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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이 주교와 사제에게 - 성삼위 하느님의 걸작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5 조회수1,353 추천수1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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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성삼위 하느님의 걸작


아들아, 중요한 점에 국한하긴 했지만, 내가 어떤 사제들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너에게 말한 바 있다. 이제, 은총의 표지에 민감하고 주의 깊은 사제가 되도록 내가 양성하기를 원하는 방법에 대해서 네게 알려 주겠다. 이는 물론 사제의 동의가 없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때때로, 사제는 이 조형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 것으로 넉넉하다. 이 활동은 사제를 공로와 덕행으로 풍요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성삼위 하느님의 걸작이 되게 하기도 한다!

그런 사제 안에서는 성부께서 즐거워하시고, 성령께서도 즐거워하시면서 사제의 입술을 쓰셔서 영혼들에게 빛을 퍼뜨리는 지혜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그의 예수님도 그를 흐뭇해 한다. 그에게 은총을 폭포처럼 쏟아 줌으로써 그와 만나는 모든 영혼들에게 이 은총이 스며들게 한다. 예수는 그를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이 되게 하여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기도의 힘과 고통의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게 한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의 모욕과 몰이해 속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


아들아, 내가 원하는 사제는 내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사제는 나를 향해 있으면서 그 자신을 나와 형제들에게 온전히 내어 놓아야 한다. 내가 아버지와 너희에게 나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의 모범을 따라서 사제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메마른 사막


아들아, 그런데 내 교회 사정은 얼마나 거꾸로 돌아가고 있느냐! 사람들은 기도를 하지 않는다. 한다고 해도 제대로 할 줄을 모르고, 기껏해야 물질적인 기도나 한다.

그런 이유로 이제는 성소는 없다. 사제가 아니라 사탄의 종이 되게 하려고 내가 성소를 일으킬 수는 없지 않겠느냐?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많은 사제들이 나를 섬기는 대신, 마귀의 종이 되고 말았다.


참된 사제는 상당한 시간을 기도에 바쳐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제가 바로 나의 힘으로 강하게 되는 것은 오직 기도와 고통 덕분인데, 오늘날 사람들은 끔찍이도 고통을 싫어한다.

내가 원하는 사제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이 아닌 사제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속적인 헛된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 나를 버리고 떠난 사제들에게 과연 믿음이 있었겠느냐? 또 남아있는 사제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큰 믿음을 가지고 있겠느냐?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원수'가 내 교회에 얼마나 끔찍한 황폐를, 얼마나 메마른 사막을 만들어 놓았는지!


내가 원하는 사제, 새로운 생명으로 정화될 내 교회의 사제는 그 자신 속에 사랑의 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지 않았느냐?(루가 13,49 참조 - 역주) 이 불이 화재를 일으킬 정도로 활활 타오른 것 외에 내가 무엇을 바라겠느냐? 그렇기는커녕, 일부 목자들과 많은 사제들의 마음은 교만으로 부풀어 있고, 그 때문에 이기심이 가득할 따름이다.

참된 사제는 목마른 사슴이 신선하고 맑은 물을 그리워 하듯이 밤이나 낮이나 나를 그리워 한다(시편 42,2 참조 - 역주).


너는 이 세대의 허다한 사제들이 나를 찾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아들아, 그들은 자동차를 가지고 싶어하고, 결혼을 꿈꾸고, 공연장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좋아한다. 술집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영화라면 부도덕한 것까지 다 좋아하고,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하느님보다도 온갖 부질없는 것과 편리한 것들에 대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을 만유 위에 모시지 않는다! 아무것이나 하느님 위에 올려 놓는 것이다!


용기가 없는 이들


그러면 주교들은 어떠하겠느냐? 그들 가운데는 자고 있는 이들이 있다. 설사 (실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도끼에 손을 댈 용기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수단이나 새로운 길을 찾는다. 하지만 새로운 길이란 것은 없다. 내가 알려 준 구속의 결실들 외에 다른 수단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주교들은 신중이라는 이름으로 신중치 못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번번이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영혼들과 교회에 매우 큰 손실을 입히는 것이다. 교회를 맡아 관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건마는!

신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잠을 자고 있다. 단지 두려움 때문에 사랑과 관심이 없으면서도 있는 척 가장할 때가 많고, 아버지다운 신실함이 없으면서도 그런 아버지인 척 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또한, 타산적으로 행동하는 주교들도 있다. 그러나 사랑은 계산을 모르고, 높은 차원의 가르침을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하고, 모든 것을 이기며, 쓸데없는 일에 골몰하지 않는다. 사랑은 삼킬 듯이 타오르는 불이요, 꺼지지 않는 불이다.

