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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캐오의 집에 묵으시다. ...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7 조회수1,876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예리코 들어가시어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2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세관장이고 또 부자였다.

3 그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 애썼지만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4 그래서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5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그에게 이르셨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제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6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 7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하고 투덜거렸다.

8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0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19,1-10은 루카에만 있는 특수사료. 특수사료의 순서를 살펴보면 바리사이와 세관원 예화(18,9-14)바로 다음에 자캐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루카가 채집한 특수사료가 구전이었든 문헌이었든간에 자캐오 이야기는 저 예화에 나오는 세관원의 회개
(18.13)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루카는 자태오의 이야기를 채록하는 기회에 8,10절을 가필했을 가능성이 크다.

 

예리코에는 유다 지방과 요르단 강 건너 베레아 지방간의 교역을 감시하는 세관이 있었다. 자캐오는 그 세관의 세관장. 당시 관세는 지방세로서 갈릴레아에서는 그 지방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가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관리를 두어 직접 징수하지 않고 세관별로 임차료만 받고 일정한 기간 동안 관세 징수권을 민간인에게 빌려 주었다. 임차대 계약에 따라 실제로 관세를 징수하는 민간인이 곧 세관원이다. 세관원은 흔히 이방인들과 접촉할 뿐 아니라 터무니없이 관세를 많이 매겨 부당하게 치부했기 때문에 직책상으로 죄인 취급을 받았다. 유다교를 올바로 믿으려면 세관원직을 떠나야만 했다.

 

8절을 루카의 가필로 보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다. 1. 루카는 회개와 자선을 남달리 강조하는데, 8절의 자캐오는 회개를 결단하여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기로 작심한다.

2.  7절과 9절을 직결시키는 것이 순리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파격적 처신에 대해 투덜거리자(7) 예수님이 답하시는데(9), 같은 사례가 마르 2,17-17에 있다. 3. 8절엔 루카가 애용하는 낱말과 문체가 첩첩이 있다. “일어서서”(스타테미스); 신약성서 가운데 오직 루카 18,11.40: 19.8: 사도 2.14:5.20;11.13;17.22;25.27.21에만 나온다.

 

향하여 말하다는 루카의 전형적인 문체로서 일일이 다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다. “소유”(휘파르콘타): 네 복음서에 열한 번 나오는데, 마태 19.21;24.27;25.14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루카에만 나온다. 8.3;11.21;12.15.33.44;14.33;16.1;19.8(사도4.8참조

등처먹다신약성서를 통틀어 루카 3.14;19.8에만 나온다. 원래 7절과 9절이 직결되었다고 볼 때 9ㄱ은 본디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였겠다

오늘 이 집5절에서 따온 말이다. 루카는 예수께서 공적으로 활약하는 동안 구원을 이룩하셨다고 보았기 때문에 구원의 현재성을 강조하곤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곱사등이 부인을 고쳐주신 때도 이 부인은 아브라함의 딸인데”(13.16)하셨다.

 

예리코 시민들이 예수님의 처신을 비난하자(7) 예수님은 자캐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니만큼 구원의 혜택을 받아 마땅하다고 답변하셨다(9). 이는 충분한 답변이다. 그런데 또 다른 답변이 10절에 있는데 이는 전승자가 첨가했거나 루카가 가필했다는 인상을 풍긴다. 예수께서 비판을 받을실 때 이중 또는 삼중으로 답변하신 것처럼 말하는 사례가 더러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두 가지 또는 세가지 답변 가운데 한 가지만 예수님의 참 답변이고 나머지는 전승자 또는 복음작가의 가필이다. 그리고 10절은 그 내용이 마르 2,17(=루카5,32). 루카 15장과 매우 비슷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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