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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이 주교에게 - 사랑과 진리가 나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한다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0 조회수1,083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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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사랑과 진리가 나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한다


 하느님의 '말씀'인 나 예수는 사랑으로써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사제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품고 있으니, 내 사제직의 완전함을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야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사랑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 없어지는 일은 없다. '사랑'인 나는 또한 '진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랑과 진리가 나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한다. 어두운 구름이 내 교회를 온통 휩싸고 있는 이 심각한 시기가 내 자비로운 성심에 안겨 주는 한없는 고통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내 사제들에게는 이미 말했지만, 지금은 내가 내 사도들의 후계자들을 존중하면서 그들에게 분명하고 확고하게 말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내 교회의 주교들 중에는 그야말로 착하고 거룩한 주교들이 있고, 나는 그들에 대해서 사랑과 호의를 품고 있다. 이와 반대로 그들의 사목을 반드시 다시 보고 재검토할 필요가 있는 주교들도 있다. (그들의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검토하되, 크나큰 겸손으로 내 복음의 빛, 내가 알려준 빛나는 길에 비추어 진지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긴급하다. 이 길은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 준 길이지만, 사람들의 '스승'이요 '목자'요 안전한 '인도자'가 되어야 할 그들에게 제일 먼저 알려 준 길이기 때문이다. 나의 지상 여정은 나와 너희의 어머니께서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를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신 순간부터 어머니의 태중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작, 곧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야말로 과거에도 지금도 하느님의 무한한 선하심의 신비이다.

 나는 더없이 가난한 모습으로 세상에 왔다. 외양간으로 쓰이던 춥고 누기 찬 동굴 속에서, 그 절대 빈곤 속에서 나의 지상 여정이 시작되었다. 가난은 또한 내 온 인생의 동반자였다. 노동하고 기도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는 것이 내가 걸은 길이었다.

 나는 모든 시대에 걸쳐 모든 사람의 '길'이다. 나는 변할 수가 없다. 사람들의 환경과 관습과 풍습은 변할지라도 나는 변할 수가 없다.


앞장 서서 가야 할 막중한 의무


 주교들은, 사제와 신자들이 따르고자 한다면, 앞장 서서 가장 먼저 이 길을 가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모든 주교들이 이 메시지를 읽게 되기를 바란다. 주교들 가운데는 겸손하게 스스로의 사목을 재검토하고, 지체없이 서둘러 개혁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아, 나의 지상 생활과 그들의 생활 방식을 비교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도끼를 들고 단호하고 용감하게 잘라낼 것은 힘껏 잘라내는 것이 상당수의 주교들에게도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사람들은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내 지상 대리자인 교황의 지침에 반기를 드는 주교들이 있다는 것, 심지어 추기경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그들은 이로 인한 추문과 악한 표양을 고려에 넣지 않았다. 마땅히 지녀야 할 신중한 태도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과 내 대리자에게 공공연하게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이다. 후자의 경우는 노골적인 불순종이 되기 때문이다.

 이 주교들의 행동은 무엇을 본뜬 것이겠느냐? 물론 나의 모범을 본뜬 것은 아니다! 나는 하느님이면서도 사람들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들아, 그러니 교회를 괴롭히는 위기에 다소 책임이 있는 주교들이 없지 않다. 착함과 관용을 나약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나약은 많은 사제들에게서 보게 되는 해이(解弛)의 부분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착함과 관용과 사랑을 방종과 혼동하지도 말 일이다. 방종은 상당수의 '영혼의 목자들'로 하여금, 비록 고의적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수많은 악과 추행의 공모자가 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주교가 그의 신학교에 이단자들이, 그렇다, 이단자들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묵인하면 되겠느냐? 이단자들에게 장차 사제가 될 영혼들을 양성하는 지극히 섬세한 임무가 맡겨져 있는데도 말이다?

 진리는 곧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나는 진리요 사랑인 반면, 이단과 오류는 내가 아닌 다른 데서 온다는 것을 주교들이 몰라서야 되겠느냐?


겸손과 가난


 아들아, 너는 주교들에게도, 내가 그들에게 십자가의 길로 나를 따라오라고 당부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나의 길을 기억하게 하여라. 나는 세상에서 무한한 '겸손'과 '가난'으로 나의 길을 시작하였다.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상당수의 주교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주교들의 또 다른 위험은 자만이다. 내 대리자인 교황도 전혀 결함이 없는 완전성의 은혜는 받지 못했지만, 뭇 민족들의 스승으로, 나의 가르침인 '교리'의 수탁자 자격으로 무류성(無謬性)을 받았다. 그러나 주교들은 개별적으로 무류성의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교황과 일치해 있을 때만 교황이 지닌 이 은혜를 나누어 받게 되고 여기에 참여하게 된다. 일부 주교와 추기경들은 이 점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내 신비체에 큰 고통을 초래하는 것이다....

