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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돈관리 비유...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8 조회수1,427 추천수0 반대(0) 신고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11-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따라 보내어,‘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6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주인님,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렸다.‘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25-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주인님,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있습니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사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미나를 맡은 종들 비유(19,11-27)와 탈렌트를 받은 종들 비유(마태 25,14-30)는 공통점과 상이점을 함께 지니고 있다. 본디 한 비유였던 것이 시대가 흐르면서 갈라진 것은 분명한데 갈라진 분기점이 어디냐가 문제다

 

어록을 분기점으로 보는 설이 있다. , 어록에는 한 가지 비유가 수록되어 있었는데 루카와 마태오는 그것을 배끼면서 제각기 가감. 수정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비유처럼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어록 루카

             --마태오

루카가 마태오의 어록을 베낀 것이 아니라 각기 자신의 특수자료를 옮겨실었다고 보는 설이 있다. 그러니까 루카 특수사료, 마태오의 특수사료 이전의 원시교회 전승에 분기점을 두려는 것이다. 이 설에 따라 비유의 계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원시교회루카특수사료 ---루카

                         마태오특수사료---마태오

 

두가지 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실정이라 시비를 가리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11-27절과 마태 25,14-30을 면밀히 대조, 검토하여 전승.편집 과정중에 가감.수정된 요소를 삭제하면 이 비유가 두갈래로 갈라지기 이전의 비유 형태를 상당히 복구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예수께서 발설하신 비유 형태,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예수께서 발설하신 비유 형태를 상당히 복구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예수께서 의도하신 뜻만 간략히 밝히고자 한다. 우리 비유는 원래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마르1.15)라고 하신 선포와 일맥 상통하는 비유인 것이다. 선포 내용을 풀이하면,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인품과 업적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러 지금 오시고 곧 오실 하느님이신데 인간은 이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에서도 또 다른 국면을 아울러 강조하셨다. , 하느님의 나라는 은총이요 요구라는 것. 선물이요 과제라는 것, 또한 그 요구와 과제를 실현하지 못하면 단죄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를 발설하셨는데 루카는 그것을 예수님의 죽음과 승천과 재림(12-15)에 관한 비유로 바꾸었다. 신론적 비유를 그리스도론적 비유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즉시 종말이 도래한다는 종말임박사상(11)에 반대하여 루카는 종말지연사상을 주장했다. ,”먼 고장으로 가신“(12)예수께서는 곧 재림하시지 않고 당신 제자들이 벌이할 시간을 충분히 주신다는 지론을 폈다.

 

마태 25,14-30에 관해서는 에두아르도 슈바이처(마태복음)한국신학연구소 1982) 494-8을 보라

 

11절은 루카의 가필이다. 1.우선 루카가 애용하는 낱말과 문체로 짜여 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다시금(프로스티테미 동사에서 파생. 이동사는 루카복음에 일곱 번, 사도행전에 여섯 번. 나머지 신약성서에서는 다섯 번). “비유를 말씀하셨다(레게인+파라볼렌은 신약성서 가운데 마르 12.12를 제외하면 오직 루카복음에만 열네 번).”예루살렘에 가깝다“(=사도 1.12). “당장”(신약성서 가운데 마태 21,18,20을 제외하면 오직 루카복음에만 열 번 사도행전에 여섯 번)“나타나다”(신약성서 가운데 오직 루카 19.11; 사도21.3에만 나온다.) 2. 루카의 전형적인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셨고 는 예수 상경기에 속한다. “그들은 하느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는 종말임박사상인데 같은 사상이 17,20: 사도 1,6에도 있다. 다만 루카는 번번이 이 사상을 배척한 점에 유의하라.

 

마태 25,14에는 그냥 사람”. 루카는 왕위를 노리는 귀족 한 사람”(=예수)으로 개작했다.

 

마태 25,14에서는 단순히 여행을 떠나면서”. 루카는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여(“먼 고장으로 가다”)주권을 받은 다음(“왕위를 받다”) 종말에 재림하실(“돌아오다”)것을 염두에 두고 개작했다

 

그리고 12절은 이스라엘 전부를 통치하고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4년 사망하자 그 아들 아르켈로오스가 아버지의 왕위를 계승하려고 로마 황제를 찾아간 고사를 연상케 한다. 유다인들은 그를 싫어했기 때문에 황제에게 민간사절단을 파견하여 아르케라오스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14절 참조). 황제는 절충하여 아르케라오스를 단지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의 영주로 책봉했다(15절 참조). 아르켈라오스는 로마에서 이스라엘로 귀국한 다음 자기를 반대한 자들을 무참히 학살했다(27절 참조)

 

마태25.15에는 종 세명을 불렀다하는데 이 숫자가 더 신빙성이 있다. 사실 루카 19.16.18.20에 보면 종 세명과 셈을 한다.

루카는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사실을 상기하여 아르케라오스의 왕위 계승 고사를 도입했으리라.

그러나 그는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는은 루카의 가필. 역시 유다 고사를 연상케 한다.

 

주인이 왕위를 획득했기 때문에(15)종들에게 열 고을”(17)또는 다섯 고을”(19)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 할 수 있다. 이는 루카의 개작이다. 마태 25.21에서는 주인이 종들더러 이렇게 말한다. “잘했다. 착하고 믿음직스러운 종아. 적은 것에 믿음직스러웠으니 네게 많은 것을 맡기겠다. ...” 이것이 비유의 원형을 반영한다. 그 뜻인즉 적은 돈을 잘 관리했으니 더 많은 돈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25절의 항변은 루카복음에만 있다. 루카 자신이 매우 인간적인 항변을 가필했을 것이다. 25절은 시나이.바티칸.알렉산드리아 사본에는 있고. 베자.워싱턴 사본에는 없다.

 

26(=마태25,29)은 본디 비유와 무관한 단절어로서 전승과정에서 추가된 것이다. 같은 단절어가 마르 4.25(=마태13.12=루카8.18)에도 전해온다.

 

27절은 루카에만 있는 것으로,루카가 아르켈라오스의 고사를 도입하는 기회에 덧붙인 것이겠다.

갈릴래아 활동기(4,4-9,50).예루살렘 상경기(9.51-19.28)에 이어 이제부터 루카는 예루살렘 활동기(19.29-24.53)를 엮는다. 여기서는 주로 마르 11.1-16.8(=19.29-24.10을 따르되 간혹 특수자료를 채집하여 삽입하거나 가필했다.

그리고 예루살렘 활동기의 내용을 보면 예수께서는 거기서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맞으신다. 곧 거기서 결정적인 구원 업적을 이룩하신 것이다. 이제까지 거듭 예고한바 있는 떠나가실 일”(9.31),“맞아들여질 일”(9.51). “인자에 대하여 예언자들을 통해 기록된 모든 것들”(18.31)을 완성하신 것이다.

 

예루살렘 입성기(19,28-41)에서는 주로 마르 11.1-10을 따르면서 37-38절은 개작하고. 39-40절은 덧붙였다. 루카는 입성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예수님은 주 하느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임금으로 입성하신다(38).“평화를 주려고(42)예루살렘을 방문하신다.(44)

 

28절은 그들은 길을 걸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앞장을 서서 가셨다”(마르10-32)를 옮겨실은 것이다. 28절로 상경기는 마루리 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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