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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시기: 제1,2독서와 복음 모두 주님을 기다린다. 깨어 있어라... 주해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28 조회수1,114 추천수0 반대(0) 신고

1독서 (, 주님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3,16-17,19;64.2-7

16 주님, 당신만이 저희 아버지시고, 예로부터 당신 이름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17 주님, 어찌하여 저희를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희 마음이 굳어져 당신을 경외할 줄 모르게 만드십니까? 당신은 종들을 생각하시어, 당신의 재산인 이 지파들을 생각하시어 돌아오소서.

19 ,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당신 앞에서 산들이 뒤흔들리리이다. 64.2 당신께서 내려오셨을 때 산들이 당신 앞에서 뒤흔들렸습니다. 3 당신 아닌 다른 신이, 자기를 고대하는 이들을 위하여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예로부터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하였고,아무도 귀로 듣지 못하였으며, 어떠한 눈도 보지 못하였습니다.4 당신께서는 의로운 일을 즐겨 하는 이들을, 당신의 길을 걸으며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죄를 지었고 당신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당신의 길 위에서 저희가 늘 구원을 받았건만, 5 이제 저희는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저희의 의로운 행동이라는 것들도 모두 개짐과 같습니다. 저희는 모두 나뭇잎처럼 시들어,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6 당신 이름 부르며 경배드리는 자 없고, 당신을 붙잡으려고 움직이는 자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저희를 외면하시고, 저희 죄악의 손에 내버리셨기 때문입니다. 7 그러나 주님, 당신은 저희 아버지십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독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3-9

형제 여러분, 3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4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렇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에 튼튼히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9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분부한다.

35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 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돌아와 너희가 잠자는 것을 보는 일이 없게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께어 있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부터는 대림 시기입니다. 교회력으로는 오늘이 새해의 첫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준비하면서 다시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오늘 제1독서, 2독서, 복음은 모두가 주님의 오실 날을 기다리는 말씀으로 되어있습니다.

1독서에서는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께, 당신 종들, 당신의 재산인 이 지파들을 생각하시어 돌아오시라고 합니다.

2독서에서는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이 풍요로워져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는, 조심하고 깨어 지키고,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고 제자들에게 거듭 말씀하십니다.

 

 

 

다음은 제2독서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1서 주해입니다.

당대의 일반 편지 양식과 비교하여 바울로의 편지가 다른 점은 무엇보다도 카아레인(인사합니다)이라는 간단한 은총”(카리스)평화”(에이레네)의 축원으로 대체한다는 점이다. 은총과 평화는 바울로에게 있어 하느님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선사하시는 구원을 표현하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개념이다.

 

특히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행위 전체를 종합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2고린 8.9). 그래서 그런지 바울로 편지들의 시작과 끝은 모두 은총의 축원을 포함한다. “평화는 여기서 내적 평온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느님과의 관계 온전함”(히브리어 샬롬은 온전하다는 뜻을 내포한다)을 표현한다.(로마5.1참조)

 

선사된 하느님의 은총”:“선사된”(주어진)이라는 수식어가 붙음으로써 은총의 무상적 성격이 강조되어 있다. 바울로는 주어진 은총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일부 사본에는 나의 하느님에서의 나의가 없다.

 

바울로는 갈라디아서를 제외하고는 서두인사 다음에 의례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한다(2고린에는 찬양”). 갈라디아서 서두에 하느님께 대한 감사가 없는 이유는 갈라디아 그리스도 신앙인들의 상태가 바울로를 격정에 사로 잡히게 할 만큼 나빴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편지의 서두인사 다음에 즉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바울로의 태도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를 선사받고 사는 (1.3참조)신앙인들이 하느님께 응답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바로 감사의 태도라고 바울로가 이해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여러분에게 선사된 하느님의 은총”(4)을 고린토 교우들이 풍요롭게 받았다고 하면서 그 여러 은총의 선사가운데 특별히 언변”(로고스)“지식”(그노시스)을 말한다는 점은 편지 후반(특히 은총의 선물에 관한 12-14)과 관련하여 유념할 점이다. “지식의 풍요함 때문에 우쭐해져서 오히려 사랑을 소홀히하는 고린토 교우들의 상황을 배경으로 바울로는 지식과 언변을 매우 비판적으로 다룬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건설합니다(8.1:아울러 12-14장 중간에 있는 13장의 문맥도 참조).

