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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예수님이 주교와 사제에게 - 하느님의 뜻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08 조회수1,122 추천수0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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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하느님의 뜻


아들아, 내 주교들과 내 사제들과 내 신자들은 어떠해야 하겠느냐? 내가 원하는 바를 받아 써라.


이 세대 사람들이 내가 오래 전부터 간절히 바란 대로 생활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 필수적인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나 자신이 조처하겠다.

내게는 수단이 없지 않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지만, 나로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겠다.

너희는 성서를 읽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사제들과 학자들의 마음이 단단이 굳어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만, 너희도 그들보다 덜하지 않다. 그토록 무디고 굳어 있는 마음으로 또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냐? 이미 여러 징표를 주었건만 아직도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냐?

나는 내 교회가 쇄신되기를, 현재 묻어 있는 더러운 얼룩들을 씻고 깨끗해지기를 바란다.


착각은 금물이다. 너희에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자비'의 하느님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 자비를 가지고 어떻게 했느냐?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다만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어째서 이해하려고 들지 않느냐? 아무리 듣고 싶지 않아도 지옥을 파괴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내 정의를 파괴할 능력도 없는 것이 너희이다.

정의에 의하여 악인과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내 '아버지의 집'에서 쫓아내지 않을 수 없다면, 그때에는 내가 더 이상 자비의 하느님이 아니란 말이냐? 게다가, 선인이건 악인이건 같은 자(尺)를 써서 잰다면 나는 어떤 심판자이겠느냐?

그러니 너희의 그릇된 생각대로 일단 정의를 제거하고 나면, 공심판도 사심판도 제거해야 할 것이고, 지상 생활은 귀양살이의 땅에서 시련을 겪는 기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모든 것이 현 상태대로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좋은 알곡과 가라지를 따로 떼어놓을 필요도 없고, 악인과 선인 사이의 구분도 없어질 것이며, 나의 가르침은 오류로 더럽혀지고 말 것이다....


하느님의 뜻


아니다. 아들아, 나는 틀릴 수가 없다. 너희는 나의 가르침과 모범과는 대조적인 생활 양식을 지어내었다.

나는 '길'이다. 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교나 사제나 신자거나 모두 내 모범을 따라야 한다.

나는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따랐다. 그러나 오늘날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전념하는 사람들이 있느냐?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 애쓰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러니 내 목자와 사제와 신자들은 어떠해야 하겠느냐? 내 복음보다 명괘하고 분명한 것은 달리 없건만, 그들은 교만으로 말미암아, 혹은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인 사욕으로 말미암아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를 못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내 천사들은 그 소식을 알리려고 세상의 유력자나 부자들에게 간 것이 아니라, 겸손하고 순결한 사람들이며 의롭고 정직한 사람들인 목자들에게 갔다.

목자들은 내게 와서 경배하며 그들의 사랑을 바쳤다. 무한한 겸손하게 태어난 나는 단순하고 겸손하며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있기를 바랐다. 내 주교와 사제와 신자들도 마땅히 그런 사람들이어야 하고,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바이니, 정화를 치룬 교회에서는 그들도 과연 그렇게 될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의로운 사람인 요셉을 나의 양부로 주셨다. 의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이겠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거룩한 사람, 겸손한 사람, 순결한 사람이다.

그러나 주교와 내 사제들이 좀이라도 깊이 생각하고자 한다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단순함과 거룩함


말할 것도 없이 내 어머니는 모든 덕행의 모후이시고, 모든 여인 가운데서 유일한 분, 모든 여인 가운데서 복된 분으로서 내 사제직에 참여하셨다. 따라서 내 어머니는 모든 덕행에 있어서 주교와 사제들의 모범이시다.

내 어머니께서 그러하셨듯이, 내 모든 주교와 사제들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는 묵상으로 충분히 배울 수 있다. 내 사도들 중에서 내가 특히 사랑한 사람은 요한이었다. 요한은 내 자비로운 성심의 속내 이야기를 들었다. 요한의 겸손과 단순함과 깨끗함이 내 마음을 무척 기쁘게 했던 것이다.


내 사도들 중 또 한 사람은 마음이 교만하고 영혼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어서, 내 자비에도 불구하고 절망에 빠져 결국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런 이들은 내 사랑과 자비의 충동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더없이 수치로운 격정의 음흉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다음, 어떤 사람들이 나의 참된 벗들이겠느냐? 성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그 사례(事例)들이 연속적으로 네 기억에 떠오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할 것 같다.

