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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이 주교에게 - 무상의 특별한 선물인 카리스마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03 조회수1,083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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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무상의 특별한 선물인 카리스마


나는 내 신비체를 괴롭히는 많은 악에 대해서 너에게 말해 왔다. 이제는 내 교회를 풍요하게 하는, 무한히 풍요하게 하는 선들에 대해서 말할 때이다.

영적 부요함의 일부인 카리스마는 거저 받는 특별한 선물이니 만큼 거저 주어야 하는 선물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를 받게 된 복된 사람은 절대로 교회의 '교계제도"와 대립해선 안된다. 성직 자체가 하나의 카리스마이고, 특별한 카리스마와 같은 기원, 같은 본질, 같은 목적을 가진 통상적 카리스마이기 때문이다. 주교나 사제 서품에 따른 카리스마의 정당성 여부는 교회가 판단하고, 한 영혼에게 내린 카리스마의 진위는 주교가 판단한다.


카리스마를 받은 영혼을 공식적으로 판단하기에 앞서서 주교들은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하고, 스스로 기도하면서 다른 이들도 기도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의 판단 결과에 따라 아주 많은 영혼들에게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교는 두려움이나 거리낌, 혹은 더 떳떳하지 못한 구실로 판단을 무기한 미루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하느님의 계획을 중단시키거나 가로막거나 빗나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만이란 지장 때문에 놓치고 마는 선이 얼마나 많겠느냐!


아들아, 주교들이 그렇게 처신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너는 몹시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흔히 질투 때문이다. 자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시기와 질투가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 진정한 카리스마, 곧 성령께로부터 오는 카리스마는 이를 입은 이를 항상 높이 돋보이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주교의 품위를 떨어뜨리거나 흐리게 할까 봐 꺼리는 것이다.

그렇게 된 경우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사건을 보고 판단하는 방식이 겸손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면, 그들은 매우 심각한 악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령께서 내리시는 특별한 카리스마는 통상적 카리스마들을 보완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꺼리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영혼들의 공동선을 위하여 그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언제나 오로지 기쁨을 드러내며 감사를 드려야 할 일이다.

그러니 교계 제도와 진정한 카리스마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 결코 대립이 있어서는 안된다. 일정한 전력이 부하(負荷)된 전선에 다른 전력을 끌어넣으면 그 두 힘이 섞여 하나의 전력이 되므로 아무런 지장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물이 들어 있는 잔에 물을 좀 더 넣으면 물과 물이 섞이므로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과 같다. 교회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저런 지장 때문에 놓치고 마는 선이 얼마나 많겠느냐! 여기서 말하는 지장 요인은 모든 악을 일으키는 인간의 교만 및 내 교회 사람들을 갈라놓고 눈멀게 하여 할수만 있다면 교회를 파괴할 수도 있는 시기와 질투이다.


불과 물이 거대한 트럭처럼 덮쳐 누르리라


한 번 더 말하자면, 정화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 침식 작용이 극에 이르면 붕괴된 낙반과 흙더미가 불가항력적으로 쏟아져 내리면서 일체 만물을 휩쓸고, 인간의 교만이 만들아낸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일찍이 지상에서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맹렬히 일어나리니, 불과 물이 거대한 트럭처럼 덮쳐 누를 것이고, 이어서 바람과 지진과 홍수와 기근과 갈증 등이 죄 속에 빠진 여자처럼 제 몸을 더럽힌 인류 안에서 정화 작업을 완수할 것이다.


사람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의 길로 돌아오라는 나의 거듭된 호소에 '아니오'라고 대답했고,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와 '자비'와 '인내'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했으며, 나와 너희 '천상 엄마'의 수많은 개입에 대해서도 "아니오"라고 부정함으로써 구원의 길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그들은 하느님 '정의'의 맛을 보게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내 교회 주교들은 거룩하고 겸손한 사람들로서, 하느님의 '말씀'인 내가 '강생의 신비'로 시작한 길을, 곧 거짓이 아닌 참된 길, 가난과 순종의 길을 그 출발점에서부터 겸손하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만 비로소 깨어진 균형과 파괴된 질서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와 뭇 민족들의 무정부 상태에 대해서 네게 말한 적이 있는데, 네가 알다시피 무정부상태란 정신적 영적 무질서를 뜻하고, 질서를 거부하고 무질서를 찬양함을 뜻한다. 그러나 나는 이와 반대로 거룩한 주교들과 함께 거룩한 사제들을, 그리고 거룩한 사제들과 함께 온전히 거룩하게 된 내 교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네게 강복한다. 너와 더불어 네가 알고 있는 그 '꽃'에도 강복한다. 내 성심과 우리 천상 엄마의 성심이 매우 아끼는 꽃이니 말이다.

