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1월 1일 주일[(백) 모든 성인 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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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11-01 | 조회수1,424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1월 1일 주일 [(백) 모든 성인 대축일] 오늘은 하늘 나라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대축일로,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성인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날이다. 특히 전례력에 축일이 별도로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기리는 날이다.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된 이 축일은 609년 보니파시오 4세 교황 때부터 서방 교회에서도 지내게 되었다. 5월 13일에 지내던 이 축일을 9세기 중엽 오늘날의 11월 1일로 변경하였다. 교회는 이날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 뒤의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또한 지상의 우리와 천국의 모든 성인 간의 연대성도 깨우쳐 준다. 제1독서 <내가 보니,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인장을 가지고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그가 땅과 바다를 해칠 권한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마에 인장을 찍을 때까지 땅도 바다도 나무도 해치지 마라.”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자손들의 모든 지파에서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언어권에서 나온 그들은,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서 있었습니다.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원로들과 네 생물 둘레에 서 있다가,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말하였습니다.“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화답송 시편 24(23),1-2.3-4ㄱㄴ.5-6(◎ 6 참조)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주님, 이들이 당신 얼굴을 찾는 세대이옵니다. 제2독서 <우리는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두,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복음 환호송 마태 11,28 참조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복음입니다. 5,1-12ㄴ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박해를 받는 사람들!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영성체송 마태 5,8-10 그들은 하느님을 보리라.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오늘의 묵상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불행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제 연합(UN)은 해마다 행복 지수를 나라별로 조사하는데 국내 총생산, 기대 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타인에 대한 관대함, 사회의 부정부패 수준 등을 고려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기준들로 개인이 느끼는 행복을 모두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당시에도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향한, ‘나’ 자신을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만일 지금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면 아직 마음이 가난하지 못하고, 함께 슬퍼하거나 온유하지 못하고, 자비를 실천하거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여 평화를 이루는 데 부족한지도 모릅니다. 또한 행복을 위한 의로움의 추구가 부족하거나, 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할 만큼 주님을 따르는 일에 열성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기준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은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말씀이고 삶에서 실천해야 할 행복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은 행복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바꾸라는 초대처럼 들립니다. 행복 선언은 신앙인에게 주어지는 행복을 위한 새로운 기준일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모든 성인을 기억하면서 이 말씀을 듣고 성인들의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삶을 살아간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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