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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8.“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8 조회수1,593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태 25, 1-13(연중 32 주일)

 

11월의 가을입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소멸하는 것의 아름다움입니다. 사라져가는 것의 아름다움입니다. 지금, 우리는 전례력으로는 마지막 시기에 와 있고, “위령성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죽음과 종말, 그리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 전례의 중심주제로 선정되고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지혜’를 인격화하여 표현해줍니다. 곧 “참 지혜”이신 하느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지혜’라는 단어 대신에 ‘하느님’이란 말을 넣어서 읽어보면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지혜(하느님)를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예지입니다. 지혜(하느님)을 얻으려고 깨어있는 이는 곧바로 근심이 없어집니다.”(지혜6,15)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하신 ‘지혜’를 말해줍니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심’을 통하여 우리를 당신께로 데려가실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7)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지혜 있는 이들’의 삶의 자세를 말해줍니다. 이 비유에서 ‘신랑’은 그리스도이시며, ‘혼인잔치’는 하늘나라에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다스림을, ‘기름’은 신앙의 삶을, ‘등’은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을, ‘열 처녀’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신앙인을 표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가르침을 이렇게 요약하십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마태 25,13)

 

깨어 있어라 하십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곧 당신이 다시 오실 날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깨어 있되, ‘신랑’을 향하여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깨어 있어야 할 우선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신랑’을 맞이하게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깨어있음신랑을 기다리는 것이요, 희망하는 것입니다. 곧 사람이 되어 오신 주님의 ‘첫 번째 오심’을 기억하고,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으로, 언제나 계시며, 또한 오시는 주님을 희망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깨어있음’은 곧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러한 기다림이 있기에 인생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 기다림은 하느님의 개입이 야기 시킨 놀라움이요 경이로움입니다. 그러기에, 그 기다림은 순간순간이 그분께 대한 신뢰와 사랑을 드리는 만남의 시간이 됩니다. 그것이 곧 “깨어있음”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역사를 그저 스쳐 지나서 통과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새롭게 하고 변형시키기 위해 역사 안에 임하십니다. 곧 당신의 구원계획에 우리를 참여시키기 위해서 인간의 역사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임을, 소중한 임을, 주님이신 신랑을 기다리기에 오늘도 행복합니다. 그분께서는 진정 오실 분이시기에,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는 미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미래는 현재 안에서 그리고 현재를 통해서 얻어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현재는 미래를 결정짓는 마당이기에, 현재를 등하시하는 것은 결국 미래를 등한시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현재를 살되 미래를 바라보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깨어 있을 수는 있는 것일까?”

 

당연히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깨어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깨어 있어라”라고 하십니다. 곧 우리는 “깨어나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미 “깨어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곧 계시된 바를 믿고 받아들인 우리는 “이미 깨어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깨어” 있을 수가 있으며, 또한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구원받은 존재이며, 하늘나라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이 세상에 왔고,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이미 깨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비유의 결론은 예기치 않을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할 것이니 ‘깨어 있어라’는 단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기뻐 여기시는 행동을 해야 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이 가을, 결실의 아름다움과 소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자비의 완성의 때를 기다려야 할 일입니다. ‘신랑’을 생각하는 설레임과 부푼 가슴으로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동시에, 이미 혼인잔치의 기쁨과 사랑을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살지 않고, 성령의 생명의 불꽃을 태우는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지혜로움을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깨어 있어라.”(마태 25,13)

 

주님!

눈을 부릅뜨고 깨어 있되, 신랑인 당신을 향해 깨어있게 하소서.

당신을 희망하고 기다리며, 더더욱 갈망하게 하소서.

빛 속에서 은총을 볼 줄 알게 하소서.

그 은총이 얼마나 큰지, 경이로워하고 놀라워할 줄 알게 하소서.

임을 보게 하소서. 임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당신 사랑에 기름칠 되게 하소서. 사랑의 등불을 켜들게 하소서.

당신의 놀라운 자비와 사랑에 깨어있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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