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세상의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정한 왕으로써 나를 심판하실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살았는가가 그분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와 크로아쌍을 사기 위해 카페에 들렸다. 그런데 어떤 여인이 다가와 구걸을 했다. 나는 마스크도 하지 않은 그 여인이 두려워서 손바닥을 내밀며 그녀의 접근을 막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두려워서 그랬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도움을 줄 마음이 있었다면 충분히 그리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사를 하는 동안 마음먹었던 결심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예전의 기억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자메이카로 휴가를 다녀온 적이 있다. 바닷가에서 오전 내내 놀다가 호텔 방으로 들어와서 점심을 먹고 잠시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마침 tv에서는 골프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골프에는 별 관심이 없긴 하지만 마침 tv에 등장하고 있는 선수가 한국 사람이어서 경기를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한 순간 한국 선수가 친 공이 냇물에 빠지고 말았다. 골프에 관심이 없는 나도 얼마나 실망이 되고 기운이 빠졌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선수는 머뭇거림도 없이 양말을 벗고 냇물 속으로 들어가 공을 쳐올렸다. 그녀의 양말 속 발목은 락스로 탈색을 한 것처럼 하얬다.
그녀가 양말을 벗으니 비로소 그녀의 발이 보였고 그녀의 양말 목이 끝나는 발목과 햇살이 닿는 그녀의 다리 사이에는 선명한 경계가 있었다. 발과 발목은 하얗고 다리는 햇볕에 그을려 검은 색이어서 검은 양복에 받쳐 입은 하얀 셔츠처럼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양말 속에 감춰진 그 긴 시간들.
햇볕 아래서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를 그녀의 발이 말해주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 선수의 한국 이름이 '박세리'였고(캐스터의 발음은 쎄리 팍) 그 경기는 US OPEN 여자 결승전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세상의 마지막 날 나는 나의 양말을 그 분 앞에서 벗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소외 받고 천대 받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양말을 벗으면 다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