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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제에게 주는 글 - 단순하고 가난한 삶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7 조회수1,240 추천수1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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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단순하고 가난한 삶


 나는 A. OOO신부요. 재산이 많은 가정의 출신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었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이신 하느님을 본받아 단순하고 가난한 삶을 살기로 하였소. 생명을 주는 그분의 말씀과 가난, 겸손, 순종의 빛나는 모범을 따라 살았던 것이오.

 나는 '대사제'이신 그분을 사랑하였고, 사제직을 사랑하였소. 그래서 사제 성소를 위해 기도하고 고통을 받았소. 영혼들의 구원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OO 사업을 시작하였소. 땅에서는 실패했지만 하늘에서는 성공을 거둔 사업이었소. 옷타비오 신부여,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사람의 판단이 하느님의 판단과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오.


그들은 믿음으로 응답하고 있는가?


 거룩한 열성으로 고무되어 자신이 받은 소명과 일치하면서 '스승'이신 하느님과 '교회의 어머니'의 간절한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고 있는 사제들의 수는 얼마나 되겠소?

 무한한 겸손의 기적으로 '사랑'과 '믿음'의 신비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대부분의 사제들은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겠소? 그들은 그들을 영원히 멸망시키려고 교활하고 음흉하게 곁에 붙어 다니는 악마와 함께 무서운 낭떠러지의 가장자리를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소?

 교회의 목자들이 어찌하여 이와 같은 어둠에 빠질 수 있었겠소? 많은 목자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영예를 안전하게 지켜 주는 일을 사목의 주축으로 삼고 있다니!

 게다가, 그들의 행실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는 것, 그 실패의 증거가 모든 이의 눈에 매우 분명하게 보이는데도 그들만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소?

 그들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교회를 모욕하며,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교회에 박아 주신 모습을 변질시키는 그 오만불손한 태도를 어찌하여 줄곧 고수할 수 있단 말이오?

 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우신 성심에서 나온 교회를 흉하게 변질시키며 가치를 떨어뜨리는 그 가증스러운 짓을 언제까지나 허락하실 수 있겠소?

 옷타비오 신부여, 교회에는 교활한 외교관이나 교만한 지배자 필요하지 않소. 아직도 교회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굳건한 지혜를 착함과 결합시킬 줄 아는 거룩한 목자들이 필요한 것이오.

 그들은 암흑의 지배자요 악한 표양과 이단과 교회 분열의 선동자인 사탄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몰라서는 안되오. 사탄은 프리메이슨 단원들과 무신론자들의 집단과 심지어 무신론적이 아닌 집단들 가운데서도 힘센 유력자들과 동맹을 맺고 있소.

 목자들은 알아야 하오. 그들이 자기네 인기에 집착해서 하찮은 것들을 가지고 놀고 있는 동안, 사탄은 주님의 포도밭에서 포도나무들을 뿌리째 뽑아 쑥밭을 만들면서 파괴하고, 영혼들을 지옥으로 몰아붙이고, 적들이 자기와 맞서기 위한 효과적인 행동을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무분별을 보면서 비웃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의무


 교회의 신적'스승'이서며 '창설자'이시고 '우두머리'이신 분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소. 그런데 주교들은 어찌하여 이 의무를 잊고 있는 것이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이 문제에 대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도록 그들을 유도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오? 무엇이 이토록 그들의 정신과 눈을 멀게 하여, 매우 많은 사람들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사탄의 침입과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겠소? 모든 연령층과 모든 사회 계층에 걸쳐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가 사탄의 영향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소! 그런데 주교들은 이 기본적인 직무를 실행하지 않을 뿐더러 사제들에게 '구마품'을 주고서도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기도 하니, 대체 누가 그런 권한을 주교들에게 주었단 말이오?

 주교들은 이 질문들에 대답하기 바라오!

 주님의 신비체가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것이 보이지 않소? 훗날로 미루지 말고 열성적으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쌓여 있는데 어찌하여 그대들은 잠자코 멎어 있기만 하오?

 그들은 무서운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표징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소. 성모님의 고뇌에 찬 호소도 모르고 있소.....

 옷타비오 신부여, 용기를 내시오! 그대는 길을 알고 있소.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마귀들을 무서워할 일도 아니오.

 그대를 축복하오.

