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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승국신부님(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 첫째 미사 월요일) 삶이 선물이듯 죽음도 선물입니다!
작성자박양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1 조회수1,357 추천수3 반대(0) 신고

 

삶이 선물이듯 죽음도 선물입니다!

 

선배들이 잠들어계신 성직자 묘역에 들를 때 마다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무덤이 줄지어서있는지 모릅니다. 다들 한때 잘 나가던 분들이었고 나름 한 가닥씩 하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보송보송 솜털 같던 시절과 꽃 같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자취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덩그러니 흙무덤 하나, 그 속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유골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순환의 법칙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으며 봐주는 것이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른 어느 순간, 꽃 같은 젊음이 가고, 인생의 절정기도 가고, 그 좋았던 시절도 가고, 결국 우리 앞에 남게 되는 것은 시들고 메마른 육체요 임박한 죽음뿐입니다.

 

그러나 그 힘겨운 순간 예외적으로 특별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깨어있는 종들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종말론은 절대로 우울한 색조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기쁨과 설렘의 분위기로 가득한 희망의 종말론입니다.

 

언젠가 우리의 유한한 육체가 소멸되는 순간은 우리 삶이 종료되는 순간이 아니라 사랑의 하느님과 결합되는 새 출발의 순간입니다. 죄스런 우리 삶이 용광로같이 뜨거운 하느님 사랑 앞에 완전히 녹아버리는 기쁨의 순간입니다. 자격 없는 인간의 유한한 생명이 영원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환희의 순간입니다.

 

한 존재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 소멸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 일이 이제 우리 각자의 죽음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도 그분처럼 우리 안에 생명의 불꽃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죽어도 죽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은혜롭고 과분한 일인지요.

 

그리스도교 안에서 죽음은 다리 하나를 건너가는 일입니다. 고통의 연속인 인간 세상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천상복락의 땅으로 가는 다리, 필멸에서 불멸에로, 죄의 상태에서 은총상태로 건너가는 다리가 바로 죽음의 순간입니다. 우리 각자의 죽음은 파스카 신비가 구체화되는 특별한 순간입니다.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노예상태에서 자유인으로, 어둠의 세상에서 광명의 세상으로, 혼돈 상태에서 완벽한 평화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니 죽음은 고통과 저주가 축복과 은총이군요.

 

더불어 반드시 기억할 일 한 가지가 있습니다.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의 순간에 은혜로운 파스카 체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매일의 삶 안에서 파스카의 신비를 체험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우리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하느님께서는 지상에서부터 천국 체험이란 선물을 건네실 것입니다.

 

노년기에 접어드시는 분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자주 죽음을 묵상할 일입니다. 좀 더 자주 대자연의 순환에 눈길을 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사시사철이 다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봄날의 파릇파릇함도 좋습니다. 여름날의 푸르름도 좋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보여주는 단풍은 그 어느 때 보다 화려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우리 역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마냥 쓸쓸하고 허전하고 우울한 것이 아님을 보여줘야겠습니다. 노년기에 접어들어도, 임종을 목전에 두고서도 더욱 아름답고 더욱 당당하고 더욱 충만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겠습니다.

 

이를 위해 정말 필요한 노력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영적생활에 대한 우선권을 두는 노력입니다. 착한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한 꾸준한 기도생활입니다. 삶이 선물이듯 죽음도 선물이기에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 요절한 알로이시오 곤사가가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가 얼마나 착한 죽음을 잘 준비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와 우리 온 가족이 제 죽음을 하느님의 기쁜 선물로 생각해 주십사고 간절히 희망하면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이별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나 우리 구원이신 주님과 결합하여 불사불멸의 끝없는 기쁨을 누리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찬미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영원토록 노래할 것입니다.”

 

안토니오 성인의 죽음과 관련된 주옥같은 권고 말씀도 착한 죽음을 준비하는 기도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매일 죽을 것처럼 산다면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날마다 일어나면서 저녁때까지 살지 못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녁에 잘 때면 아침까지 깨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생명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목숨은 하루하루 주님의 손길에 맡겨져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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