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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2.0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02 조회수2,014 추천수4 반대(0) 신고

(수원교구 성지, 남한산성 순교 성지 피에타상)

2020122

대림 제1주간 수요일

1독서 이사 25,6-10

그날 6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9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복음 루카 15,29-37

그때에 29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로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성지에서 제가 진행하는 전례가

자기 본당과 다르다면서 항의(?)할 때,

또 제가 쓰는 글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듣게 될 때면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제 생활을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벌써 20년이 넘었는데,

전례에 어긋난 것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쓴 글이 자기 생각과

다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항의나 부정적인 말을 듣게 되면

제 안에서 교만이 움터 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사제서품을 받을 때 겸손한 사제가 되게

해달라고 주님께 그렇게

기도했으면서도 말입니다.

사실 이런 제가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바리사이들은 자신을

선택받은 사람으로 간주해서 교만해졌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

겸손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교만의 시작은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라는 생각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다르다는 생각에 교만이 나오고,

이 교만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없게

만들지요. 그런데 성경을 잘 보면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나 자신이

구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분명히 볼 수가 있습니다.

군중이 갖가지 병을 앓고 있는

병자들을 주님께 데리고 옵니다.

군중이 주님께 이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어떤 의사도 이 병자를

고칠 수 없지만, 예수님만큼은

다른 의사와 달리 병자를 고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병자들의

믿음보다도 군중의 믿음으로

병자들의 병이 낫습니다.

심지어 별 뜻 없이 주님의 발치에

온 사람들도 병이 낫게 됩니다.

아픈 당사자가 아닌, 믿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서 아픈 당사자가

큰 혜택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사흘 동안 굶주리고 있는

군중을 가엾이 여기셔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라고 물으시지요.

그들은 빵 일곱 개와 조금의 물고기를

내어놓았습니다. 그 결과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사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습니다.

병자들의 믿음보다 군중의 믿음으로

병자들이 나을 수 있었고, 군중이 가져온

양식보다 제자들의 가지고 있었던 모든 양식

(비록 그 양은 빵 일곱 개와

약간의 물고기로 아주 적었지만)

을 통해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구 때문에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도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교만의 자신을 만들어야 할까요?

그들이 나의 구원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말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순간을 사랑하라.

그러면 그 순간의 에너지가

모든 경계를 넘어

퍼져나갈 것이다.

(코리타 켄트)

재능보다 노력에.

예전에 어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를 신부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거리를 둘 것 같아서, 신부 복장이 아닌

일반 평상복을 입고 참석했습니다.

처음 서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에 그룹원 중 한 명이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습니다.

나중에 사실을 말하더라도 지금은

아닌 것 같았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서 글 쓰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매일 묵상 글을

쓰고 있고, 책도 출판했으니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하면 거짓말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의 답에 사람들은 그럼 작가예요?”

라고 묻습니다. 이 물음에 글쎄요.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지요.

왜냐하면, 그렇게 오래 글을 썼어도

작가라고 내세울 정도의 글솜씨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20년 넘게 글을 써 왔어도

이 정도인 것을 보면 재능 자체가

제게는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재능은 없지만 그래도 20년 넘게

글을 써서 이 정도가 되었다고.

재능을 뛰어넘는 노력이 더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왜 재능만 찾을까요?

재능보다 더 집중해야 할 것은 노력입니다.

(수원교구 성지, 남한산성 순교성지성당)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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