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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2.“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1 조회수1,501 추천수2 반대(0) 신고

 

마태 11, 25-30(위령의 날)

 

11월은 정녕 신비의 달입니다. 절로 죽음과 비움의 신비를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우리를 존재의 심연으로 이끌고 갑니다. 마른 풀 한 줄기를 침대로 삼아 내려앉은 서리에서도, 뒹구는 낙엽을 깨우며 소스라치게 부는 바람에서도, 우리는 그 만남과 죽음의 신비를 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마치 잎이 새싹일 때 ‘이미’ 단풍을 품고 있듯이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죽음을 보는 것이요, 꽃이 몽우리일 때 ‘이미’ 씨앗을 품고 있듯이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을 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은 하나의 통로요, 만남입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것은 죽은 다음에 오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생사가 갈라질 수 없게 펼쳐져 있는 삶의 세계를 성찰하기 위해서입니다. 곧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요, 현재를 충실히 죽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완성을 향한 삶이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에티우스는 말합니다.

“흘러가버리는 지금이 시간을 만들고, 머물러 있는 지금이 영원을 만든다.”

 

이처럼, 죽음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짓고, 삶의 질이 죽음의 질을 결정짓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의 중요함을 파우스티나 성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첫 순간이고 마지막 순간이며 유일한 순간이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죽음이 신비한 것은 죽음이 한 생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생명의 신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삶은 죽음의 또 다른 일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죽을 몸에 하느님의 생명이 살아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의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10)

 

‘우리의 죽을 몸에서 하느님의 생명이 드러난다는 것’은 인생에 죽음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애초에 죽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불사불멸의 하느님의 생명을 가지고 사는 영원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 심오한 진리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자 내가 여러분에게 신비 하나를 말해주겠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이 썩는 몸이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이 죽지 않는 것을 입습니다.”(1코린 15,51-5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듣기만 하여도 벅찬 감격이 밀려오는 말씀입니다. 당신께서 안식을 주겠다는 이 벅찬 초대에서 우리는 참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곧 “참된 안식”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선사되고 베풀어지는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다음 구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얻을 것이다”의 원어의 뜻은 찾다”, “발견하다는 뜻이라 합니다. 곧 참된 “안식”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찾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예수님 안에서 찾고 발견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된 스승이신 예수님 안에서만이 참된 “안식”을 얻게 됩니다. “참된 안식”, 그것은 그것을 가지신 분으로부터 얻게 됩니다. 그것은 공로로 얻어지기보다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이요, 탐구로 얻어지기보다 순명으로 얻어지는 것이요, 앎으로 얻어지기보다 사랑으로 얻어집니다. 참으로, 그것은 그분의 선물이요, 사랑이요, 자비요, 호의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안식은 참된 주인에게서 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주님을 찬미하며, 이미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기리며, 주님의 축복과 은총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가족과 공동체 식구들뿐만 아니라, 특히 소외된 영혼들, 곧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이들과 잊혀 진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또 평화를 위해 일하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과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무죄한 사람들의 죽음을 함께 아파하며,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전쟁의 살육 속에서 희생된 이들, 테러와 폭력의 희생자들, 고문과 억압으로 희생된 이들, 특히 코로나 19 상황으로 희생된 이들, 그리고 이루 헤아릴 수없는 타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워라.”(마태 11,29)

 

주님!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묶지만 옭아 메지 않는, 위에 있지만 짓누르지 않는,

오히려 편하게 하는 사랑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함께 지며 나누는, 함께 가며 끌어주는,

그 손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동행해 주고 길이 되어 주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 마음을 따라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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