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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린양과 속량된 자들(묵시록), 가난한 과부의 헌금 ...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22 조회수1,487 추천수0 반대(0) 신고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3,4-5

  나 요한이 1 보니 어린양이 시온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2 그리고 큰 물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그 목소리는 또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3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4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습니다. 5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14,1-5 어린양으로 출현으로 시작되는 14장의 현시는 앞장의 상황과 대조를 이루면서 완전히 실현된 구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 종말 때의 구원상황을 미리 보여준다 하겠다. 1-5절에서는 시온 산 위에 있는 어린양과 그를 따르는 144,000명을 소개하는데 어린양의 이름을 지닌 자들이다.

 

구원은 어린양.곧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온 산은 명백히 천상의 시온 산으로 상징적 의미가 있다. 구원된 공동체가 모이는 이상적 장소다. 이미 구약성서에서 시온 산은 구원의 장소로 알려졌다. 요엘 3.5 : “그때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으리라.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시온 산에는 난을 면한 사람이 있으리라. 루살렘에는 야훼께서 부르신 사람이 살아 남으리라.” 이러한 신념은 후기 유다 문헌에서도 많이 발견된다.(에즈라 42,42-45참조)

 

짐승의 낙인을 받은 이방인들(13,16-17)과 대조적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받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묘사한다. 묵시록에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이름만을 지니고있다고도(22.4)하고, 하느님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 예수의 이름을 지니고 있다고도(3.12)한다.

 

이들이 부르는 찬미가의 내용을 알 수 없다. 단지 구원된 144,000명 외에는 아무도 이 찬미가를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노래란 속량의 노래를 지칭하는 것 같다.(5,8-10 이사42.10참조) “땅으로부터 속량되었다는 것은 세상에서 구원받았다는 말이다.

 

이 선언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말해준다. , 그리스도의 피흘리는 수난뿐 아니라 부활의 영광까지 함께 함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라는 예언적 주제가 암시되어 있는 것 같다.

 

구약성서에서 거짓말은 자주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1,1-4는 상황어 양식에 속하는 사화. 루카는 마르 12,41-44를 베끼면서 상당히 줄었지만 사화의 뜻을 바꾸지는 않았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스라엘 여자들이 모이는 여자 구역이 따로 있었는데, 거기에 헌금함 열세 개가 있었다.

 

렙톤은 그리스 돈 가운데 최소단위 동전으로 그리스 은전 드라그마(=로마 은전 데나리온)128분의 1이다. 마르코는 그리스 돈을 로마 돈으로 환산하여 두 렙톤은 로마 동전 한 과드란스와 같은 액수라고 한다.

 

생활비는 그 날의 식비라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

 

참으로는 본디 앞뒤 문맥과 관계없이 전해온 이 단절어는 직역하면 아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로 시작된다. 유다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남의 말에 동의 한다는 뜻으로 아멘으로 응답한다. 그런데 예수님만은 유별나게 당신 말씀 첫머리에 아멘(공관복음) 혹은 아멘 아멘(요한복음)이라 하시는 때가 있다.

 

그분의 독창적 어법에는 당신의 말씀이야말로 참되다는 확신이 번뜩인다. 그렇다고 해서 아멘으로 시작되는 말씀은 죄다 예수 친히 발설하신 것은 아니다. 초대교회 신도들이 자기네가 만든 말을 예수님의 말씀인 양 내세우면서 그 앞에다 아멘을 덧붙인 경우도 있다. “아멘, 나는 ... 말합니다란 표현은 마르코복음에 열세 번 나온다.(3.28: 8.12: 9.1.41: 10.15.29: 11.23: 12.43:13.30:14.9.18.25.3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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