네게 강복한다, 아들아. 너의 고통을 봉헌하여 내 고통과 하나 되게하여라. 그렇게 하면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비추는 빛이 된다.

(1975년 11월 24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나는 '진리'이다


아들아, 너는 내 약속은 진실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진리'이니, 네가 전파하도록 하기 위하여 받아쓰게 하고 있는 이 말들도 진실이다.

"무엇 때문입니까?" 하고 묻지 말아라! 너는 툭하면 "무엇 때문입니까?" 하며 묻는 버릇이 있는데 내가 미리 대답해 주겠다 : 그것은 나 예수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를 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 사실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너보다 더 재능 있는 자기들에게 내가 말을 건네는 것이 더 이치에 맞는 일이었으리라고 여기기도 한다.....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인 내가 선택을 잘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자기들이 하느님을 판단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 채 그런 말을 할 것이다. 치유할 길 없는 가련한 인류야, 너희는 얼마나 '빛'을 거부하는지!....


아들아, 어쨌든 다시 말하지만, 너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마음 쓰지 말아라. 인간의 생각이란 구름이 흩어지며 사라지는 것처럼 쉬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느님께서 너에 대해서, 또 너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알려고 힘쓰는 것이야말로 지혜이다. 큰 지혜이다.


시나고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우리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자. 나는 이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이 개인과 민족과 국가를 막론하고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엄청나고 거대한 속임수에 말려들었는지를 너에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멸망의 길로 온 인류를 이끌어 간 속임수이다.

그런데 지상의 뭇 민족과 뭇 나라들뿐만 아니라, 민족들 가운데서 '지도자'요 '교사'가 되라고 세운 내 교회도, 나 예수가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만큼 확실한 생명력을 그 자신 안에 보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악에 물들고 말았다.... 정말 무서운 것은 교회를 포위하여 전복시키고 파괴하려고 드는 현재의 시도이다!

어찌하여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느냐? 이는 볼 수 있는 귀를 가진 이들은 분명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원수는 사제와 목자와 신학자들 등 가당 재능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었고, 그들을 통하여 '교리'와 '신앙'과 하느님의 '법' 등, 교회의 내적 구조를 손상시키기에 이르렀다.

원수는 음흉하고 끈질긴 활동으로 교회의 초자연성을 지워버리고 단지 인간적인 기구(機構)로 만드는 데 거의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는 교회에 대해서 실제로 유다 회당(Synagogue)이 내게 했던 것과 같은 태도를 취했다. 시나고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유다는 은전 서른 닢을 받기 위해서 시나고가에 나를 팔아 넘겼다. 오늘날은 새로운 유다들이 권력에 대한 꺼질 줄 모르는 갈증 총족을 위해서 교회를 시나고가에 팔아 넘겼다.

나 예수는 죽임을 당했지만 사흘만에 부활하였다. 시나고가는 싫든 좋든 간에 거기 대해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리하여 내 신비체에 복수를 하게 된 것이다. 내 신비체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찬란하게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반으로 변하는 야심


아들아, 네 이해력이 미치지 못하는 맹점이 하나 있으니, 이제 내가 분명히 밝혀 주겠다. 그것은 여러 민족들 가운데서 가장 걸출한 민족이, 그만큼 남들보다 더 재능이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교만에 스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그토록 엄청난 속임수에 넘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다. 그러나 내 교회에서 가장 풍부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받은 후에 이 세상에서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는 지경이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Vos estis lux mundi) (마테 5.14 - 역주) ……. 그런데 빛이 꺼지기를 더 좋아하여 결국 어둠이 되고 말다니!

"가서 '생명'의 말씀인 내 복음을 전하여라." (마르 16. 15 참조 - 역주)……. 그런데 너희는 거짓과 죽음의 말인 너희의 말을 전하다니!

인간의 야심은 하느님 위로 올라가서 하느님의 계획을 뒤집어엎고자 한다. 야심이 반역으로 바뀌고, 자기 만족을 얻기 위한 배반이 된다. 그리하여 내 신비체를 파괴하려고 든다.