(1976년 9월 3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지극히 고통스러운 수난과 찬란한 부활


 내 아들 신부여, 쓰시오. 나는 비오 신부(1987-1968; 이탈리아 나폴리 부근 피에트랄치나에서 태어남. 50년 동안 예수님의 오상을 지니고 있었던 카푸친회 사제. 현재도 전세계에 수많은 영적 아들과 딸들이 있고, 그들은 '파드레 비오 기도모임'을 열고 있음. - 역주)라오.

 지극히 사랑하는 내 아들 신부여, 나는 하느님의 은혜로, 세상에 있을 때에 이미 교회 생활이 장차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를 분명히 볼 수 있었소. 교회의 고난을 보았고, 벌써 시작되었거니와, 교회가 갈바리아를 오르고 있는 것을 보았고, 교회가 어둠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갈수록 더 깊이 어둠 속에 잠기는 것을 보았고, 유다와 같은 자들과 그 배반의 결과들을 보았고, 교회의 순교자들과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보았고, 땅을 흠뻑 적시는 피를 보았소. 

 그러나 나는 또한 생명의 수액을 빨아당겨 봉긋봉긋 움트는 새싹들을 보았고, 교회에 다가올 봄의 여명도 보았소. 교회의 극심한 수난과 그 찬란한 부활을 본 것이오. 

 그 모든 것 가운데서 그대를, 내 아들 옷타비오 신부를 보기도 하였소. 그렇소. 그대의 십자가를 지고 '어린양'을 따라 갈바리아를 올라가는 모습이었소. 또한, 목자들과 상당수의 사제들이 제쳐 놓은 사목의 중심 문제를 교회에 전하는 동안 그대가 고난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도 보았소. 

 그 주교들과 사제들은 정체불명의 개혁이나 공의회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곧 '성서'와 '복음'과 '전승'을 뜯어고치고 다시 만들 작정을 하고 있었고, 그러노라고 참 하느님이시요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는 제쳐놓고 있었소. 그리하여 갈수록 노골적으로 그리스도의 '인성'만을 인정하고 그분의 '신성'은 사실상 거부하고 부인하는 판이었소. 하느님을, '교리'와 '윤리'를 뜯어고치려 들다니, 그것은 인간의 자만과 교만이 어느 정도까지 극에 이를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오.

 내 아들 신부여, 물론 교회는 과거에도 이 세기의 주제넘은 숱한 신학자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자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서 교회라는 무대에 나타나곤 하였소. 그런데 같은 한 세기 속에 이토록 많은 수로 나타난 적은 결코 없었고, '계시' 전체와 하느님의 '법' 전체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일찍이 없었던 일이오. 그 결과 사람들은 이제, 그대가 주님께로부터 들었던 대로, '선'과 '악', 합법적인 것과 위법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도 잃고 말았소.


원수가 이길 수는 없으리라


 내 아들 신부여, 사탄이 교회와 세상을 물질주의로 유인하기 위해서 그의 광범위하고 복잡한 계획을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했는지 알고 있소? 수천년 동안이오. 하지만 이 마지막 두 세기 동안, 그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그것도 이 물질적인 진보를 이용하여 그 과정에 박차를 가해왔소. 진보로 말미암아 인류가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 것과 교회가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 것을 수단으로 동원하여 교회 파괴의 음험한 계획을 가속화시켜 온 것이오. 사탄은 언제나 교회를 미워하므로, 구세주께서 인류 한가운데에 '구원의 성사'로서 교회를 세우시기 전부터도 미워했다고 할 수 있소.

 그러나 이 사나운 원수는 하느님의 업적을 파괴하려는 의도와 목적 중 일부분만 성취할 수 있었소. 하느님께서 정하신 한계를 넘는 것이 그에게 허락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오. 이는 다시 말해서 (결국은) 그가 이길 수 없음을 뜻하오. 그러나 그가 영혼들에게 끼친 손상은 분명 헤아릴 수 없도록 많고, 인간 정신의 이해력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지경이오.

 그 모든 것의 원인에 대하여 새삼 거론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오. 내 아들 옷타비오 신부여, 그 대답을 그대는 여러 번 반복해서 듣지 않았소? 그대는 교회 활동 전체의 기초가 되어야 할 참된 '사목'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기 위하여 하느님 섭리의 도구로 뽑혔으니 말이오. 과연 사목이 '믿음'과 '윤리'의 굳건하고 영구적인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지 않으면, 어떤 쇄신이나 개혁도 불가능하지 않겠소?


