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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예리코 소경 치유 (루카18,35-4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6 조회수1,34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1월 16일 월요일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예리코 소경 치유 (루카18,35-43)

   2019년 11월 18일 (녹)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1독서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묵시 1,1-4.5; 2,1-5)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하느님께서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당신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리스도께 알리셨고그리스도께서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 종 요한에게 알려 주신 계시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2,1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노고와 인내를 알고또 네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너는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냈다.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화답송 시편 1,1-2.3.4와 6(◎ 묵시 2,7ㄴ 참조)

◎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리라.

○ 행복하여라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제때에 열매 맺고잎이 아니 시들어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

○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의인의 길은 주님이 아시고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복음 환호송 (요한 8,12) ○ 주님이 말씀하신다나는 세상의 빛이다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복음 <주님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루카18,35-43)

35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의 일이다어떤 눈먼 이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36 군중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37 사람들이 그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하고 알려 주자,

38 그가 예수님다윗의 자손이시여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39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0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오라고 분부하셨다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41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그가 주님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42 예수님께서 그에게 다시 보아라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43 그가 즉시 다시 보게 되었다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군중도 모두 그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다.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제1독서 (묵시록1,1-4.5ㄴ;2,1-5ㄱ)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글을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도 오실 분과 그분의 어좌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4-5)

 

요한은 4절과 5절 상반절에서 '삼위일체적인 특징'을 지닌 인사말을 바오로가 사용한 전형적인 서간 인사말(로마1,7; 1코린1,3; 2코린1,2; 갈라1,3; 에페1,2)과 함께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그는 성부 하느님을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도 오실 분'으로 언급한다.

 

이렇게 묘사된 성부 하느님에 대한 칭호는 탈출기 3장 14절, "나는 있는 나다." 에 대한 일종의 해석이다.

후기 유대교의 해석이나 유대 출신 철학자 Philo(필로)의 해석에 의하면, '신적 영원성'이나

'그리스 철학 양식에 있어서의 영원한 존재' 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난다.

 

여기서 영원한 존재인 하느님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과거, 현재, 미래의 존재로서 투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앞으로도 오실 분'으로 번역된 '호 에르코메노스'(ho erchomenos)는 '오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에르코마이'(erchomai)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문자적으로는 '장차 오실 분' 이라는 미래적 개념이 아니라 '오시고 계시는 분'또는 '오시는 분'으로 번역된다.

 

그렇다면, 요한은 여기서 하느님의 미래적 측면을 현재 진행적 의미로 변형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단순한 미래적 실존' 아닌, '구원과 심판을 위해 이 세상에 도래하시는 것으로서의 하느님의 미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즉 하느님은 미래 뿐만 아니라 현재 속에 역동적으로 침투하고 계시는 미래의 힘이심을 나타낸다.

 

'그분의 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에게서'

 

삼위일체적인 특징을 지닌 인사말은 성부 하느님께 대한 묘사에 이어서, 여기서는 성령 하느님께 대한 묘사로 이어진다.

여기서 언급된 '일곱 영'으로 번역된 '톤 헵타 프뉴마톤'(ton hepta pneumaton ; the seven spirits)는 즈카리야서 4장 1-14절에 근거한 성령에 대한 상징적 묘사이다.

 

요한은 즈카리야서 4장 2절의, '온통 금으로 된 등잔대가 보입니다. 등잔대 머리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그 그릇에는 등잔이 일곱 개 있습니다. 그 머리에 등잔 부리(관)가 일곱 개 있는 것입니다." 라는 문구로부터 일곱 영에 대한 상징을 끌어왔다.

 일곱 영이 '하느님 어좌 앞에'(에노피온 투 트로누 아우투; enopion tu thronu autu; before his throne)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그가 하느님(성부)과 동등하다는 점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그 다음 5절의 '또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언급이 나온다.

