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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이 사제에게 - 가공할 책임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3 조회수1,663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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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가공할 책임


나는 영혼들이 계속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허락할 수가 없다. 수많은 영혼들에게 나의 무한한 고통이 쓸데없는 것이 되고 내 피와 죽음마저 쓸데없는 것이 되고 있을 때에, 이를 수동적으로 잠자코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살인자이고 도둑인 사탄이 내가 영원으로부터 사랑하는 영혼들을 멸망시키려고, 고의로 일하는 자들의 자발적인 연합과 협력을 업고 불의를 저질러 대고 있으니, 내 무한한 자비는 이 불의에 맞서서 정의의 때를 부르고 있다.


아들아, 내게 자기를 봉헌자들이 지옥의 세력과 공모하여 영혼들을 멸망시키고 학살하고 찢어발기는 일에 가공할 책임을 지고 있음을 네게 보여 준다면, 너는 한 순간도 더 살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누구든지 이 점을 알기 바란다. 즉, 내 교회에 이렇듯 윤리적이고 영적인 악이 계속되기 때문에, 내 어머니의 간청과 자진해서 제물이 된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효력이 큰 것이건, 정화의 때를 늦추지는 못하리라는 점이다.


영혼 구원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일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하느님께서는 너희로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참을성은 너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지만, 죄로 말미암아 밤이나 낮이나 영혼들을 대량 학살되는 것을 더 이상은 참고 볼 수가 없다.


아들아, 그러잖아도 이해가 더딘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은 시간과 정력의 낭비일 뿐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대체 언제가 되어야 깨달을 수 있겠으냐?

여기서 내가 지적하는 사람들은 나를 멀리하는 이들이 아니라, 스스로 내 신자라고들 하면서도 대체로 하느님과 영혼 (사정)을 맨 끝 자리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은 육신의 변덕스러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날마다 희생을 바치건만, 하느님과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 자들이다. 자신의 육신을 우상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아라......

그러나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내 파수꾼들이, 곧 내게 봉헌한 사람들이 엄청 많이 '원수'에게로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너희에게 다시 말하지만, 내가 보는 것을 너희는 보지 못하니 만분 다행이다! 나는 모든 것을, 더없이 은밀한 생각까지도 다 보고 있다.

그러니 너희는 내 자비로운 마음의 한없는 비통과 내 어머니의 티없으신 마음의 비통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위선의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계속 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십자가와 기도의 한길로 접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네게 강복한다. 너의 고통을 내게 바쳐 다오. 지금 네 고통은 크다. 하지만 네가 오직 사랑으로 그것을 봉헌할 때만 내 마음에 기쁨을 안겨줄 수 있다.

(1975년 12월 3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그들은 용기가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아들아, 나 예수가 네게 말하고 있다. 나의 "펜"이 되라고 너를 택한 것도 나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어떤 판단을 받게 될 것인지를 벌써 분명히 알려 주지 않았느냐?

아들아, 이 말이 네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도 위안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너를 비판하는 자들에게도 반성의 동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하느님의 시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없다.


보아라,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힌 사람이다. 그들은 침묵을 지킨다. 마르크스주의자요 이단자인 사제들이 꽤 많은데도 그들에게 말할 엄두를 못 내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면서, 아첨에 가까운 미소나 지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씨앗들 속에 가라지 씨앗도 섞어 뿌리는 것은 엄청난 악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 가라지 씨앗을 뿌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도 부지런히 경작하여 곡식을 영글게 하고 수확해야 할 사람들 가운데 그런 자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은 베드로좌의 지침과 정면으로 대립하고, 끊임없이 가라지를, 곧 영혼들 속에 무질서와 혼란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포도밭을 맡기신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겠느냐? 그들은 아무 일도 없기나 한 것처럼 도무지, 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단자들을 나무랄 용기도 없고, 이단의 산물인 잡지나 신문이나 책 등을 몰아낼 용기도 없다.