아들아, 지금은 이쯤서 그치자. 기도하고, 네 고통을 내게 바쳐 다오. 네게 강복하고, 너와 함께 네가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도 강복한다.

(1978년 11월 15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체면존중


나는 최근 여러 메시지에서 현대 사목의 모순을 폭넓게 다루었다. 이는 너무나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어서, 아무도, 심지어 그리스도인다운 생활 문제에 대해서 별로 민감하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모를 수 없는 모순이다.

그러나 두려움과 체면 존중이라는 장벽을 부술 만큼 용기 있는 목자는 없다. 두려움과 자존심과 쓸데없는 의구심이 함께 뒤섞여 거의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장벽을 넘어가려면 정신통일과 열렬한 마음으로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그 내용을 소화 흡수해야 하고, 그것을 무엇보다도 우선 너희 개개인의 내적 생활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려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그 결과 이를 외적으로, 곧 '신비체'에도 적용하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지가 생겨날 것이다. 내적 소화흡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외적 소화흡수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통상 몸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은 것이 영혼 속에서도 일어난다. 사람이 섭취한 음식물은 실제적이지만 항상 신비로운 소화 과정을 통해서 먼저 다른 물질로 바뀌어 흡수되고, 다음에는 그것이 신체 각 부위로 분배되는 것이다.


정의에 역행하는 죄


자신의 양떼를 오류와 이단에 물들게 한 채, 양우리에, 특히 신학교와 일반 학교에 이리들이 들어와서 영혼들을 대거 죽음으로 몰아넣는데도 그 이리들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취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누구나 정의에 역행하는 죄를 짓는다.

고요한 기쁨의 분위기 속에서 정신적 휴식을 취하도록 조성한 환경에 물질주의가 퍼지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오히려 흔히 영적 오염의 장소로 변질시키는 목자와 사제들은 정의를 역행하는 죄를 짓는다.


거만하기 때문에 정신이 어두워져서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저 목자와 사제들은 정의에 역행하는 죄를 짓는다. 그들은 제삼자 앞에서 그릇된 입장을 취한다. 즉, 오로지 자기들만이 성령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철저히 조사를 하지 않는다. 놀랄 만한 확신을 가지고 오류를 범하는데, 결과적으로 그 희생자가 된 사람들에게 눈물과 고통을 끼치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의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고자 할 따름이다. 따라서 필요할 경우, 아들을 사랑으로 바로잡을 줄 알고, 그 자신의 행동을 남들의 외적 판단과 결부시키지 않는다.


사목적 모순


아들아, 너는 내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하니, 이 사실을 확인하기 힘들 것이다. 나는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살핀다. 너희로서는 헤아릴 수 없지만 그것을 창조한 하느님에게는 그렇지 않다.


내 목자들과 수도원 장상인 성직자들 가운데는 훌륭한 정신으로 고무되어 앞장서서 일하는 사제들을 엄하고 딱딱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런 이들의 태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느냐?

네가 보게 되겠지만, 그런 사람들일수록 반역하며 소란을 피우고 맡아 있는 양떼를 몹시 괴롭히는 자들에게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오히려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처럼 모순된 사목을 통해서는 결코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다. 그들은 자기들의 돌투성이인 황무지에 씨를 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뿌려 보았자 싹도 나기 전에 말라죽고 마는데도 말이다.


오늘날의 교회를 괴롭히는 악들을 깊이 탐색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도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연구를 많이 해 보았으나 사실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변명할 자들이 있으리라. 그렇다, 지나치도록 많은 연구를 했다. 그러나 언제나 겉핥기식 연구일 뿐 깊이 파고든 적이 없다.

첫째 원인은 언제나, 폭풍을 예고하면서 무섭도록 격랑치는 바다 밑바닥에 있다. 오늘날의 교회를 괴롭히는 그 첫째 원인은 고위층이나 하위층을 막론하고 야심과 교만이다. 겸손만이 이 어둠을 이길 수 있다. 그러니 상당수의 목자와 사제들이 하기를 꺼리는 대조를 다시 해 보아야 한다.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의 대조이다. 내 삶의 행적은 언제나 겸손과 가난과 순종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았느냐?


