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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사람의 아들이 올 때 (루카18,1-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4 조회수1,43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1월 14일 토요일

[연중 제32주간 토요일사람의 아들이 올 때 (루카18,1-8)

 

1독서<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됩니다.>(3요한5-8)

사랑하는 가이오스, 5 그대는 형제들을 위하여특히 낯선 이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든 다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 모임에서 그대의 사랑에 관하여 증언하였습니다그들이 하느님께 맞갖도록 그대의 도움을 받아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로이교인들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러한 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그렇게 하여 우리는 진리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112(111),1ㄴㄷ-2.3-4.5-6(◎ 1)

◎ 행복하여라주님을 경외하는 이!

○ 행복하여라주님을 경외하고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부귀영화 그의 집에 넘치고그의 의로움 길이 이어지리라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그 빛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

○ 잘되리라후하게 꾸어 주고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그는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리니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되리라

 

복음 환호송 (2테살 2,14 참조○ 하느님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부르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차지하자.

 

복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18,1-8)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2 “어떤 고을에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또 그 고을에는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마침내 속으로 말하였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제1독서 (3요한5~8)

 

'사랑하는 가이오스, 그대는 형제들을 위하여, 특히 낯선 이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든 다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5)

 

요한3서는 요한1서, 2서의 관심사였던 윤리적인 문제나 그리스도론적 오류를 다루지 않고, 공동체의 복잡한 권위 문제를 다룬다.

 

이 서간에는 세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가이오스는 이 편지의 수신자이고, 데메트리오스는 원로가 파견한 사절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며, 디오트레페스는 원로와 경쟁관계에 있는 지도자이다.

세 인물의 이름이 완벽한 그리스 로마식 이름인 것으로 보아 그들이 요한계 공동체에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 무리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로는 개인적으로 돈독한 친분(3요한14절)을 맺고 있는 가이오스에게 이 편지를 쓴다고 밝힌다.

가이오스가 공동체에서 어떤 직책을 맡은 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정의 가장인 것만은 확실하다.

 

저자는 그가 전에 여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따뜻하게 맞아 준 일을 떠올리기 때문이다(5절).

그래서 원로는 이번에도 가이오스에게 데메트리오스를 비롯하여 자신이 보낸 사절들을 환대해 줄 것을 요청한다(6절).

 

원로의 경쟁자 디오트레페스는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서, 원로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원로가 보낸 사람들을 배척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들을 받아들인 사람들까지도 공동체에서 추방하였다(9~10절).

원로는 가이오스에게 디오트레페스의 악행을 본받지 말고 선을 행하라고 권고한다.

 

5절에서 '형제들을 위하여, 특히 낯선 이들을 위하여'라는 표현에서 '형제들'에 해당하는 '아델푸스'(adelphus; brother)와 '낯선 이들'에 해당하는 '크레누스'(ksenus; strangers)는 동격으로 취급되어 새 성경에서 번역되었다.

그러나 '형제'는 낯선 이(나그네)를 포함하는 더 큰 범위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키고, '낯선 이'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른 교회를 방문하거나 여행을 하는 특정한 그룹(예를들면, 순회 선교사)를 가리킨다.

 

그리고 '성실히'에 해당하는 '피스톤'(piston; faithfully)은 '믿음', '신앙'이라는 뜻을 갖는 '피스티스'(pistis)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믿음직하게, '신실하게', '신앙적으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저자는 순회 선교자들인 낯선 이들을 대접하는 가이오스의 모습 속에서 건성이 아닌 그 자신의 신앙에 기초한 형제적 사랑의 행위즉 참다운 신실함을 보고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복음(루카18,1~8)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8)

 

여기서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는 말은 무슨 뜻인가?

여기서 '믿음'은 지속적으로 항구하게 하느님께 간구하는 실천적인 믿음을 말한다. 앞의 불의한 재판관 비유에 등장하는 과부에게서 나타났던 것처럼, 이러한 곤경에 처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간구하는 믿음을 말한다.

 

그리고 '찾아볼 수 있겠느냐'에 해당하는 '아라 휴레세이'(ara heuresei; will he find)에서, '아라'(ara)는 부정적 대답이 기대되는 추론적 질문을 의미하고, '휴레세이'(heuresei)의 원형 '휴리스코'(heurisko)의 본래 뜻은 '만나다', '마주치다', '우연히 발견하다'이다.

따라서 '아라 휴레세이'(ara heuresei)에는 세상에서 밤낮으로 부르짖는 믿음을 발견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뜻이 들어있다.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올 때에 사람들의 마음은 완고하고 사악해져서, 하느님께서 당신이 간택한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조차도 거부하며, 그들의 마음에 의로움보다는 악(惡)이 가득차서 간구조차 하지 않을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응답이 있을 때까지 하느님의 신실한 약속과 말씀을 의지하면서 믿음을 수호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루카 복음 17장에 나오는 노아와 롯의 시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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