베드로좌의 지침에 어긋나는 오류들을 퍼뜨리는 거짓 가톨릭 잡지나 신문에 대해서 드러나게 단죄 처분을 내릴 용기가 있었던 주교가 몇 명이나 되었겠느냐? 불행히도 몇 명 되지 않았다, 아들아.


거짓 신중


그러나 그들은 한 가련한 사제를 외딴 산골 본당으로 추방할 용기는 있었다. 이 사제가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의 근원인 마귀의 존재를 믿고, 마귀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을 축복하면, 고통을 덜어 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너희 시대의 교회에는 이런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들아, 이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그들은 신중이라는 이유를 끌어대면서 오류의 확산에 대해서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다. 신중이라는 큰 덕행이 매우 중대한 죄로 변질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목자들은 가라지 씨를 뿌리는 이단자들의 정체를 폭로해야 한다. 그런 자들의 가르침이란 것이 영혼에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신자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중이라는 거짓 핑계를 둘러대면서 그렇게 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신중이 아니라 잡음 없이 조용하게 지내고 싶은 것이 진짜 이유임을 목자들 자신이 잘 알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토록 자주 핑계로 삼는 신중이 반대로 열성으로 둔갑할 때가 있으니, 위험이 조금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진리를 천명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나 말을 그들이 공격할 때이다. 이에 대해서는 너도 장차 알게 될 것이다.

번번이 진리가 불살라진다. 그리하여 아픈 화상을 낸다. 그렇다, 아들아. 그들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 더 나은 곳에서는 목소리를 높이고,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더 나은 곳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충실한 착함


그러나 상당수의 주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들의 사목이 언제나 복음적인 사목이 아니라는 것을!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기도하게 해야 한다. 포도밭 내부에 "사람의 원수"(l' inimicus hominis)가 들어와 있는데다, 방해를 받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모모한 자들의 원조를 받으면서 해롭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안락을 위해서 덕행들을 오용(誤用)하는 짓은 집어치워야 한다! 지금은 성찰할 때이고, 묵상에 잠겨야 할 때이다! 지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원천에 이르러야 할 때이고, 거기에서 진실하고 숨김없고 성실한 나의 말을, 충실한 착함과 일치하는 이 유일한 말을 (스스로의 말과) 대조해야 할 때이다. 모호한 태도를 버려야 할 때이다. 정치적인 교활은 비둘기의 단순함과 뱀의 슬기(마태 10,16 참조 - 역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슬기는 위선이나 거짓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누누이 나의 길은 세상의 길과 다르다고 말했던 것이다.

영혼의 목자인 내 사제들은 마땅히 내 길을 알아야 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세상의 길을 걸어서는 안된다.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기도하고 보속하여라! 이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다.

네게 강복한다.

(1976년 6월 4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파수꾼이 깨어 있지 않다면...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진리' 곧 나의 가르침과 말로 이루어진 유산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수호하는 사람들이다.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당연히 내가 내 교회에 가르쳤던 윤리적이고 영적인 가치들을 수호하는 사람들이다.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믿음과 나의 교리와 살아 있는 말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수호하는 사람들이다. "살아 있는" 말이라고 하는 것은 , 내 교회 안의 어떤 이들이, 즉 교만하고 주제넘기 때문에 분명히 이단적인 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영원하고 신적인 말이기 때문이다.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구속'과 내 '법'의 영적 가치를 마땅히 수호하는 사람들이다. 내 '법'은 그 자체로 영원하고 신적인 것이기에 변함없고, 절대로 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누구도, 심지어 교황까지도, 그것을 조작한다거나 인간적인 교만과 이기심에 굴복시킬 권한은 없다.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빈틈없이 항구하게 깨어 경계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고, 이는 과거건 미래건 한결같은 의무이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이 영적 보화들을 거저 주신 것은 인류가 '암흑의 지배자'의 압제에서 해방됨으로써 악에서 자유로워지고 드높여져서, 알파요 오메가이시며 만물의 창조주요 주님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나 되게 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즉 악의 어두운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신앙을 보호하는 것이 과거에도 지금도 주교의 의무이다. 하느님의 흉내를 내는 이 어두운 세력들은 그들의 파괴 활동을 위해서 하느님께 뽑힌 이들을 도구로 쓰기 때문이다. 이 뽑힌 이들은 신심 깊고, 충실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많은 영혼들의 선익을 위한 열정으로 불타는 아들들이 되어야 할 사람들인데 말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봉헌자들이 '신비체'의 끔찍하고 깊은 상처인 교만 때문에 눈이 어두워져서, 너희와 교회의 원수들이며 내 원수들이기도 한 자들이 저지르는 사탄적인 붕괴와 파괴 활동을 알아보지 못했다. 

