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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제에게 주는 글 - 관료적인 사제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0 조회수1,195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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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관료적인 사제


 현재의 사목은 여러 심각한 악에 오염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사목을 다른 무슨 직업으로 여기게 하는 (사제들의) 관료적인 태도이다. 믿음의 결핍이 행동에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에 달리 보이게 할 수가 없다. 믿음과 행동의 관계는 자동차의 엔진과 차체와 같다. 엔진의 출력과 차량의 종류나 크기는 다양하지만, 엔진이 작동되지 않으면 차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 본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멎어 있기 마련이다.

 이 세대의 사제들을 보아라! 그들의 태도를 보아라!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고 옷 입는 방식과 일반인들의 공통적인 생활 방식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어 보이느냐? 초자연적인 관점으로 말하자면, 수명이 다 되어 못쓰게 된 엔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신비체'에 그토록 중요한 일부를 이루는 사람들이 그런 엔진이 되고 말면, 그것은 '신비체'를 위해 무용지물일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라는 천부적인 덕행이 특히 사제들 속에서 찬란히 빛나야 한다. 이 덕행들은 서로 어찌나 밀접하게 결합해 있는지, 은총의 생활이라고 일컬어지는 단 하나의 전체를 이룰 따름이다. (사제들이 그렇게 살기는 커녕....) 따라서 믿음이 없는 사제에게는 바람도 없기 마련이다. 바람은 사목 생활에 내포된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본질적인 원동력인데 말이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타락하고 악한 표양을 보이며 불행에 빠지고 결국은 배교에까지 이르는 정신적 영적 쇠약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배교한 사제가 얼마나 많은지! 배교는 하지 않았지만, 불행히도 신비체 속에 마른 나뭇가지처럼, 혹은 전염성 종양처럼 남아 있어서, 많은 영혼들에게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멸망의 원인이 되고 있는 사제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 불행한 사제들은 사제직의 '원수'에게 무섭기 짝이 없는 사슬로 묶여져 있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사제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 없는 사제는 냉정하고 비생산적이고 위선적인 관료와 같은 사람이다. 영혼들의 아버지인 사제가 그들의 고통 앞에서 체면상 공허하고 효과가 없는 말, 골자가 빠진 말이나 할 뿐이다.

 영원하신 아버지와 일치해 있는 사제에게서 나오는 말은 생명의 말이다. 거룩한 사제의 말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효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그들의 고통을 가라앉히는 향료가 된다.

 관료적인 사제는 악마 때문에 시달리고 있는 영혼들을 진단할 수가 없다. 하기야 그런 사제는 악마가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는다. 그의 영혼은 메말라 있다. 이 잘못된 메마름 때문에 영적인 악들을 식별할 수가 없는데, 믿음이 없는 이 세대의 사제들 중 다수가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사제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겠느냐?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불행한 자들이다. 외관상 반대로 보이더라도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신중하고 진실하고 현실적인 말로 그들을 존중하며 도와 주고,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너희 자신의 고통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진정한 우정과 형제애를 느끼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모르고 과거에도 어쩌면 몰랐던 것은, 그들 자신이 바로 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생명'과 사제직과 권능에 참여하게 된, 인간적이며 신적인 피조물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그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의 희생으로 속량하신 영혼들을 영원히 구원하시려고 뽑으신, 하느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영혼들이 나의 '피'로 씻음과 정화와 성화를 얻기 위해서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그들이 무한한 '사랑'의 표적임과 동시에 끝없는 증오의 표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들아, 그들을 얽어 매고 있는 더없이 끔찍한 종살이의 사슬을 그들 자신이 끊어 버리도록 돕기 위해서, 너는 기도하고 보속하며 축복해 주어라.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6년 5월 29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작업복"을 입듯이 제의를 입는 사제들


 네가 알다시피,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 '제단'으로 다가오는 사제들 가운데, 이에 요구되는 믿음과 감사의 정신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제는 극히 드물다.