벌써 불기 시작한 정화의 바람


 내 아들 옷타비오 신부여, 하느님 앞에서는 수천 년도 금방 사라지는 한 순간만 못하고, 교회의 현재 상황도 흐리고 안개 낀 어느 늦가을날의 정경과 유사할 따름이오. 공기는 움직이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사고가 빈발하고 불안이 감도는 날 말이오. 이윽고 바람이 일어 그 짙고 음산한 안개를 휩쓸어 가면, 다시 태양이 빛나면서, 지치고 실망한 영혼들에게 새로이 자신감을 주는 것이오....

 벌써 정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하늘은 이제 갈수록 더 짙어지는 구름으로 덮일 것이고, 이어서 소나기가 쏟아지고 태풍이 일어 모든 것을 뒤집어 엎으면서 '원수'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희망을 들부수고 말 것이오. 그런 후 평화와 정의의 새 시대의 태양이 떠오르리니, 이는 일찍이 본 적도 체험한 적도 없는 새로운 빛으로 땅을 비추어 줄 태양이오. 이 태양의 열기가 과거에 그런 적이 없었을 정도로 땅을 비옥하게 할 것이오.....

 내 아들 사제여, 그분께서 그대를 사랑으로 지켜보고 계시오. 내 아들 사제여, 그러니 그분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시오. 그리고 정상에 이르기까지 그분을 따라가시오.

 그분께서 그대에게 강복하시고, 그분의 원수요 사람들의 원수인 자들의 공격에서 오늘과 또 영원히 그대들을 보호해 주시기를!

(1978년 6월 1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성인들과 의인들 안에서 고난을 받는 교회


 형제여, 쓰시오. 나는 오리오네 신부(2004년 5월 16일 시성)라오.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성격으로 고난을 받고 있소.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머리는 '신성'과 '인성'으로 인격적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니, 그분은 교회의 실제적인 우두머리시오. 이처럼 교회의 창설자요 머리이신 그리스도꼐서는 부활하신 이후 육체적으로는 더 이상 고난을 받으실 수 없지만, 영적으로 또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고난을 받고 계시오. 그분의 '구속'과 무한하신 '사랑'을 배척하는 사람들의 죄 때문이오. 이는 역설적이고 이치에 맞지 않을 뿐더러 미련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사실이오.

 하느님의 영원하신 '말씀'으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은 사람들을 현혹하는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오. 그분은 진리이시고, 진리 자체이신 분이오. 그런 그분께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깨우쳐 주시려고 얼마나 여러 번 특별한 방식으로 개입하셨는지! 사람들은 주의가 산만하고 무관심하고 무감각한가 하면, 악하고 비뚤어져 있기 십상이고 그분께 대한 증오가 가득하지만 말이오!



믿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여러 차례 불만을 토로하셨는지 모르오! 성인들에게 수없이 발현하시어, 인류와 그리스도인들의 배은 망덕과 그분께 자기 자신을 봉헌한 이들, 곧 사제와 수도자와 수녀들의 배은 망덕으로 말미암은 한없는 슬픔과 고통을 털어 놓으셨으니 말이오!

 그분께서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소 : "(가시로 둘러싸인 당신 심장을 가리키시면서) 사람들을 이토록 사랑하는 이 마음을 보아라. 그럼에도 이 마음은 그들에게서 모욕, 배은 망덕, 업신 여김.... 따위만 받고 있을 뿐이다." 그분의 성심은 피를 줄줄 흘리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셨소? 그대도 다른 이들과 함께 그것을 본 증인이오. 그분께서는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도 가시에 둘러싸인 당신 성심을 보게 하셨소. 그러니 그분은 그 가시들로써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셨겠소?

 그분의 고통과 끝없는 비통을 입증하는 그러한 발현들이 특히 이 어두운 시대에는 셀 수 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봉헌한 자들과 심지어 주교들까지 의심을 품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도무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소.

 그들은 믿지를 않소. (이른바, 신앙의 위기이오.) 믿지 않을 뿐더러 믿기를 원하지도 않소. 믿기를 두려워하고 있소. 그들은 초자연적인 것이 내포하는 필연적인 결과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소. 내가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은 바로 주님께 자기를 봉헌한 사람들, - 예수님을 가장 많이 사랑하고 무신론적인 세상과 맞서서 예수님의 참된 증거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에 누구보다도 큰 비통과 실망을 안겨 드리고 있는 것이오.