그들은 성바오로가 사랑에 대해서 쓴 글(1고린 13장 참조 - 역주)을 잘 읽어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 사도가 가르친 길과 정반대이거나 거의 반대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해야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사제들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하며 고통을 받아라!

(1975년 11월 28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또 하나의 길


아들아, 나는 많은 사제들이 잘못된 사제 생활관(生活觀)에 빠져 있기 때문에 누누이 그들의 회개를 촉구해 왔다. 그런데 모든 회개의 원칙은 겸손에 있다. 교만은 영혼과 하느님 사이에 솟아 있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다. 자기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하느님께 도달할 정도로 높이 올라갈 수 있다. 많은 사제들이 교만 때문에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서 지옥에 떨어질 숱한 희생자들이 난다. 어떤 사람들의 의견은 이 단언과 일치하지 않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여기에 있다. 너희가 들은 바로는 구원에 이르는 필수적인 길은 무죄와 회개라는 두 길이다.
그러나 나는 또 하나의 길이 더 있다고 말하겠다. 이는 처음의 두 길보다 더 가깝지만 그만큼 안전한 길이니, 바로 '사랑'의 길이다.

무죄의 길에는 아기 천사 같은 이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죄를 짓기 전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한 어린이들이다.
이 어린이들과 함께 다른 영혼들도 있는데, 이들은 내 은총의 자극에 항구함과 아낌없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화답함으로써, 도무지 악에 물들지 않도록 지켜지고 보호되어, 흰 눈처럼 티없고 찬란한 광채를 지니고 지상 여정을 끝낸 사람들로서, 낙원에서는 천상 합창단을 이루어, 거룩하고 거룩하신 하느님을 찬양한다.

그 다음에는 정도는 다르지만 불행히도 죄의 혹독하고 쓰라린 체험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회개의 길이 있다 :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죄를 지은 이들은 아주 많지만, 그들 모두가 회개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를 너희는 모르고 이해할 수도 없다. 홀로 하느님 만이 인간 마음의 깊이를 모를 심연을 샅샅이 볼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인간도,설사 가장 심하게 길 잃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전적으로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항상 선과 악이 있는데 사람에 따라 그 비율이 다를 뿐이다. 하느님인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충분한 은총을 선물로 준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든지 그 은총을 받아들여 선용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제는 사제로서의 소명을 배반하지 않는 한 이를 모를 수 없는 다른 이유들이 있다. 사제는 나의 공동 구속자가 아니냐? 사제 생활의 이 중요한 면을 모를 수 있느냐? 영혼들을 위해서 내가 받은 그 무한한 고통을 잊어버린 것이냐? 십자가에 달린 나를 이제는 바라볼 줄도 모르게 되었다는 말이냐? 십자가의 길로 나를 따르지 않으면, 곧 내적이고 외적인 회개의 길로 나를 따르지 않으면, 사제로서의 영적 풍요함은 모조리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는 것을 대체 모를 수 있느냐 말이다?
너무도 많은 사제들이 기회를 놓쳐서 행하지 못했던 선을, 다시 말해서 멸망한 영혼들의 수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사제들에게는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거룩하게 일하는 것이 정의와 사랑의 의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내 앞에 꿇어앉아 진지하게 양심 성찰을 하면서 내 음성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그렇게 한다면 영혼 속에 흘러넘치는 빛을 받으련마는!

사랑의 길

이제, 가장 가까운 또 하나의 길에 대해 할 말이 남아 있다. 이는 천국에 이르는 지름길이고 특은을 받은 영혼들이 택하는 길이니, 다름아닌 '사랑'의 길이다.
이 길은 이 마지막 시대에만 영혼들에게 열린 길이 아니고, 앞에서 본 두 길과 같이 항상 있었던 길이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이 길을 택했고, 이어서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이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는 마지막 시대에 재발견된 길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택하여 걸어갔는데, 아기 예수의 작은 데레사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아들아, 내가 희생 제물이 된 것은, 내가 아버지와 성령과 하나인 것처럼 너희도 서로 하나가 되고 나와도 하나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사랑에는 두 개의 차원이 있으니, 하느님께로 향하는 수직적 차원과 이웃에게로 향하는 수평적 차원이다. 이와 같이 내가 사랑해 온 것처럼 너희도 사랑해야 한다.
이 사랑이 너희 삶의 모든 활동의 절정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른 길을 벗어나게 된다.
사랑은 일치를 이루게 한다. 사랑은 굳게 결합시킨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일체로 결합된 삼위이시다. 그러므로 사랑은 일치와 결합과 동등한 것이다.