 나는 내 사도들의 후계자들 모두가 착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더욱이, 그들 모두가 힘차고 영웅적이고 너그럽고 용감한 성덕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들이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나운 이리들로부터 양떼를 지켜 줄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주교는 기수이다. 그런즉 모든 사람들보다 앞서가야 한다. 무서운 문제가 있는데도 많은 주교들이 이에 대하여 의무를 소홀히 하는 중대한 잘못을 범하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 입을 다물고 있겠느냐? 사실, 사탄과 모든 악의 세력들이 (나의) 속량을 받은 영혼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더럽히고 휩쓸고 지배하기 위하여 자행하는 무서운 파괴 작용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평신도 그리스도인들보다 사제들은 더욱 잘 알 수 있고, 하물며 주교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사탄은 인간을 멸망으로 이끄는 물질주의의 화신이 되어, 그리스도교 세계와 비그리스도교계 어디서든지 수없이 많은 영혼들 안에서 신앙을 흐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질식시켜 죽이기도 하였다.

 이제 누구든지 알아야 할 것은,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외적인 성질의 기선(機先)을 잡기보다 내가 말과 모범으로 제시한 대로 앞장을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사탄과의 싸움


 아들아,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사제들은 위해서 너에게 했던 말을 주교들에게도 되풀이한다. 그들은 번번이 시간을 낭비하고 (이 싸움에 필수적인) 수단들도 낭비하고 있다. 숱한 모임과 만남과 토론들이 논쟁과 분열의 동기로 변하곤 한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그들은 식사를 하거나 토론을 하기 위해서 자주 모이지만 기도를 하기 위해서 모이는 일은 드물다. 사탄과 악의 세력들과 싸워 이기려면 기도하고 속죄해야 한다. 그런데 속죄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고, 기도를 제대로 바치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는다.

 내적이고 외적인 극기, 그리고 속죄.... 하지만, 오늘날, 견진성사를 받은 내 군사들을 이 싸움을 위해 훈련시키는 사람이 과연 있느냐?

 게다가, '원수'가 있다는 것, 원수야말로 가장 무서운 실재라는 것, 이 원수를 이기려면 결정적인 무기로, 이를테면 묵주 기도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없다면?.... 공격용 무기로서 오늘날 묵주 기도만큼 무시무시한 무기는 없는 것이다.

 영혼들 안에서 사탄이 벌이는 파괴 활동을 제한하기 위해서, 과거의 '성체회'와 '매괴회'와 여러 '신심 단체'및 효과적인 다른 단체들을 새로우면서도 그만큼 효과도 있는 형태로 대치하여 시기 적절하게 대비하지 않았던 주교와 사제들은 이를 소홀히 한 중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큰 결함을 보충하기 위하여 여러 기도 단체와 다른 새로운 단체들을 아직도 서둘러 동원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단체란 '성체의 벗회'같은 것으로서, 사람들이 청하기만 하면 내가 그 시작 방법도 제시해 줄 것이 아니냐?

 내가 사용하였고 사도들에게 건네주기도 했던 무기들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결코 사탄을 쳐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현대화


 방어와 공격의 작전 계획을 짜면서 그 안에 무기의 현대화 계획을 넣지 않는 사령관이 있겠느냐?

 그런데 내 교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무기는 영적 무기이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 각 본당마다 서둘러 기도 단체들을 준비하고 육성하며 독려해야 한다.

 영혼들의 목자는 무익한 토론이나 논의에 빠지지 말고, 사제들을 불러 모아서 그들과 함께 적절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긴급히 해야 할 일이다. 분별이 없어서 하느님의 '정의'를 믿지 않는 눈먼 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나는 거듭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걱정하지 말고 너의 씨를 뿌리고 네 고통을 봉헌하여라. 그러면 적어도 그 일부만은 비옥한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1975년 10월 14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관료적인 사제


 현재의 사목은 여러 심각한 악에 오염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사목을 다른 무슨 직업으로 여기게 하는 (사제들의) 관료적인 태도이다. 믿음의 결핍이 행동에 고스란히 나타나기 때문에 달리 보이게 할 수가 없다. 믿음과 행동의 관계는 자동차의 엔진과 차체와 같다. 엔진의 출력과 차량의 종류나 크기는 다양하지만, 엔진이 작동되지 않으면 차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 본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멎어 있기 마련이다.

