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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이 성전을 허물어라. 요한 2,13-2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09 조회수1,52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1월 9일 월요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이 성전을 허물어라. 요한 2,13-22)

名畵로 보는 성경(5)-창세기10:1~11:32(바벨탑 사건 과 아브라함의 탄생)

그가 힘찬 소리로 외쳤습니다. “무너졌다무너졌다대바빌론이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들의 소굴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더럽고 미움 받는 온갖 짐승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묵시18,2)

 

1독서<성전 오른쪽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보았네.>(에제 47,1-2.8-9.12)

천사가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화답송 시편 46(45),2-3.5-6.8-9(◎ 5)

◎ 강물이 줄기줄기 하느님의 도성을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

○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우리의 힘어려울 때마다 늘 도와주셨네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땅이 뒤흔들린다 해도산들이 바다 깊이 빠진다 해도

○ 강물이 줄기줄기 하느님의 도성을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니 흔들리지 않네하느님이 동틀 녘에 구해 주시네

○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와서 보아라주님의 업적을이 세상에 이루신 놀라운 일을

 

복음 환호송

2역대 7,16 ○ 주님이 말씀하신다내가 이 집을 선택하여 성별하고 이곳에 내 이름을 영원히 있게 하리라.

 

복음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2,13-22)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제1독서(에제 47,1-2,8-9.12)

 

에제키엘 47장을 보면,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만남의 천막을 고려한다면, 지성소의 계약의 궤(서쪽)에서 물이 나와 동쪽 입구쪽으로 물이 흘러 내리는 셈이다.

 

천사는 그 물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이동거리를 측량하였고, 천 암마(천 척; 약 530m: 1암마는 팔꿈치에서 중지까지의 길이로 보통 45~55cm를 말한다)를 진행한 뒤에, 에제키엘에게 물을 가로질러 건널 것을 명령하였다.

이렇게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했을 때, 물이 "발목'까지 찼다(47,3)고 한다.

 

여기서 '발목까지'에 해당하는 '오프싸임'(ophsaim) '발목' 해당하는 명사 '에페쓰'(ephes)의 복수형이다. 발목에 해당하는 명사 '에페쓰' '끝'이나 '아무 것도 아님'이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문자적인 의미로서는, 성전으로부터의 일천 암마를 잰 지점에서의 수심은 물이 거의 없는 상태이거나 겨우 발바닥에 이를 정도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발바닥의 물'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발목의 물'('메 오프싸임; me ophsaim; waters of the ankles)라는 의미로 번역했다.  

성전으로부터 530여 미터 정도 흘러온 물이 발바닥에 닿을 정도라면, 거의 물이 흐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인의 성숙 단계로 보면, 하느님과 교회에 속한 자이지만, 이제 새롭게 신앙을 시작하는 단계를 말한다.

처음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를 그저 "기본적인 말씀이나 의식"인 것 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과 같이 받아들이는 어린 신앙의 기초 단계를 말한다.

이 단계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의 은총을 알고자 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러야 된다.

 

에제키엘서 47장 4절(ㄱ)을 보면, 거기에서 다시 천 암마까지 성전에서 흘러온 물이 '무릎'까지 찬다.

이 "무릎"은 히브리어 "베레크"(berek)로서 "사랑하는 자의 자리"라고 말한다.

사랑과 대화를 나누는 자세와 자리를 의미한다.


하느님과 대화하는 자리, 기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 단계에 속한다.

기도하는 사람, 대화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 고백하는 사람이며, 성사의 은총으로, 특히 성체성사의 은혜로 하느님께 사랑받는 자인 것이다.

 

47장 4절(ㄴ)을 보면, 다시 거기에서 천 암마까지 흘러온 물을 재니, 물이 "허리"(엉덩이)까지 찼다.

"허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모템"(motem)인데, "묶는 것"을 상징한다.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의 은총이 나에게 힘이 되는 단계를 말한다(욥기40,16참조).

약속의 말씀과 생명의 양식이 나에게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되며, 의미와 가치가 되는 단계이다.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내 도움과 내 영광이 하느님께 있으며,  내 견고한 바위와 피신처가 하느님 안에 있네."(시편62,7~8)

다윗이 이렇게 노래한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성사의 은총을 신앙생활의 원동력으로 삼아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며,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이 단계에 속한다.

 

47장 5절을 보면, 또 다시 거기에서 천 암마를  가면, 물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고 한다. 원문은 "메 사후"(me sahu)로서, "헤엄칠만한 물"(헤엄칠 곳)이란 뜻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의 날선 검처럼 지켜주고 축복을 주는 단계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던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4,12)

 

이 단계에서 살아 계시고 존귀하신 하느님을 경험하고 성체안에서 하나가 되면, 에제키엘 47장 8절~12절의 축복을 받게 된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모든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이 된다."  

 

여기서 "되살아나다"로 해석되는 히브리어 "라파"(rapha)는 '고치다','치료하다','건강하게 하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말씀과 성체의 사랑이 우리 안에 가득 넘칠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치유가 임하고, 축복이 흘러 넘치게 된다.

