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길잃은 한마리의 양(루카15,1-1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5 조회수1,39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1월 5일 목요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길잃은 한마리의 양(루카15,1-10)

[매일미사(가해) 14-11-06] -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1독서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필리3,3-8)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화답송시편 105(104),2-3.4-5.6-7(◎ 3)

◎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 그분께 노래하여라찬미 노래 불러라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그분이 이루신 기적과 이적을그분 입으로 내리신 판결을 기억하여라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치네

 

복음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15,1-10)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이와 같이 하늘에서는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제1독서(필리3,3~8ㄱ)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7~8)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서 3장 7절에서 지금까지 자랑해 오던 것을 '이롭던 것'(유익)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이롭던 것'으로 번역된 '케르데'(kerde; gain)의 원형 '케르도스'(kerdos)는 '이익','이득'(필리1,21; 3,7; 티토1,11)이란 뜻의 단어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바리사이인으로서, 그것도 유대교의 골수분자로서 자신이 누리고 있던 혈통, 가문, 종교적 유산과 열심, 지식, 율법준수 등 육체의 자랑 거리들을 하늘 나라의 의로움을 얻는 데 유익이 되는 것으로 여겼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이제 전에 유익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다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로 인해서', '~때문에' 라고 번역될 수 있는 전치사 '디아'(dia; for)가 목적격을 취하고 있는데, 바로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여기서 '해로운 것'(해)란 뜻으로 번역된 '제미안'(zemian)의 원형 '제미아'(zemia)는 '손해'(사도27,10), '손상'(사도27,21)이란 뜻이 있다.

 

따라서 여기서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는 것은 자신의 여러 외적 조건을 (필리2,4~6) 그리스도를 향한 올바른 신앙을 갖게 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실을 가져오는 것으로 여긴다는 의미이다.

이때 '여기게 되었습니다'하는 의미로 번역된 '헤게마이'(hegemai; consider)는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일의 영향력이 현재에도 미침을 나타내는 시제인 현재 완료형으로 기록되어, 가치관이 바뀐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도 바오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뒤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오로에게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사도 바오로가 이전에 소중한 것으로 여기던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긴 것은 육체적 자랑 거리가 영적 진보를 막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출발해야 할 신앙 생활이 육체적 자랑거리를 의존하는 것에 의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했던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사도 바오로는 앞선 필리피서 3장 7절에 이어 자신의 육체에 관한 자랑거리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세상 모든 것을 손실로 여기고 있음을 밝힌다.

이 '모든 것'에는 지금까지 사도 바오로가 가치 있다고 여기던 것의 전부로서 유대교 내에서 그가 누렸던 높은 지위 등도 포함될 것이다.

 

여기서 '여깁니다' 라는 의미로 '헤구마이'(hegumai)의 원형은 '헤게오마이'(hegeomai)이다.

이 동사가 3장 7절에서는 현재 완료 시제(헤게마이; hegemai)로 사용되었는데, 본절인 3장 8절에서는 현재 시제(헤구마이; hegumai)로 사용되었다.

 

앞서 현재 완료 시제를 사용한 것과 여기서 현재 시제를 사용한 것은 과거와 현재 뿐 아니라 앞으로도 변함없는 사실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현재 시제를 사용하여 항상 이러한 태도를 견지할 것이라는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사도 바오로가 세상 모든 이롭던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된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높고 고상하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가던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사도 바오로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그리스도를 극적으로 만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음을 확인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일이 모든 것 위에 뛰어난 가장 위대한 일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는 지식'으로 번역된 '그노세오스'(gnoseos) 원형 '그노시스'(gnosis)는 구약 히브리어 '야다'(yada)의 역어로서,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친교 혹은 본질적인 깨달음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란, 그리스도 예수님과 관계없던 사도 바오로가 그와 깊은 친교속으로 뛰어들어서, 그와 깊이 있는 밀접한 친교를 나누고, 그가 누구인지 본질적으로 깨닫게 된 것을 말한다.

그 지식으로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그 이후 그의 평생의 삶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삶이 되었다.

 

한편, '지고한 가치'로 번역된 '휘페레콘'(hyperechon)은 '~위에', '~을 넘어서는' 이란 의미의 전치사 '휘페르'(hyper)와 '가지다', '소유하다' 라는 의미의 동사 '에코'(ech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위로 올라가다', '뛰어나다'(로마13,1; 1베드2,13), '탁월하다','능가하다'(필리4,7)라는 뜻을 지닌 '휘페레코'(hyperecho)의 현재 분사형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모든 것 위에 존재하는 가장 고상한 궁극적 가치가 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복음(루카15,1~10)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2)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정한 자 혹은 율법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로 여겨지던 사람들을 받아들이며, 그들과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애초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한결같이 거부하므로(루카14,18~20), 그들은 단 한 명도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루카14,24).

그래서 대신에 하느님 나라의 잔치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사람들곧 세리와 죄인들이 그 잔치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가르침 속에서 뿐만 아니라 죄인들과 세리들,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과 식사를 즐기셨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자랑하는 율법과 거리가 먼 이들을 받아들이고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당시 종교 지도자였던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 일을 서슴지 않고 강행하신 이유는 당신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사명을 분명히 아셨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를 선취하는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루카14장).

 

여기서 '받아들이고'로 번역된 '프로스데케타이'(prosdechetai; receives; welcomes)의 원형 '프로스데코마이'(prosdechomai) 어떤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며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로마16,2; 필리2,29).

즉 '프로스데케타이'(prosdechetai)는 도움을 얻거나 존경하기 때문에 맞아들이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대하실 때, 마치 유대인들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대하듯 하신 것이다. 경멸받으며 기피되던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이러한 파격적 행동은 당시의 사람들, 특히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해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일컬어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요, 먹보요 술꾼이라고 비아냥거린 것이다(루카7,34). 

 

유대인에게 있어서 '함께 식사하는 행위'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같은 부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그들과 같은 부류가 되었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또한 사람들 중에서도 경멸받는 사람이 되셨던 것이다(필리2,7).

하지만 잃어버린 자들인 세리들과 죄인들이 초청을 받아들여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자들이 분명하기에,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는 당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루카 복음 15장 6절과 10절이 '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와 '잃은 은전 한 닢의 비유'의 결론이 되어서, 잃어버린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그가 하느님께로 돌아올 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이런 기쁨은 한 명의 죄인이라도 찾고 찾으시는 하느님의 끊임없는 사랑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발견할 때까지 찾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죄인들을 마침내 하느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 돌아온 죄인들로 말미암아 하늘에서는 반드시 놀라운 기쁨이 생겨난다.

루카 복음 15장 10절의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는 표현은 죄인의 회개가 하느님께 속한 천사들도 기뻐할 정도로 너무도 중요한 사건임을 나타낸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