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1월 26일 [(녹)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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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11-26 | 조회수1,02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1월 26일 목요일 [(녹)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제1독서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18,1-2.21-23; 19,1-3.9ㄱㄴ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바빌론이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새들의 소굴, 소굴이 되고 말았다.” 맷돌처럼 큰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며 말하였습니다.“큰 도성 바빌론이 이처럼 세차게 던져질 터이니 다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노래 부르는 이들, 이들의 소리가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고 어떠한 기술을 가진 장인도 다시는 네 안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맷돌 소리도 다시는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네 안에서 비치지 않고 네 안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세력가였기 때문이며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다.” 많은 무리가 내는 큰 목소리 같은 것을 들었습니다. 권능은 우리 하느님의 것. 의로우시다. 자기 불륜으로 땅을 파멸시킨 대탕녀를 심판하시고 되갚아 주셨다.” 영원무궁토록 올라간다.” 말하였습니다.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 고 기록하여라.” 화답송 시편 100(99),1-2.3.4.5 (◎ 묵시 19,9ㄴ)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여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여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여라. 찬양하며 그분 앞뜰로 들어가라. 그분을 찬송하며 그 이름 찬미하여라. ◎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여라.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여라. 복음 환호송 루카 21,28 참조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복음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복음입니다. 21,20-28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포위된 것을 보거든,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큰 영광을 떨치며‘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사람들이 볼 것이다.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영성체송 시편 117(116),1-2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예루살렘의 성전은 두 번 파괴됩니다. 기원전 8세기 바빌론에 의해서, 그리고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서입니다. 성전이 파괴된 사건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이었기에, 이를 계기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자신들의 죄를 성찰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이 두 사건을 마치 하나의 사건처럼 연결합니다. 시대적으로 요한 묵시록에서는 로마가 성전을 파괴한 사건을 나타내려고 ‘바빌론’이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묵시록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아주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마치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전하는 말처럼 들립니다. 떠올리게 할 만큼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가며 포로가 되고 삶의 터전은 무너집니다. 전쟁을 피하기 힘든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더 큰 고통을 받습니다. 성경은 이런 재난의 상황을 말하면서 백성들의 행동을 신앙 안에서 성찰합니다. 여기에는 하느님께서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재난을 허락하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 안에서 멸망의 이유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종말에 관한 말씀이 우리의 잘못이나 죄를 탓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왜?’라고 질문합니다.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우리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말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재난의 상황에서도 우리를 속량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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