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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열 처녀에 비유(마태 25,1-1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8 조회수1,50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1월 8일 주일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열 처녀에 비유(마태 25,1-13)

(녹) 연중 제32주일 - 11월12일

1독서 <지혜를 찾는 이들은 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혜 6,12-16)

12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3 지혜는 자기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미리 다가가 자기를 알아보게 해 준다.

14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15 지혜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다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

16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

 

화답송 시편 63(62),2.3-4.5-6.7-8(◎ 2ㄷ 참조)

◎ 주님저의 하느님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

○ 하느님당신은 저의 하느님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나이다제 영혼 당신을 목말라하나이다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이 몸은 당신을 애타게 그리나이다

○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고성소에서 당신을 바라보나이다당신 자애가 생명보다 낫기에제 입술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 이렇듯 제 한평생 당신을 찬미하고당신 이름 부르며 두 손 높이 올리오리다제 영혼이 기름진 음식으로 배불러제 입술이 환호하며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 잠자리에 들어서도 당신을 생각하고온밤 지새우며 당신을 묵상하나이다정녕 당신은 저를 도우셨으니당신 날개 그늘에서 환호하나이다

 

2독서<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1테살 4,13-18)

13 형제 여러분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4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이 말을 합니다주님의 재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죽은 이들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입니다.

16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17 그다음으로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18 그러니 이러한 말로 서로 격려하십시오.

 

복음 <신랑이 온다신랑을 맞으러 나가라.>(마태 25,1-13)

1 “하늘 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은 어리석고 다섯은 슬기로웠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은 모두 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외치는 소리가 났다. ‘신랑이 온다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그러자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 저마다 등을 챙기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하고 청하였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다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문은 닫혔다.

11 나중에 나머지 처녀들이 와서 주인님주인님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지만,

12 그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13 그러니 깨어 있어라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11월 7일 연중 제32주일

연중 제 32주일 제1독서(지혜6,12-16)


지혜서에 묘사된 인격적 지혜는 사람 안에 들어와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느님과 일치하게 만드는 그리스도교의 은총개념과,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 가운데 오신 요한 복음의 육화된 말씀과도 상통한다.

 

<인격적 지혜>를 성령이나 성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성급한 시도이지만, 어쨌든 신약성경의 삼위일체 신학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말>을 할때 먼저 <생각>을 한다. <생각>한 것이 말(언어)로 표출된다. 그러니까 <생각>은 <내적 언어>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혜>라 부르고, 그것이 밖으로 표출된 것을 <말씀>이라고 부른다.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우리가 성급하게 <인격적 지혜>를 <성령 하느님>이나, <육화된 말씀>이신 <성자 하느님>으로 동일시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어렴풋이 성삼의 신비가 드러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지혜를 찾으러 일찍 일어나는 이는 수고할 필요도 없이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는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6,14)

 

이 말씀은 새벽기도의 중요성을 이야기 할 때에도 인용했던 말씀이다. 새벽에 일찍일어나 말씀을 읽고 감사기도를 하면서(지혜16,27-28참조),  영과 진리안에서 영이신 하느님을 예배하면(요한 4,24참조)), 이미 주님께서는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선물을 문간에 갖다 놓아 주신다는 것이다.

 

"지혜를 얻으려고 깨어 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진다."(6,15ㄴ) "지혜는 자기에게 맞갖은 이들을 스스로 찾아 돌아다니고,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상냥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서 그들을 만나 준다."(6,16) 

 

오늘 독서의 <지혜>는 우리가 그토록 원하고 바라는 <기도의 응답>이요, 우리가 그토록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알고 싶은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의 삶에 동행하시는 <현존체험>이다.

 

그러나 이 <지혜>의 축복을 받으려면, 오늘 말씀에 따라 조건이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고, 감사 기도를 해야 하고,  영적으로 순결하고 흠도 티도 없는 삶으로 깨어 있어야 하고, 하느님이 기뻐하시게 하고 감동시키는 맞갖은 생각과 삶을 살아야 한다.  

