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21 조회수2,168 추천수13 반대(0)

노자의 도덕경 41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아주 큰 사각형은 각이 없고, 아주 큰 소리는 들리지 않으며, 아주 큰 형체는 보이지 않고, 아주 큰 그릇은 채우지 못한다.(大方無隅, 大音希聲, 大衆無形, 大器晚成)” 지구는 둥굴지만 사람들은 지구가 둥근지 몰랐었습니다. 사람이 볼 수 없을 만큼 컸기 때문에 몰랐습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있습니다. 아주 큰 소리나 아주 작은 소리는 듣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주의 크기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는 우주에서는 아주 작은 점과 같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가지만 바다는 넘치는 적이 없습니다. 바다가 넓고 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기만성은 성공의 기준이 아닙니다. 대기만성은 겸손과 아량의 표징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예수님 시대에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태어날 수 없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헤로데는 구세주의 탄생을 경쟁자가 태어난 것으로 알았습니다. 2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면 오른쪽과 왼쪽에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청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가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뜻을 찾지 않고 사람의 뜻을 찾는다.’라고 야단맞았습니다.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도록 했습니다.

 

율법을 많이 알았던 사람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나라의 왕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로마의 총독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지식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을까요? 밤을 새워 양들을 돌보던 목동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보았습니다. 눈이 멀었던 소경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세관장이었던 자캐오는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가난한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회개한 사람, 겸손한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가 신랑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갈망이 있는 사람, 꾸준히 기도하는 사람,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 회개하는 사람,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은 우주보다 크신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난한 노숙자가 길에서 죽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웠기 때문입니다. 조각가는 그 뉴스를 보고 벤치에 누워있는 노숙자의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노숙자는 담요를 덮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노숙자의 발이었습니다. 발에는 못 자국이 있었습니다. 조각가의 눈에는 길에서 죽었던 노숙자가 예수님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토론토 시에 제안했습니다. 그 노숙자가 죽은 자리에 자기가 만든 노숙자의 동상을 세우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토론토 시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노숙자를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각가는 뉴욕의 주교좌 성당에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뉴욕의 성당에서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성당의 외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각가는 교황청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자신이 만든 동상을 로마의 바티칸에 보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편지는 교황님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교황님은 조각가에게 어떤 답장을 하였을까요? 조각가를 바티칸으로 초대하였습니다. 교황님께서 직접 동상을 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상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못 자국을 만져보며 기도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무심했던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가난한 사람, 헐벗은 사람, 아픈 사람을 생각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국의 한 사제도 조각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작품을 한국에도 보내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조각가는 기쁜 마음으로 동상을 가지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못 자국이 있는 노숙자의 동상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상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마음을 열면 얼마든지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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