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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02 조회수1,903 추천수12 반대(0)

색이 있어서 색을 보는 것 같지만 색을 보는 눈이 있어야 색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적색, 녹색, 청색 등의 3가지 광수용체만 있어서 가시광선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새우는 16개의 광수용체를 가지고 있어서 사람이 보지 못하는 자외선과 편광까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본다는 측면에서 사람은 새우보다 보는 능력은 적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지식은 은하계를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신앙은 우주의 시작과 끝도 볼 수 있습니다. 우주의 시작과 끝이신 하느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색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교회의 전례는 제의 색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백색 제의는 순결과 영광을 의미합니다. 홍색 제의는 피와 열정을 의미합니다. 자색 제의는 참회를 의미합니다. 녹색 제의는 성령과 희망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색을 보는 것은 새우보다 못하지만 색을 통해서 구원의 의미를 찾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소리가 있어서 듣는 것 같지만 귀가 있어야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16에서 2만 헤르츠의 소리를 듣지만 개는 65에서 5만 헤르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개는 고막에서 소리를 22배로 증폭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은 개보다 못하지만 소리를 통해서 구원의 의미를 찾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회심하였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웃음소리는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됩니다. 소리는 언어가 되었고,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되었으며, 언어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사람은 생존의 변방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람이 생존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의미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무지개는 하느님과 사람이 맺은 표징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햇빛을 받으면 역사가 되었고, 달빛을 받으면 신화가 되었습니다. 역사와 신화는 문명과 문화가 되었고, 과학과 기술이 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은 사람의 미래를 새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인터넷과 양자컴퓨터의 만남은 인류가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견고한 성을 만들 것 같습니다. 사람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문명과 문화를 건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만을 위한 성과 문명은 무너지고 말았던 바벨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만을 위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그 집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는 견고한 성읍이 있네. 그분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네.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가게 너희는 성문들을 열어라. 한결같은 심성을 지닌 그들에게 당신께서 평화를, 평화를 베푸시니 그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믿기보다, 주님께 피신함이 훨씬 낫다네. 제후들을 믿기보다, 주님께 피신함이 훨씬 낫다네.” 그렇습니다. 문화와 문명 그리고 과학과 기술의 집이 아닙니다. 더불어 사는 모든 이웃과 연대하는 삶입니다. 환경을 보존하고 보호하는 삶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런 삶이 결코 무너지지 않는 집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예수님께서는 누추한 구유에서 태어나셨지만 구유는 2000년이 넘는 지금도 무너지지 않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재물, 권력, 명예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련의 바람, 고통의 바람, 근심의 바람이 불면 곧 무너지고 마는 집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집은 시련의 바람이 불어도, 고통의 바람이 불어도, 근심의 바람이 불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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