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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 (루카17,26-3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3 조회수1,69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1월 13일 금요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 (루카17,26-37)

2020년 11월 13일 (녹)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1독서<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2요한4-9)

선택받은 부인이여, 4 그대의 자녀들 가운데우리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기뻤습니다.

부인이제 내가 그대에게 당부합니다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일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고 충만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화답송 시편 119(118),1.2.10.11.17.18(◎ 참조)

◎ 행복하여라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 행복하여라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 행복하여라그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

○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찾나이다당신 계명 떠나 헤매지 않게 하소서

○ 행여 당신께 죄를 지을세라마음 깊이 당신 말씀 간직하나이다

○ 당신 종에게 은혜를 베푸소서제가 살아 당신 말씀 지키오리다

○ 제 눈을 열어 주소서당신의 놀라운 가르침 바라보리이다

 

복음 환호송(루카 21,28 참조○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복음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루카17,26-3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제1독서(2요한4~9)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이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7)  

 

성서 학자들은 요한의 세 편지(1,2,3서)의 저자를 세 편지에 나오는 '원로'라는 칭호에서 찾는다.

'원로'라는 칭호는 아시아 속주의 여러 교회에서 흔히 주님의 직제자 요한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을 가리킨다.

 

저자는 자신을 나자렛 예수님을 직접 본 목격 증인으로 내세우는데(1요한1,1~3; 4,14), 그는 요한계 공동체에 속하면서 사도 전통을 직접 이어받은 사도 요한 바로 다음 세대의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세 편지는 메시지, 문체, 어휘 등이 매우 비슷해서 저자가 동일 인물로 간주한다.

 

세 서간의 집필 연대는 폴리카르푸스와 유스티누스가 요한1서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50년 이전에 쓰인 것이 확실하다.

아마도 요한 복음이 쓰인 다음인 A.D.100년경이 될 것으로 본다.

 

요한 2서는 요한계 공동체에 속한 원로가 '선택받은 부인과 그 자녀들에게'(2요한1절) 보내는 편지다.

여기서 선택받은 부인은 원로가 속한 공동체와 가까운 자매 공동체를 말한다(2요한13절).

 

요한 2서와 3서의 구조는 1서와는 달리 복잡하지 않고 매우 단순하며, 한 장짜리 파피루스에 적어 보낸 고대의 짧은 편지 형식, 곧 첫 인사, 본문, 끝 인사의 형식을 그대로 따른다.

 

요한2서의 주된 관심사는 '진리'이다.

저자는 인사(1~3절)에서 진리를 알게 된 모든 사람은 '선택받은 부인'인 이 공동체를 사랑한다고 밝히고, 이 편지의 수신자들이 '진리와 사랑'안에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얻기를 기도한다.  

 

이어지는 본문(4~6절)에서 저자는 부인의 자녀들, 곧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진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며 부인에게 서로 사랑하자고 권면한다.  

 

사랑이란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계명은 우리가 처음부터 들어온 대로 사랑을 따라 살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속이는 자들, 곧 그리스도의 적들이 이 공동체에 도착하여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현혹시킬 것을 우려한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육화)를 부정한다.

 

원로는 이들에게 단호한데, 이런 자들은 집 안에 들여놓아서도 안되고 인사를 해서도 안된다(10~11절).

이것은 진리를 따라 사는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다.

 

요한의 세 편지는 요한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전통 신앙을 위협하는 '그리스도의 적들'에게서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데 그 집필 의도가 있다.

먼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부정한 가현주의자들(Docetists)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안티오키오의 성 이냐시오가 공격하던(A.D.110년경) 이단론자들이다.

 

둘째로 영적인 존재인 그리스도가 보통 인간 예수에게 세례 때에 내려왔다가 십자가 처형 직전에 돌아갔다고 주장하는 체린투스(Cerinthus)를 생각할 수 있다.

체린투스는 리옹의 주교 성 이레네오가 사도 요한의 적대자로 지목한 인물이다.

 

세째로 세상과 육체를 경멸했던 2세기의 영지주의자들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요한의 편지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적들'은 이들의 보다 원초적인 형태로 본다.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복음(루카17,26~37)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6~27)

 

여기서 '노아 때와 같은 일이'에 해당하는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노에'(en tais hemerais Noe; in the days of Noe)를 직역하면, '노아의 날들에'로서 노아의 살아 생전을 말한다.

이것은 바로 노아의 생애에 있었던 결정적인 사건인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물 심판을 말한다.

 

이처럼 노아 때의 홍수 심판과 사람의 아들의 날을 비교하는 의도를 살펴보려면, 루카 복음 17장 24절의 번개와 사람의 아들의 날을 비교한 것을 보면 된다.

루카 복음 17장 24절에서 번개의 번쩍임과 비추임을 사람의 아들의 날에 비교하여 예수님의 재림은 매우 급작스러울 것이며,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확연하게 볼 수 있을 것임을 예언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분명 심판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악해서 그것을 거절했다. 결국 심판은 임했고, 경고를 무시한 자들은 심판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멸망 당한 자들에게 있어서, 그 심판은 갑작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들은 심판의 경고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아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사람들이 여러 가지 경고를 통해 알 수 있지만, 이러한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갑자기 임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리스도 재림의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하느님의 경고를 통해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인 것이다.

 

루카 복음 17장 27절에서는 26절의 노아 때와 같은 일들에 관해 더욱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하고'로 나열된 동사는 모두 미완료 과거 시제이다.

이것은 그들의 삶이 항상 그러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노아의 경고를 듣고도 안일하고 익숙한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지 않고, 계속 이전과 동일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그것이 왜 그들에게 죄가 되는가?

루카 복음사가의 의도는 단순히 그것밖에는 다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즉 그들에게 가장 심각한 죄는 다름아닌 세상의 일들에만 가치를 두고, 그 일들에만 골몰하였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었을 때나 그 방주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해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위기감없이 여전히 그들의 세속적 관심에 따라 일상사에만 열중해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이에 대비한 노아와 그 가족들은 구원받았지만, 그들은 멸망의 길을 갔던 것이다.

 

오늘날 여기 굿뉴스에서는 어떻한가?

노아때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경고를 말하는데도 뭐 별반 다른게 있는가.

온 세상이 온통 하느님의 경고로 뒤 덮고 있는데도 말이다.

올바른 가르침에 좀더 힘써야 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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