 적지 않은 사제들이 나의 '몸'과 '피'를 불경스런 방법으로 모독하지만, 지금은 그들에 대해서 말하지 말고, 오히려 매일의 육체 노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런 저런 이야기로 수다를 떨면서 "작업복"을 입는 노무자와 같은 정신 상태로 무례하게 제의를 입는 사제들에 대해서 말하기로 하자.

 그들은 마음을 모을 생각도 하지 않고 거룩한 미사를 드리기 시작하고, 한편으로는 아주 이상한 것들에 정신을 판다. 그러다가 그들의 손으로 기적 중의 기적이 거듭되고 하느님의 '말씀'인 나의 '강생'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성체 축성의 순간을 맞는다.

 그 순간 그들은 그들의 손으로 성삼위께서 동시적으로 개입하시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내 어머니는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심으로써 성삼위께서 동시적으로 개입하시도록 하셨다 :

 - 아버지의 개입 : 어머니 안에 '말씀'인 나의 인간적인 영혼을 창조하심.

 - '말씀'인 나의 개입 :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영혼에 나를 결합시킴.

 - 성령의 개입 : 마리아께서 지극히 깨끗하신 태중에 동정으로 나를 잉태하시는 동인(動因)이 되심.

 그 순간부터 나는 참 하느님이며 참 사람이 되었다.

 성체 축성의 순간에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손에 의해 이 '강생의 신비'가 실제로 재현되는 것이다.

 극소수의 사제들만이 이 점을 생각한다.

 이 믿음, 이 생생한 확신이 없다는 것 - 이것이야말로 미사를 드리는 사제가 모든 행동 중에서 가장 거룩한 이 행동을 마치 일상적인 노동을 하는 근로자처럼 수행하는 이유임에 틀림없다. 사제가 단지 직업적인 일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배척 받는 사랑


 아들아, 사제들의 무감각한 태도는 성이 나서 길길이 뛰는 원수들의 모욕보다 내 자비로운 성심에 더 고통스러운 상처를 낸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나를 그렇게 대하는 사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랑'인 내가 그들의 냉담함과 무관심이라는 벽에 부딪친다. 모든 은총을 무상으로 베풀고 아무런 의무도 요구하지 않는 '사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척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제들이 거리낌 없이 함부로 나를 대하는 그 무례함에 관해서 너에게 상세히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세상에 흔히 있는 이른바 유명 인사들에게는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으려고 심히 조심하겠지만, 나에 대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매우 중요한 일부로 참여하는 생생한 '실재'를 그들 탓으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나를 희미하고 아득한 역사상의 한 인물처럼 기억하며 바라본다.

 그들은 미사 성제가 십자가의 희생 제사와 동일한 것이라고 이론적으로는 인정하지만,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 없음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실제로는 그것을 부인하고 있다.

 아들아, 얼마나 끝없는 비참과 모독과 배반과 영적 어둠의 바다가 펼쳐져 있는 셈이냐!

 오! 내 사제들이 그들의 손으로 나를 들고 있을 때, 모두가 생생한 믿음과 뜨거운 사랑으로 고양된다면, 그들 자신을 위해서나 그들이 사목해야 하는 영혼들을 위해서나 얼마나 강물 같은 은총을 내 자비로운 성심에서 끌어낼 수 있겠느냐!

 허다한 내 사제들이 이토록 고집을 부리며 멀리 떨어져 있고, 거듭된 나의 회개 호소에 반항이나 하고 있으니, 대체 무어 때문이겠느냐?

 교만, 자만, 허영, 불순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내 공동 구속자들이 멸망의 길로 가고 있겠느냐!

 그들의 지옥은 더없이 끔찍한 고통의 장소이건마는!