베들레헴에서 갈바리아에 이르는 사제다운 삶의 길을 다시 갈 용기가 없는 사람은 오늘날의 교회가 치르고 있는 고통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게 된다. 더욱이, 앞으로 닥칠 무서운 폭풍에 대해서도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어린 양과 양들을 목자들과 함께 온통 휩쓸어 갈 그 폭풍으로 말미암아, 피를 흘릴 뿐만 아니라 영벌에 떨어질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일시적인 변덕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탄과 그 군대의 손아귀에서 영혼들을 빼내기 위한 죽음이었다. 따라서 나는 나의 모범을 따라서, 나와 함께, 날마다 겸손과 가난과 순종으로 갈바리아를 올라가야 할 사람들의 태만 때문에 영혼들이 멸망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아들아, 그들은 믿지 않고, 믿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너는 (고통의) 봉헌과 기도에 항구해야 한다.

네게 강복한다.

(1976년 6월 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정의


인간 사회에는 악습과 격정이 있고 갖가지 어려움과 불완전이 있으며 온갖 종류의 나태가 있지만, 그럼에도 실천의 정도가 다양한 덕행들이 있다. 이 덕행들 가운데 정의가 있다.

정의는 누구든지 입에 올리는 덕행이니, 누구든지 자기를 정의의 수호자라고 하거나 정의를 옹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토록 요란하게 외치는 것과 실상은 아주 다르다.


아들아, 분명히 말하지만, 만일 학대를 당하고 짓밟히는 덕행이 있다면, 바로 정의라는 덕행이다. 이는 내 교회 안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 신자들뿐만 아니라 흔히 내 사제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고, 목자들에게도 꽤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이상한 것은 세상 사람들도 이 덕행은 특히 존중하면서도 실천은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지 세상만 그렇다면야, 악마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겠지만, 불행히도 내 신비체인 교회마저 이 덕행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문제인 것이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이 덕행을 실천하려면 겸손과 사랑이라는 두 덕행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겸손과 사랑이 없는 영혼 속에는 정의가 존속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정의가 심하게 훼손되고 불의가 득세하는 것을 보게 될 때면, 겸손과 사랑 부족이 그 으뜸 가는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생활 습관


위에서 말했듯이, 정의라는 덕행이 내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자주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교회의 하위 계층뿐만 아니라 맨 고위층까지도 마찬가지이다.

내 교회를 해치는 이 악 때문에 고통받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겠느냐? 그런 사례(事例)들을 지적해 볼까? 아니다, 아들아. 그러지 않겠다. 너무나 번번이 일어나는 일이어서, 정의를 어기는 것이 생활 습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지경이니 말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징벌을 끌어당기는 불의가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고유의 책임이 있는 내 교회 사람들이 분별없이 계속 저지르는 배반 행위이다.

그런 자들은 각각의 행실에 따른 하느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시대의 조류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심판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변명이 되겠느냐? 이 세기를 사는 그들은 온갖 종류의 야심과 거만과 오류를 생활 습관으로 삼고 말았다. 그래서 그릇된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미 분명히 말했지만, 나의 생활과 그들의 생활을 대조해 보면 부인할 수 없도록 정반대라는 결과가 나올 터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조할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무섭기 때문이겠느냐?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심판' 때에는 어차피 대조해야 할 것이고, 그때에는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땅 속에서


나 예수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알고 있다.(마태 10,30 참조 - 역주)고 말한 적이 있고,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난한 사람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상을 받을 것(마르 9,41 참조 -역주)이라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쓸데없이 뱉아낸 말 한 마디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겠다는 말도 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아무것도 내게서 빠져나갈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무한히 '자비'가 아닐 것이고, 무한한 '정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들아, 이를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성인(聖人)들만, 오로지 성인들만 생각할 따름이다!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은 삶의 근본적인 것들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이 없다. 성덕을 지향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반면에 성덕을 추구하는 사람은 굳건한 바위 위에 자기 성화의 집을 지으려고 부지런히 일한다.


아들아, 내가 너희에게 기도하고 보속하라고 힘주어 말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기도하고 보속해야 할 동기가 내 교회 안에 너무나 많은 것이다!

네게 강복한다. 네 영혼 가득 슬픔이 고여 있구나. 그러나 언젠가는 그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니, 지금은 땅 속에서 썩어야 한다. 너는 사람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있지, 아들아? 하지만 네 예수인 나는 이해를 받은 적이 있었더냐?

네게 강복한다.

(1976년 6월 5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주님, 살려 주십시오!"