(1978년 11월 22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눈물은 나약의 표시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단지 한 번만 눈물을 흘린 줄 알지만, 아니다, 아들아, 그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무척 사랑한 도시 예루살렘을 보면서도 나는 눈물을 흘렸거니와(루가 19,41 참조 -역주), 내 눈물은 마음으로 억제할 수 없는 비통함이 밖으로 넘쳐나온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나약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지극히 사랑한 그 도시의 멸망과 상처 및 신적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될 그 운명을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끈질긴 고집으로 하느님을 조롱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죄악 속에 그대로 머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참으로 어리석다! 내가 이미 말한 것과 같이, 하느님께는 '자비'와 '정의'가 하나이고 같은 것이기에 분리할 수 없는 것임을 그들은 잊고 있는 것이다.


아들아, 나는 모든 도시 중에서 가장 사랑한 예루살렘 때문에만 눈물을 흘린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번번이 눈물을 흘리곤 했으니, 그것은 사랑하는 영혼들의 멸망 때문이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갈바리아와 제단 위에서 속죄와 화해의 제물로 서슴없이 나 자신을 바칠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니 말이다! 나는 또 유다 때문에도 눈물을 흘렀다. 네가 이미 알다시피, 그가 나를 배반해서라기보다는 차라리 그 영혼이 교만하고 방탕하고 뉘우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유다는 나의 '사랑'에, 내 은총의 모든 충동에 반항했다. 단 한 번이라도 그가 뉘우치기만 했다면 나는 기뻐하며 그를 구원했을 것이다.

이것은 수가 엄청 많아진 이 시대의 유다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이다. 끈질지게 나를 거부하는 내 숱한 아들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내 눈물은 나약의 표시가 아니다. 수많은 영혼들의 멸망으로 갈기갈기 미어지는 내 마음의 비통함이 밖으로 넘쳐흐르는 것이다. 그 영혼들 중 다수가 내게 그들 자신을 봉헌한 자들이다.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셨다


모든 엄마 가운데서 가장 강하고 용감하신 내 어머니께서는 수많은 사제와 신자들의 거의 전적인 무관심을 보이면서 비탄의 눈물을 흘리셨고 지금도 흘리신다.

어머니께서는 내 교회와 온 세상이, 다가올 폭풍의 전조인 무서운 어둠에 잠겨 내 자비로운 성심의 호소에 귀를 막은 채 겪고 있는 중대한 위기를 잘 알고 계신다.


죄의 자식들아, 웃지 말아라! 어둠의 자식들아, 웃지 말아라! 하느님 정의의 칼이 너희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다.


아들아, 내가 지극히 사랑하며 아낀 도시 예루살렘을 위해서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느냐?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에게 보낸 이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를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너희 성전은 하느님께 버림을 받아 황폐해지리라......  네 성전 건물을 쌓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마태 23,37-38; 24,2 참조 -역주)


씨앗을 뿌려야 한다


오늘날의 내 교회가, 내 교회들과 도시들과 나라들이, 예루살렘보다 더 나을 게 있겠느냐? 그러나 너희 구원을 위해서 내가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느냐? 예루살렘은 나를 거부하고, 내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내 말을 받아들인 착한 이들도 없지 않았다.


현재도 도시들과 민족들은 역겨운 이교에 빠져서 나를 거부하고 다시 부당한 사형선고를 내리고 있다.

아들아, 하느님의 정의는 가차없고 만류할 수 없는 엄위를 떨칠 것이다.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나는 언제나 말해 왔다


너는 알아차렸겠지, 자칭 착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람이 된 '하느님의 말씀'인 내가 교회 안에 참으로 현존한다는 것을 얼마나 믿기 어려워하는지를? '하느님의 아들'에게 교회 시민권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지를?

그들이 더욱더 못 받아들이는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어떤 사람을 통해서 드러날 수 있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모든 영혼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이는 내 무한한 사랑의 요구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영혼들과의 통교를 뜻하고, 통교는 무엇인가를 나누어 준다는 것을 뜻한다.

나의 경우, 통교는 영혼들에게 빛을 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나와의 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영혼은 매우 더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믿음과 겸손과 사랑에 의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 덕행들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참된 믿음이 있다면


그리스도교계는 모순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이 된 하느님의 '말씀', 따라서 참 하느님이며 참 사람인 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게 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부인함으로써 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다면, 인류가 창조된 이래 지금까지 나 하느님은 언제나 그들에게 말해 왔다는 것을 믿을 터이다.

나는 아담과 하와에게 직접 말을 건넸고, 카인에게도 말을 건넸다.

백성의 족장들에게, 그리고 예언자들을 통해서, 또 성인들을 써서 말하곤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내가 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냐?... 사람들이 그런 식의 태도를 취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너는 알겠느냐? 그것은 그들의 물질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이고, 물질주의자들의 생각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말을 한다는 것은 서로 통교한다는 것이다. 서로 통교한다는 것은 어떤 것, 곧 어떤 생각이나 진실, 혹은 거짓까지도 표현함을 뜻한다. 거짓은 영혼이 악으로 기울어진 자들이 흔히 쓰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인간 본성의 기본적인 욕구인데, 사람들은 그 본성의 창조주에 대해서는 그것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그들이 무엇을 알겠느냐?