 

이렇게 물의 양이 많아진 이유는 염도가 너무 높아 생물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사해의 염도를, 생명체가 살 수 있을 정도로까지 낮추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즉 천사가 47장 8~12절에 말한 것처럼, 사해 즉 죽은 바다로 흘러간 물이 바다를 살리고

생명체가 번식하게 되고, 풍성한 어족을 되돌아 오게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생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가 에제키엘에게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을 그냥 관찰하게만 하지 않고, 4~5절에서 직접 물안으로 들어가 체험하게 한 것은, 물의 양이 사해 바다를 되살리기에 충분한 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성전에서 흘러넘치는 성령, 곧 주님 은총의 샘인 성심에서 흘러나오는 성령을 받으면 우리는 변화된다. 이것을 믿어야만 한다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복음(요한2,13~22)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4~16)

 

요한 복음 2장 13~25절은 예수님께서 하신 제1차 성전 정화 사건과 이로 말미암아 야기된 유대인과의 언쟁 및 기적을 보고 믿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이 사건을 제1차 성전 정화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 후반에 제2차 성전 정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마태21,10~18; 마르11,15~19; 루카19,45.46).

그런데 제1차 성전 정화 사건은 요한 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제2차 성전 정화 사건은 공관 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공관 복음서 저자들이 유사한 두 사건 가운데서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상 죽음과 밀접하게 관련된 후기 사건만을 기록한 반면에, 요한 복음사가는 이러한 공관 복음서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초기 성전 정화 사건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활동 초기에 있었던 이 사건을 기록함으로써,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유대인들의 종교적 부패상을 부각시키며, 예수님의 이들의 위선과 죄악상을 깨우치기 위한 새로운 역할이 필연적이었음을 보여 주려고 했다.

 

요한 복음 2장 14절의 '보시고'에 해당하는 '휴렌'(huren; found)는 '휴리스코'(hurisko)의 부정 과거이다. 이 동사는 그 무엇을 집요하게 찾다가 본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하거나 만난 것을 나타낸다.

시기적으로 이때는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첫 해 겨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전 안에서 자행되던 불법 행위들은 너무나 쉽게 목격되는 일반적인 현상이며,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를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에 들어가셨다가 우연히 이러한 현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한편, '성전'에 해당하는 '히에론'(hieron) '성소'(sanctuary), '성전'(temple) 이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정관사 '토'(to)와 같이 쓰여서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한다.

'히에론'(hieron)은 성전 건물 그 자체를 가리키는 '나오스'(naos)보다는 더 넓은 의미를 가지는데, 성전의 건물은 물론이고 마당(뜰)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예수님께서는 매매와 환전이 이루어지던 성전 마당의 이방인 뜰을 유심히 보셨다.

하느님께서 성별하신 이런 성전 영역 안에서 불법이 행해진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 타락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성전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던 범죄는 제물로 바쳐진 짐승들을 팔며 돈을 바꾸는 일과 관련 되어 있다.

멀리서 성전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희생 제물을 가져올 수 없어서 예루살렘에서 구해야 했다. 이 제물은 흠없는 것이어야 했고, 사제가 적격 여부를 심사했다.

비록 흠없는 제물이라 할지라도 멀리서 가져온 경우, 사제들은 쉽게 트집을 잡아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사제들은 가져갈 수 없는 제물들을 헐값에 사들여서 성전에서 비싼 값에 되팔았다.

결국 성전에서 파는 제물들은 불합격을 받을 우려가 없어서 선호되었고, 대사제 무리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막대한 이득을 올리고 있었다.

 

또한 환전 행위는 많은 순례자들이 성전을 찾는 기회를 이용해서 매년 바쳐야 하는 성전세 반 세켈을 바치는 것과 관련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20세 이상의 유대인 남자는 성전세를 바쳐야 하는데, 이것은 이방의 군주나 우상의 얼굴이나 각명이 들어 있지 않으면서 순도가 높은 은으로 만들어진 세겔 주화여야 한다.

 

유대인들은 보통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이 주화를 바쳤다(마태17,27).

파스카 축제 약 20일 전부터 환전소가 예루살렘 성전에 설치되었고, 이때 환전 수수료는 12.5% 정도였다. 대사제 무리들은 자신들의 직권을 이용해서 이러한 일에 관여하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당시 대사제 무리들은 큰 부(富)를 누렸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사용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2장 19절에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신다.

여기서 '성전'에 해당하는 '나온'(naon)은 2장 14절의 성전 경내 전체를 가리키는 '히에론'(hieron)보다 좁은 의미로 쓰였는데, 이것은 비유적으로 예수님의 몸과 성도의 몸(1코린6,19), 교회(1코린3,16.17; 에페2,21)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도 예수님께서 염두에 두신 성전은 바로 자신의 몸이며, 그분은 이것을 허물어 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 안에는 돌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 안에서 행해지던 일체의 의식들이 이 땅에서 소멸되고 없어질 수 있지만, 예수님을 통한 구원 사업은 아무도 막거나 없애지 못한다는 중요한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요한 복음 2장 20절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나오스'(naos)라는 성전은 '헤로데 성전'으로서 B.C.19년에 착공하여 A.D.46년에 이르러셔야 완공이 되었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는 아직도 20 여년 가까이 앞둔 시점이었다.

 

예수님께서 요한 복음 2장 19절에서 성전을 허문다는 것은 위의 성전이 아니라, 인류 구속 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죽어야 하는 당신 육체의 죽음을 가리키며,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은 사흘 안에 부활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성경강좌] 바벨탑 사건의 의미 - 천주교의 뿌리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 ‘성전정화 사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마태24,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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