게다가 위험을 알아차렸을 때에도 위신을 잃을 것이 두려워서 거기에 필요한 정력과 힘을 쏟아 대응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항상 체면이 깎일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소경이 길을 인도한다면......


아들아, 오류와 부도덕의 만연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겠느냐? 이단의 급속한 확산은? 또 자연법에 어긋나는 낙태나 매춘을 합법화하고 범죄를 정당화하려 드는 추세에 대해서는?

사실, 선량한 사람들 편의 항의의 외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내 교회 안에 집단적 항의의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진리의 영혼들의 선익을 위한 신성한 권리를 옹호할 목적으로 정당한 수단이라면 정신적이건 물질적이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는 집단적 움직임을 말한다. 

그런데 주교와 사제들은 흔히 입다물고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해야 할 대항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악과 공모하고 악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매우 중대한 잘못을 범한 것이다.


아들아, 네가 알다시피, 현대의 사목은 실제적인 모순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이 무분별로 말미암아 교회의 모든 조직들이 배척을 받는 중이거나 적어도 위기에 처해 있다. 반면에 사탄의 조직들은 교의적인 악과 윤리적인 악, 그리고 흔히 물질적인 악까지 대거 전파함으로써 무신론적이고 물질주의적이 된 사회 속에서 아무런 배척도 받지 않고 순조롭게 척척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오! 내 교회에는 얼마나 큰 맹목과 나약이 도사리고 있는지! 하지만 성인들과 순교자들은 결코 겁쟁이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

하느님과 내 교회의 원수들은 악을 위해서 서로 단합하였다. 내 주교와 사제들도 선을 위해서 그렇게 단합했더라면, 내 교회의 면모가 오늘날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의무를 소홀히 한 무거운 책임


현대적 진보의 실현 가운데서, 특히 홍보 전달 수단들이 내 교회 안의 여러 악에 대해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정당화는, 영원한 '심판자'인 내게는 말할 것도 없이 통하지 않는 핑계이다.....  나는 하느님이니 현재적 위기의 근원을 완전히 알고 있다. 그 근원이 얼마나 다양하건 낱낱이 다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신적 '정의' 앞에서는 핑계를 둘러대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 수단들과 공학 기술 그 자체는 선을 위해서 혹은 악을 막기 위해서 사용될 수도 있었을 터이다. 합리주의나 마르크스주의적 자만심이 없는 살아 있는 믿음, 행동적이고 순수한 믿음으로 악의 세력들과 대항했더라면 말이다.


나는 '심판' 때에 내 사제와 주교들의 개인적 책임과 집단적 책임의 정도를 평가할 작정이다!

어떤 핑계도 쓸데없으리니, 아무도 하느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고, 앞으로도 결코 면할 수 없겠기 때문이다. 무거운 책임이 다수의 목자들과 사제들의 양심을 짓누르는 것은, 악의 세력을 막아야 할 의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악의 세력이라면 단지 막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어머니가 끈질지게 가르쳐 온 모든 수단들을, 예컨데 겸손과 기도와 속죄와 같은 모든 수단들을 써서 대항하기도 해야 했던 것이다!