 내 '구속'의 열매를 맡아 관리하며 나누어 주었던 그들이, 지극히 사랑하는 이 벗들이, 나를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내 신비체 속해서 행했던 그들의 사업도 아무 결실을 맺을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신앙의 등불이 꺼져 버렸고, 십자가의 길로 나를 따르기를 거부했으며, 내 신비체의 일치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움직이시는 아버지


 아들아, 너는 내가 집요하게 이 고통스러운 문제를 다시 다루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괴로운 상황을 정확히 보게 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면 파괴적인 붕괴 작용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내 아버지의 준엄하신 '정의'의 행사를 보게 될 때에, 형언할 수 없는 그 재앙들을 모면하도록 하려고 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미리 경고하고 개입하고 호소했건만,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또 알아야 할 것은, 아버지께서 그렇게 준엄하신 정의를 행사하시는 때에도, 착한 사람들에게는 특히, 항상 '사랑'으로 움직이신다는 점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며(1요한 4, 8 - 역주), 죄인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에제 18, 23 참조 - 역주).

 그러나 거듭된 회개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이 어떤지를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 허락한 부분적인 징벌로부터 교훈을 끌어내지도 못한 사람들과 상당수의 내 사제들 위에는 하느님의 진노가 터질 것이다.

 그들은 마음에서 하느님을 지워 버린 자들이다. 무분별하게도 하느님은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니, 하느님께서도 그들의 어리석음과 교만의 결과들을 땅의 표면에서 지워 버리실 것이다.

 아들아, 기도하고, 다른 이들도 기도하게 하여라.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

(1975년 9월 11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벗이며 공동 구속자인 사람들


 너에게 말했던 것처럼, 일체 만물이, 곧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이 온통 나에게 속해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다 나의 소유이고, 만물이 나를 통하여 만들어졌으며, 존재하는 것 중에 나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내가 이미 너에게 드러내 보였듯이, 내 사제들은 아주 특별한 모양으로 내게 속해 있다.
 사제들은 내 공동 구속자들이다. 신비스러운 초자연적 능력을 부여받은 그들은 나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요한 15, 15 - 역주)
 아들아, 이 선물, 곧 실제적인 내 우정의 가치를 이해한 사제는 소수에 불과하다. 스승이며 구원자인 나와 내 벗이며 공동 구속자인 사제들 사이에 있어야 할 믿음과 사랑의 연대성,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그 필수적인 연대성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는 사제도 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나와 사제들 사이에는 힘과 정력의 상호 교환이 개재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 사제도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나를 온전히 주는 이상, 그들도 오로지 나에게만 그들 자신을 주어야 할 것이다.
 달리 대치할 수 없을 만큼 꼭 필요한 이 상호 교환이 없다면, 내 사제들에게는 영적인 죽음이 온다. 그런데 죽음은 영혼들을 오염시키고 멸망시키는 부패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결과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의 벗이며 공동 구속자였던 사제가 (이처럼 스스로의 탓으로) 생명의 수액을 받지 못하면, 그는 사탄과 결탁하여 마귀와 같은 자가 되고, 그리하여 마귀의 무공(武功)을 세우게 된다.
 하느님을 거부하는 악한 행위와 일반화된 파렴치한 배교 사태 앞에서 보이는 내 사제 중 많은 사람의 무관심, 그리고 수많은 영혼들의 멸망을 바라보기만 하는 그 수동성은, 내 자비로운 성심에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를 낸다.
 활동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고 너는 말하겠지. 암, 활동하지. 그러나 그들은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적어도 그들이 내개 회개의 (은총을) 청할 필요를 느끼기라도 한다면, 그리하여 산 믿음과 진실한 겸손의 정신으로 청하기라도 한다면, 나로서는 그 누구에게도 그것을 거절하지 않으련마는!......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거룩한 사제들이 없지 않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제는 얼마 되지 않는다. 훌륭한 고해 신부와 영적 지도자가 부족한 것이다.
 아들아,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병든 초목처럼 근근이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지를, 너로 하여금 속속들이 깨닫게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들은 현명한 영적 지도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누렇게 시들어 가고 있다. 수도원의 봉헌한 영혼들 가운데도 효과적인 영적 지도가 부족하다.
 영적 지도를 잘 받았다면 성덕의 정상에 이르렀을 영혼들이 있다. 내 많은 사제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 상태에 있다.
 성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 "그분께서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 11 - 역주)
 그러나, 아들아,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벗들이 마음속으로 나를 맞아들이지 않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내 사랑에 냉담한 마음과 불의로 응답하는 것은 내 자비로운 성심에 줄곧 큰 상처를 내는 것이다. 나는 내 사제들을 그 품위와 능력으로 천사들의 군대보다 더 높은 곳에 있게 하였고, 그들의 자유 의지에 나를 맡겼다. 또 죄를 용서하고, 빵과 포도주를 나의 몸과 피와 영혼과 신성으로 실체 변화시키는 신적 권능도 주었다! 내 '사랑'이 이 정도에까지 이르리라는 것을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느냐?
 아들아, 이리도 끔찍한 배은 망덕을 보상하기 위해서 너는 나를 많이 사랑하여라. 내게 너 자신 전체를, 네 소유와 네 됨됨이와 함께 바쳐다오. 아들아, 보속하고 또 보속하여라. 날마다 나를 배반하는 수없이 많은 유다들을 위해서!