 이와 같이, 자신을 봉헌한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과 무관심과 미지근함과 불신에다, 게쎄마니 동산에서처럼, 그리스도인들과 온 인류가 그 분에게 끊임없이 쏟아 붓는 온갖 종류와 온갖 성격의 죄와 치욕과 중죄와 위법 행위들을 보태어 본다면, 그대는 그분께서 얼마나 엄청나고 한정없는 고통을 받고 계신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오!

 영혼들을 무한히 사랑하시는 분, 그들을 위하여 무한히 고통을 받으셨고 지금도 받고 계시는 그분에게는 수많은 영혼들이 영원한 멸망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보시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없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오.



십자가를 지고 있는 교황


 형제여, 교회의 보이지 않는 머리이신 분이 형용할 수 없이 큰 고난을 받고 계신 것처럼, 교회의 보이는 머리인 교황도 정도는 다르지만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큰 고통을 겪고 있소.

 교황은 가장 높은 정상에 있고, 그 정상에서 교회를 보고 있으니, 누구보다도 잘 볼 수 있소. 그는 교회에 배어 있는 교만을 보고, 교회를 에워싸고 있는 어둠을 보고, 교회를 갈기갈기 분열시킨 상처들을 보고, 주제넘은 신학자들의 오류와 이단 때문에 찢어진 교회를 보고, 영적 도덕적 관용주의에 의한 방종을 보고, 무질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교회를 보고 있소. 또한 교회 구성원들의 악한 표양을 알고 있고, 교회의 원수들이 암암리에 꾸미고 있는 음모와 증오를 알고 있소. 이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은 미어질 지경이오. 오직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도움만이 그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금까지 지켜 주셨을 뿐이오.

 이 모든 것에, 교황과 가장 가까이 있고 또 있어야 할 사람들의 이중성을 보태어 보면, 교황의 고통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오.

 많은 주교들과 거의 모든 사제들은 교회의 보이지 않는 머리이신 분과 보이는 머리인 교황의 고통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모르고 있소.

 형제들이여, 교회의 보이는 우두머리에게 고통을 주는 동기가 이다지도 크고 심각한 것이라면, 보이지 않는 우두머리이신 분의 고통은 얼마나 무한히 더 큰 동기를 지니고 있겠는지 생각해 보시오! 그분께서는 보이는 우두머리가 보듯이 전체를 총괄적으로 보실 뿐만 아니라, 당신 신비체의 각 지체와 온 인류를 한 사람 한 사람 낱낱이 보시기도 하니 말이오.

 아무리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 하느님의 눈에는 환히 보이지 않겠소?



가공할 영적 빈혈증


 형제여, 교회는 성인과 의인들 안에서 고난을 받고 있소. 그들의 고통은 사랑의 정도에 비례하오. 그런데 그 고통의 이유는 주교와 사제와 봉헌한 영혼들이 일반적으로 걸려 있는 가공할 영적 빈혈증이 그들에게 극심한 안타까움을 야기한다는 점에 있소.

 성인들과 의인들은 또 지옥 세력들이 그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그야말로 순교의 고통을 겪게 하기 때문에 괴로워 하오.

 형제여, 하지만 나는 그대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하지는 않았소. 그렇게 한다면 너무 장황해질 테니 말이오. 그러나 이 점만은 기억하기 바라오, 즉, 수많은 사제들의 미지근함과 드물지 않게 드러나는 비난받아 마땅한 행실로 인한 정신적 영적 불쾌감은 건강한 지체들인 일반 신자들에게도 가벼운 고통이 아니라는 점이오.

 그럼에도 그대에게 말하는 것이니, 실망은 금물이오. 집중적인 공격으로 그대를 실망에 빠뜨리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 때문에 영향을 받거나 소심해져선 안된다는 말이오. 그리고 사람들의 무분별에 개의하지 마시오. 내가 세상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만약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면 아무 일도 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니 '위에서' 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하오. 나는 언제나 그 목소리에 순종하였고, 그리하여 내 개인적인 성화와 다른 많은 영혼들의 성화를 위하여 하느님 섭리의 계획 안에서 (그분의) 도구가 되었던 것이오.

 형제여, 용기를 내시오. 지상의 여정은 짧은 반면에, 그대를 기다리는 상급은 영원하니 말이오.

 그대는 혼자가 아니오, 우리 모두의 '아버지의 집'에 먼저 와 있는 우리가 그대와 그대의 벗들과 함께 있소.

