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09 조회수2,428 추천수13 반대(0)

가톨릭평화신문에 박현민 신부님의 별별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갈등, 걱정, 시기, 원망을 사람의 성격에 맞추어서 풀어주고 있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면의 문제들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1115일의 지면에 있었던 설마와 혹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말도 있습니다. 설마라는 말에는 지나친 낙관이 있습니다. 혹시라는 말에는 지나친 걱정이 있습니다. 한 건설회사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자재비를 아껴 건물을 짓다가 신축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를 냈습니다. 경찰은 건설 관계자를 불러 조사했습니다. ‘왜 노동자들을 대피시키지 않았습니까?’ 건설 관계자가 대답했습니다. ‘설마 무너질지는 몰랐습니다.’ 경찰이 또 물었습니다. ‘회사 간부들은 왜 대피시켰습니까?’ 건설 관계자가 대답했습니다. ‘혹시 무너질지 몰라서요.’ 우리 사회에 있었던 대형 참사는 설마라는 안일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반응도 설마와 혹시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중국에서 시작되었을 때입니다. 미국은 설마 미국까지 오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스크 착용에 대해서도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이 마스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도 마스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별일 없을 거라고 하였습니다. 바이러스는 여권이 필요 없었습니다. 국경도 필요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는 3개월 만에 소리 없이 미국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지난 10개월 코로나 바이러스와 원치 않는 동거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2015년 메르스를 경험했습니다. 바이러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전파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초기에 확실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은 3T(Trace, Test, Treatment), 추적, 검사, 치료를 통해서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았습니다. 한국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적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성서는 설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노아시대에 많은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만들던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설마 40일 동안 비가 내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설마 바다가 넘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방주를 만들어서 착실하게 준비했던 노아는 홍수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준비된 사람에게 시련은 더 높은 곳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에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청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의로운 사람이 50명만 있어도 벌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의로운 사람이 45명만 있어도 벌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30명만, 20명만 있어도 벌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10명만 있어도 벌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로운 사람 10명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설마라는 생각에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여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세상의 욕망과 권력을 멀리하면 우리는 구원의 방주에 오를 수 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세례자 요한의 선포를 받아들였고, 구원의 방주를 찾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의로운 사람 50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제자들은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하늘나라에서는 세상에서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었어도, 아무리 특출한 능력을 지녔어도, 아무리 멋진 외모를 지녔어도 그것이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저의 외모와 능력에 대해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보다 키가 좀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고, 참을성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고, 힘도 더 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지금 저의 모습으로 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 저의 모습은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저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 안에서 살면서, 천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면서,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잣대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적인 모습, 숫자, 성공 등으로 판단을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판단해야 하는 기준은 세상의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그것은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봉사했는지, 얼마나 겸손했는지, 얼마나 나누었는지를 가지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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