한 번 더 말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규정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고 말았다. 인생은 시련이고, 지옥의 어두운 세력과 그 속임수와 대항해야 하는 투쟁이다. 이를 변형시키는 것은 그리스도교를 변형시키는 것이고, '구속'을 변형시키는 것이며, 구속의 본질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그렇다, 아들아. 반역하지 않고 저지른 잘못을 겸손하게 참회하는 것이 더 낫고 더 슬기로운 행위일 것이다.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6년 12월 9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나는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


내 주교와 사제들 가운데서 많은 주교들과 매우 많은 사제들은 어떤 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겠느냐?

1) 이단적 행동주의, 곧 거짓 열성으로 포장된 자만심.

2) 때때로 기진 맥진할 정도로 외적 활동에 골몰하는 행위. 이는 하느님의 뜻에서 나온 계획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악마의 교활한 오만과 음흉한 술책에 응하는 것이다.

3) 이 격화된 활동은 내적 활동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들의 영혼 속에 하나의 확신이 뿌리를 박게 되었으니, 그들 자신이 바로 지주이고, 이 지주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다. 더 간단히 표현하면, 그들 자신에 대해 과장된 평가를 하게 되었고, 따라서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맡김의 정신은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4) 복음적 원칙에 따라 그들 자신을 새롭게 하고 진지하고 효과적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기를 거부한 행위. 이는 하늘의 호소와 경고 및 초자연적인 여러 사실과 사건들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매우 무거운 죄가 된다.

5) 편의상 신중함이라는 미명으로 영혼들을 위한 크나큰 선익을 가로막은 행위. 그럼에도 그들 자신은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수없이 많이 하곤 하였다!

6) 합리주의와 심지어 마르크스적 공산주의에 젖어 있는 일부 주교들의 행위

7) 아랫사람들에게서 오는 비난을 피하고 윗사람으로서 겪게 되는 성가신 일을 피하기 위해서 언제나 오로지 타협만을 찾아 온 행위. 이는 내가 그들에게 엄중히 책망하는 점이니, 무릇 타협이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성인들에게서 온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타협은 내 '복음'과 대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8) 교회 안에 널리 퍼진 혼란에 대한 책임

9) 더욱이, 교리 및 흔히 윤리 분야의 오염이 심각한 상당수의 신학교에 대한 책임. 따라서 그들은 오류와 이단의 파급에 대한 책임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교회가 온통 뒤죽박죽이 되어 무슨 말을 하는지 서로 거의 못 알아듣거나 전연 못 알아들을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10) 어리석은 권위의 남용으로 초래된, 현대 사목상의 여러 모순에 대한 목자와 사제들의 책임. 권위의 원칙이 무질서의 침범으로부터 지켜지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그러나 권위를 행사하는 방식은 변해야 한다는 말과, 영혼의 목자들에게는 착함과 단호함이 썩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도 옳은 말이다.

11) 그리고 악마적인 현대 생활에 영향을 받아 많은 경우에 그것을 승인하고 축복까지 하는 다수의 주교와 사제들이 범한 매우 중대한 잘못이 있다. 악의 어두운 세력을 막고 내 교회를 파괴하는 그 세력과 대항하기 위해서 뽑힌 그들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인 그들이 지옥 어둠의 지배를 받아 불이 꺼져 버렸고,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생명의 누룩이요 땅의 소금인 그들이 마귀들의 공략으로 바싹 마르고 마비되고 만 것이다.

12) 게다가, 세상에서 한다한 사람들과 권력자들과 통치술을 겨룬 잘못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외교술을 자랑하지만, 하느님의 영원하신 '말씀'이요 인류의 '구원자'이며 하느님께서 온 인류에게 파견하신 최고 최상의 '특사'인 나는 오직 한 가지의 외교술, 곧 '진리'만을 외교술로 썼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 예수는 통치자가 된 적이 없었다. 공생활 삼 년 동안 영예나 인간적 칭송이나 동의를 구한 적이 결코 없었고, '착한 목자'로서 언제나 오로지 하나의 갈망만을 지니고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며 사탄의 끔찍한 멍에에서 영혼들을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사탄이 있다는 것마저 믿지 않는 것이다.

