 안식일의 정신을 적극적으로 구현하시는 일임을 밝히신 것이다. 

 

사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신적 권위를 가지고, 안식일에 대한 왜곡된 관습을 바로 잡으려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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