아들아, 사람이 영예와 존경, 재산과 건강, 행운과 재능과 교양을 다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이 결국 망해버리고 만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루가 9,25 참조 - 역주)

착한 뜻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근본적인 영적 쇄신, 곧 회개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권고를 진지하게 숙고하면 영웅적인 덕행을 쟁취할 수 있고, 완덕과 성화를 실현할 수 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충고를 진지하게 묵상했기 때문에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한 보물(마태 14,44 - 역주)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 보물을 얻기 위해서는 거짓 행복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단호히 이탈함으로써 죄를 끊어버리고, 갈바리아의 길을 따라 나를 따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의 시들지 않는 월계관과 맞바꾸는 행위이다.


아들아, 죄 상태에 있는 영혼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돌과 같다. 중력의 자연 법칙에 의하여 낙하할수록 죄의 격정의 무게가 더 커지는 것이다.

어떤 자연 법칙이 위에서 아래로 낙하하는 돌의 운동을 정지시키거나 역행시킬 수 있겠느냐?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 법칙이란 없다. 더 높은 차원의 법칙만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다.

홀로 나만이 초자연적인 법칙, 곧 하느님의 '힘'이니, 멸망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죄인을 멈추게 할 수 있고, 그 추락을 '생명'을 향한 상승 운동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죄인들에게 가장 간절히 해 주고 싶은 일이다. 모든 죄인들, 특히 정신과 관능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악마에게 끌려가는 사제들에게!

그런 도움을 얻으려면, 십자가에 못박힌 나를 보고, 내 자비로운 성심을 부르며, 베드로를 본받아 이렇게 외치기만 하면 된다 : "주님, 살려주십시오! 빠져 죽겠습니다!"(마태 14,30 참조 - 역주)

오, 아들아, 그러면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고 얼마나 재빨리 손을 내밀겠느냐!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많은 사제들이 영벌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너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있느냐? 세상에 이보다 더 크고 소름끼치는 비극이 있을 수 있겠느냐? 또 우리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지옥이란 없으며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시므로 사람에게 영벌을 허락하실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속임수를 퍼뜨렸으니, 이 보다 더 악마적인 속임수가 있을 수 있겠느냐?

그러한 사설(邪說)을 입밖에 내는 자들은 하느님의 '정의'를 삭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내게는 '자비'와 '정의'가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둘로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아, 나는 세상에 온 빛이다. 빛이 어둠 속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어둠은 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3.9-10 참조 - 역주).

나는 영혼들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내가 온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내게는 너희가 필요하다. 너희의 협력이 필요하다.

너희는 나의 지체들이고, 모든 지체는 단 하나의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구원의 신비'를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내게 너희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본받아, 또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와 순교자들과 성인들을 본받아, 너희는 아낌없는 마음으로 너희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질 때에는 내가 그 무게를 덜어 주려고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아들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는 정의와 사랑의 의무이니 아무도 면할 수 없고, 하물며 내 성직자인 너희는 더욱 면할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인도한다. 뒷걸음질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거라. 그리고 걱정하지 말아라! 네게 반감을 가진 저 사람들은 내 '복음'을 거부하고 내 '진리'를 왜곡한 자들이니, 기꺼이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는 것을 어떻게 믿겠느냐? 희생 제물이 된 영혼들이 전하는 말에 내 은총의 도장을 찍었건만, 그들은 무엇이든지 모조리 배척해 온 것이다.

예컨데, 나는 제물이 된 영혼인 마리아 발토르타(1897년 이탈리아 카세르타에서 출생. 1961년 선종 - 역주)로 하여금 내 말을 받아쓰게 하여 놀라운 저서가 되도록 하였다(전부 열권인 이 책은 본서를 낸 스위스 Parvis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 원주). 이 작품의 저자는 물론 나다. 그러자, 네가 알다시피, 사탄이 길길이 뛰며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너는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이 책에 반감을 표하며 배척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묵상한다면 수많은 영혼들이 엄청난 선익을 얻게 되련마는! 그만큼 이 책은 진실하고 견실한 영적 양식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는 새로워진 교회 안에서라야 큰 성공을 거두기로 되어 있는 책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숱하게 발간되는 거만한 신학자들의 쓰레기 같은 책이나 잡지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늘 하듯이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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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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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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