13) 끝으로, 목자와 사제들의 또 한 가지 중대한 잘못은 지옥의 어두운 세력으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사람들과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으로 병들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는 어처구니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무관심, 복음의 가르침과 참 하느님이요 참 사람인 나의 모범 및 병자들을 치유하고 마귀들을 내쫓으라고 내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준 권한과 명백한 대조를 이루는 무관심이다. 이것이야말로 음흉한 속임수가 얼마나 극에 이르렀는지를 드러내는 점이다! 주교와 사제들이, 참 하느님인 내가 무익하고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

참 하느님인 나 예수가 모든 시대에 다 유익하고 필요한 말과 가르침을 주지는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 말이다?

나는 하느님이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내 가르침은 모든 세대에 걸쳐 유효하다.

그런데 이 무신론적이고 비뚤어지고 믿음이 없는 세대의 주교와 사제들은 대체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가지고 있단 말이냐?

대체 내 주교들이, 현 시대는 사람이 된 내가 세상에서 살았던 시대와는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냐?

현대적인 진보 - 여기서 내가 말하는 진보는 사탄의 술책으로 조종되는 물질적 진보이다. - 는, 사회적이고 세계적인 무질서와 타락의 도구로 사탄 자신에게 이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단 말이냐?

공업 기술이나 물질적인 안락은 인류 전체의 지고한 영적 이익과 단절되어 있는 한 인간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내 주교와 사제들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냐?

깨닫지 못한 것이냐? 아니면 알려고 들지 않는 것이 편리하다고 여겼다는 것이냐? 그리하여 악의 어둡고 불가해한 세력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 진리라는 무기를 사용하기 보다는 타협이라는 악마적 무기를 사용하기를 택했다는 것이냐?

그렇다면 사제직에 부여된 막중한 책임으로 대체 무엇을 했단 말이냐? 주교와 사제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하느님께서 뽑으신 스승으로서, 물질적 진보와 소비 문화에 내재하는 위험과 함정으로부터 영혼들을 지킬 의무를 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냐?

아니다, 아니다, 아들아,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네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진실에 대해서 왜 걱정하느냐? 그들 자신의 선익과 교회 전체의 선익을 위해서, 겸손하게 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꼼꼼히 양심 성찰을 하게 하려고 거듭거듭 반복한 나의 당부는 불행히도 아무런 반향을 얻어 내지 못하였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서 맴돌고 있을 뿐이다.


아들아, 구원해 주려고 영혼들의 문을 두드리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반항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 이들의 선배 중 한 사람이 유다였다. 그러나 유다의 반항은 결국 그의 멸망이 되고 말았다.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기도하고, 보속하고, 나를 사랑하여라!

(1976년 12월 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사목상의 모순


아들아, 주교들에게 준 지난번 메시지에서 나는 주교들과 사제들의 사목에 나타나고 있는 모순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이 모순은 그들이 하고자만 한다면 확인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모순의 원인을 찾는 일이다.


누구든지 일이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 두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면 못쓴다. 그들이 겸손하게 내게 청한다면, 내가 곁에 있으면서 빛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나는 지금이 다시 점검할 때요, 그것도 긴급한 재점검의 때라고 말한 적이 있다. 굳셈과 사랑과 신중성을 가지고 개입해야 할 때인 것이다. 악마는 내 교회가 무기력한 수면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강하고 대담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먹은 채 있어서는 안된다.

(이는) 지리멸렬하다기 보다는 월등 더 모순적인 (상황)이다. 모순이 어찌나 흔하게 만연해 있는지 생활의 습관으로 변해 버렸을 지경이고, 그래서 더 이상은 모순으로 보이지도 않게 된 것이다. 내 신비체 안에 널리 퍼진 이 모순은 참으로 엄청난 결과를 내고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것만이 유일한 악도 아니다.


