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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루카21,12-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25 조회수1,57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11월 25일 수요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루카21,12-19)

   11월 27일 복음말씀[연중 제34주간 수요일]

1독서 <그들은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묵시15,1-4)

나 요한은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는데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주님께서 하신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민족들의 임금님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

주님주님을 경외하지 않을 자 누구이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자 누구입니까정녕 주님 홀로 거룩하십니다모든 민족들이 와서 주님 앞에 경배할 것입니다주님의 의로운 처사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화답송 시편 98(97),1.2-3ㄱㄴ.7-8.9(◎ 묵시 15,3ㄴㄷ 참조)

◎ 전능하신 주 하느님당신이 하신 일 크고도 놀랍사옵니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새로운 노래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그분의 오른손이거룩한 그 팔이승리를 가져오셨네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민족들의 눈앞에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소리쳐라바다와 그 안에 가득 찬 것들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강들은 손뼉 치고산들도 함께 환호하여라

○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세상을 다스리러 그분이 오신다그분은 누리를 의롭게백성들을 올바르게 다스리신다

 

복음 환호송 (묵시 2,10) ○ 주님이 말씀하신다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리라.

 

복음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루카21,12-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제1독서 (묵시록15,1-4)

 

"나 요한은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1)

 

요한 묵시록의 핵심 내용은 한마디로 대종말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묵시이다. 이것은 묵시록의 거의 대부분의 분량에 해당하는 묵시록 4장1절에서 22장 5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묵시록 4장에서 18장은 재림 이전의 세말의 대환난을 다루고, 묵시록 19장 1절에서 22장 5절은 재림 이후의 심판 및 새하늘과 새땅의 도래를 다룬다.

 

한편, 묵시록 4장에서 18장은 대환난 관련 묵시들을 일곱 봉인(묵시록6장과 8장), 일곱 나팔(묵시록8장, 9장과 11장), 일곱 대접 재앙(묵시록 16장) 등 삼대 칠중 재앙 7년 대환난(묵시록 12장 5절,14절; 7년 대환난의 전(前)삼년 반/ 묵시록 13장 5절 ; 7년 대환난의 후(後)삼년 반)이라는 두 가지 관점 내지 양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크게 보자면, 묵시록 4장에서 18장 전체가 삼대 칠중 재앙 기사들이고, 그 사이인 묵시록 12장 ~14장에 7년 대환난 묵시들 중간 계시 형태로 삽입되어 있다.

 

묵시록 15장은 이러한 7년 대환난 관련 묵시가 끝나고, 묵시록 15장과 16장에 걸쳐 이어지는 세번 째 칠중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 기사의 전반부이다. 여기에는 일곱 대접 재앙의 개시 직전의 준비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일곱 대접 재앙 이제 일곱 봉인 환시와 일곱 나팔 환시에서 시작되었던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이 마무리되는 마지막 심판 임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가지고 있었는데' 로 번역된 '에콘타스'(echontas) '소유하다' 라는 뜻을 지닌 '에코'(echo)의 현재 분사로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한편, 사도 요한이 목격한 하늘의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꾸며낸 이야기나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실감나게 나타낸다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분노'로 번역된 '호 튀모스 투 테우'(ho thymos tu theu; the wrath of God)는 묵시록 14장 10절과 19절에도 나오는데, 거기서 하느님의 분노는 포도주 잔과 포도 확과 짝을 이루어 비유적으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라는 본문의 언급은 '마지막 일곱 재앙' 대한 단순한 부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끝나게 될 것입니다'로 번역된 '에텔레스테'(etelesthe) '이루다', '성취하다', '채우다', '충만하다' 라는 뜻을 지닌 '텔레오'(teleo) 예언적 부정 과거이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향후 쏟아질 일곱 재앙이 하느님의 분노를 종식시킨다는 의미 이전에, 마지막 일곱 재앙 안에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히, 충만하게, 완전하게 담겨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본문에 언급된 일곱 재앙이 마지막 재앙인 까닭은 일곱 재앙 안에 하느님의 분노가 충만하게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일곱 재앙이, 악마와 짐승과 거짓 예언자와 그 이름이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불 못에 던져지는 하느님의 최후의 심판으로 묘사되고 있는 까닭 바로 여기에 있다(묵시록19,20; 20,10.15).

이러한 견지에서 본절에 언급된 '일곱'(헵타;hepta) 재앙은 과거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린 '일곱 배나 더한 재앙'(레위 26,21)의 이미지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7'이란 숫자가 '완전'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하느님께서 말하시는

진노의 철저함과 극렬함을 넘어 완전함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이제 보여질 일곱 재앙(묵시록16장)이 완전한 재앙이라면, 이것이 마지막 재앙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2~3ㄱ)

 

