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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란도란 글방/시가서詩歌書(욥기)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8 조회수1,366 추천수0 반대(0) 신고

도란도란글방 2020.11.08.(평신도주일에)

(공동번역성서)

시가서詩歌書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언어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땅, 대륙, 나라 모든 이름이 다 여성형인 거 아세요? 아시아, A로 끝나면 전부 여성형이에요. 오세아니아, 영국-브리타니아, Japan? 자포니아예요. 원래가. Korea, Oceania, India, . America. 아메리카 대륙은 콜롬보스가 발견한 거 아닙니다. 아메리토가 발견했습니다. 거기에 여성형, 아메리카,가 된 거예요. !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역사가 암묵적으로 그건 당연히 여자지. 이렇게 알고 있다니까요.

하늘만 남자예요. 남성. 그러니까 땅이 여자가, 하늘의 그 씨. 진리를 받아 그 아들로 태어나면 그걸 연합이라 그래요. 그걸 생명이라고 한다니까요. 엄밀히 말해서 땅이 씨를 받아 어미가 죽고 아들이 되는 거예요. 다른 말로, 아들로 다시 태어나요. 땅은, 육은, 모두 가. 진리로 다시 태어나야 돼요. 하늘의 씨를 받아. 성경 전체가 그 이야기이고 이 세상이 그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詩歌書 다섯 편이 그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 책인 거예요. 성경은 카이즘 구조로 기록되어 있다고 그랬죠? 카이즘 구조라는 건, A, B, C, D. C-, B-, A-. 요런 구조 있죠? 요렇게 확장되어져 가다가 가운데에 주제를 딱 놓고 다시 요렇게 축소되어 펼쳐지는 거예요. 그래서 가운데를 강조하는 거죠? 뭐 복음서도 대부분 요렇게 써져 있어요. 그래서 쭉 펼쳐져 가다가 가운데에 핵심적인 걸 놓고 다시 그걸 설명해주는 거거든요. 카이즘 구조. 그러니까 제일 가운데에 있는 걸 주제라고 보면 돼요. 그러면 성경을 딱 덮었다가 가운데를 쓱 열어보세요. 어딥니까? 시편이란 말에요. 시가서란 말에요.( 시가서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그러니까 詩歌 서 다섯 편이 지금 성경 전체의 주제, 그 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거예요. 전부 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관점으로 시가서를 오늘 다시 가서 한번 읽어보세요. 그런 면에 시가서 다섯 편중의 첫 편인 욥기는 하느님의 아들이 된 자의 시작. 아주 초보적인 단계를 설명하는 거예요. 욥을 본받자가 아니라니까요.

욥기는 욥이 아브라함과 동시대 사람이란 말에요. 그런데 하느님이 욥을 들어 쓰지 않고 아브라함을 들어서 믿음은 이런 거야. 하느님의 씨를 받는 하느님의 백성은 이런 거야 하고 설명했단 말에요. 욥을 안 쓰고. 너무 버거워서? 아니라니까요. 그건 구원의 이야기의 초보의 이야기야. 라는 걸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란 말입니다.

욥기를 열심히 읽어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욥은 아주 율법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는 잔치를 벌이고도 제사를 지냈고, 아이들을 위해서도 매일 같이 제사를 지냈어요. 무슨 결벽증 있는 사람처럼.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죄를 멀리하려 했던 사람이에요. 그 죄를 가지고 하늘의 의를 알라고 그랬더니 그걸 자꾸 멀리만 해. 그리고는 나 잘했죠? 라는 게 욥이라니까요.

(욥기1,4-5) 4 그의 아들들은 (생일이면) 번갈아 가며 자기 집에서 잔치를 차리고 세 누이도 불러다가 함께 먹고 마셨다. 5 이런 잔치가 한 차례 돌아가고 나면 욥은 그들을 불러다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게 하고 아침 일찍이 그들 하나하나의 몫으로 번제를 드렸다. 아들들이 속으로 죄를 짓고 하느님께 욕을 돌렸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욥이 하는 일은 언제나 이러하였다.