지금은 자칭 무신론자라고 선언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할 계제가 아니다. 통상 "선량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그들은 아침이면 성당에 간다. 가끔 내 "말"에 대한 해석이 길어지는 경우에는 그것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성당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성사들을 받으러 오지만, 열렬한 믿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소수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습관적으로, 또 어떤 이들은 가정의 전통상 다가오는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죄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느끼지 않으면서 음란한 영화를 보거나, 음란물은 아니더라도 도둑질과 온갖 종류의 폭력을 가르치는 학교라고 볼 수 있는 영화들을 본다.


이와 같이, 물질주의적인 독이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있다. (특히) 청소년과 젊은 층 사람들 속에는 부도덕이 넘쳐 흐르는 강물처럼 퍼져가고 있다.

문이란 문이 다 열려 있다. 자칭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의 문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그 하루가 가기 전에 중죄를 지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침에 고해성사를 받으러 가는 것이다.


양심의 심판자들


그러한 그리스도인들과, 누구의 무슨 죄건 예외 없이 줄곧 사해 주는 수많은 고해 신부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곧, 아침에 '거룩한 영성체'를 하고, 저녁에는 육욕을 부추기는 것이 법칙처럼 되어 있는 댄스홀이나 극장이나 모임에 빈번히 가곤 한다는 것을! (그러니 그것이 어떻게 '거룩한' 영성체가 될 수 있겠느냐!)


사람들은 (이렇다 할 참회 없이) 간통죄를 고백한다. 무엇이든지 사해 줄 태세로 있는 사제들이 없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사제들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마태 7,6)고 한 (나의) 분명하고 확실한 말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성사들이 내 '수난'의 귀중한 열매라는 것을 잊어버렸고, '구원자'요 '해방자'인 내가 했던 말(마태 16,19; 요한 20,23 참조 - 역주)로 사도들과 그 계승자들에게 죄를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많은 사제가 그들 자신이 양심의 심판자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지만, 심판자의 임무는 그의 직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죄와 그 죄의 중대성 (여부)에 대해서 조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의 죄건 예외 없이 경솔하게 용서하는 것은 내 '자비'의 계획에 화답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계획에 화답하는 것이다. 이는 구원의 수단을 저주의 수단으로 변질시키고, 은총의 무한한 가치와 그 은총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내가 원했던 수단들의 무한한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너에게 모독적인 미사에 관하여 말한 적이 있지만, 지금 내 말은 미사에다 모고해를, 때로는 이중으로 모독적인 고해를 덧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아, 이것이 바로 모령성체의 근원이다. 합법적인 것과 불법적인 것, 선과 악도 분별할 수 없게 하는 이 관용주의란 것은 대체 어디에 그 근원이 있겠느냐? 이런 이유로 지체 없는 재검토가 필요한 것이다.

무정부 상태가 사회 도덕에서 양심법에 이르기까지 아무 저항도 받지 않은 채 들어와서, 일부 사제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승인하는 새로운 교리와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 내는 자들이 되게 하였다.

그 결과들은 그 자체로 명백하게 드러난다. 많은 사제들에 있어서 제6계와 제9계는 그 존재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이는 극도의 교만이다. 하느님을 밀어내고 스스로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며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것이니, 하느님의 전능과 전지의 무소부재(無所不在)도 믿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사탄은 끊임없이 사제들을 끌어들여서 그 자신의 교만과 불순종의 죄를 되풀이해서 짓도록 한다. 그는 내 교회에서 충실한 동맹자들을 얻었으니, 이 파괴 활동의 협력자가 되게끔 그들을 유도해 온 것이다.

사탄과 그 협력자들이 나의 이 변함없는 말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겠느냐?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 역주) "죽음의 힘도 감히 교회를 누르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역주) 내 교회는 정화되고, 내 교회는 해방되리라! 교회에 대한 내 사랑이 그것을 요구하고, 정의가 그것을 요구하고, 내 자비가 그것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이를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불이다


아들아, 앞의 메시지들 속에서 짙은 어둠으로 내 교회를 휩싸고 있는 구름에 대하여 네게 여러 차례 말한 적이 있는데, 이건 어쩌다가 그냥 말해 본 것이 결코 아니다.