 

"에페소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가 이렇게 말한다.'"  (2,1)

 

묵시록 2장과 3장에서는 묵시록의 형식적인 수신자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각각 보내는 칭찬과 책망의 메시지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세말이 오기까지, 이 지상의 교회들이 나타낼 여러 유형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일곱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을 통해, 지상 교회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교회상과 더불어 피해야 할 잘못된 교회상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2장과 3잘에 나오는 각 교회에 대한 메시지는 모든 세대의 교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로서의 역할을 한다.

 

본절 이하 7절은 일곱 교회를 향한 첫번째 메시지로서, 에페소 교회에 보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요한이 기록한 것이다.

에페소는 B.C. 133년이래 로마의 행정 구역으로 편입된 자유 도시로서, 소아시아의 수도이며 상업과 교통의 요지였다.

 

이곳은 에게해로 유입되는 카이스터 강 입구에 위치한 고지대의 도시로서, 고대 7대 유물에 속하는 웅장한 건물이 두 개나 존재한다.

하나는 대극장이고, 다른 하나는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특히 웅장한 아르테미스 신전은 당시 에페소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극에 달해 있었는지

그 자체로 웅변한다(사도19,24-41).

또한 이 도시에는 황제숭배도 행해졌는데, 이 지역에 건축된 신전들은 한결같이 Claudius 나 Hadrian, 그리고 Severus에 바쳐진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우상숭배와 황제숭배가 난무한 곳에 복음이 들어간 것은, 사도행전 18장 18절-19장 20절을 감안할 때, 바오로의 제3차 선교여행 덕분이었다.

바오로는 약 3년 동안 눈물로 에페소 교회를 개척했다.

 

또한 죽음을 목전에 둔 노 사도의 말년 저술에 나오는대로,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에페소 교회는 디모테오에게 맡겨졌다(1티모1,3).

 그러나 이곳은 파트모스 섬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로 요한이 파트모스 섬에서 유배 생활 뒤 여생을 마친 곳이기도 하다. 이처럼 에페소는 요한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지닌 도시이다.

 

'오른 손에 일곱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씀인데, 예수 그리스도와 묵시록 2장 1절- 3장 22절에 언급된 일곱 교회가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쥐고'(붙잡고)로 번역된 '크라톤'(kraton)은 본래 '지지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크라테오'(krateo)의 현재 분사형으로, 묵시록 1장 16절에 언급된 '쥐고 계셨으며' (에콘;echon)가 전달하는 뉘앙스와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어조를 나타낸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속적인 통치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또한 '거니는'으로 번역된 '페리파톤'(peripaton)의 현재 분사형으로서, 교회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하여 계속하여 간섭하시며정확하고 면밀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오른손'으로 번역된 '덱시아 케이리'(dexia cheiri)는 구약에서 대표적으로 탈출기 15장 6절의 "주님, 권능으로 영광을 드러내신 당신의 오른손이, 주님, 당신의 오른손이 원수를 짓부수셨습니다" 에서 등장하며, 시편 17장 7절 "당신 자애의 기적을 베푸소서. 당신 오른쪽으로 피신하는 이들을  적에게서 구해 주시는 분이시여!라는 문구와 시편 21장 9절의 "당신 손이 원수들을 모두 찾아내시리이다. 당신 오른손이 적들을 찾아내시리이다" 라는 문구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용례에서 드러나듯이, 오른손은 단순히 왼손의 짝을 의미하지 않는다.

히브리인들의 사유 구조 속에서 오른손은 상징적으로 권능과 능력을 의미한다(시편20,7; 44,4).

 

그런데, 그 능력과 권능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일곱 별'(아스테라스 헵타; asteras hepta)이다. 묵시록 1장 20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라고 설명하신다.

여기서 언급된 '일곱 교회의 천사들' '교회의 지배적인 정신(영)을 의인화' 한 것이며 실상 '교회 자체의 상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교회의 천사' 실제로 '~교회' 자체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일곱 황금 등잔대'

 

여기서 '등잔대'(촛대)로 번역된 '뤼크니아'(lychnia)는 '빛나다'라는 의미의 동사 '뤼케'(lyke)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촛대', '등경', '등잔대' 등으로 번역된다.