 

 

[매묵]2017년 11월12일 [(녹) 연중 제32주일] 매일미사 묵상/열처녀의 비유 그림 등 3점

연중 제32주간 복음 (마태25,1-13)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슬기로운 처녀들은 '안 된다.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하고 대답하였다." (3~4.9)

 

마태오 복음 25장은 24장과 더불어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을 받으시기 사흘 전에 주신 올리브산에서의 말씀이 계속되는 부분으로서, 특히 도둑의 비유두 종의 비유인 충성된 종과 악한 종의 비유(마태24,42~51)와 더불어 종말을 대비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교훈하는 세 가지 비유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세 가지 비유란 '열 처녀의 비유', '탈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를 나누는 임금의 비유'를 말한다. 

여기서 '천국은 마치 ~~에 비길 수 있다'는 것은 천국이 열 처녀에 비유되는 것이 아니라 열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는 상황에 비유되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다의 혼인 풍습은 신랑이 신부의 집에 들러 간단한 종교적 의식을 치른 후, 신부와 신부의 들러리들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가 혼인 잔치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신랑의 집이 먼 경우에는 신부의 집에서 혼인 예식을 치루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본 장에 있어서의 혼인 잔치는 어느 곳에서 벌어졌는지 명확하지가 않다. 문맥의 흐름으로 보면, 혼인 잔치는 신부의 집에서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름을 예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가 나중에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청했을 때 그 요청을 거부한 사람이 신랑이었던 사실(11~12절)에 비추어 보면, 혼인 잔치는 신랑 집에서 베풀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만일 혼인 잔치가 신부 집에서 신부 집에서 베풀어졌다면,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요청을 거부하는 주체가 신랑이 아닌 신부의 아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인 잔치가 어디서 열렸는지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당시 유다 관습에 의하면, 혼례식은 보통 해가 진 이후에 시작되었다. 이때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부의 집 문 밖에 나가서 등을 들고 있다가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에 당도하면 영접하였다.

 

그런데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신부집에 가는 시간은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을 대비해서 등이 꺼지지 않도록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야 했다. 

특히 본문에서 신랑이 예측치 못한 시간에 온 것이 강조되는 것은 종말, 또는 모든 성도들의 신랑이 되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예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여기서 신부의 들러리인 열 처녀가 들고 나간 '등'으로 번역된 '람파다스' (lampadas)는 수지질의 소나무로 만든 횃불이나 등불, 또는 심지를 꽂아서 쓰는 속이 등근 접시나 기름병을 의미하는 명사 '람파스'(lampas)의 목적격 복수로서 '여러 개의 등'이다. 

원문에는 이 단어 뒤에 새 성경이 번역하지 않은 단어 '헤아우톤'(heauton)이 있다.  '헤아우톤'(heauton)은 여성 3인칭 복수 소유격 재귀 대명사로서 '그녀들 자신들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열 처녀는 모두가 각자 자기 자신의 등을 들고 나갔다. 

여기서 '나간 장소'가 신부의 집인지, 처녀 자신들의 집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이것은 이 비유의 전개에서 크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본 비유에서 '신랑'으로 번역된 '뉨피우'(nymphiu)의 원형 '뉨피오스'(nymphios)라는 단어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다(11절). 따라서 비유에서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는 신부가 아닌, 들러리 처녀 열 명이다.

 