고통을 받아들여라

 내 사제들은 그들 탓으로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그들은 내 어머니의 수많은 개입을 자각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자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려 주었어야 할 일이건만, 자만과 교만과 세상의 평판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으로 말미암아 눈이 멀고 만 것이다!
 그러니 봉헌한 영혼들을 얼마나 많이 잃게 되겠느냐!
 아직도 얼마나 많은 유다가 나타나겠느냐!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고 또 흐르겠느냐!
 참으로 많은 시간이 있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참으로 많은 사건들을 목격하기도 했건마는! 물질주의자가 된 그들 가운데는 신앙이 위기에 처하자 그리스도인다운 삶에 대한 의식마저 상실한 사람들도 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제들을 구원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사탄의 노리개가 되고 만다면, 어떻게 사탄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그들은 내 지상 대리자의 거듭되는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 대리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영혼들에게 내 대리자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도록 가르칠 수 있겠느냐?
 아들아,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이냐? 그런 사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너는 기도하고 보상하며 고통을 받아들여라.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8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축제의 표지


 나는 몬시뇰 죠반니 프란지니이오, 받아쓰구려.

 옷타비오 신부여, 1932년 3월 12일, 내가 미란돌라 대성당에서 그대에게 사제품을 주었던 이날을 기억해 보오. 밤에 12cm나 되는 눈이 오지 않았소? 그대의 주교인 내가 말하거니와, 그것은 우연한 눈이 아니었소. 그것은 내가 그대에 대해서 품고 있었던 직감을 확증해 주시려고 내려 주신 하느님 섭리의 징표, 축제의 표지와 같은 것이었소. 그대가 사제로 수품된 것이 교회 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큰 사건임을 확증하는 징표 말이오. 이렇게 눈이 내린 것은 상서로운 징조라고 나는 그대에게 터놓고 말했지만, 그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과연 이해하지 못하였소. 그대에게는 그 눈이 별 것 아닌 것이었지만, 내게는 의미심장한 것이었소. 그대의 사제직은 일반적인 사제직과는 다르리라는 것 - 내가 그 확증을 하늘에게 받았던 것이오. 이제는 그대도 그 증거를 가지고 있소.


 그대는 그대의 사제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소. 그것은 전체 교회 '사목'의 중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오. 이는 교회의 본질적이고 중심적인 문제이니, 이 문제를 제쳐 놓는다면 다른 문제들은 문제가 될 수도 없기 때문이오. 옷타비오 신부여, 이 마지막 시대에, 특히 지난 백 년 동안, 교회는 베드로좌를 계승한 거룩한 교황들을 성도들의 보이는 우두머리로 모시고 있었소. 그런데도 참되고,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교회가 이 세상 속에서 그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할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말았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소?


인성과 신성이 서로 만나는 신비인 교회


 옷타비오 신부여, 교회는 인성과 신성이 서로 만나 섞여서 융합되는 신비임을 그대는 알고 있소. 인간적인 부분이 신적인 부분과 기묘하게 결합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간적인 것으로 남아 있어서, 원죄로 말미암아 약화되고 상처입은 본성에서 나오는 악에 빠져들기 쉬운 상태에 있소. 역사는 반복되지만, (이 경우에는) 단순한 반복 이상이오. 역사가 시사하는 바를 보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인성은 그 순간부터 항상 그 치명적인 '원수'의 표적이 되어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으니 말이오. 인성은 스스로 보호하거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여지없이 지고 마오. 그러니 그것은 얼마나 가련한 것이겠소!