 

개억적 2격으로 보아 그리스도께 대한 증언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겠다. “그리스도께 대한 증언은 바울로와 같은 선교사들이 했던 복음선포를 뜻한다.

 

주님의 날은 구약성서에서 종말에 있을 야훼의 심판의 날. 분노의 날을 가리킨다(아모5.18: 요엘 3.4=사도2.20 스바1,14-23참조). 그런데 이 야훼의 날은 불의한 이들에게는 처벌의 날이지만 의인들에게는 구원의 날이기도 하다. 바울로에게 야훼의 날주 예수 구리스도의 재림의 날이다.

 

성실하신 분이십니다진실하십니다로 번역. 여기서 신실하다/진실하다라고 번역되는 형용사 피스토스는 저짓이 없다는 의미의 진실하다를 넘어서 약속을 이행할 능력 면에서 믿을 만하다는 의미가 있다. 하느님이 당신 약속에 진실하시다는 것은 구약성서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다. 이 하느님의 신실성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친교에도 부르시는데 데서 현실화한다고 바울로는 본다.

 

1-2절에 나왔던 부름받은 처지에 대한 언급이 다시 나온다. “친교”(코이노니아)라는 말이 10,16에서는 그리스도와의 성사적 친교에 적용된다. 바울로가 흔히 사용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칭호에 그분의 아들이라는 말이 첨가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할 만하다. 바울로에 의하면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신예수를 통해 하느님의 아들들이 되어 (갈라 3,26;4.6참조)“하느님과 그의 아들 예수의 친교에 초대받았으며, 더나아가 영의 친교”(성령에 의해 가능해지는 친교)에 초대 받았다.

 

8절에 나오는 주 예수 날이 구약성서적 배경에서 심판의 날이라는 성격도 있다는 사실을 (“나무랄 데 없는이라는 수식어 참조)고려할 때 ,하느님의 분노나 심판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당신 아들과의 친교로 부르셨다9절은 기쁜 음조를 띠고 있다(1데살1.10, 갈라 4,1-7; 로마 8.14-15, 29.30 참조)

 

 

다음은 오늘 복음서 주해입니다.

 

마르코는 주인을 기다리는 문지기 비유(34-36)를 채집.수록하면서 그 앞뒤에다 종말 일시를 모르니 항상 대비하라는 훈시를 덧붙인다.(33.37)

 

33절을 가필하면서 32,35절을 참작했다.

 

34-36절의 비유도 많이 수정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올는지 모르니 항상 대비하고 있으라는 뜻으로 이 비유를 말씀하셨겠는데 비유의 원상태를 복구하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의 나라는 여행을 하려고 자기 집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습니다. 그는 문지기에게 깨어 지키라고 명령했습니다(34). 문지기는 깨어 지킬 것입니다. 집주인이 저녁,한밤중,닭이 울 때 혹은 새벽 중 언제 돌아올는지 문지기는 모르기 때문입니다.(35)

 

문지기는 집주인이 갑자기 돌아와서 자기가 잠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36).” 비유의 원상태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 비유(루카12,35-3738),하느님의 나라는 도둑처럼 얘기치 않은 때 온다는 단절어와 그 뜻이 놀라우리만큼 똑같다. 마르코가 손댄 중요한 개작 세 가지만 지적한다면 문지기”(단수 3인칭)여러분”(복수 2인칭)으로 고침으로써 마르코는 독자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자기 종들에게 권한을, 곧 각자에게 제 할 일을 맡겨 주고”(34ㄴ절)마태 25,14=루카 19,12-13 전승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비유를 인자 내림(26) 문맥에 배치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비유가 인자 내림에 관한 비유로 탈바꿈했다.

 

유다인들은 본디 밤을 삼등분했다(루카 12.38). 로마인들은 6,48; 13,35에서처럼 밤을 사등분했는데 이 구별이 예수시대 이스라엘에도 통용되었다.

 

네 제자에게 (“여러분에게”)이르신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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