당시 신부의 들러리는 신부의 친구들이 맡았으며, 들러리들이 드는 등불은  모두 열 개라고 한다. 유다인들은  이상적인 숫자, 완전 숫자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당에서의 공식 집회도 열 명이 참석하지 않으면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 비유에서도 그러한 풍습에 따라 들러리 처녀들이 열 명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신랑되시는 예수님의 재림은 열 처녀로 상징되는 '모든 성도'가 대비하고 준비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재림 앞에서 단 한명도 열 처녀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슬기로운 처녀가 아니면 어리석은 처녀에 해당하는 결과를 맞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어리석은'으로 번역된 '모라이'(morai; foolish)의 원형 '모로스'(moros)는 신중하지 못하고 예측 능력이나 지혜가 결여된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며, '슬기로운'으로 번역된 '프로니모이'(phronimoi; wise) 신중하고 사려깊으며 분별력이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그리고 여기서 쓰인 동사 '에산'(esan; were) 반복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미완료 과거 시제로서, 이것은 신부의 들러리 처녀들의 개인적인 성향이 항상 그러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결국 다섯 처녀들은 항상 신중하지 못하고 선견지명이 없는 자들로 살아왔기 때문에 신랑을 맞이하는 날에도 평소처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성향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낸 것이며, 반대로 다른 다섯 처녀들도 평소의 삶의 자세가 사려깊고 분별력이 있으며 신중했기 때문에 그러한 태도가 신랑을 맞이하는 날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이다.

여기서의 교훈은 우리가 평소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주님의 재림의 때에 어떠한 자들로 드러날 것인가가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이제 마태오 복음 25장 3절에는 열 처녀들이 왜 어리석고 슬기로운지를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밝힌다. 

즉 등을 밝히기 위해서는 등은 물론 기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늦어질 것을 대비해서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던 반면에,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준비했을 뿐 여분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메트 헤아우톤'(meth heauton; with them)은 '그녀들 자신들과 함께' 또는 '그녀들 자신들 곁에'라는 뜻이다. 

이것은 들러리 처녀들이 등을 밝힐 여분의 기름을 반드시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충고해 주는 표현이다. 그리고 '엘라이온'(elaion; oil)은 '올리브 나무'(olive tree)를 의미하는 '엘라이아'(elaia)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올리브 기름'을 뜻한다. 

이 기름은 팔레스티나에서 나는 대표적인 산물로서 등불을 밝히고(2열왕4,10) 병을 치료하는데(루카10,34), 그리고 귀한 손님의 머리에 부어 예의를 시하는데(루카7,46) 사용되었다. 

이 기름에 대해서 어떤 학자는 '믿음'을 상징한다고 보고, 어떤 학자는 믿음에 대응하는 '선행'이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학자는 기름이 성별 의식에 사용된 물질이라는 것과(즈카4,12) 성령이 기름으로 상징된다(루카4,18)는 사실에 근거해서 기름은 내면적 신앙의 모습인 '성령의 능력과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마태오 복음 25장 4절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왜 슬기로운지를 보여 준다. 

여기서 '그릇'으로 번역된 '앙게이오이스'(anggeiois; jars)의 원형 '앙게이온'(anggeion)는 플라스크와 같은 휴대용 병 말하는데,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늦게올 것을 대비하여  말고도 여분으로 플라스크 같은 병을 하나 더 준비하여 거기에 기름을 담아가는 준비성을 갖추었다. 

그래서 설사 기름이 다하여 등불이 타다 꺼지더라도 여분의 기름으로 계속해서 등불을 타오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5절에 '신랑이 늦어지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 당신의 재림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늦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체되는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베드로 2서 3장 9절이 이것에 대해 분명히 밝혀준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도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연되는 주님의 재림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 긴장감을 느슨하게 만들어 방종에 흐르는 기회로 이용될 수 있음을 베드로 2서 3장 3절과 4절이 밝혀주고 있다.

 

"마지막 때에, 자기 욕망에 따라 사는 조롱꾼들이 나와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그분의 재림에 관한 약속은 어떻게 되었소? 사실 조상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창조 이래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 않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7절에서 '우리 등이 꺼져 가니'라는 표현은 주님께서 오시는 역사의 깊은 밤중에 성령의 불길이 소멸해가는 사람이 적지 않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 9절의 '우리도 너희도 모자랄 터이니'라는 표현은 슬기로운 처녀들이 기름을 나누어 주면 둘 다 등불을 켤 수 없을 것이기에 결코 나누어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영적인 차원에서도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주님 오시는 순간에 자기의 것을 나누어 줄 수는 없다는 말로서 구원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구원에 있어서 그 누구도 각자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모자란 기름을 러가는 역할도 그 누구가 대신 해줄 수 없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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