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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6 조회수2,939 추천수10 반대(0)
'In Time(2011년 작)'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시간이 힘이고, 시간이 돈이 되는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많은 시간을 가진 사람은 시간으로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시간을 얻기 위해서 일해야 하고, 시간이 다하면 죽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나누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착한 사마리아사람과 같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치와 향락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선과 허영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과 같습니다. 코로나19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예전과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은 뉴 노멀(New Normal)'이라고 부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손 씻기, 재택근무, 비대면 회의가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도, 사회도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친교와 나눔의 신앙에서 영성과 침묵의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대면의 사회에서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도움의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였습니다. 시간은 3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있습니다. 하루 24시간, 1주일은 168시간, 1달은 720시간, 1년은 8,760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은 숫자에 불과합니다. 우주의 역사, 지구의 역사, 생명의 역사는 이 숫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의미의 시간입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내일 보자고 하면 하루살이는 이해 못합니다. 하루살이는 내일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개구리가 메뚜기에게 내년에 보자고 하면 메뚜기는 이해 못합니다. 내년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가치의 시간입니다. 인생은 풀잎 끝에 맺혀있는 이슬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천년도 주님 앞에는 지나간 어제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있어라.’라고 하시는 것은 물리적인 시간, 의미의 시간을 넘어서 우리가 가치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치의 시간을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넘어 부활의 영광에로 나가는 시간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살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은 것이다.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물리적인 시간을 넘어 의미와 가치의 시간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방법을 찾았다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런 과정을 회개라고 말합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마음으로 오신다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온 의미를 모르고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께서 문 앞에 계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살아있다고 하지만 의미와 가치의 시간에서는 죽어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캐오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자캐오는 회개하였고, 새로운 시간을 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자캐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내 것이라는 패러다임을 하느님의 것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그럴 때 부유한 것보다 가난한 것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건강한 것 보다 아픈 것도 은총으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중심에 하느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고 믿는다면 우리를 가로막는 많은 벽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외롭지만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지구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하느님 나라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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