(1977년 1월 13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기본적인 진리


 아들아, 나다. 예수다. 받아써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어제, 죄의 용서와 악마의 억압으로부터 영혼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각 사제는 나와 하나 되어 자기를 아버지께 바치는 산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너는 이 기본적인 진리를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다시 말해서) 영혼의 목자들이 이 진리를 확신하고, 예비 사제들에게 장차 내 '피'와 '수난'의 결실을 맡아 관리할 내 사제로서 지게 될 책임에 대하여, 인간적인 책임 이상의 그 신성한 책임에 대하여, 분명한 가르침을 주고 자각을 가지도록 유의해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말이다?

 그렇지 않다, 아들아.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거나 전할 수가 없다. 그러니 예비 사제들에게 주어지는 지도나 교육이 내가 요구하는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거나 정반대이기 십상이다. 목자와 교육자들 자신이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는 영혼들이 아니라면, 예비 사제들을 너그럽고 거룩한 영혼들이 되도록 양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열띤 활동은 이단적인 행동주의에 오염된 것이다


 - 그렇지만, 예수님, 매우 열성적인 목자와 사제들이 있고, 그 수도 상당히 많습니다.

 - 아니다, 아들아! 분명히 말하거니와, 거룩한 목자와 사제들이 있긴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열에 들뜬 듯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목자와 사제들이 있는데, 그들은 이단적인 행동주의에 오염된 자들이다나는 사람을 겉 모양으로 판단하지 않고(갈라 2, 6참조 - 역주), 홀로 나만이 아는 객관적인 사실로 판단한다.

 자기를 산 제물로 바친 영혼들은 숨어 있기를 좋아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나와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오늘날, 신학교나 수도회에는 긍정적인 것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과거의 규칙들을 폐지하고 새로운 것으로 대치했는데, 거의 모든 것이 나의 '뜻'과 '복음'에 부합하지 않는 그릇된 원칙에서 온 것들이다.



자유는 방종이나 무질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아, 네가 더 잘 알아듣게 해 주마. 사람들은 자유와 무질서의 개념을 혼동하고 말았다.... 수많은 교육자들과 또 수많은 사제와 목자들에게 있어서 자유란 대체 무엇이겠느냐? 그들은 자유를 방종과 혼동하여 맞바꾸어 버렸고, 그 때문에 신학교 속에 도덕적 관용주의란 것이 침투하게 되었다그래서 예비 사제들이, 물질주의에 물들어 관능적인 쾌락이라면 아무것도 사양하지 않는 하고많은 젊은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거나 거의 다르지 않게 되고 말았다.

 물질주의와 온갖 종류의 성적 경험이 배어 있는 부도덕한 호색 영화나 폭력 영화같은 것을 보는데...... 스스로의 의지로 직접 선택하려면 인생을 알 필요가 있다고들 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또한, 생명은 활동적인 것이니 움직이지 않는 생명은 없으며,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삶 역시 활동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은 선이나 악을 향해 움직일 자유가 있다. 그러나 사람은 선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선을 향해 나아갈 때만 그 삶의 목적과 소명과 존재 이유를 실현할 수 있다반면에 악에 빠져 버리면 자유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따라서 그의 품위도 떨어뜨리게 된다.

자유는 방종이나 무질서를 뜻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끔찍한 도덕적 영적 파괴


 아들아, 하느님께서 "영원으로부터"(ab aeterno) 선택하신 영혼들 안에 (성소의) 씨앗을 심으신 순간부터, 그 씨앗은 그것을 받은 자들에게 의해서, 또 하느님의 뜻에 따라 믿음과 사랑으로 교육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그들의 성소를 실현할 임무를 맡은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지고 보호되고 옹호되어야 한다.

 아들아, 다시 분명히 말하지만, 이렇게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예수이다그야말로 이단과 타락의 온상이 되어 버린 몇몇 신학교의 도덕적 영적 파괴상이 어떤 정도에까지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네게 말하지 않으련다. 나로서는 이제 그토록 숱한 악으로 끔찍하게 더럽혀진 불결한 지역을 정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

 아들아, 네게 의견을 묻는 이들에게 신학교와 종교 교육기관에 가라고 권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그들 역시 의심과 불확신 속에서 수도자 성소라는 그들의 개인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심히 고통스러운 상황을 재정립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조처를 취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단지 비겁함과 두려움과 사람들의 평판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그의 행동을 세상의 판단에 묶어두지 않는다. 오로지 하느님의 판단에만 매이게 할 따름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6년 12월 1일 ④)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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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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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미사신청 : 11월 1일~3일, 11월 7일, 11월 9일, 11월 30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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