나 같으면 잔치 다시는 안 할 거 같아요. 잔치할 때마다 사람 명수대로 짐승을 죽여서 피를 내어 제사를 지내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아세요? 잔치 한번 하면 꼭 아버지가 다 불러다가 이렇게 제사를 지내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제사를 열심히 지내면 죄가 용서됩니까? 그럼 히브리서는 찢어버려야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욥을 본받아야 할 욥, 이라고 일단 그렇게 시작을 한다니까요.

성경은 이런 욥의 상태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되는가를 보여줘요. 율법적인 사람들은 반드시 크로노스의 세상 것에 묶여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욥이에요. 성경은 그걸 사탄이 하느님의 보좌 앞에서 욥을 고소하는 것부터 이제 시작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세요. 그런데 이런 걸 보고 야, 하느님 나라에 가면 사탄도 있나? 성경은 그런 거에 관심이 없어요. 하느님은 영이라니까요. 그런데 자꾸 그렇게 그림을 그리지 마세요.

사탄, ‘싸탄나스라는 단어 자체가 비 진리, 대적자, 진리의 대적자라는 뜻이에요. 그 비 진리는 어떤 상태로 하느님을 대적하는가를 욥을 통하여 보여주는 거예요. 얼핏 보면 하느님과 사탄이 짜고서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냥 막 갖고 장난쳐도 되는 거예요? 하느님은 이렇게? 아들까지 다 죽여 버리고 재산 다 뺏어버리고 독종까지 나게 하고. 하느님이 그냥 그렇게 갖고 막 장난쳐도 되는 거냐고요? 사람을 갖고. 그런 얘기는 아닐 거 아닙니까?

비 진리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이 욥에게 그가 원하는 세상의 풍요를 다 허락했기 때문에 그가 하느님께 제사드리고 의인답게 살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라고 이야기를 한단 말에요. 그러면서 그거 한번 다 뺏어 보세요. 그래요. 그랬더니 하느님이 허락하시죠? 그래, 가서 다 뺏어 봐. 우리 얘기에요..

성경은 우리에게 지금 뭔가를 설명해주고 싶으신 거예요. 너희 같으면, 지금 너희의 이 신앙생활. 이 속에서 내가 만약 욥처럼 너희에게서 그걸 다 뺏으면 너희는 어떡하겠니? 한번 생각해보라는 거예요. 이건 단순히 사탄의 모함이 아니라 욥의 신앙이 바로 그 수준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크로노스적 시간 안에 머물면서 물리적 그 세계 속에 갇혀 있는 인본주의 속의 아담, 그것이 이런 모습이라는 거예요.

하느님의 사주를 받은 사탄이 욥의 재산과 가족 몽땅 쳐버리죠. 그거는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내가 검으로 왔다, 뭐를 자르러 왔는지 알아? 이거 자르러 왔어.’ 했을 때 말씀하신 항목이 다 거기에 들어가 있어요. 예수님도 그거 자르러 왔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실지로 잘라버렸습니다. 그때 욥의 고백이 이러합니다.

(욥기1,21) 21 입을 열었다. (모태, 자궁, 엣성전에서)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 가리라. 야훼께서 주셨던 것, 야훼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야훼의 이름을 찬양할지라.'

어마어마한 고백이죠? 그런데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와서 다시 그 옛 성전으로 알몸으로 돌아가는 게 진리입니까? 인간은 그 알몸으로 다시 그리로 돌아가면 죽습니다. 그 알몸은 반드시 삭제 당하고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고 돌아가야 돼요. 그런데 율법주의 아래에 갇혀 있는 이들은 이것이 굉장히 가치 있어요. 이 육신이. 이 호 코스모스의 아래 세상이 굉장히 가치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모태에서 나온 알몸이 알몸대로 돌아가는 게 당연하죠. 라고 알고 있는 거예요. 그 몸 갖고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그리고 하느님이 자기에게서 뺏어간 거 있잖아요? 지금. 자식들 재산, 뭐 이런 거. 친구 다, 그걸 하느님이 주셨으므로 하느님이 취해가셨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이건 너무, 자기에겐 너무 가치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그걸 취해가셨다, 라는 건, 하느님이 그걸 나에게, 정말 내 생명에 관계있는 소중한 것이라서 하느님이 주셨다가, 그것이 귀중하고 가치 있는 거니까 하느님이 다시 취해갈 만큼 가치 있는 거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주신 자도 하느님이요, 가지고 가신 자도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그거 가져가십니까? 여러분의 인생에 오셔서 하느님이 그거 가져가시나요? 하느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찾아오셔서 가져가실 수 있는 건 그 안에 주신 당신의 생명. 그 진리밖에 없다니까요. 하느님은 그 아들만 데리고 가세요.