 이 세대의 사제들을 보아라! 그들의 태도를 보아라!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고 옷 입는 방식과 일반인들의 공통적인 생활 방식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어 보이느냐? 초자연적인 관점으로 말하자면, 수명이 다 되어 못쓰게 된 엔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신비체'에 그토록 중요한 일부를 이루는 사람들이 그런 엔진이 되고 말면, 그것은 '신비체'를 위해 무용지물일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라는 천부적인 덕행이 특히 사제들 속에서 찬란히 빛나야 한다. 이 덕행들은 서로 어찌나 밀접하게 결합해 있는지, 은총의 생활이라고 일컬어지는 단 하나의 전체를 이룰 따름이다. (사제들이 그렇게 살기는 커녕....) 따라서 믿음이 없는 사제에게는 바람도 없기 마련이다. 바람은 사목 생활에 내포된 수없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본질적인 원동력인데 말이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타락하고 악한 표양을 보이며 불행에 빠지고 결국은 배교에까지 이르는 정신적 영적 쇠약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배교한 사제가 얼마나 많은지! 배교는 하지 않았지만, 불행히도 신비체 속에 마른 나뭇가지처럼, 혹은 전염성 종양처럼 남아 있어서, 많은 영혼들에게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멸망의 원인이 되고 있는 사제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 불행한 사제들은 사제직의 '원수'에게 무섭기 짝이 없는 사슬로 묶여져 있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사제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 없는 사제는 냉정하고 비생산적이고 위선적인 관료와 같은 사람이다. 영혼들의 아버지인 사제가 그들의 고통 앞에서 체면상 공허하고 효과가 없는 말, 골자가 빠진 말이나 할 뿐이다.

 영원하신 아버지와 일치해 있는 사제에게서 나오는 말은 생명의 말이다. 거룩한 사제의 말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효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그들의 고통을 가라앉히는 향료가 된다.

 관료적인 사제는 악마 때문에 시달리고 있는 영혼들을 진단할 수가 없다. 하기야 그런 사제는 악마가 있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는다. 그의 영혼은 메말라 있다. 이 잘못된 메마름 때문에 영적인 악들을 식별할 수가 없는데, 믿음이 없는 이 세대의 사제들 중 다수가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사제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겠느냐?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불행한 자들이다. 외관상 반대로 보이더라도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신중하고 진실하고 현실적인 말로 그들을 존중하며 도와 주고, 마찬가지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너희 자신의 고통을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진정한 우정과 형제애를 느끼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모르고 과거에도 어쩌면 몰랐던 것은, 그들 자신이 바로 나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생명'과 사제직과 권능에 참여하게 된, 인간적이며 신적인 피조물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모르고 있다. 그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당신 외아들의 희생으로 속량하신 영혼들을 영원히 구원하시려고 뽑으신, 하느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영혼들이 나의 '피'로 씻음과 정화와 성화를 얻기 위해서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그들이 무한한 '사랑'의 표적임과 동시에 끝없는 증오의 표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들아, 그들을 얽어 매고 있는 더없이 끔찍한 종살이의 사슬을 그들 자신이 끊어 버리도록 돕기 위해서, 너는 기도하고 보속하며 축복해 주어라.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6년 5월 29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작업복"을 입듯이 제의를 입는 사제들


 네가 알다시피,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 '제단'으로 다가오는 사제들 가운데, 이에 요구되는 믿음과 감사의 정신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제는 극히 드물다.

 적지 않은 사제들이 나의 '몸'과 '피'를 불경스런 방법으로 모독하지만, 지금은 그들에 대해서 말하지 말고, 오히려 매일의 육체 노동을 시작하기 전에 이런 저런 이야기로 수다를 떨면서 "작업복"을 입는 노무자와 같은 정신 상태로 무례하게 제의를 입는 사제들에 대해서 말하기로 하자.

 그들은 마음을 모을 생각도 하지 않고 거룩한 미사를 드리기 시작하고, 한편으로는 아주 이상한 것들에 정신을 판다. 그러다가 그들의 손으로 기적 중의 기적이 거듭되고 하느님의 '말씀'인 나의 '강생'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성체 축성의 순간을 맞는다.

 그 순간 그들은 그들의 손으로 성삼위께서 동시적으로 개입하시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내 어머니는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심으로써 성삼위께서 동시적으로 개입하시도록 하셨다 :

 - 아버지의 개입 : 어머니 안에 '말씀'인 나의 인간적인 영혼을 창조하심.

 - '말씀'인 나의 개입 :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영혼에 나를 결합시킴.

 - 성령의 개입 : 마리아께서 지극히 깨끗하신 태중에 동정으로 나를 잉태하시는 동인(動因)이 되심.