 또한 그대는 교회가 하나의 "몸"이라는 것, 사회적이고 실제적인 참된 몸이라는 것, 그 가장 높은 정상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시며 하느님이신 '구속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소. 예수님 곁에 그분의 지상 '대리자'가 있으니, 신적 머리와 인간적 머리가 지체들을 써서 몸 전체를 다스리며 움직이게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오. 이는 사람의 몸에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아니겠소? 사람의 머리에서 지체들을 움직이는 모든 명령이 나오듯이, 교회도 그 맨 위쪽인 머리에서 다양한 지체들을 움직이는 자극들이 비롯되니 말이오. 그러나 인체의 여러 기관과 지체들, 곧 눈, 입, 귀, 다리, 팔 등은 자유나 지성이 없어서 머리가 조종하는 대로 따르는 반면에, 교회라는 사회적인 몸에는 지체들이 자유와 지성을 가지고 있고, 상처를 입었거나 더럽혀진 몸의 일부가 되오. 따라서 그들의 치명적인 원수인 사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오. 틈만 있으면 덮치려고 언제나 망을 보고 있는 '악'의 어두운 세력은 그 불길한 활동으로 노리고 있는 사람의 원죄의 순간에 주입된 악의 싹을 마음속으로 키우는 사람이라면, 그의 자유를 억압하고 우세한 힘으로 그를 내리누르기 마련이오.


고통 없이는 실제적인 결과도 없다


 옷타비오 신부여, 달리 말하면, 교회의 정상에 있는 사람들의 뇌가 더럽혀져 있으면, 그 오염은 반드시 온 교회에 퍼진다는 것이오..... 그대는, 영적 어둠이 교회를 뒤덮고 있는데 그것은 교만에 의한 어둠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들었소. 이 말씀을 잊지 마시오. 그리고 이제 내 말을 알아듣기 바라오. 이 말씀을 잊지 마시오. 그리고 이제 내 말을 알아듣기 바라오. 야심에서 나온 음모와 술책으로 교회를 관리하는 위치에 접근한 자는, 보수만을 위해서 일하는 타산적인 사람처럼, 겸손과 사랑이 아니라 야심과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는 침입자이오. 그래서 "아버지"라기보다는 관료나 공무원 같은 자들이 이처럼 많은 것이오. 그런 자들은 하느님이 없는 사회, 따라서 사랑이 없는 사회의 관료나 공무원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자들이오.

 옷타비오 신부여, 이는 무서운 일이지만 사실이오. 그러니 주님께서 그대에게 왜 그토록 간곡히, 세상과 뭇 민족 가운데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이 근본적인 문제를 검토하도록 교회에 다시 제안하라고 하시는지 이해가 될 것이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빛'과 어둠, 하느님과 사탄, '선'과 '악'사이의 끊임없는 싸움이 아니겠소? 그런즉, 그대는 '사목'이라는 더없이 큰 문제에 대해서 동일한 호소가 가득 담긴 메시지들을 잇달아 받는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기지는 마시오.

 그대는 새로운 교회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 중이오. 이 사실이 그대에게 기쁨의 동기가 되어야 하오. 비록 이 일이 '십자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오. 그대의 사명은 고통 없이는 실제적인 결과를 낼 수 없소. 이를 그대는 이미 체험하였지만, 앞으로는 한층 더 체험하게 될 것이오.

 전능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당신 교회 안에 친히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영원하신 '말씀'께서, 또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께서, 이제와 영원히 그대와 그대들에게 강복하시기를!

(1978년 6월 15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단순하고 가난한 삶


 나는 A. OOO신부요. 재산이 많은 가정의 출신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안락하게 살 수 있었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이신 하느님을 본받아 단순하고 가난한 삶을 살기로 하였소. 생명을 주는 그분의 말씀과 가난, 겸손, 순종의 빛나는 모범을 따라 살았던 것이오.

