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1.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25 조회수1,197 추천수6 반대(0) 신고

(인천교구 순례지, 성체 순례 성지 성당)

2020년 11월 25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제1독서 묵시 15,1-4

나 요한은 1 크고 놀라운

다른 표징이 하늘에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하느님의 분노가

끝나게 될 것입니다.
2 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상과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를 무찌르고 승리한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수금을 들고,

3 하느님의 종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주님께서

하신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민족들의 임금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
4 주님, 주님을 경외하지 않을 자

누구이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자 누구입니까? 정녕 주님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들이

와서 주님 앞에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의로운 처사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복음 루카 21,12-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할 것이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

13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불행의 인과관계를 선명하게

규명하려는 집착 속에 사는

우리는 아닐까요?  어떤 분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잃어버리고 답답한 병원에서

생활하는 것이 점차 짜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불행의 원인을 계속해서 찾습니다.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원인이 되었다가,

갑자기 불러서 그 자리를 지나도록

 한 친구가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 사고의 위험이 많은 환경을 제공한

도로의 책임자인 시 당국이 원인이

될 때도 있습니다. 사고 났을 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모른 척

지나갔던 사람들 역시 불행의

원인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원인을 찾다 보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원인을 찾았으니

 이제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솔직히 이런 집착에는 아무런

 요점도 또 의미도 없습니다.

또다른 고통만을

 내게 가져다줄 뿐입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인과관계를

만들어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피해자로 만듭니다.

행복의 주인공이 아닌,

불행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몰아가는 것입니다.
불행의 인과관계가 아닌, 행복의

인과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한 원인을 찾다 보면

행복한 점들이 내 곁에 무궁하게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감사할 일도

많아집니다. 모든 고통과 시련을

거뜬히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관해 말씀하시며

중간에 박해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당신께서 곧 배신당하실 것처럼,

장차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 그들도

배신을 당하리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하지만 경고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박해를

 참고 견디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선포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끝까지 참고 견디려면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고서는 곧바로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라며 그들을 위로하시지요.

왜 이 말씀으로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요?

모든 육신이 부활하는 날에 온전한

몸으로 되살아나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끝까지

참고 견디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는 앞서 말씀드린 불행의

 인과관계를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인과관계를 찾는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의 원인이

무궁무진한 것처럼, 우리 행복의

원인도 무궁무진합니다.

그래야 어떤 박해가 찾아와도

기쁨 안에서 이겨낼 수 있으며,

동시에 육신의 부활이라는 영원한

생명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희망을 가진 이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희망하는 이는 새 생명의 선물을 받는다.

(라틴어 속담)

나에게 주님은 몇 번째?

너무 바빠서 미사와 기도에

충실할 수 없다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미사야 1시간 이상의

시간을 비워야 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기도를 바빠서 못했다는 말은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 기도를 거창하게 무조건

1시간 이상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일까요?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대화를 할 때, ‘1시간 이상은 해야 해.’

라고 생각하고서 마주하십니까?

아닙니다. 대화가 길어지는 때도

있겠지만, 별 할 말이 없으면 대화를

멈추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1시간 이상이 될 수도 있고,

10분 이내의 대화도 가

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대화가

바로 ‘기도’입니다.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한다면,

상대방을 너무나 사랑하면 굳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또 내 말보다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있는 그 자리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에 있어 바쁘다는 말은

우선순위에 밀려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사랑의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주님은

늘 제일 나중이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님은 몇 번째인가요?

(인천교구 순례지, 성체 순례 성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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