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12.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10 조회수1,802 추천수5 반대(0) 신고

(수원교구 순교사적지, 요당리 성지 성당)

20201210

대림 제2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 11,11-1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13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어렸을 때는 제가 생각하는 대로

모두 다 될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장래 희망이 바뀌었습니다.

과학자, 선생님, 소방관, 운동선수. 이렇게

계속 바뀐 저의 꿈이었습니다.

하나의 꿈을 가지고 있다가도

좋아 보이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나

친구의 꿈을 듣고는 나도 그거 할래.”

라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대로 이루어질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중년의 어른들은

모두 압니다. 세상은 자기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님을 깨닫지요. 어느 조사 결과를 보니,

19세에서 24세 사이 청년의 96%

언젠가는 내가 인생에서 원하는 위치에

도달할 것이라고 매우 확신했다.”라고 합니다.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막연한 희망만으로는 실망만 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희망을 품어야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실제의 꿈을

이룰 수가 있게 됩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주님에 대해 너무 막연한 희망을

두고 있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도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라고만 합니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평불만이 가득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무슨 폭행을

당하고 있을까 싶었는데,

오늘 묵상을 하면서 계속해서

폭행을 당하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말하는

모든 불평불만의 모습들이 하나의

폭행이었습니다. 자기 뜻을

이루어주지 않으면 절대 믿지

않겠다면서 협박의 말도 합니다.

역시 또 하나의 폭행입니다.

이것을 할 테니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전혀 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지키라고 윽박지릅니다. 역시 폭행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을

이루려는 모습입니다. 지금의 자리도

내 것이고, 하느님 나라도 내것으로

삼는 것이 아닐까요?

하늘나라를 빼앗고 있습니다.

자신의 행실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주님의 길을 믿고서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를 세례자 요한은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도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보다 작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자리는 어떨까요?

그런데도 그 하늘나라를 향해 폭행하고,

하늘나라를 빼앗으려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모든 사랑 이야기는

좌절과 절망의 이야기이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좌절이나 절망을 새삼스럽게

떠올린다는 것이다.

(애덤 필립스).

누군가와 대화할 때

나이가 들어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치입니다. 왜 이렇게 상대방을

못 잡아먹어서 난리일까 싶습니다.

법을 위반한 것이면 법의 심판을

받으면 될 것을 서로 삿대질하며

왜 싸우는지 도대체 이해되지 않습니다.

서로 논쟁해서 상대방을 논리로

이겼다고 해서 꼭 이긴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은 나에게 대한

반감을 갖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계속된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보수에 대해

그렇게 좋은 시각을 갖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타협도 하지 않는 꼰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수

지지하는 분과 언성을 높이며

이야기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기는 사람은 상대방의 생각도

인정하고 받아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갑곶성지에는 봉안당이 있습니다.

이 봉안당을 운영할 때,

정부 시책은 당연히 따라야 합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불법이 되어서

벌금이나 심하면 폐쇄까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예외 원칙을

내세우는 분이 계십니다.

안 된다고 하면, “왜 이렇게

가톨릭은 보수적입니까?

왜 이렇게 앞뒤가 꽉 막혔어요?

그러니까 발전이 없는 거예요.”

등등의 말씀을 하시며 화를 내십니다.

내가 법이고 원칙이면 대화가

전혀 될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의 대화를 떠올려 보세요.

싸움이 일어나면 를 중심에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순교사적지, 요당리 성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