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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1.3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30 조회수1,206 추천수2 반대(0) 신고

수원교구 성지, 구산성지 성당

2020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제1독서 로마 10,9-18

형제 여러분,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복음 마태 4,18-22

그때에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인터넷에서 배우 차승원 씨와

배정남 씨의 패션쇼 런어웨이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두 분은 모델로

연예계를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일까요? 이들의 런어웨이

장면은 정말로 멋졌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에서는 무대 뒤의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사람,

무대 설치를 담당하는 사람,

진행 담당을 하는 사람 등이 보였습니다.

또 이 패션쇼를 위한 옷을 만든 디자이너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이 패션쇼를 보고 있는

객석의 관객들도 있었습니다. 참 많은 사람이

이 패션쇼를 위해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그 모든 사람이 있기에

빛나는 패션쇼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는 아무리 카리스마가 있고,

능력이 뛰어나도 해도 온전하게

이 패션쇼를 진행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마 도중에 “도저히 못 하겠다.”라고

소리치며 도망칠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더 멋집니다.

그리고 의미도 생깁니다. 종종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 혼자 다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 혼자만 빛나는 때는

없습니다. ‘함께’의 중요성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신데 혼자서

못하시겠습니까? 혼자서 충분하십니다.

오히려 인간 제자들로 인해서

더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 뜻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이럴 바에는 예수님

혼자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은 ‘함께’였음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능력 있고 재주 많은

사람을 제자로 뽑으신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나약함이 가득한 사람을

제자로 뽑으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자마자 곧바로 배와 그물을 버리고

또 가족도 뒤로 하고 따라갑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제자단이라는

 공동체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하기 위해서는

속된 욕망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세속적인 행실, 물질적 재산, 육신의

부모라는 애착을 버린 제자들의

모습에서 ‘함께’ 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많음을 깨닫게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기의 것만을 챙길 수

있을까요? 또 자기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욕심과

이기심을 모두 내려놓아야 함께

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한 공동체를 이룹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내려놓지

못해서 함께하지 못하고,

꽉 움켜쥐고 있어서

분열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

내가 잘 지내는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몇 번이고 물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빌헬름 슈미트)

뭉치면 강합니다.

솜뭉치 1Kg과 쇳덩어리 1Kg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요?

솜뭉치라고 하니까 쇳덩어리가

더 무거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둘의 무게는 똑같이

1Kg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입으로 불면 날아가는 솜도 뭉치고

뭉치면 쇳덩어리와 같은 묵직한

무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렵다, 힘들다 등의 부정적인

말들이 가득한 세상처럼 보입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서 더 이런

말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 이렇게

힘겨워하는 이웃들이 많은 지금,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를 떠올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항상 함께함으로 잘

극복했습니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나를 위해서만 행동한다면 개인의

힘만 발휘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고

함께한다면 우리의 힘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그 기도의 힘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뭉치면 분명 강합니다.

(수원교구성지,구산성지 김성우 성인 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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