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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성서와 하느님 나라"그리고 "예수와 하느님 나라"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1 조회수1,182 추천수1 반대(0) 신고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5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가장 큰 주제는 하느님 나라라고 할 수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선포역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고, 예수님의 비유는 대부분 하느님 나라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구약성서와 하느님 나라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느님 나라 개념은 왕정제도의 도입과 더불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13세기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차지한 이래 200여년 동안 판관들이 나라를 다스렸다. 이들은 왕이 아닌 신분의 지도자로 평화시에는 백성의 송사를 가려 재판하였고 전시에는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전투에 임하였다.

 

이스라엘 부족은 외적이 침입할 때만 일시적으로 한 지도자를 내세워 그의 지휘 아래서 힘과 지혜를 모아 외세에 대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로 분열하였다. 이렇게 미흡한 동맹체제로는 평상시에 강력한 왕의 지휘 아래 전쟁 준비를 하고, 일사불란하게 어려운 전투를치럿던 주변 민족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왕정제도의 여러 가지 폐단에도 처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왕정제도의 여러 가지폐단에도 불구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이 제도는 이스라엘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왕정제도를 도입한 다음에도 이스라엘의 진정한 임금님은 하느님이시라는 생각은 변함없이 유지되었고, 이 생각은 결국 하느님 나라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구약성서 가운데 예수의 하느님 나라 개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이사야 예언서이다. 하느님 날 개념은 유다의 왕정이 끊긴 기원전 586년 이후의 유배기간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한다. 백성이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왕정제도는 바빌론 침공으로 허무하게 종말을 고했다.

 

다윗과 솔로몬의 도읍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다. 절망과 폐허와 탄식의 한복음판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강력한 비전을 제시한 한 무리의 예언자 그룹이 , 그들이 바로 제2.3이사야(이사40-66)를 탄생시킨 예언자 이사야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왕정제도를 허락하시면서 예고하셨던 갖가지 폐단이 현실로 드러났음을 상기시키는 한편, 하느님의 진정한 모습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사랑하는 신, 강한 신, 성실하고 거룩한 신이신 이스라엘 백성의 주 하느님은 압제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백성을 찾아오시어 역사를 직접 관장하신다.

 

마침내 이사야의 제자들은 백성에게 너의 하느님께서 임금님이시다.’ 또는 너의 하느님께서 다스리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아브라함에서 너희 하느님께서 임금님이시다.’는 말은 너의 하느님께서 다스리신다.’는 말로도 옮길 수있다. ‘복음이라는 말을 태동시킨 이사야 52.7의 말씀은 하느님 나라 사상의 밑뿌리이다.

 

(이사 52)

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희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께서는 임금님이시다하고

시온에게 말하는구나.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주도한 핵심적 개념들이 이 구절 안에 모두 나온다. ‘평화.’ ‘구원.’ ‘기쁜 소식.’ ‘너의 하느님께서 임금님이시다.’ 위의 시구에서 평화와 구원은 히브리시의 대구법에 의해서 동의어로 나타나고 기쁜 소식의 내용을 이룬다. 동시에 구원의 내용이 너의 하느님께서는 임금님이시다.“는 외침과 연결되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하느님의 다스림이 곧 구원이요 평화이며, 이것이 기쁜 소식의 핵심적 내용이라는 것이다.

 

예수와 하느님의 나라

구약성서는 하느님 나라의 본질이 임금이신 하느님의 자비로운 통치임을 증언하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사상과 이 증언은 일치한다. 그 다음 후기 유다이즘은 이 나라를 올바로 맞이하기 위하여 개인의 결단이 필요하고 이 나라가 종말에 가서 완성될 것임을 밝힌다. 이 점에서도 예수의 사상과 후기 유다이즘은 일치한다. 이 하느님 나라의 도래로 종말은 완성에 도달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 사상은 후기 유다교에서 성행하던 묵시문학의 초월주의와, 이스라엘의 왕정제도에서 발전된, 대중적 메시아 사상의 민족주의나 현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후기 유다이즘에서 추구하던 메시아 왕국이나 천상 왕국으로 채체될 수 없다.

 

무엇보다 이사야 예언서에 나타난 하느님 나라는 통치영역을 뜻하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 행위나 통치권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이 성서적 전통을 그대로 수용하신다. 이사 61,1-258,6을 암시적으로 인용한 나자렛 선교 설교(루카 4,16-19)의 내용이 이를 잘 증언해준다.

 

예수께서는 제시하신 복음의 내용은 이사야에서 선포한 하느님 통치의 내용과 일치하고, 예수의 복음이 전해질 대상은 이사야서에서 하느님 통치의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될 대상과 일치한다.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자들, 곧 무식꾼, 가난뱅이, 마귀 들린 자, 꼴찌, 채무자, 철부지, 죄인 등 고통당하고 소외된 자들을 몸소 찾아오시어 어질고 능력 있는 임금으로서 위로와 해방을 선물로 주신다. 하느님께서 임금으로서 당신의 어린 백성에게 베푸시는 선정이야말로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내용이다.

 

예수께서 당신 삶으로 증언하신 하느님 나라는 현실적인 차원과 종말론적인 차원의 이중 차원을 갖는다. 하느님 나라는 묵시문학의 천상왕국처럼 초월적 차원만을 지향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인간의 삶과 역사에 깊이 관여한다. 이 나라는 내적인 또는 순전히 영신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변화를 통해서 드러난다.

 

하느님 나라의 현실적 차원을 무시하는 것은 육화의 신비 또는 강생의 신비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하느님 나라는 열혈당원들이 추구했던 메시아 사상과는 달리 현세주의나 물질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하느님 나라는 종말론적 차원을 지닌다. 묶인 자의 해방, 병자의 치유, 악마의 추방, 짓밣힌 자들의 권리회복 등을 통해서 하느님의 즉각적인 통치를 체험하지만, 죽음과 악의 완전한 정복, 영원한 생명의 완전한 획득은 의심할 여지 없이 미래적 사건이다. 하느님 나라의 종말론적 차원을 배제하고 그 나라를 현세적 이상향과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느님 나라의 이 이중 차원, 곧 현실적인 차원과 종말론적인 차원은 우리에게 이 나라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삶의 자세를 가르쳐준다. 예수께서는 열두 사도단의 구성과 교육을 통해서 이사야의 제자들이 강조한 새로운 사랑의 공동체적 삶을 실현시키도록 당부하시는 한편 (요한 13-17), 진정한 율법정신의 선포를 통하여 랍비 문헌에서처럼 하늘 나라의 멍에를 받아들일 개인적 결단을 촉구하셨다(마태 5-7).

 

예수의 하느님 나라 사상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하느님 나라를 당신 자신의 인격과 삶 안에 구현시킨 사실이다. 그분은 역사 안에서 동료 인간들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주권을 철저히 신뢰하면서 사시다가 영원한 삶으로 옮아가심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우한 현실적이고 종말론적인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예수께서 여러 가지 비유에 담아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예언서와 율법의 정신을 참되고 충실하게 계승하는 것이었다. 예언서에는 가난한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과 통치권이 강조되는 반면, 율법에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 곧 하느님 사람과 이웃 사랑이 강조된다. 이 위대한 성서적 전통은 예수의 삶과 사상과 말씀의 바탕이 되었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 가르침을 총괄하여 요약하자면 하느님 편에서 볼 때 이 나라는 하느님과 멀어진 채 세상의 온갖 악에 시달리는 당신 자녀들의 비참한 역사와 현실에 개입해 오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자애와 은총을 말하고, 인간 편에서 볼 때 그분의 자애와 은총에 감복하여 고통받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진정한 형제애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말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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