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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든 성인 대축일]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마태5,1-12ㄴ)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1 조회수1,35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1월 1일 주일

 [모든 성인 대축일] 산상수훈 (마태 5,1-12ㄴ)

 

 

요한 사도는, 큰 환난을 겪어 내고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한 큰 무리를 본다. (묵시 7,2-4.9-14)
나 요한은 2 다른 한 천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3 “우리가 우리 하느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4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인장을 받은 이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9 그다음에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11 그러자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어좌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말하였습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13 그때에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요한 사도는,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한다고 말한다. (1요한 3,1-3)
사랑하는 여러분,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오르시어 여덟 가지 참된 행복을 가르치신다. (마태 5,1-12ㄴ)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모든 성인 대축일 제1독서 (요한묵시7,2-4.9-14) 


오늘은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모두 합쳐서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이 축일의 유래는 이러하다.

로마에는 예수님께서 강생하시기 전에 이미 여러 신들에게 바쳐진 웅대한 신전이 있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가지각색의 신들을 숭배하며, 더욱이 자신들이 정복한 다른 민족의 신까지 숭배했다.

 

그래서 이러한 무수한 신들에게 일일이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므로 그들은 하나의 원형 신전을 세우고 그곳에서 모든 신들을 합사(合祀)했다.

 

로마인의 소위 판테온(pantheon)은 이 신전을 말하는데, 현재도 남아 있어 로마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가 되어 있다.

로마가 가톨릭의 혜택을 받자 이 신전은 성당으로 개조되었으며, 전에 잡신들의 상이 있는 곳에 성인들의 성상이 들어섰을 뿐 아니라 성인 순교자들의 유해가 카타콤바에서 그곳으로 옮겨졌다.

 

609년 5월 13일 성 보니파시오 4세 교황님이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교회에서 사용하도록 허락하시고,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835년 그레고리오 4세 교황님이 이 성당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성인들께 봉헌하시고 11월 1일을 기해 그들을 기념하는 날로 정하고 온 교회에 전파하였다.

 

그래서 오늘 묵시록의 7장 4절의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144,000명'이라는 말씀과 묵시록 7장 9절의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라는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

 

인장(표; stigma)을 찍는다는 것은 소유물로 삼는 것을 상징하는데 (에제9,4참조), 하느님께서 당신 종들에게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넘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참아낼 수 있도록 어떤 초자연적인 힘을 주시며, 동시에 악인들이 받는 벌의 판결에서부터 보호되리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144,000 은 상징적 숫자인데,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를 표시하는 12 와 민족들과 연관하여 충만을 의미하거나 신약의 12사도를 의미하는 12 그리고 하느님의 영역에 속하는 완전수 1,000 이 결합된 숫자(12x12x1000)다.

 셀 수 없이 많은 백성이 하느님의 구원을 얻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표시한다.

 

아무도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창세15,5; 32,12) 살아 있으며, 참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해 실현됨을 말한다.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이라는 표현은 묵시록의 전형적인 표현으로서 세상에 있는 모든 백성을 가리킨다.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많은 어려움을이겨내고 하늘 나라에 개선한 사람들임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다는 것은 승전의 기쁨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가 어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는 말씀이 나온다.

 흰 옷을 입고 금관을 쓴 원로 24명이란 말이 묵시록 4,4절에도 나오는데,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

 천사들을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 선택받은 사람들, 지상에서 고생하고 승리의 월계관을 쓴 위대한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 하느님께서 재판하실 때 배심원 역할을 하면서 도와드리는 원로 천사라는 견해(다니10,9; 시편89,8; 이사24,23), 역데기 1서 25장 1~35절에서 말하는 하느님 궁전 성가대처럼 하느님 앞에서 찬양하는 24명의 선택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견해들도 있다.

 

24는 12+12로서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와 신약의 새 이스라엘의 시초인 12사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흰옷은 초월적인 것을, 어좌 혹은 옥좌는 권위를, 금관은 그들이 받을 상급을 나타낸다고 볼 때, 24원로는 천상 하느님 백성의 상징적 존재일 거라고 본다.

 

네 생물이란 표현이 묵시록4,14절에 나오는데, 이미 에제키엘서 1장 5~14절에 언급되어  있는 '사자, 송아지, 사람의 얼굴, 독수리처럼 생겼다.'는 말씀에서 유래한다.

 이 넷은 짐승도 사람도 아닌 천사를 가리킨다.

 

이들이 눈들이 많다는 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전부 다 본다는 의미이고 눈은 성령을 상징한다.

  생물의 기능은 하느님의 옥좌 앞에서 끊임없이 창조주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창조물 중 가장 강하고 가장 고귀한 존재들을 표현한 것 같다.

