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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미나의 비유 (루카19,11ㄴ-2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8 조회수2,26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1월 18일 수요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미나의 비유 (루카19,11-28)

  2020년 11월 18일 (녹)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1독서<거룩하시다전능하신 주 하느님>(묵시 4,1-11)

나 요한이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곧 나팔 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곧바로 성령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하늘에는 또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벽옥과 홍옥같이 보이셨고어좌 둘레에는 취옥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그 어좌 둘레에는 또 다른 어좌 스물네 개가 있는데거기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어좌에서는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이 터져 나왔습니다그리고 어좌 앞에서는 일곱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그것은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또 그 어좌 앞에는 수정처럼 보이는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거룩하시다거룩하시다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어좌에 앉아 계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생물들이 영광과 영예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10 스물네 원로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경배하였습니다그리고 자기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11 “주님저희의 하느님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

 

화답송 시편 150,1ㄴㄷ-2.3-4.5-6(◎ 묵시 4,8)

◎ 거룩하시다거룩하시다거룩하시다전능하신 주 하느님.

○ 거룩한 성소에서 하느님을 찬양하여라웅대한 창공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위대한 일 이루시니 주님을 찬양하여라그지없이 크시오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 뿔 나팔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수금과 비파 타며 주님을 찬양하여라손북 치고 춤추며 주님을 찬양하여라거문고 뜯고 피리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 바라 소리 낭랑하게 주님을 찬양하여라바라 소리 우렁차게 주님을 찬양하여라숨 쉬는 것 모두 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복음 환호송 (요한15,16)○ 주님이 말씀하신다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가서 열매를 맺어라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복음<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루카19,11-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착한 종아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제1독서(묵시4,1-11)

 

'어좌 한 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다' (4,6)

 

이것은 하느님의 어좌를 중심으로 주변을 사각형으로 나누고, 그 사각의 중심에 네 생물이 하나씩 있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원(inner circle)처럼 하느님의 어좌를 감싸고 있는데, 하느님의 어좌를 감싸고 있는 네 생물은 에제키엘서 1장 10절, 10장 8절, 10장 19~22절에 나오는 네 생물, 즉 '커룹'(Cherubim)들을 연상시킨다.

 

거기에 언급된 네 생물은 각각 사람, 사자, 황소, 독수리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묵시록 4장 7절의 언급을 감안할 때 에제키엘서의 묘사는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에제키엘서의 커룹은 각각 네 날개를 가졌지만, 묵시록의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커룹은 하느님의 어좌를 운반하지만, 묵시록에 언급된 네 생물은 하느님의 어좌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커룹은 각각 네 얼굴을 가졌지만, 묵시록의 네 생물은 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네 생물은 '피조물의 대표'를 상징한다.

이것은 네 생물이 24원로와 함께 하느님을 예배하고 경배한다는 차원에서 타당한 해석이다.

 

그리고 '네 생물의 앞뒤로 눈이 가득 달려 있다'는 것은 에제키엘서 1장 18절을 배경으로 나온 것으로서, 네 생물이 끊임없이 깨어 있다는 뜻과 더불어, 하느님의 뜻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열정과 탁월한 천상적 통찰력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느님을 경배하고 찬양해야 하는 하느님의 백성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제 네 생물의 등장을 보여준 묵시록 4장 6절에 이어 4장 7~9절은 네 생물의 모습과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찬양을 기록한다.

이들 네 생물은 4복음서로 이해되기도 하여, 사람은 마태오 복음, 사자는 마르코 복음, 황소는 루카 복음, 독수리는 요한 복음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아마도 복음서의 시작인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족보, 마르코 복음은 사자처럼 포효하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는 세례자 요한의 등장, 루카 복음은 사제 직무를 수행하는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의 이야기, 요한 복음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계시는 그리스도의 선재(先在) 사상을 펼치는 요한 복음사가의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높은 신학이 전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든 네 생물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한다.

 

보통 네 생물은 모든 동물계에서 가장 고상한 것(가축의 대표인 황소가 가진 힘, 충성, 인내를 상징), 가장 강력한 것(야생동물의 왕인 사자가 가진 권위와 존엄을 상징), 가장 지혜로운 것(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가진 지혜, 이성, 형제애를 상징), 가장 민첩한 것(날짐승의 왕인

독수리가 가진 활동성과 용맹성을 상징)을 상징하며, 사람을 포함한 자연계의 각 대표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앉아 하느님의 뜻을 성취하고, 하느님의 지극한 위엄을 예배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좋다.


묵시록 4장 8절에서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다'는 구절을 살펴볼 차례이다.

이것은 이사야 예언서 6장 2절의 '그분 위로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라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사도 요한이 본 네 생물 역시 이사야 예언자가 목격한 '사랍'(Seraphim)들과 같이 '저마다'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날개는 하느님의 뜻을 신속히 수행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네 생물이 하느님의 어좌 가까이 있는 매우 중요한 존재들이라는 점(묵시5,6; 14,3), 부단히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점(묵시5,8.14; 7,2; 19,4), 그들의 활동이 하느님의 진노를 쏟아붓는 것과 관련된다는 점(묵시6,1~7; 5,7)을 감안할 때, 그들은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신속하게 이를 집행하는 존재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시편18,11; 에제10,16).

 

그런데 '그 날개의 사방과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다'는 것은 네 생물이 저마다 예리한 천상적 통찰력을 가지고서 거룩하신 하느님을 보좌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네 생물은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는데, 이것은 네 생물의 존재의 목적이 오로지  하느님을 찬양하는 데 있음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표현이 묵시록 14장 11절에서 나오는데, 사도 요한은 짐승과 그 상에 경배하고 자기 이마나 손에 표를 받는 자를 향해서 '누구나 낮에도 밤에도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천명한다.