 그 순간부터 나는 참 하느님이며 참 사람이 되었다.

 성체 축성의 순간에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손에 의해 이 '강생의 신비'가 실제로 재현되는 것이다.

 극소수의 사제들만이 이 점을 생각한다.

 이 믿음, 이 생생한 확신이 없다는 것 - 이것이야말로 미사를 드리는 사제가 모든 행동 중에서 가장 거룩한 이 행동을 마치 일상적인 노동을 하는 근로자처럼 수행하는 이유임에 틀림없다. 사제가 단지 직업적인 일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배척 받는 사랑


 아들아, 사제들의 무감각한 태도는 성이 나서 길길이 뛰는 원수들의 모욕보다 내 자비로운 성심에 더 고통스러운 상처를 낸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나를 그렇게 대하는 사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랑'인 내가 그들의 냉담함과 무관심이라는 벽에 부딪친다. 모든 은총을 무상으로 베풀고 아무런 의무도 요구하지 않는 '사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척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제들이 거리낌 없이 함부로 나를 대하는 그 무례함에 관해서 너에게 상세히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세상에 흔히 있는 이른바 유명 인사들에게는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으려고 심히 조심하겠지만, 나에 대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매우 중요한 일부로 참여하는 생생한 '실재'를 그들 탓으로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나를 희미하고 아득한 역사상의 한 인물처럼 기억하며 바라본다.

 그들은 미사 성제가 십자가의 희생 제사와 동일한 것이라고 이론적으로는 인정하지만, 믿음과 바람과 사랑이 없음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실제로는 그것을 부인하고 있다.

 아들아, 얼마나 끝없는 비참과 모독과 배반과 영적 어둠의 바다가 펼쳐져 있는 셈이냐!

 오! 내 사제들이 그들의 손으로 나를 들고 있을 때, 모두가 생생한 믿음과 뜨거운 사랑으로 고양된다면, 그들 자신을 위해서나 그들이 사목해야 하는 영혼들을 위해서나 얼마나 강물 같은 은총을 내 자비로운 성심에서 끌어낼 수 있겠느냐!

 허다한 내 사제들이 이토록 고집을 부리며 멀리 떨어져 있고, 거듭된 나의 회개 호소에 반항이나 하고 있으니, 대체 무어 때문이겠느냐?

 교만, 자만, 허영, 불순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내 공동 구속자들이 멸망의 길로 가고 있겠느냐!

 그들의 지옥은 더없이 끔찍한 고통의 장소이건마는!

 내 '구속'의 열매를 맡아 관리하며 나누어 주었던 그들이, 지극히 사랑하는 이 벗들이, 나를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내 신비체 속해서 행했던 그들의 사업도 아무 결실을 맺을 수 없었다. 그들의 마음속에 신앙의 등불이 꺼져 버렸고, 십자가의 길로 나를 따르기를 거부했으며, 내 신비체의 일치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움직이시는 아버지


 아들아, 너는 내가 집요하게 이 고통스러운 문제를 다시 다루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괴로운 상황을 정확히 보게 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하면 파괴적인 붕괴 작용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내 아버지의 준엄하신 '정의'의 행사를 보게 될 때에, 형언할 수 없는 그 재앙들을 모면하도록 하려고 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미리 경고하고 개입하고 호소했건만,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또 알아야 할 것은, 아버지께서 그렇게 준엄하신 정의를 행사하시는 때에도, 착한 사람들에게는 특히, 항상 '사랑'으로 움직이신다는 점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며(1요한 4, 8 - 역주), 죄인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에제 18, 23 참조 - 역주).

 그러나 거듭된 회개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이 어떤지를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 허락한 부분적인 징벌로부터 교훈을 끌어내지도 못한 사람들과 상당수의 내 사제들 위에는 하느님의 진노가 터질 것이다.

 그들은 마음에서 하느님을 지워 버린 자들이다. 무분별하게도 하느님은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니, 하느님께서도 그들의 어리석음과 교만의 결과들을 땅의 표면에서 지워 버리실 것이다.

