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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1.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3 조회수1,907 추천수5 반대(0) 신고

(대전교구 성지, 대흥 봉수산 순교 성지)

2020년 11월 3일
연중 제31주간 월요일

제1독서 필리 2,5-11

형제 여러분,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복음 루카 14,15-24

그때에 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17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레몬즙을 내기 위해서는

어떤 과일을 짜야 할까요?

오렌지나 사과로 레몬즙을

만들 수가 있을까요?

당연히 없습니다. 레몬즙을

내기 위해서는 레몬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즙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것에 따라 그것이

 내 밖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행복’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이, ‘기쁨’을 가지고 있으면

기쁨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슬픔’을 가지고 있다면, 또 ‘화나

 증오’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스스로는 행복해지고 싶어, 기뻐하고

싶다고는 말하지만 불가능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만이 밖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으면

누구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 내 안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열등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내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마음보다

긍정적인 마음이, 세상의 것보다

주님의 것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라고 말하는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의

말처럼, 지금을 사는 우리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행동은

그렇지 못합니다.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서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초대받은 이들은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마음 안에 세상일이

가득 차 있어 잔치에 올 수 없다고

핑계를 댑니다. 잔치에 가겠다는

마음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지 않을까요? 하느님

나라에 가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자기 안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것을 하나도 간직하지 않으면

초대에 응할 수가 없게 됩니다.

계속 핑계만 댈 뿐입니다.
이제 주인은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아직 자리가

남아 있다고 종이 말합니다. 이제

주인은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서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라고 하지요. 세상 모든 민족을

품으려는 예수님의 바람이 보이는

부분입니다. 세상의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 주님의 사랑을 자신의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는 핑계

대지 않고 주님의 초대에 기쁘게

응답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음식을 먹으면서

커다란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남을 위한 인생을 살 때,

가장 감동적인 인생이

되는 것은 나는 반대한다.

(헬렌 켈러)

인생의 문장에서 주어는?

인생을 문장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문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주어입니다. 주어에 따라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물론 내가 주어가 되어서

주체적인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만 주어가 되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이 어떻습니까?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며,

본인 자신이 무엇을 성취해도

공허함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어가 되면

어떤지를 많은 성인·성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주어의

위치에 있게 되면 어떨까요?

하느님이 주어가 되면

시야가 넓어지고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또 이 안에서 커다란 만족감과

 행복을 찾을 수가 있게 됩니다.

이 정답을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성인,

성녀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위령의 날을 맞이하면서,

내 인생에서 누가 주어의 위치에

있을 때 하늘나라에서 행복할지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대전교구 성지, 대흥 봉수산 순교 성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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