이렇게 사도 요한은  오로지 '밤낮 쉬지 않고' 하느님만을 찬양하는 네 생물과, 짐승과 그 상에게 경배하여 '낮에도 밤에도 안식을 얻지 못하는' 배교자들을 대조한다.


한편 '네 생물'이 천상적 존재들을 포함하여 우주 만물, 곧 피조물 전체를 상징한다면,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불러야 하는 찬양은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시는 분!'이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이것은 이사야서 6장 3절의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라는 '사랍'(Seraphim)들의 찬양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거룩하시다'에 해당하는 '하기오스'(hagios; holy)는 원래 모든 피조물과 질적으로 완전히 구분되는 하느님의 속성을 의미하며, 세 차례 반복 표현된 것은 '하느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최상급의 표현을 나타낸다.

히브리식 사고에 의하면, 동일한 표현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은 강조를 의미하고, 세 번 반복하는 것은 최상급의 표현이다.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복음(루카19,11ㄴ~28)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가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1ㄴ~13)

 

사실 루카 복음 19장 11절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비유 하나를 말씀하신 것으로 나온다.

 

당시 예수님의 일행은 예루살렘 입성을 바로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제자들 및 청중들이 예수님과 자캐오와의 대화를 듣고 있는 현장에서 미나의 비유가 주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가정에 구원을 선포하시면서 당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루카19,10),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 및 청중들이 이제 예수님께서 머지않아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현세적이고 정치적인 메시아로서, 자신들에게 현세적 부귀영화와 로마로부터 정치적 해방과 자유를 찾아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이러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시려고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이 비유는 마태오 복음 25장 14~30절의 탈렌트의 비유와 비슷하다.

그러나 화폐의 단위 사용, 등장 인물의 숫자의 차이가 있고, 루카 복음사가만이 사람들이 귀족이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보고를 첨가하고 있으며, 또한 비유가 주어진 시기가 마태오 복음은 예루살렘 입성 후이지만, 루카 복음은 입성 직전이라는 것이 두드러진 차이이다.

 

또한 탈렌트의 비유가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소명과 은사에는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에 대해 충성을 다하면 동일한 상급인 구원이 주어질 것임을 강조한 반면에, 미나의 비유는 최종적으로 실현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기회를 선용한다면, 그 선용한 결과에 따라 상급도 차등있게 주어질 것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비유는 예수님께서 각기 다른 시기에 주신 다른 비유인 것이다.

 

이 비유에서 '귀족'에 해당하는 '안트로포스 유게네스'(anthropos eugenes; a men of noble birth)에서 '유게네스'(eugenes)는 '좋은'(good)을 의미하는 접두어 '유'(eu)와 '출생', '태생'을 의미하는 명사 '게노스'(genos)의 합성어로서 '태생이 좋은'(well-born), '고귀한 혈통'(of noble raw)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어떤 특정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하는 가상 인물이다.

귀족이 먼 고장으로 떠나가 왕권을 받아 올 때까지는 아직 임금이 아니다.

 

여기서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느님께 가신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음, 즉 그의 부재(不在)를 의미한다.

귀족이 가는 목적은 왕권을 받아 다시 오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오려고'에 해당하는 '휘포스트렙사이'(hypostrepsai; to return)는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다'는 의미를 지닌 '휘포스트레포'(hypostrepho)의 부정사로서, 영광과 존귀와 위엄의 본래 지위를 받아 가지고 다시 되돌아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난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이 용어는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서 재림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며, 다시 오실 때에는 심판관과 통치자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오실 것이다(마태24,30).

 

한편 루카 복음 19장 13절의 '종'에 해당하는 '둘로스'(dulos; servant)는 '둘루스 헤아우투'(dulus heautu; his servants)에서 나온 말로서, 귀족이 부른 종들이 자기 휘하에서 자신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종들임을 나타낸다.

원래 '둘로스'(dulos)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노예'를 가리키며, 여기서 '자기자신의'(heautu; his)가 첨부된 것은 오직 주인만을 위해서 살아야 됨을 보여 준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또는 모든 하느님 나라의 백성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복음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의 탈렌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재능에 따라 차등을 두어 종들에게 탈렌트를 분배한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귀족이 열 종들에게 각각 한 미나씩 균등하게 배분해 주었다.

 

또한, 두 복음서에서 각각 다른 화폐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탈렌트'는 '미나'(mina)의 화폐 단위보다 더 높다.

'탈렌트'는 6,000 데나리온의 가치이고, '미나'는 100데나리온의 가치이므로, '미나'는 '탈렌트'의 60분의 1정도이다.

 

여기서 귀족은 종들에게 그것을 주면서 '벌이를 하여라'고 말한다.

'벌이를 하여라'에 해당하는 '프라그마튜사스테'(pragmateusasthe; occupy; put the money to work)의 원형 '프라그마튜오마이'(pragmateuomai)는 '사업하다'라는 뜻으로서 상업적 거래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단어이다.

 

귀족은 한 미나를 종들에게 주며, 먼 고장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그때까지 이 돈을 활용해서 사업을 하여 이윤을 남기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장사, 사업이란 용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서 귀족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 암시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상당한 시간이 있을 것에 대한 암시로 이해한다.

 

마태오 복음의 '탈렌트의 비유'는 차등있게 탈렌트가 주어진 것을 통해 사람에 따라 소명과 은사의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 반면에, 루카 복음의 '미나의 비유'는 동일하게 한 미나씩을 줌으로써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든 백성들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신 것을 나타낸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백성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그 재능과 시간을 잘 활용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이윤을 최대한도로 남기기를 원하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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