 아들아, 기도하고, 다른 이들도 기도하게 하여라.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

(1975년 9월 11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벗이며 공동 구속자인 사람들


 너에게 말했던 것처럼, 일체 만물이, 곧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이 온통 나에게 속해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다 나의 소유이고, 만물이 나를 통하여 만들어졌으며, 존재하는 것 중에 나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내가 이미 너에게 드러내 보였듯이, 내 사제들은 아주 특별한 모양으로 내게 속해 있다.
 사제들은 내 공동 구속자들이다. 신비스러운 초자연적 능력을 부여받은 그들은 나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요한 15, 15 - 역주)
 아들아, 이 선물, 곧 실제적인 내 우정의 가치를 이해한 사제는 소수에 불과하다. 스승이며 구원자인 나와 내 벗이며 공동 구속자인 사제들 사이에 있어야 할 믿음과 사랑의 연대성,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그 필수적인 연대성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는 사제도 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나와 사제들 사이에는 힘과 정력의 상호 교환이 개재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 사제도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나를 온전히 주는 이상, 그들도 오로지 나에게만 그들 자신을 주어야 할 것이다.
 달리 대치할 수 없을 만큼 꼭 필요한 이 상호 교환이 없다면, 내 사제들에게는 영적인 죽음이 온다. 그런데 죽음은 영혼들을 오염시키고 멸망시키는 부패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결과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의 벗이며 공동 구속자였던 사제가 (이처럼 스스로의 탓으로) 생명의 수액을 받지 못하면, 그는 사탄과 결탁하여 마귀와 같은 자가 되고, 그리하여 마귀의 무공(武功)을 세우게 된다.
 하느님을 거부하는 악한 행위와 일반화된 파렴치한 배교 사태 앞에서 보이는 내 사제 중 많은 사람의 무관심, 그리고 수많은 영혼들의 멸망을 바라보기만 하는 그 수동성은, 내 자비로운 성심에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어진 상처를 낸다.
 활동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고 너는 말하겠지. 암, 활동하지. 그러나 그들은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적어도 그들이 내개 회개의 (은총을) 청할 필요를 느끼기라도 한다면, 그리하여 산 믿음과 진실한 겸손의 정신으로 청하기라도 한다면, 나로서는 그 누구에게도 그것을 거절하지 않으련마는!......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거룩한 사제들이 없지 않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제는 얼마 되지 않는다. 훌륭한 고해 신부와 영적 지도자가 부족한 것이다.
 아들아,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병든 초목처럼 근근이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지를, 너로 하여금 속속들이 깨닫게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들은 현명한 영적 지도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누렇게 시들어 가고 있다. 수도원의 봉헌한 영혼들 가운데도 효과적인 영적 지도가 부족하다.
 영적 지도를 잘 받았다면 성덕의 정상에 이르렀을 영혼들이 있다. 내 많은 사제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 상태에 있다.
 성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 "그분께서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 11 - 역주)
 그러나, 아들아,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벗들이 마음속으로 나를 맞아들이지 않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내 사랑에 냉담한 마음과 불의로 응답하는 것은 내 자비로운 성심에 줄곧 큰 상처를 내는 것이다. 나는 내 사제들을 그 품위와 능력으로 천사들의 군대보다 더 높은 곳에 있게 하였고, 그들의 자유 의지에 나를 맡겼다. 또 죄를 용서하고, 빵과 포도주를 나의 몸과 피와 영혼과 신성으로 실체 변화시키는 신적 권능도 주었다! 내 '사랑'이 이 정도에까지 이르리라는 것을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느냐?
 아들아, 이리도 끔찍한 배은 망덕을 보상하기 위해서 너는 나를 많이 사랑하여라. 내게 너 자신 전체를, 네 소유와 네 됨됨이와 함께 바쳐다오. 아들아, 보속하고 또 보속하여라. 날마다 나를 배반하는 수없이 많은 유다들을 위해서!


고통을 받아들여라

 내 사제들은 그들 탓으로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그들은 내 어머니의 수많은 개입을 자각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자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려 주었어야 할 일이건만, 자만과 교만과 세상의 평판에 대한 두려움과 불신으로 말미암아 눈이 멀고 만 것이다!
 그러니 봉헌한 영혼들을 얼마나 많이 잃게 되겠느냐!
 아직도 얼마나 많은 유다가 나타나겠느냐!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고 또 흐르겠느냐!
 참으로 많은 시간이 있었고, 그리하여 그들은 참으로 많은 사건들을 목격하기도 했건마는! 물질주의자가 된 그들 가운데는 신앙이 위기에 처하자 그리스도인다운 삶에 대한 의식마저 상실한 사람들도 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제들을 구원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사탄의 노리개가 되고 만다면, 어떻게 사탄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그들은 내 지상 대리자의 거듭되는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 대리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영혼들에게 내 대리자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도록 가르칠 수 있겠느냐?
 아들아,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이냐? 그런 사제들의 구원을 위하여 너는 기도하고 보상하며 고통을 받아들여라.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8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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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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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미사신청 : 11월 1일~3일, 11월 7일, 11월 9일, 11월 30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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