이 등잔대는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제작토록 한, 성소의 순금 등잔대에서 비롯된 상징이다(탈출25,31-40 ; 37,17-24 ; 민수8,4).

 

이것이 순금으로 제작된 것은 금이 지닌 속성즉 귀하고 아름답고 빛나고 불변하는 속성과 관련된 것 같다. 

'일곱 황급 등잔대'는 묵시록 1장 20절에 언급된 대로, 명백히 '일곱 교회'를 상징하며, 암흑 세상에 빛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의 사명과 잘 결부된다(묵시2,5).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  (5)

 

여기서 '처음에 지녔던 사랑'으로 번역된 '아가펜 수 텐 프로텐'(agapen su ten proten ; your first love)은 문자적으로는 '너의 그 첫 사랑' 으로 번역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에페소 교회가 보이고 있는 '지금의 행위'와 교회가 세워질 당시의 '처음 행위' 사이의 간격을 첨예하게 대조한다.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 그들은 '자발적으로 하느님께 가까이 가려는 마음,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 항상 신선하고 새롭고 반짝이는 열성,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기쁨, 열정의 분출'을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이단들과의 오랜 투쟁으로 인해, 그 모든 열정이 소모되었던 것이다.

 

오랜 내부의 문제, 곧 이단들과의 투쟁이라는 문제를 마무리하는 동안, 신학적으로는 정확하고 엄격하며, 윤리적으로는 도덕적이며 준엄하기 그지없는 특성을 확립했을 지라도, 사랑이라는 추진력에 의해 살기를 멈추어버린 교회였다.

따라서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믿음이나 신학적인 정통 교리가 아니고, '처음에 지녔던 사랑' 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오늘 제1독서에 안 나오는 구절을 더 첨부했는데,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여기서 '치워 버리겠다'로 번역된 '키네소'(kineso; will remove)는 본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의미라기보다 '제거해 버리다' ,'밀어 버리다' 라는 뜻을 지닌 동사 '키네오'(kineo)의 미래형이다.

에페소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처방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그 교회(등잔대: 촛대)를 역사에서 아예 지워버리시겠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로서 그 교회를 제거해 버리시는 권한을 발휘할 수 있으니, 교회의 본질인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이다.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18,35-43)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41ㄴ)

 

마르코 복음의 병행 구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바르티매오는 겉옷조차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로 갔다(마르10,50).

즉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외침에 응답해 주시자 너무도 기뻐한 나머지, 밤에는 이불이 되고 낮에는 거지 행세를 할 수 있는 유니폼이며 생계 수단인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로 달려 갔던 것이다.

 

그렇게 달려 온 바르티매오에게 예수님께서는 소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물으신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자기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인식하고 있는지 알고 싶으셨다.

이에 대하 바르티매오는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태20,33; 마르10,51)라고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소원을 구체적으로 고백했다.


희랍어에서 '보다'는 뜻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동사가 '블레포'(blepo)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접두사 '아나'(ana)가 붙은 '아나폴레포'(anablepo)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바르티매오가 보기를 간절히 원했다(I want to see)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데, 여기서의 용례는 단순히 '보다'는 뜻보다는 '다시 보다'(see again)는 을 지닌다(사도9,12.17; 22,13).

이것으로 보아 그는 전에는 소경이 아니었지만 소경이 되었고, 따라서 눈을 뜨고자 하는 욕구가 다른 사람보다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원문에는 '해 주십시오'에 해당하는 동사 '텔로'(thelo; want, desire)가 생략되어 있는데, 이 '텔로'(thelo) 접속사 '히나'(hina)앞에 있어야 완전한 문장이 된다.

그러나 소경이 이렇게 '텔로'(thelo)를 생략하고 짧게 말한 것은,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 너무나 급했고 절박했기 때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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