하느님이 왜 여러분의 재산, 여러분의 자식을 갖고 갑니까? 어디에다가 써먹으려고 그거를? 그런데 인간들은 그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신 거 하느님이 가져가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 이게 깨져야 할 거지 이걸 우리가 본받아 고백해야 할 신앙고백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두 번째로 사탄에게 욥의 시험을 허락하실 때는 그 몸도 쳐봐라. 그래요. 걔가 지금 알몸으로 나왔다가 알몸으로 나한테 온다고 그러는데 그럼 그 몸뚱어리도 치면 이제 뭐로 올 건지 한번 보라는 거죠. 대신에 생명은 내 거다. 그건 만지지 마라. 하느님이 찾는 건 그거라니까요. 그거는 내가 준 거 맞아 그런데 나머지는? 하느님이 준 거죠. 그러나 내가 그에게 생명으로 준 거는 아니야!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욥의 세 친구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욥이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지어서 낭패를 당한 거라고 충고해요. 네가 죄를 지어서 그런 거야! 이게 다 굉장히 우리의 그 선악 논리에 맞는 이야기예요. 이 사람들이 한 이야기가 하나도 틀린 게 없다니까요. 도덕 윤리로 읽어보면. 처음에는 보잘 것 없겠지만 나중에는 훌륭하게 될 것일세.’(8,7)’도 얘네들이 한 얘기 아니에요? 그걸 냉장고에다 붙여놓고 말이죠.

그들은 죄의 정의도 제대로 내리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죄가 이 크로노스의 세상 속에서의 우리 육의, 나의 유익 그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원인이라는 엉터리 신앙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세상에서의 흥망성쇠도 결정이 될 뿐만이 아니라 그거의 연장선상으로 구원도 주어진다는 그런 신앙관. 이게 오늘날 왜곡된 개혁주의의 신앙관이에요. 왜곡된 개혁주의.

그런데 욥이 친구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그런 사람임이 폭로가 돼요. 뭐라 그래요?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다고 나에게 이렇게 대우하십니까? 그게 똑같은 거지 뭐예요? 내가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었습니까? 재물에 대해서 무슨 탐욕스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습니까? 하고 따지고 든다니까요. 진짜 아니라면 그까짓 거 가져갔는데 왜 따지느냐고? 관심이 있었으니까 따지는 거죠. 그게 율법주의의 아주 위선적인 모습이라니까요. 내가 언제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나에게 이렇게 대우하십니까? 라고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다. 이게 인과율에 사로잡힌 이 크로노스의 세상 속 아담들의 율법주의에요.

복음은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구원은 인과율에 의해서 발생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전적인 하느님의 은혜로만 성취되는 거란 말입니다. 지금 욥은 은연중에 자기 마음속에 내가 그렇게 열심히 율법 지켰고, 그렇게 열심히 죄를 멀리하려고 했는데, 하느님이 나에게 이렇게 대우하시면 안 된다, 라는 이 율법주의적인 사고가 아주 그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다니까요.

