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께서는 실패와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투자하시기를 바라신다.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5 조회수1,310 추천수0 반대(0) 신고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5,14-30(또는 25,14-15,19-21)

짧은 독서를 할때는 ( ) 부분을 생략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맏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심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시시오, 두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6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마태오는 종들에게 맡겨진 돈의 단위를 탈렌트로, 루카는 미나로 소개한다. 루카가 미나의 비유에서 논리적인 모순을 감수하면서까지 작은 화폐 단위 미나를 고집한 것으로 보아, 미나가 원천적인 비유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마태 25,21.23에서 주인은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더 번 종들에게 모두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였다.“고 칭찬하는데, 다섯 또는 두 탈렌트의 이익을 남기는 일은 결코 작은 사업이 될 수 없다.

 

다섯 탈렌트는 3만 데나리온인데 현재의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노동자의 좋은 하루 품삵(1데나리온)10만원으로 잡는다 해도 30억 원이나 되고 두 탈렌트는 거의 12억원에 이르는 큰 액수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원초적 비유에는 마태오가 소개한 대로, 열명이 아니라 세 명의 종이 등장한다.

루카의 비유에서는 미나가 열 명의 종 모두에게 각각 하나씩만 맡겨졌는데, 마태오의 비유에서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마태 25,15)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가 주어졌다. 하나가 원촉적 비유에 속하는가 아니면 숫자 셋(다섯, , 하나)이 그러한가? 루카는 열이라는숫자를 유지하기 위하여 단지 세 단계로 감소되는 네 개의 숫자를 포기하고 열 명 모두에게 각각 한 개씩의 미나가 주어졌다고 서술했을 것이다.

 

더구나 주인님, 그 사람은 미나를 열 개나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루카 19,25)라는 질문에서 우리는 다섯 탈렌트 이익을 더 남겨 열 개를 보유하게 된 마태 25,20의 첫 번째 종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루카의 비유에는 없고 마태오의 비유에만 있는,“, 와서 내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25,21.23)는 본 이야기의 줄거리를 방해한다. 이는 주인의 추가 보상으로서 종말론적 성격을 띤다. 나아가 이 부분은 역시 이차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마태 25,30의 종말론적징벌. “이 쓸모없는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쫓아라. 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와 대칭을 이룬다.

 

위에 인용한 마태 25,30은 마태오가 즐겨 이용하는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다. ‘바깥 어두운 곳은 마태 8,12(루카13,28참조)22,13에도 나오고,“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본디는 거기에서 울고 이를 갈게 될 것이다.”는 예수어록에 나오는 표현(마태24,45;루카12,42)으로서 마태오가 즐겨 사용한다.(마태13,42.50;22,13;24.51). 마태오의 비유에만 나오는 이 추가 징벌은 내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주인의 추가 보상)처럼 이야기의 줄거리를 방해한다. 따라서 이 둘은 원래의 비유에 속할 수 없다.

 

이 다섯 가지말고도 탈렌트의 비유미나의 비유사이에 수많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본문의 비유는 29절을 제외하고 모두 예수에게까지 소급된다. 우선 이 비유의 시제가 과거이고, 팔레스티나에 살던 사람들의 관습과 실제 삶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청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엉뚱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주인과 세 번째 종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 이 비유의 결론에 해당하는 29절은 마르 4,25에도 나오는 떠돌이 토박말씀으로서 초대 그리스도교 전승에서 나온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예수의 비유를 마감하거나 그 내용을 적용시키기 위해 덧붙인 이같은 떠돌이말은 마태 20,16;22,14;루카 14,11에도 나온다.

 

 

은의 무게가 무려 25 키로그램이나 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화폐 단위, 탈렌트는 현대에 와서 재능, 인재, 예능인‘(: 티브이 탈렌트)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되었다. 이 탈렌트와 얽힌 비유가 마태오복음과 루카복음 안에 다같이 등장한다. 두 복음 저자는 이 비유에 각각 종말론적인 요소와 그리스도론적 요소를 부여하면서, 마지막 결산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자신에게 맡겨진 봉사의 의무에 충실할 것을 권고한다.

마태오와 루카의 두 복음 저자가 이 비유에 부여한 하느님께서 판단하시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그분에게서 귀중한 선물을 받는다. 이 선물은 그분에게 속한 재산으로서 언젠가는 그분께 되돌려 드려야 한다.

 

그것은 예수 당대의 유다인들이 그토록 자랑 삼았던 율법일 수도 있고,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 시간이나 좋은 환경, 부와 명예, 지위와 권력, 자녀와 배우자, 학식과 지혜,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밝은 성격, 미모와 건강 등일 수도 있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다양한 선물을 각 사람에게 주며 바라시는 바는, 그 선물을 손상되지 않도록 보관만 하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낡은 인습과 굳어진 제도에서 벗어나서 그분의 선물을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인간의 생명과 온누리를 보다 밝고 아름답게 만들기를 원하신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때로는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능력에 알맞게 주어진 선물일진데 우리가 그 선물을 가꾸는 데 최선을 다한다면, 그분께서는 우리가 내놓는 결과의 양이나 질에 상관없이 우리의 노력을 귀한 값으로 거두어주실 것이다.

 

때로는 그분을 실패나 실수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시는 무서운 분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선물을 활용하는 데에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투자하기를 바라신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자유와 창의성을 주셨다.

 

이런 속성들의 근원은 하느님 자신이다. ”우리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1,26) 우리 모두가 자신과 이웃 앞에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각자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탈렌트를 발견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다면, 우리 가정과 직장, 우리 교구와 수도 공동체, 우리 사회와 국가 안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느님 나라의 충만한 도래가 이루어질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