 나는 '대사제'이신 그분을 사랑하였고, 사제직을 사랑하였소. 그래서 사제 성소를 위해 기도하고 고통을 받았소. 영혼들의 구원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OO 사업을 시작하였소. 땅에서는 실패했지만 하늘에서는 성공을 거둔 사업이었소. 옷타비오 신부여,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사람의 판단이 하느님의 판단과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오.


그들은 믿음으로 응답하고 있는가?


 거룩한 열성으로 고무되어 자신이 받은 소명과 일치하면서 '스승'이신 하느님과 '교회의 어머니'의 간절한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고 있는 사제들의 수는 얼마나 되겠소?

 무한한 겸손의 기적으로 '사랑'과 '믿음'의 신비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대부분의 사제들은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겠소? 그들은 그들을 영원히 멸망시키려고 교활하고 음흉하게 곁에 붙어 다니는 악마와 함께 무서운 낭떠러지의 가장자리를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소?

 교회의 목자들이 어찌하여 이와 같은 어둠에 빠질 수 있었겠소? 많은 목자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영예를 안전하게 지켜 주는 일을 사목의 주축으로 삼고 있다니!

 게다가, 그들의 행실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는 것, 그 실패의 증거가 모든 이의 눈에 매우 분명하게 보이는데도 그들만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소?

 그들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교회를 모욕하며,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교회에 박아 주신 모습을 변질시키는 그 오만불손한 태도를 어찌하여 줄곧 고수할 수 있단 말이오?

 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비로우신 성심에서 나온 교회를 흉하게 변질시키며 가치를 떨어뜨리는 그 가증스러운 짓을 언제까지나 허락하실 수 있겠소?

 옷타비오 신부여, 교회에는 교활한 외교관이나 교만한 지배자가 필요하지 않소. 아직도 교회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 굳건한 지혜를 착함과 결합시킬 줄 아는 거룩한 목자들이 필요한 것이오.

 그들은 암흑의 지배자요 악한 표양과 이단과 교회 분열의 선동자인 사탄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몰라서는 안되오. 사탄은 프리메이슨 단원들과 무신론자들의 집단과 심지어 무신론적이 아닌 집단들 가운데서도 힘센 유력자들과 동맹을 맺고 있소.

 목자들은 알아야 하오. 그들이 자기네 인기에 집착해서 하찮은 것들을 가지고 놀고 있는 동안, 사탄은 주님의 포도밭에서 포도나무들을 뿌리째 뽑아 쑥밭을 만들면서 파괴하고, 영혼들을 지옥으로 몰아붙이고, 적들이 자기와 맞서기 위한 효과적인 행동을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무분별을 보면서 비웃고 있다는 것을!


그들의 의무


 교회의 신적'스승'이서며 '창설자'이시고 '우두머리'이신 분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소. 그런데 주교들은 어찌하여 이 의무를 잊고 있는 것이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이 문제에 대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도록 그들을 유도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오? 무엇이 이토록 그들의 정신과 눈을 멀게 하여, 매우 많은 사람들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사탄의 침입과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겠소? 모든 연령층과 모든 사회 계층에 걸쳐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가 사탄의 영향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소! 그런데 주교들은 이 기본적인 직무를 실행하지 않을 뿐더러 사제들에게 '구마품'을 주고서도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기도 하니, 대체 누가 그런 권한을 주교들에게 주었단 말이오?

 주교들은 이 질문들에 대답하기 바라오!

 주님의 신비체가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것이 보이지 않소? 훗날로 미루지 말고 열성적으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쌓여 있는데 어찌하여 그대들은 잠자코 멎어 있기만 하오?

 그들은 무서운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표징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소. 성모님의 고뇌에 찬 호소도 모르고 있소.....

 옷타비오 신부여, 용기를 내시오! 그대는 길을 알고 있소.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마귀들을 무서워할 일도 아니오.

 그대를 축복하오.

(1976년 9월 3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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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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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미사신청 : 11월 1일~3일, 11월 7일, 11월 9일, 11월 30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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