하느님께서 은혜의 진리를 설명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 땅이에요. 세상입니다. 어둠이라는 거예요. 그 속에는 죄도 있어요. 그 땅을 그냥 땅으로 인식해버리면 그걸 죄라고 하니까. 그렇다면 우린 그 땅의 것으로, 그 세상의 것으로 크로노스의 것으로 하늘의 것, 초월의 것을 깨달아 알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무조건 어두운 거, 땅의 거, 이건 악한 거, 하면 안 될 거, 가요는 부르면 안 되는 거.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이런 거는 불러도 되는 거, 이렇게 해버리면 그러면 하느님은 그걸 통하여 하늘의 것을 알라고, 다른 말로, 진리를 당신을 내용으로 담아 이 땅에 주셨는데 그게 성전이었고, 그게 성경이었고 예수였고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무조건 악하다고 치워버리면 그들이 섬기는 하느님은 뭐? 악한 하느님! 그걸 성경이 마귀라고 한다니까요. 그래서 하느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너희들의 아비는 마귀다! 그러는 거예요.

그 말은 네가 마귀의 새끼라는 말이 아니라 너희들이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는 그 하느님, 그건 너희들이 지금 악하다고 하는 그것 안에 들어가 계신 그분인데 그러면 너희들이 섬기는 하느님은 악한 하느님이네? 그럼 너희들의 아비는 마귀야. 그게 율법주의, 선악과 패러다임 하의 그 인본주의, 율법주의를 항해 일갈하는 하느님의 음성이었단 말이에요. 너희들의 아버지는 마귀야. 너희들의 하느님? 바알세불이야. , 그렇잖아요? 바알세불이라는 게 어디 있어요? 바오로도 무슨 우상이 있냐? 그런 거 없는 거다. 그런데도 하느님이 왜 굳이 그런 이름을 들먹이며 이야기를 하시겠어요?

너희들이 하느님이라고 섬기는 그거 바알세불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 너희들, 신을, 나를 다른 신으로 섬기지 마.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 이외의 다른 신을 너희들 앞에 있게 하지 말라! 그건 뭐 다른 신도 있다는 말이에요? 없어요. 나를 다른 신으로 섬기지 마. 그게 우상 섬김이라고 해요. 하느님은 진리라는 내용을 담아서 세상과 땅을 주셨습니다. 빛이라는 내용을 담아 어두움이라는 걸 주셨어요. 그런데 그것들을 내용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무조건 나쁘다, 악하다, 더럽다고 판단해버리면 그 안에 내용으로 담긴 하느님이 악한 하느님이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그 세상임금으로 죽을게’. 라고 하신 거예요. 그 율법으로 내가 죽을게. 그래야 너희들은 진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잖아. 그 진리. 그리스도의 영. 이렇게 이야기한 거예요.

욥기 36장에 엘리후라는 청년이 등장합니다. 청년이 등장해서 하느님은 고통이라는 걸 사용해서 진리를 가르치는 분이고 그 때에 비로소 그 사람의 귀와 눈이 열려서 하느님의 말씀이 들리는 거다. 라고 욥기 3615절에서 이야기를 해요. ‘하느님께서는 고생을 시켜 가며 사람을 건지신다오. 고난 속에서 사람의 귀가 열리게 해 주신다오’. 그런데 왜 이거에만 묶여서 이것이 옳으니, 그르니 내가 과연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느니 안 되느니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느냐는 이야기예요. 왜 크로노스의 사건 속에만 묻혀 있느냐?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서 당신이 아무리 이 세상의 방법으로 그 형벌에서 벗어나오려고 한다고 해도 절대로 그 땅의 행위, 당신의 자원, 그 제사, 그것으로는 거기서 못 빠져나온다는 거예요. 뭘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당신. 깨닫고 나와야 된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당신이 뭘 잘못해서 이렇게 준 것도 아니고 뭘 잘해서 그런 복을 줬던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건 하느님과 아무 상관없다는 거예요. 그건 사탄이 주던 뺏어가던 하느님은 I don't care! 아무 상관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온통 교회가 전부 거기에만 관심을 갖고 있어요. 하느님은 아무 상관 안 한다는 그거. 진짜 하느님이 찾는 그 생명에는 아무 관심을 갖지 않고 전부 그거. 하느님이 마귀 새끼를 시켜서라도 야, 그거 쳐서 가져가, 다 가져가 괜찮아, 라고 한 그것만 안달복달하며 붙들고 있다니까요.

