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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1.2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27 조회수1,445 추천수5 반대(0) 신고

(인천교구 순례지,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 성모당)

2020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제1독서 묵시 20,1-4.11―21,2
나 요한은 1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지하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2 그 천사가 용을, 곧 악마이며
사탄인 그 옛날의 뱀을 붙잡아
천 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하였습니다.
3 그리고 그를 지하로 던지고서는
그곳을 잠그고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뒤에
사탄은 잠시 풀려나게 되어 있습니다.
4 나는 또 어좌들을 보았는데,
그 위에 앉은 이들에게 심판할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상에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11 나는 또 크고 흰 어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분 앞에서 달아나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12 그리고 죽은 이들이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들이 펼쳐졌습니다.
또 다른 책 하나가 펼쳐졌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이들은 책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13 바다가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고, 죽음과 저승도 그 안에 있는
 죽은 이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14 그리고 죽음과 저승이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 못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
15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21,1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 루카 21,29-3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29 비유 하나를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30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31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33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올해 5월 4일부터 성지 안에

봉안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운영을 시작할 때가, 사실 제 어머니께서

 하늘나라에 가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장례의 중요함을 누구보다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고인뿐 아니라, 슬픔 속에

빠진 유가족을 위해서도 이 시간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안치 예식을 최대한 정성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노력 중의 하나가 새벽이나

밤에 홀로 봉안당에 내려가서 안치된

유골함 앞에 앉아서 고인을 위해

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기도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지요.

이 부분을 어느 신부님께 이야기하니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무섭지 않아?” 신부의 한자어를 보면,

귀신 신(神)자에 아비 부(父)자를 씁니다.

즉, 귀신 아버지라는 것이지요.

신부라는 호칭만 보면 돌아가신 분은

무서워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나약함을 가지고서는

두려운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긴 예전에 군대에서 자정에 무덤 옆에서

보초 근무를 설 때가 있었는데 정말로

무섭더군요.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무섭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분은 살아있는

사람보다 훨씬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서울 수가 없습니다.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무섭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공포가

밀려듭니다. 내가 만든 그 마음

때문에 말이지요.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세상 마지막 날의 징표를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잎이 돋는 것을 보고 여름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세상 마지막 순간에는 여러 징표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마지막 순간’이라고 하니 무서울까요?

무섭고 공포의 시간이 될 것 같지만,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라고 하십니다.

세상 마지막 순간이 하느님 나라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하긴 죽음도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요.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 모습이 세상 마지막 순간을 위한

준비가 될 것이며,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는 준비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주님의 가르침과

여러 표징으로 미리 예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말씀과 표징은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라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 주신

모든 것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에 왔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그 순간을 마무리하는 것,

길 위에 내딛는 발걸음마다

그 여정의 끝을 찾는 것,

좋은 시간들로 삶을 채우는 것.

그것이 지혜다.

(랠프 왈도 에머슨)

제대로 된 칭찬을 합시다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였던

로버트 로젠탈은 한 초등학교에서

지능지수 검사를 한 뒤에,

상위 20%의 명단을 담당 교사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상위

20%가 아닌, 무작위로 뽑은

명단이었습니다.
8개월 후 아이들의 지능지수를

재검사했습니다. 그 결과 놀라운 점이

나타났습니다. 그 무작위로 뽑혔던

20%의 아이들이 지능지수도 높아졌고,

성적도 더 올라갔다는 점입니다.
이 실험은 기대와 칭찬이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바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담임교사의 칭찬이 이렇게 변화시킬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칭찬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요?

칭찬은 이렇게 하라고

로버트 로젠탈은 말합니다. 
1. 타고난 재능보다 의지를 칭찬해라.
2.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해라.
3. 구체적으로 칭찬해라.
4. 공개적으로 칭찬해라.
5. 칭찬을 행동으로 보여줘라.
제대로 된 칭찬을 하십니까?

(인천교구 순례지,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 순교자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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