영혼을 하느님과 일치시키고 형제들과 하나 되게 하는 사랑은 나약한 인성의 불순물을 정화시키며 태우는 불이다. 나의 영은 사랑의 영이어서 (영혼들을) 뜨겁게 하고 밝혀 주고 생기있게 한다. 그리하여 영혼들 위에 드리워지는 인간적 나약의 그늘을 흩어 버린다.
그러나 사랑은 또한 시멘트와 섞인 쇳덩어리와 같은 힘이요 능력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물질의 성질이 융합되어 다만 하나의 견고한 덩어리로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부스러뜨리고자 하는 자들이 아무리 용써보아도 헛일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한데 섞이면 영혼들을 하느님께 결합시키고 영혼들끼리도 서로 결합시켜서 오직 한 덩어리가 되게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실팍한 덩어리여서 악의 세력이 아무리 기를 써도 부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들아, 내 신비체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겠는지를 마음 속에 그려보도록 하여라. 내 신비체는 모든 지체들이 머리와 결합하고 서로 뭉쳐서 강력한 한 덩어리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 지상이나 지옥의 어떤 힘도 이를 뒤흔들 수가 없을 것이다.
장차 정화를 치르고 새로 태어날 교회는 아무도 부술 수 없고 흠집조차 낼 수 없는, 화강암처럼 단단한 '몸'이 될 것이다.....

이기심 따위는 억제해야 한다

힘주어 말하거니와 도끼에 손을 댈 필요가 있다.
여러 지역 교회들이 이 시대의 표징을 슬기롭게 해독(解讀)하고자 한다면, 사랑의 두 차원에 의거하여 모든 것을 다시 살펴보고 재조직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은 이기심, 야심, 시샘, 질투 따위는 억제해야 할 때이다. 너희를 에워싸고 있는 구름 밖으로 나와서 옷의 먼지를 털어야 할 때이고, 마르크스적이건 자본주의적이건 물질주의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야 할 때이다. 둘 다 유독하고 몹시 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에 중독된 다수의 사제들은 반성하고 회개해야 할 때이다. 멸망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하느님께 도달함으로써 창조와 구속의 목적을 성취하는 길, 또 내 사제들 및 봉헌자들 전체가 소명의 목적을 성취하는 길도 (이렇듯) 세 가지가 있고, 이 모두가 가치있고 훌륭한 길이다. 왜냐하면, 약간의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어느 길이나 항상 사랑이라는 본질 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들아, 이를 내 모든 사제들에게 알려라. 지체할 때가 아니다. 착한 사제들에게는 가장 미지근하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자기를 봉헌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이들은 내 것이 아니라 사탄의 것인 세상의 간계와 유혹 속에서, 또 양심의 가책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무딘 양심이라 하더라도, 지고 싶지 않은 짐에 억눌릴 때면 고개를 들고 일어나기 마련이다.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10월 5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가공할 책임


나는 영혼들이 계속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허락할 수가 없다. 수많은 영혼들에게 나의 무한한 고통이 쓸데없는 것이 되고 내 피와 죽음마저 쓸데없는 것이 되고 있을 때에, 이를 수동적으로 잠자코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살인자이고 도둑인 사탄이 내가 영원으로부터 사랑하는 영혼들을 멸망시키려고, 고의로 일하는 자들의 자발적인 연합과 협력을 업고 불의를 저질러 대고 있으니, 내 무한한 자비는 이 불의에 맞서서 정의의 때를 부르고 있다.


아들아, 내게 자기를 봉헌자들이 지옥의 세력과 공모하여 영혼들을 멸망시키고 학살하고 찢어발기는 일에 가공할 책임을 지고 있음을 네게 보여 준다면, 너는 한 순간도 더 살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누구든지 이 점을 알기 바란다. 즉, 내 교회에 이렇듯 윤리적이고 영적인 악이 계속되기 때문에, 내 어머니의 간청과 자진해서 제물이 된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효력이 큰 것이건, 정화의 때를 늦추지는 못하리라는 점이다.


영혼 구원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일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하느님께서는 너희로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참을성은 너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지만, 죄로 말미암아 밤이나 낮이나 영혼들을 대량 학살되는 것을 더 이상은 참고 볼 수가 없다.


아들아, 그러잖아도 이해가 더딘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은 시간과 정력의 낭비일 뿐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대체 언제가 되어야 깨달을 수 있겠으냐?

여기서 내가 지적하는 사람들은 나를 멀리하는 이들이 아니라, 스스로 내 신자라고들 하면서도 대체로 하느님과 영혼 (사정)을 맨 끝 자리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은 육신의 변덕스러운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날마다 희생을 바치건만, 하느님과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 자들이다. 자신의 육신을 우상으로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아라......

그러나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내 파수꾼들이, 곧 내게 봉헌한 사람들이 엄청 많이 '원수'에게로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너희에게 다시 말하지만, 내가 보는 것을 너희는 보지 못하니 만분 다행이다! 나는 모든 것을, 더없이 은밀한 생각까지도 다 보고 있다.

