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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5.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5 조회수1,516 추천수2 반대(0) 신고

 

루가 15, 1-10(연중 31주 목)

 

가뭄이 들면, 인디언들은 기우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비유 속에서,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낼 때까지” 뒤쫓아 다닙니다. 여인 역시 잃은 드락메를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뒤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단지 우리를 찾으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찾아낼 때까지” 찾으십니다. 곧 먼저 찾으시고, 끝까지 찾으십니다.

그가 비록 보잘 것 없는 죄인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시는 까닭입니다. 그것은 ‘하나 안에서의 전부인 사랑’이요, ‘전부 안에서의 하나인 사랑’ 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크신 사랑을 만나면 기쁘지 않을 수가 없고, 회개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니, 회개는 당신을 만나기 위한 조건이기보다, 오히려 당신과의 만남의 결과입니다. 곧 우리를 찾아오신 우리 주님의 크나 큰 사랑에 대한 기쁨이요, 우리를 소중히 여기시는 그분께 대한 기쁨입니다.

그래서 잃은 ‘양’과 ‘드락메’를 되찾은 후에 말합니다.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루카 15,6.8)

 

그렇습니다. 이 비유의 정점은 잃은 것을 되찾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되찾은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이 “기쁨”은 너무도 커서, 도저히 나누지 않고는 못 베기는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아픔이 마치 백 마리의 양을 모두 잃어버린 것처럼 아팠고, 은전 한 드락메를 잃어버린 슬픔이 마치 열 드락메를 전부 잃어버린 것처럼 슬펐던 까닭에, 양 한 마리를 되찾은 기쁨은 마치 백 마리의 양 전부를 되찾은 것처럼 기쁘고, 은전 한 드락메를 되찾은 기쁨은 마치 열 드락메 전부를 되찾은 것처럼 기뻤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 “기쁨”이 너무도 커서 결코 나누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베기는 까닭입니다. 이 “기쁨”은 하느님과의 만남의 기쁨이요, 나를 찾아오신 하느님의 크나 큰 사랑에 대한 기쁨입니다. 바로 이 기쁨이야말로 요한복음 사가가 말한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할 기쁨”(요한 16,22)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는 이 “기쁨”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창세 3,6) 하고, ‘먼저’ 우리를 찾으신 당신께서는 이제 당신의 기쁨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십니다. 사랑하되 먼저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며, 보잘 것 없는 하나를 사랑하되 전부를 사랑하고, 소중히 사랑하신 까닭입니다.

사실, 이 비유는 “이 사람은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요한 15,2)하고 투덜거리는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 말씀은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가 9,10)는 당신 자신의 소명과 행위를 드러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우리도 사랑하되 ‘먼저’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며,

보잘 것 없는 하나를 사랑하되 ‘전부’를 사랑하고 소중히 사랑하며,

주님께서 주신 이 큰 기쁨을 형제와 더불어 나누게 하소서!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루카 15,6)

 

주님!

저를 먼저 찾으시고 끝까지 찾으시니 찬미를 받으소서.

보잘 것 없는 하나를 사랑하되 전부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고

먼저 사랑하되 끝까지 신실하게 사랑하시니 찬미를 받으소서.

보잘 것 없는 죄인 하나이지만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시니

바로 이것이 제가 지닌 최상의 기쁨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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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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