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1월 21일 토요일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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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11-21 | 조회수1,16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1월 21일 토요일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은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가득했던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이다.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는 성모님께서 세 살 되던 해에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쳤다고 전해 온다. 이날은 본디 6세기 중엽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모 성당의 봉헌을 기념하는 날이었으나,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선포하였다. 제1독서 <딸 시온아, 즐거워하여라. 내가 이제 가서 머무르리라.> 말씀입니다. 2,14-17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너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되리라.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화답송 루카 1,46ㄴ-47.48-49.50-51.52-53.54-55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는 복되시다!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 ◎ 영원하신 성부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는 복되시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 영원하신 성부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는 복되시다! 그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미치리라. 그분은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네. ◎ 영원하신 성부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는 복되시다! 비천한 이를 들어 올리셨네.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네. ◎ 영원하신 성부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는 복되시다!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돌보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그분의 자비 영원하리라. ◎ 영원하신 성부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는 복되시다! 복음 환호송 루카 11,28 참조 지키는 이들은 행복하여라. 복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복음입니다.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영성체송 루카 11,27 참조 동정 마리아의 모태는 복되시나이다. 오늘의 묵상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라는 표현 때문에 혼란스러워합니다.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의구심을 가지기도 하고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면 당시에 ‘형제’라는 표현이 지금보다는 넓은 의미로 이해되었고 사촌들에게도 적용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이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관계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을 형제자매로 생각합니다. 관계를 맺으시는 것을 보여 주고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죄인으로 여겨지던 이들과 함께 어울리시고 그들을 용서하시고 받아들이십니다. 이것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과 과부들도 돌보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들을 공동체 안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기존의 관계에서 벗어나시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가십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관계도 이런 새로운 관계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새로운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이 가지는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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