 

교부들은 영성적으로 재해석하여 네 복음사가를 가리켰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되므로 사람 모습,

마르코 복음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사자후 소리로 시작하므로 사자 모습,

루카 복음은 즈가리야 사제의 제사 이야기로 시작하므로 제물로 바쳐지는 송아지 모습,

요한 복음은 한 처음에 하느님의 말씀이 저 높은 곳에서 떠돌다가 말씀에 의해서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하므로 독수리 모습으로 상징된다는 것이다.

 

묵시록 7장 14절의 큰 환난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세 말년(A.D.81~96년)의 대박해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이며, 예수님께서 종말론적인 담화에서 인용하신 다니엘서 12장 1절의 '큰 환난'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리고 종말론적 예언의 차원에서 모든 시기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모든 투쟁과 박해를 암시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어린 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했다는 말씀이 묵시록 7장 14절의 끝에 나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럽혀진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용서받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즉 어린양이 겪은 시련과 고통의 결과로서 의인들이 나타난다 (이사1,18; 64,5; 즈가3,3~5참조).

 

묵시록에서도 흰옷 입은 사람들이란, 하느님의 자비로 용서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사람들이 자기 예복을 어린양의 피로 희게 빨았다는 것은 인류 구원 사업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임을 말한다.

 

그러나 또한 무죄하신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써 얻은 선(善)과 그 효과(구속 성혈의 공로)가 자동적이고 피동적인 것은 아니며, 인간이 그리스도의 피의 효과를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도 포함된다.

 

오늘 우리는 모든 성인 대축일을 맞이해서 천국(개선지회; 凱旋之會; 개선한 교회; Ecclesia triumphans)의 성인 성녀들을 바라보면서 발은 땅에 딛고 있지만, 천상의 영원한 생명과 복락을 희망해야 한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존엄하신 천주성삼께서 계시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 생활과 지상의 나그네 삶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한마디로 구원받지 못한다면, 이 땅에서 숨쉬고 산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대로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그 목적을 달성했으니 우리도 힘과 용기를 내어야 한다. 

"성인 성녀들이 인간이었고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들이 성인이 되었다면 나도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골로3,1~2)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 복음(마태5,1~12ㄴ)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10~12)

 

시나이산에서 모세를 통해 내려주신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에 비견되는 '천국 복음의 전형'이요, '산상수훈의 요약'이라고 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복팔단' 혹은 '팔복'(八福; Beatutudines;

마태5,3~11)에서 '복'(福)에 해당하는 '마카리오스'(makarios)는 단순한 심리적인 행복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눈에 보이는 물질적 복도 뛰어넘는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 고전에서는 이 단어가 제신(諸神)들의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주관적인 행복을 뛰어넘는 실질적인 행복을 말하며, 단순히 외부로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가늠할 수 없는 지고(至高)의 행복을 가리킨다. 

즉 이것은 천국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고 초월하는 최고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5장 10절 이하 12절은 여덟번째 행복인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관한 내용이다.

선인과 악인이 뒤섞여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그 삶 자체가 하나의 투쟁인데, 악인들은 선인들에게서 생활하고 행동할 권리조차 빼앗으려고 할 것이다.

 

'옳은 일'에 해당하는 '에네켄 디카이오쉬네스'(eneken dikaiosynes)는 덕, 선, 종교를 의미하는 넓은 뜻을 지닌 말이다.

 가장 고귀하고 가장 성스러운 목적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하늘 나라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박해받는 사람이 누릴 행복을 일반적으로 말하고, 복수 2인칭을 사용하여 보다 자세하게 되풀이 하였다. 

사도 바오로도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들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2티모3,12)라고 말했고,  요한 복음사가도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요한15,20)라고 말했다.

 

세상의 악은 예수님의 선을 적대하여 이것을 멸망시키려고 꾸미고 있다.

 하지만, 하늘 나라 즉 영원한 천국은 박해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박해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된 나라이다. 그들은 악의 힘에 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승리자인 것이다.

 

여기서 '모욕'에 해당하는 '오네이디소신'(oneidisosin)는 '당나귀'를 뜻하는 '호노스'(honos)와 '꼴','모습'을 뜻하는 '에이도스'(eidos)의 합성어로서, 문자적으로 '나귀의 모습', '나귀의 머리'를 뜻하는 심한 모욕적 어휘이다. 

로마의 박해 시대에는 십자가 위에 나귀 머리를 한 사람을 매달아 놓고, 그 발아래 한 신자가 예배하고 있는 낙서를 벽에 그려놓기도 했는데,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 신자들을 '나귀 머리를 믿는 자'라고 모욕했던 것이다.

 

'박해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는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처럼, 고문과 살육을 당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 피난처에서 저 피난처로 쫓기게 될 것이다.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이것은 중상 모략을 말하는데, 영혼을 지닌 사람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하느님이시고 사람이시면서 그 명예가 더럽혀지는 일을 참아 받으신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이런 모욕, 이런 고통도 참아야 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이 두 가지 동사는 복음적인 커다란 환희를 보여 주고 있다.

제자들은 이 세상이 아니라 내세에 천국에서 받게 될 보상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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