또 다른 기회에 '사랑'은 타고 있는 숯불로 비유될 수 있다고 한 적도 있다. 불은 빛과 열을 발산하면서 성질이 다른 물건 - 예컨데 그 자체로는 싸늘하고 거무스름한 쇳조각 - 을 변화시켜서 불 고유의 성질을 띠게 할 수 있다. 타오르는 숯불 속에 넣은 쇳조각은 불처럼 타고 빛을 내고 탁탁 튀기도 하면서 불과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다.

내가 바로 이 지상에 내려온 '불'이다. 내 사랑으로 영혼들을 불태우고 그들에게 내 신적 '생명'이 스며들게 하기 위한 불이다. 이 불을 끄는 것은 물이 아니라, 암흑과 죄와 증오와 반역으로 뭉친 자의 영 속에 있는 온갖 더러움과 온갖 오물과 온갖 어두움이다.

타오르는 숯불에 물을 부으면 무엇이 남느냐? 김을 내는 검은 뜬숯 몇 개뿐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흉내를 내는 (사탄은) 모든 것을 창조주이신 하느님, 구속자이신 하느님,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과 반대로 행한다. 나는 내 사랑의 불을 가져오기 위해서, 영혼들에게 내 신적 사랑의 열과 빛을 주기 위해서, 그리고 종살이를 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나의 형제들이 되게 하여 나와 함께 아버지의 영광을 나누어 받는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

그러나 타고난 능력과 자유를 조금도 잃지 않은 사탄은 끊임없이 영혼들을 변질시켜서 김을 내는 뜬숯으로, 즉 그와 함께 지옥 영벌의 상속자로 만들려고 기를 쓰고 있다.


아들아,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들지 않는 사실이 있으니,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존재는 영원한 생명을 지향하도록 방향이 지어져 있다는 점과, 세상은 귀양살이와 싸움을 해야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이 싸움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니라 사탄과 그 악한 군대의 증오와 시샘과 질투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사탄이 성공적으로 그의 계획을 성취했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 계획은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하는 것, 그리고 주교와 사제들을 무기력한 수면 상태에 떨어지게 함으로써 그들이 빠져 있는 모순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리의) 말은 나와 너희 어머니의 것이 될 터이니, 어머니께서 그 저주받은 '뱀'의 머리를 또다시 짓밟으시겠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의 신앙이 소생하고, 현재의 통탄할 모순을 생생하게 통찰하며, 진지한 회개로 돌아옴으로써 현재 진행 중인 붕괴를 멎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어둠과 자만과 교만이 이기고 있을 때가 아니겠느냐?.....


아무도 착각에 빠져서는 안된다


아들아, 아무도 착각에 빠져서는 안된다. 날수가 이미 헤아려져 있다고 큰소리로 외쳐라. 나의 호소에 귀를 막고 무관심한 채로 있는 자들은 불행하다! 사람들은 이미 내 '자비'에 너무나 많이 반항하였다.

지금은 재검토할 때이다. 도끼를 나무 뿌리에 대야 할 때이다(마태 3,10 참조 - 역주). 무기력한 수면 상태를 흔들어 깨우고, 전장(戰場)으로 나가서 지옥의 원수와 대결할 때이다.

나는 사탄을 이겼고, 세상을 이겼고, 죽음을 이겼다.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지금은 중요한 때이지만, 너희가 나와 일치하고 너희 서로 일치한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너희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가능성이다. 너희에게는 원수의 자신만만한 진군을 억제하고 멈춰 세우고 한정할 수 있는 수단들이, 그것도 더없이 효과적인 수단들이 있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네가 겪는 어려움들을 내게 바쳐 다오. 그것이 내게 봉헌한 수많은 영혼들의 어리석고 무분별한 고집을 보상할 테니 말이다.

(1975년 10월 2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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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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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미사신청 : 11월 1일~3일, 11월 7일, 11월 9일, 11월 30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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