구문상 묵시록 15장 1절과 직접 연결 되고 있는 것은 묵시록 15장 2절이 아니라 일곱 재앙이 쏟아질 것을 서론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묵시록 15장 5절이다. 그렇다면, 묵시록 15장 2~4절은 묵시록 15장 1절과 5~8절 사이에 특별한 신학적 목적을 의도하기 위해 끼어든 삽입으로 간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삽입 기사의 기능은 무엇인가? 이것은 마치 여섯 봉인과 일곱째 봉인 환시 가운데 삽입된 묵시록 7장 1~17절의 기능과 유사하다. 즉 묵시록 15장 2~4절은 일곱 재앙이 쏟아질 때 신실한 하느님의 백성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그것은 묵시록 12장 1절~14장 20절에 묘사된, 사탄을 상징하는 붉은 용 및 적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를 상징하는 두 짐승이 주도하는 환난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구원을 받은 자들이 철저한 하느님의 보호를 통해 결국 승리하고,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묵시록 15장 2~4절의 삽입 단락은 전술된 여섯 봉인과 일곱째 봉인 및 나팔 재앙 사이에 삽입된 단락이 그러하듯이,구원받은 하느님의 백성의 운명에 대해 어떠한 악의 세력도 궁극적 의미에서 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묵시록이 용과 두 짐승에 의해 환난과 핍박, 또는 유혹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일차 독자로 한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이러한 삽입 단락은 그들에게 더 없이 용기와 위로를 주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묵시록 15장 2~4절의 삽입 단락은 일곱 대접 재앙 가운데 외치는 교회의 승전보이다.

 

한편, 묵시록 4장 6절이나 본문에 언급된 '유리 바다' 홍해 바다를 상징적으로 변환한 것이다. 특히 본문이 홍해 바다와 관련된다는 점은 묵시록 15장 3,4절에 언급된 찬양이 '하느님의 종 모세의 노래'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말하자면, 묵시록 15장 2~4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넌 후 불렀던 감격적인 모세의 노래를 상기시킨다(탈출15,1~8).

 

본문에 언급된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은 사탄을 상징하는 붉은 용과 용의 하수인인 두 짐승의 핍박 가운데서 구원받은 하느님의 백성을, 파라오의 학정에서부터 출애굽한 이스라엘에 대입하여 묘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과거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홍해 도하 사건은 종말에 하느님의 백성이 경험할 최종적 구원의 예표이다.

따라서 현재 용과 두 짐승의 핍박으로 고난당하고 있는 성도들은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과거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느님께서는 성도들을 최종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바로 그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복음(루카21,12~19)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16~19)

 

루카 복음 21장 16절은 종말의 기간 동안 성도들이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로부터 당할 핍박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가르치셨고(루카12,52.53; 마태10,21.22), 예언자 미카의 예언에도 나오는(미카7,5.6), 종말에 나타날 징조로서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마르코과 마태오 복음 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가족 뿐만 아니라 친척과 친구들의 핍박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없는 타인으로부터의 박해와 비교해 볼 때, 자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들과 친척, 심지어 피를 나눈 가족의 박해와 배신은 참으로 인내하기 어려운 핍박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것은 종말의 기간에 인간 사회를 지탱해 주는 가장 기본적인 끈이요 세포 단위인 가족 관계까지 파괴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제 루카 복음 21장 17절에서 종말에 성도들을 핍박하고 박해할 주체가 가족과 친지로부터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된다.

 

여기서 '모든 사람'에 해당하는 '판톤'(panton; all men)는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모든 사람 또는 민족(마태24,9)을 말한다.

그리고 '미움'으로 번역된 '미수메노이'(misumenoi)의 원형 '미세오' (miseo; hate)는 '증오하다', '무시하다'는 뜻인데, 무관심과 업신여김, 멸시, 경시 및 적극적으로 증오하는 미움을 가리킨다.


이것은 원수에 대한 감정을 나타내는 데 쓰이는 단어이다(마태5,43).

또한 이러한 박해의 원인이 바로 '내 이름 때문에'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신앙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루카 복음 21장 18절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신앙인들에 대한 완전한 보호의 약속도 함께 나온다.

'머리카락'으로 번역된 '트릭스'(thriks; an hair)는 사람의 머리털,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성경에서 하느님의 보호하심의 완벽함을 강조할 때 사용된다(마태5,36; 사도27,34; 1사무14,35; 2사무14,11; 1열왕1,52).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는 말씀이 앞에 나열된 핍박의 내용과 모순되는 듯이 보이지만, 이러한 하느님의 보호하심은 영적인 의미 알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육적으로 아무리 심한 박해를 받고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존재의 본질적인 차원인 '영혼'은 어떤 상함이나 변형이 없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고, 여기서 '너희'를 '교회'로 알아들어 종말에 어떤 박해가 있어도 '하느님의 교회'는 온전히 보호받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끝으로, 루카 복음 21장 19절은 종말 기간 동안 성도들이 받을 고난(루카21,12~19) 대한 결론인 동시에, 루카 복음 21장 18절에 대한 보충 설명에 해당한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병행 구절에서 '그러나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한 반면에(마태24,13; 마르13,13), 루카 복음사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장으로 기록했다.

 

여기서 '인내'로 번역된 '휘포모네'(hyphomone; patience)는  무거운 짐이나 힘든 시련과 박해의 상황에서도 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는 을 나타낸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휘포메이나스'(hyphomeinas)라는 동사를 사용한 반면에, 루카 복음사가 이 단어의 명사형을 사용했다.

 

그리고 '얻어라'로 번역된 '크테사스테'(ktesasthe; passess; gain)의 원형 '크타오마이'(ktaomai)는 '소득을 가지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영혼의 참 생명을 소유하는 것을 말한다.

루카 복음사가 종말에 모든 박해를 견디는 '인내'가 곧 '영혼 구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밝혀서, 박해에 직면한 성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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