예컨데, 내가 너를 써서 말하고 있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어찌하여 못 믿는단 말이냐? 나는 성 바오로를 써서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바오로는 회개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느냐? 나는 또 성 아우구스티노를 써서 말하기도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우구스티노는 회개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느냐? 게다가 오랜 세월에 걸쳐서 나는 얼마나 여러 아우구스티노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해 왔느냐?.... 나와 너의 영혼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그들이 무엇을 알겠느냐?

"나는 예수님께서 살아 계신 '말씀'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라고 말하고 나서 예수가 어떤 영혼과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부정한다면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한 말이 먼저 한 말을 뒤집기 때문이다.

내 교회 안에는 이러한 모순이 얼마나 많은지! 나의 참된 '현존'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의 생활로 그 말을 부정하는 사제들의 태도가 그것이다. '사랑의 성사' 안에 내가 참으로 현존하고 있음을 믿는다면, 나로 하여금 성체성사의 제정이라는 '기적'을 행하게 한 이유도 믿어야 할 것이다.

오, 아들아, 내 성직자들의 생활과 믿음을 속속들이 분석하고자 한다면, 결국 통탄할 결론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기도하여라, 아들아, 지치지 말고 기도하여라. 네게 강복한다.

(1976년 2월 25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주님, 살려 주십시오!"


아들아, 사람이 영예와 존경, 재산과 건강, 행운과 재능과 교양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결국 망해버리고 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루가 9,25 참조 - 역주)

착한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근본적인 영적 쇄신, 곧 회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권고를 진지하게 숙고하면 영웅적인 덕행을 쟁취할 수 있고, 완덕과 성화를 실현할 수 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진지하게 묵상했기 때문에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한 보물(마태 14,44 - 역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 행복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단호히 이탈함으로써 죄를 끊어버리고, 갈바리아의 길을 따라 나를 따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의 시들지 않는 월계관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아들아, 죄 상태에 있는 영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돌과 같다. 중력의 자연 법칙에 의하여 낙하할수록 죄의 격정의 무게가 더 커지는 것이다.

어떤 자연 법칙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돌의 운동을 정지시키거나 역행시킬 수 있겠느냐?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 법칙이란 없다. 더 높은 차원의 법칙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홀로 나만이 초자연적인 법칙, 곧 하느님의 '힘'이니, 멸망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죄인을 멈추게 할 수 있고, 그 추락을 '생명'을 향한 상승 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죄인들에게 가장 간절히 해 주고 싶은 일이다. 모든 죄인들, 특히 정신과 관능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마에게 끌려가는 사제들에게!

그런 도움을 얻으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보고, 내 자비로운 성심을 부르며, 베드로를 본받아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 "주님, 살려주십시오! 빠져 죽겠습니다!"(마태 14,30 참조 - 역주)

오, 아들아, 그러면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고 얼마나 재빨리 손을 내밀겠느냐!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많은 사제들이 영벌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느냐?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소름끼치는 비극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우리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지옥이란 없으며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므로 사람에게 영벌을 허락하실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속임수를 퍼뜨렸으니, 이 보다 더 악마적인 속임수가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사설(邪說)을 입밖에 내는 자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삭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아, 나는 세상에 온 빛이다. 빛이 어둠 속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어둠은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3.9-10 참조 - 역주).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내가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의 협력이 필요하다.

너희는 나의 지체들이고, 모든 지체는 단 하나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내게 너희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본받아, 또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본받아, 너희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너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내가 그 무게를 덜어 주려고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아들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니 아무도 면할 수 없고, 하물며 내 성직자인 너희는 더욱 면할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인도한다. 뒷걸음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반감을 가진 저 사람들은 내 '복음'을 거부하고 내 '진리'를 왜곡한 자들이니,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이 전하는 말에 내 은총의 도장을 찍었건만, 그들은 무엇이든지 모조리 배척해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제물이 된 영혼인 마리아 발토르타(1897년 이탈리아 카세르타에서 출생. 1961년 선종 - 역주)로 하여금 내 말을 받아쓰게 하여 놀라운 저서가 되도록 하였다(전부 열권인 이 책은 본서를 낸 스위스 Parvis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원주). 이 작품의 저자는 물론 나다. 그러자, 네가 알다시피, 사탄이 길길이 뛰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너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이 책에 반감을 표하며 배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묵상한다면 수많은 영혼들이 엄청난 선익을 얻게 되련마는! 그만큼 이 책은 진실하고 견실한 영적 양식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워진 교회 안에서라야 큰 성공을 거두기로 되어 있는 책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숱하게 발간되는 거만한 신학자들의 쓰레기 같은 책이나 잡지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듯이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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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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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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