엘리후가 땅의 자원, 땅의 회개로는 절대로 그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못을 박아버려요. 하느님의 죄 용서()함은 이 크로노스의 땅의 것들, 땅 적 차원의 열매와 노력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것을 천명해버리는 거죠. 그리고는 드디어 38장에 하느님이 나타나세요. 그게 오늘 본문의 이야기예요.

(욥기38,1-5) 1 야훼께서 욥에게 폭풍 속에서 대답하셨다. 2 부질없는 말로 나의 뜻을 가리는 자가 누구냐? 3 대장부답게 허리를 묶고 나서라. 나 이제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해 보아라. 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렇게 세상물정을 잘 알거든 말해 보아라. 5누가 이 땅을 설계했느냐? 그 누가 줄을 치고 금을 그었느냐?

(욥기39,1-2) 1 산양이 언제 새끼를 낳는지 너는 아느냐? 사슴이 새끼를 낳는 것을 지켜 본 일이 있느냐? 2 몇 달이나 뱃속에 새끼를 넣고 다니더냐? 그리고 얼마만에 분만하더냐?

(욥기38,31) 31 네가 북두칠성에게 굴레라도 씌우고 오리온 성좌의 사슬을 풀어 주기라도 한단 말이냐?

네 율법적인 그 사고. 네 이성. 그 수준 갖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네가 탄핵하는 거야? 그러는 거예요. 선악과 따먹은 알량한 네 뇌로 나를 지금 가늠하고 나를 판단하느냐? 내가 그 천지만물 안에 심어둔 그 메시지, 그 진리가 뭔지 알아? 모르죠. 그래놓고 제사만 열심히 지내고 있었다니까요. 다 듣고 나서 욥이 그럽니다. 하느님이 이제 말씀하셨으니까. 뭔가 알았을 거 아니에요

(욥기 42,3-5) 3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리운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 4 당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하여라.' 5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러자 하느님이 욥에게 그래, 그 진리를 네가 가졌다면 이제 그걸 누군가에게 흘려주고 그들을 용서해야죠? 그래서 욥에게 네가 기도하면 쟤도 산다. 친구들, 똑같은 놈들이란 뜻이에요. 이거 우리 얘기하는 거예요. 중보자의 역할. 우리의 역할이 그런 거란 말입니다.

그렇게 아랫것으로 위의 것을 알아버린 진리의 사람들이 그 진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 그 진리를 독백처럼 이렇게 흩날리는 이걸 시편이라고 그래요. 시편, 그러니까 무슨 시로 된 책, 그게 아니라 독백이란 뜻이에요. 그런데 하느님 저들은 왜 저렇게 살아요? 세상은 왜 이래요? 이렇게. 독백. 이게 시편이에요. 그 내용이에요. 하느님이 들려준 거 그건 이건데 왜 저들은 아직도 저래요? 그리고 그걸 진리로 가진 이들이 진리 안에서의 삶을 어떻게 사느냐가 잠언. 그러면 그 씨를 갖고 이제 해 위의, 그 진짜 해. 그리고 그 진짜 새것, 성경에서 새것은 새, 새것은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그 새것예요. 완료.

그 새것을 안 그에게 있어서 해 아래 이것들은? , 이건 다 모형이네. 그러니까 해 아래 새것은 없는 거네. 새것은 거기에 있는 거네 라고 알면 그 사람의 그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허무, 라고 하는 거예요. 헛되고 헛되네! 난 이 껍데기가 같이 있는 건줄 알았더니 그 새것, 그 씨, 그 진리를 알고 나니까 헛되고 헛되네! 그게 전도서에요.

헛되고 헛돼, 그걸 알았어요 그래서 이제 그 하늘의 것에 내가 연합이 되면 그걸 짝! 하느님의 아가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짝, 아가서. 그래서 하느님이 그 여자를 내 비둘기라고,, 짝이란 뜻이에요. . 내 비둘기야. 그러니까 시가서 다섯 개는 그래서 다섯 개예요. 하느님의 그 말씀, 성경 전체를 그냥 알기 쉽게 오히려 풀어놓은 거지 그걸 여러분이 어떤 교훈적인 도덕과 윤리로 읽어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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