그러니 너희는 내 자비로운 마음의 한없는 비통과 내 어머니의 티없으신 마음의 비통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위선의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계속 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십자가와 기도의 한길로 접어들려고 하지 않는다.

네게 강복한다. 너의 고통을 내게 바쳐 다오. 지금 네 고통은 크다. 하지만 네가 오직 사랑으로 그것을 봉헌할 때만 내 마음에 기쁨을 안겨줄 수 있다.

(1975년 12월 3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그들은 용기가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아들아, 나 예수가 네게 말하고 있다. 나의 "펜"이 되라고 너를 택한 것도 나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가 어떤 판단을 받게 될 것인지를 벌써 분명히 알려 주지 않았느냐?

아들아, 이 말이 네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도 위안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너를 비판하는 자들에게도 반성의 동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하느님의 시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는 것이 없다.


보아라,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힌 사람이다. 그들은 침묵을 지킨다. 마르크스주의자요 이단자인 사제들이 꽤 많은데도 그들에게 말할 엄두를 못 내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면서, 아첨에 가까운 미소나 지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씨앗들 속에 가라지 씨앗도 섞어 뿌리는 것은 엄청난 악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 가라지 씨앗을 뿌리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도 부지런히 경작하여 곡식을 영글게 하고 수확해야 할 사람들 가운데 그런 자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은 베드로좌의 지침과 정면으로 대립하고, 끊임없이 가라지를, 곧 영혼들 속에 무질서와 혼란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포도밭을 맡기신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겠느냐? 그들은 아무 일도 없기나 한 것처럼 도무지, 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이단자들을 나무랄 용기도 없고, 이단의 산물인 잡지나 신문이나 책 등을 몰아낼 용기도 없다.

베드로좌의 지침에 어긋나는 오류들을 퍼뜨리는 거짓 가톨릭 잡지나 신문에 대해서 드러나게 단죄 처분을 내릴 용기가 있었던 주교가 몇 명이나 되었겠느냐? 불행히도 몇 명 되지 않았다, 아들아.


거짓 신중


그러나 그들은 한 가련한 사제를 외딴 산골 본당으로 추방할 용기는 있었다. 이 사제가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의 근원인 마귀의 존재를 믿고, 마귀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을 축복하면, 고통을 덜어 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너희 시대의 교회에는 이런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 말이다!

아들아, 이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그들은 신중이라는 이유를 끌어대면서 오류의 확산에 대해서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는다. 신중이라는 큰 덕행이 매우 중대한 죄로 변질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목자들은 가라지 씨를 뿌리는 이단자들의 정체를 폭로해야 한다. 그런 자들의 가르침이란 것이 영혼에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신자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중이라는 거짓 핑계를 둘러대면서 그렇게 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신중이 아니라 잡음 없이 조용하게 지내고 싶은 것이 진짜 이유임을 목자들 자신이 잘 알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토록 자주 핑계로 삼는 신중이 반대로 열성으로 둔갑할 때가 있으니, 위험이 조금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진리를 천명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나 말을 그들이 공격할 때이다. 이에 대해서는 너도 장차 알게 될 것이다.

번번이 진리가 불살라진다. 그리하여 아픈 화상을 낸다. 그렇다, 아들아. 그들은 침묵을 지키는 것이 더 나은 곳에서는 목소리를 높이고,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더 나은 곳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충실한 착함


그러나 상당수의 주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들의 사목이 언제나 복음적인 사목이 아니라는 것을!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기도하게 해야 한다. 포도밭 내부에 "사람의 원수"(l' inimicus hominis)가 들어와 있는데다, 방해를 받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모모한 자들의 원조를 받으면서 해롭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안락을 위해서 덕행들을 오용(誤用)하는 짓은 집어치워야 한다! 지금은 성찰할 때이고, 묵상에 잠겨야 할 때이다! 지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원천에 이르러야 할 때이고, 거기에서 진실하고 숨김없고 성실한 나의 말을, 충실한 착함과 일치하는 이 유일한 말을 (스스로의 말과) 대조해야 할 때이다. 모호한 태도를 버려야 할 때이다. 정치적인 교활은 비둘기의 단순함과 뱀의 슬기(마태 10,16 참조 - 역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슬기는 위선이나 거짓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누누이 나의 길은 세상의 길과 다르다고 말했던 것이다.

영혼의 목자인 내 사제들은 마땅히 내 길을 알아야 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한다. 세상의 길을 걸어서는 안된다.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기도하고 보속하여라! 이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다.

네게 강복한다.

(1976년 6월 4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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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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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미사신청 : 11월 1일~3일, 11월 7일, 11월 9일, 11월 30일 

11.14 : 내장산국립공원내 백양사->호수생태공원->무등산->펭귄마을->양동시장->서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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