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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1.1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18 조회수1,648 추천수4 반대(0) 신고

(대전교구 성지, 해미순교성지 성당)

2020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제1독서 묵시 4,1-11

나 요한이 1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들었던 그 목소리,

곧 나팔 소리같이 울리며 나에게

말하던 그 목소리가,

 “이리 올라오너라. 이다음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2 나는 곧바로 성령께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늘에는 또 어좌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어좌에는

 어떤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3 거기에 앉아 계신 분은 벽옥과

홍옥같이 보이셨고, 어좌 둘레에는

취옥같이 보이는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4 그 어좌 둘레에는 또 다른 어좌

스물네 개가 있는데, 거기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 스물네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5 그 어좌에서는 번개와 요란한

소리와 천둥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좌 앞에서는 일곱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6 또 그 어좌 앞에는 수정처럼 보이는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좌 한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7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8 그 네 생물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개씩 가졌는데, 사방으로

또 안으로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낮 쉬지 않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
9 어좌에 앉아 계시며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생물들이 영광과

영예와 감사를 드릴 때마다,

10 스물네 원로는 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그분께 경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금관을 어좌 앞에

던지며 외쳤습니다.

11 “주님, 저희의 하느님,

주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주님의 뜻에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창조되었습니다.”

복음 루카 19,11ㄴ-28

그때에 11 예수님께서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데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먼 고장으로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열 미나를 나누어 주며,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그들에게 일렀다.
14 그런데 그 나라 백성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저희는 이 사람이 저희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5 그러나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16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
18 그다음에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주인은 그에게도 일렀다.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려라.’
20 그런데 다른 종은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21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22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내가 냉혹한 사람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3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
24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이들에게 일렀다.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5 ─ 그러자 그들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이는

 열 미나나 가지고 있습니다.’─
2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27 그리고 내가 저희들의

임금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그 원수들을 이리 끌어다가,

 내 앞에서 처형하여라.’”

28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어느

보육원에서 몇 개월 동안

 일 한 적이 있습니다.

보육원이라고 아이들과

 노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바깥 일, 일명

 ‘노가다’라고 불리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제까지

공부만 하던 저로서는 이 바깥 일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오시던 분들은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하루 하고서도

온몸이 쑤셔서 파스를 붙여야지만

일할 수 있었는데, 이분들은 연세가

많으신데도 별로 힘들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여쭤보니,

“인이 박여서 괜찮아.”라고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인이 박이면 그렇게

힘들지 않다는 것이지요.

인이 박일 때까지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인이 박이기 전까지는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야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게 됩니다.
평생 공부와 연구를 하신 분은

인이 박여서 공부와 연구가 힘들게

느끼지 않는 것이고, 평생 운동을

하신 분도 인이 박여서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운동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도 그렇지 않을까요?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시는 분은

어떤 상태일까요? 아직 인이 박이지

않은 것입니다. 봉사와 희생이 어려운

이유는 왜일까요? 이 역시 인이 박이지

 않아서입니다. 인이 박일 때까지

한다면 과연 못할 것이 무엇일까요?
미나의 비유 말씀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왕권을

받으려고 ‘먼 고장’으로 여행을 떠난

 귀족은 떠나면서 종들에게 미나를

나눠줍니다. 그리고 왕권을 받고

돌아와서 종들과 셈을 합니다.
첫 번째 종은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보상은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습니다. 둘째 종은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만들어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종은 받은 한 미나를

수건에 싸서 보관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열 미나를

가진 자에게 이 한 미나를 뺏깁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이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그저 선물을 줄 뿐입니다.

미나를 주고, 벌어온 미나의 숫자만큼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줍니다.

 이처럼 주님의 사업에 동참하게 될 때,

그 사업의 수익금을 얻는 것은 주님이

아닌 바로 ‘우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이 박일 때까지 노력한다면,

그 노력의 결과로 얻는 것은

 모두 나의 것입니다.

어느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냥 주님이 무섭다면서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리석은

 종의 모습이 아닌, 인이 박일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충실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붙드는 일,

 삶에서 우리가 마음이 상해 가며

할 일은 오직 그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김금희)

어떤 형제님으로부터 일로 인해

너무 힘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쉬지 않고

 일만 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좀 쉬면 어떻겠냐고 물으니,

그러면 누가 가족을 책임지냐고

반문하십니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이 꽉 물고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분과 대화를 해 보니 책에서

보았던 번아웃 증후군

(Burnout Syndrome) 같았습니다.

일에 너무 몰두하고 있어서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것입니다.
쉬는 것밖에 해결책이 없어 보이는데,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일만 하고 있습니다.

 나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 형제님이 없으면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1년에 한 번 해외 성지순례를 가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못 갔습니다),

함께 가시는 분 중에 ‘나 없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을 만나곤 합니다.

이분들에게 순례를 모두 마친 후에

 “집이 어떻게 되었어요? 큰일이 났나요?”

라고 여쭤보면, 순례 다녀오기 전과

똑같다면서 웃으십니다.
쉼으로 인해 망가지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을 망가지게 하는 것은 불안,

걱정 등의 부정적 감정일 뿐입니다.

때로는 쉼이 필요합니다.

나의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을

 ‘쉼’이 말입니다.

(대전교구 성지, 해미순교성지

첫순교자 이언민 마르티노의 말씀_)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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